***신구약 성경강해***/- 아가서 강해

[스크랩] 4:16(예수님의 향기)

에반젤(복음) 2019. 9. 22. 07:53




4장16(예수님의 향기)

성경본문: 4:16

16.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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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처| 백구영목사

 

 

모든 생명체에는 각기 나름대로 냄새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냄새는 생존을 위한 자기 방어적 냄새와 유인하기 위한 냄새입니다.

대부분, 자기 방어적 냄새는 독성이 있고 악취가 나며 공생을 목적으로 유인하는 냄새는 향기가 납니다. 이것을 자연의 향기라고 합니다.

 

또한 사람의 언행을 냄새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정과 부패가 있는 사람에게서는 악취가 난다하고 의혹이 있는 사람에게서는 구린내가 난다하며 지식과 선행이 있는 사람에게서는 교양과 인격의 향기가 난다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도덕적 향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연의 향기도 아니고, 도덕적 향기도 아닌 또 하나의 생명의 향기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의 향기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영적 향기라고 합니다.

 

성경에도 향기라는 용어가 많이 있으나 그 대표적인 것이 셋이 있습니다.

하나는, "보셈"이란 말로서 자연적인 향기이며

또 하나는, "로카흐"란 말로서 거룩한 관유를 의미하는 도덕적 향기이고,

 

다른 하나는 "크토레트"란 말로서 제단에 타오르는 제물의 향기로서 영적 향기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인위적으로 가공된 향기는 많으나 자연의 향기는 생태계의 오염으로 악취가 되고, 도덕적 향기는 인성의 부패로 악취가 되며, 영적 향기는 영적 지식의 빈곤으로 악취를 내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지질학자들에 의하면, 지구생성 중기 이전에는 지구상에 향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석송과 양치류 숲은 늘 침침하여 꽃한송이 피지 못하고 바람이 스쳐도 향기가 흘러나오는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향기로운 꽃이 출현하기 시작한때는 바로 인류의 발생직전이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꽃향기 그윽한 동산에 살게 하신 것입니다. 후각보다 영혼의 영역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감각은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인간이 드리는 제사를 받으신다는 것을 냄새 감각으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노아가 홍수후에 처음 제사를 드렸을 때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창8:21)하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의 향기가 하나님이 흠향하신 제사의 상징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영원한 구원의 향기가 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주제는 "향기"입니다.

아가서 4:16의 말씀은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왕을 부르는 노래입니다. 이는 신부가 신랑을 부르는 노래이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상징입니다.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와서 실과를 먹기를 원하노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향기뿐 아니라 그 실제 열매로 준비 되어있는 준비된 교회의 모습, 준비된 성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고린도 후서 2:14-17의 말씀은 성도들을 그리스도 예수의 향기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의 개선행진을 연상하며, 로마의 신전에서 피어오르는 향은 개선장군과 개선군에게는 승리와 환희와 큰 상급의 냄새이지만 포로가 된 왕과 장군들과 군사들에게는 죽음의 냄새인 것처럼, 복음의 개선 소식을 받아드리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냄새가 되지만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사망의 냄새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가운데서 신부의 향기, 성도들의 향기라는 주제를 발견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향기가 성도들을 통해 무엇으로 나타나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향기는 섬김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고린도 후서 2:14 하반절에 보면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오신 목적을 설명하실 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을 주려 함이라"(막10:45)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에게 있어서도 "섬김"이 복음과 함께 전해진 중요한 메시지가 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위로 하나님을 섬기고 아래로 사람을 섬기는 것이 생활입니다. 위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예배요, 아래로 사람을 섬기는 것이 봉사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영어로, 예배와 봉사가 "Service"라는 한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에는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예배란 제사의 의미가 있습니다. 제사에는 반드시 희생의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것을 흠향하십니다.

 

이와같이 봉사에도 희생의 향기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섬김을 하나의 덕목으로만 생각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섬김이란 선행이기 이전에 그리스도인의 향기, 즉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이 말은 섬김의 향기가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섬김"은 예수님의 향기입니다.

섬김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필수사항입니다.

섬김은 그리스도인의 존재이유이고 존재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섬김의 향기를 풍기는 성도가 되기시를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의 향기는 겸손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여기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인 두번째 향기는 겸손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교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빌립보 2:5 이하에서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제1의 덕은 겸손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겸손은 비천함의 뜻보다 비이기심의 뜻입니다. 이타심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겸손이 없이는 섬김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어느 성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한때 하나님의 선물이 높은 곳에 있어 그리스도인의 성품이 자랄수록 그것을 얻기가 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발견한 사실은 선물은 낮은 곳에 있어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더 낮게 엎드려 겸손해야 함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어느 성인이 일생을 걸처 깨우친 진리입니다.

그러나 이 "겸손"이 마음 먹었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겸손한 삶을 살려면 먼저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교만의 무서움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만은 인간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원죄성입니다.

권세가 있으면 교만이 권세를 따라 오고, 재물이 있으면 교만이 재물을 따라 오고, 지식이 있으면 교만이 지식을 따라 오고, 은혜를 받으면 교만이 은혜를 따라 옵니다.

 

그러므로, 다른 죄들은 하나님앞에서 도망치는 죄들이지만 교만은 하나님께 대드는 죄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죽기까지 복종케 하는 예수님의 향기입니다. 가장 고급향수일수록 가장 작은 병에 담긴다고 합니다. 허세와 자만과 오기로 가득한 세상에서 겸손한 향기를 풍기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섯째, 예수님의 향기는 변함이 없는 불변의 향기입니다.

아가서 4:16 상반절에 보면,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하였습니다.

 

향기는 바람이 불어야 더 멀리 퍼져갑니다. 북풍과 남풍은 서로 상극인 바람입니다. 북풍이 불면, 찬바람이 불어 눈보라가 몰아치고, 남풍이 불면 따뜻한 바람이 불어 꽃이 핍니다. 이 술람미 여인은, 아니 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두렵지 않다고 합니다

 

북풍이 불어오면 북풍에 더 멀리 멀리 향기를 날리고 남풍이 불어오면 조용하고 은은하게 향기를 풍길 것이니 북풍도 남풍도 불어오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약해서 조석으로 마음이 바뀌고 하루에도 12번 생각이 바뀝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 하시니라"(히13:8)하였고, "알파와 오매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올 자는 전능한자"(계1:8)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는 성도는 북풍이 불어도 남풍이 불어도 변함없이 향기를 나타내야 합니다. 이익이나 편의에 따라 말과 행동을 바꾸거나 시시로 변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아닙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한 나그네가 한덩어리의 진흙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진흙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났습니다. 나그네는 물었습니다. "너는 바그다드의 진주냐?" 진흙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너는 인도의 사향이냐?" 진흙이 또 대답하였습니다.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너는 무엇이냐?" 진흙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진흙일뿐입니다.""그런데 어디서 이런 향기가 난단 말이냐?" 이때 진흙이 대답하기를 "그 비결을 가르켜 드릴까요? 나는 오랫동안 백합화를 심을 밭의 흙이기 때문입니다." 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조석으로 변하는 인심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고 복종하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셔서 섬김과 겸손과 불변의 향기가 풍기는 성도로 변화시켜실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기억해야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자연의 향기도, 도덕적인 향기도 영적 향기도 죽어야만 영원한 향기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희생이 없이는 영원한 향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섬김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심으로, 겸손은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영원함은 주님의 생명을 버리심으로 영원한 향기가 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대강절기에, 북풍이 불고 남풍이 불지라도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