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1-8(미운 사람)
성경본문: 5:1-8
1.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
2. 내가 잘찌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3.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4.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
5.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
6.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
7. 성중에서 행순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웃옷을 벗겨 취하였구나
8.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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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엄기호목사
오늘 본문에서는 결혼한 얼마 안된 신부가 신랑에게 미움을 받게 된 슬픈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가서는 남녀간의 순결하고도,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을 그린 ‘노래 중의 노래’라고 불리는 시가서입니다. 신랑인 예루살렘 왕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과의 지극한 사랑은 곧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신비한 사랑을 상징한다고 하여 유대인의 최고 명절인 유월절에 낭독하였고, 또한 지금도 아름다운 사랑의 찬미로 읽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도 깊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하였던 신부가 신랑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신랑에게 미움을 받는 신부의 모습을 상고해 보면서 우리는 과연 신랑이신 예수님께 미움을 받고 있는 신부는 아닌가 반성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고자 합니다.
잠자고 있는 신부
신랑은 낮의 고된 직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을 넘어 밤길을 달려와 사랑하는 신부를 빨리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신부는 문을 열어 신랑을 맞이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신부가 신랑이 온 것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이 든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깨어 있는 상태(2절)로 신랑의 음성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신부는 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더 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신랑은 더욱 간절히 문을 두드리며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다고”라고 간청합니다. 여기서 네 가지로 불렀습니다. ‘나의 누이’는 지극한 애정과 친근감의 표현이며,‘나의 사랑하는 신부’는 신부에게 자기의 마음을 온통 빼앗겨 버렸다는 것을 가리키고, ‘나의 비둘기’라는 호칭은 순결과겸손과 사랑스러움을 나타내며, ‘나의 완전한 자’는 어떤 흠도 발견할 수 없는 순결한 육체와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극진한 신랑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신부는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잠자다가 망하고 실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노아는 벌거벗고 잠자다가 아들들한테 망신당하고, 롯은 잠자다가 딸에게 범죄하고, 사울은 잠자다가 물병과 창을 다윗에게 다 빼앗겼고, 다윗은 잠자다가 우리아의 아내에게 범죄하고, 삼손은 들릴라 무릎을 베고 자다가 두 눈을 잃어버리고 연자 맷돌을 돌렸습니다.
마태복음 13장 25절 이하에 있는 천국 비유 중에, “결실할 때 보이는 가라지는 천국의 아들들이 잠자는 사이에 마귀가 씨를 뿌리고 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영적으로 잠자는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잠들면 생활에 환난과 고난이 옵니다. 찬송이 잠들면 심령이 메마르고,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일 수 없으며, 말씀이 잠들면 빛을 잃고 갈 길을 모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외로우면 기도하고, 괴로우면 찬송하고, 마음이 약할 때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갈급할 때는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으로 담대함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3장 11절에는 “지금은 자다가 깰 때라”고 하였습니다. 일 안하고 자는 자의 가정에는 행복이 떠나가고, 일 안하고 자는 자의 생활은 가난하게 되며, 일 안하고 자는 교회는 시험이 오고, 부흥도 될 수 없으며, 성장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은 성도들이 나태와 안일의 자세로 신앙의 잠을 자며 주님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자리를 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 성도들이 늘 깨어 있어서 말씀을 상고하며, 바른 삶을 위해 헌신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항상 깨어 신랑을 기다려야 하는 신부처럼, 예수님을 기다려 신랑으로 맞이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신부의 안일한 태도
밤길을 달려온 신랑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지 않은 신부는 바로 게으른 신부입니다. 신랑이 애타게 찾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못 들은 척하였습니다. 그것은 신부가 이미 몸을 씻고 옷을 벗고 누웠으므로 다시 일어나기가 귀찮아서 사랑하는 사람의 간절함을 거절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시 때때로 마음의 문을 두드리며 부르시는 주님을 지극히 사소하고 안일한 이유로 거절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잠은 잘지라도 마음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신랑의 목소리인줄 뻔히 알면서도 일어나려고 하지 않거나, 문을 열어 주지 않아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면 결국은 예수님께 미움을 받을 뿐입니다.
문을 열어 주지 않은 그녀는 이기주의적인 신부입니다(2~).
신부는 자기밖에 몰랐고, 자기밖에 모르는 신부는 밤새도록 신랑이 밖에 서서 이슬을 맞아 머리가 흠뻑 젖어 추위에 떨고 있건만 잠에 취해 동정심마저 잃었습니다. 극도의 이기주의입니다.
노벨상을 탄 두 사람 중에 슈바이처와 알베르 까뮈가 있습니다. 그 중에 슈바이쩌 박사는 적도 람바네라는 곳에 가서 백인들이 흑인을 학대한 것을 속죄하는 의미에서 토인들을 치료하는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1952년에 탄 노벨상 상금으로 나환자촌을 세웠습니다. 이런 그였기에 지금도 20세기의 태양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신론자이며 실존주의자인 ‘알베르 까뮈’는 평생 돈과 명예만을 추구하며 살았고, 교외에 고급 별장을 짓고 그리로 신나게 차를 몰고 가다가 충돌하여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에 보면 머리에 찬 밤이슬을 맞으시며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6장 36절 이하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워 기도할 때, 제자들은 잠만 자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주시사 우리와 함께 영원히 계십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하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홍수라도 엄몰치 못할 사랑을 우리들에게 베풀어주셨습니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생명을 아끼지 않고 우리들을 사랑하신 그 사랑은 가장 지순하고도 아름다운 최고의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의 이기주의는 그런 주님을 알지 못하고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게으른 신부는 핑계를 합니다. 본문 3절에 보면,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는가” 했습니다 즉 사랑받는 자의 나태함이 나타납니다. 또 “내가 발을 씻었는데 어찌 다시 더럽히랴” 이것은 사랑받는 자의 방종입니다. 옷을 벗은 상태는 모든 일을 포기한 무책임한 상태를 말함이요, 발을 씻었다는 것은 의욕과 협조조차 하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신부가 신랑이 돌아오기 전에 어찌 옷을 벗고 누울 수가 있으며, 발을 씻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재림의 주님이 신랑으로 오시기까지 봉사의 옷을 벗을 수가 없습니다. 헌신의 옷을, 충성의 옷을, 사랑의 옷을 벗을 수가 없습니다. 직분의 발, 종의 발(섬김의 발, 순종의 발)을 씻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여 신랑을 고대하는 아름다운 신부들로 예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오실 때,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문 두드리는 신랑
본문 4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라고 했는데, 이것은 신랑이 신부를 만나고 싶어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친히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문을 잠근 자는 영적으로 황폐하고, 사랑을 베푸는 자에게 무관심합니다.
예수님은 부르다 지쳐 두드리고 두드리다 못해 밤이슬을 맞으며 밤을 새우고, 밤을 새우다 못해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고 몰약을 바릅니다(4~). 이것은 전심을 다하여 신부를 깨우고 들어가 만나고 싶어하시는 예수님의 호소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문을 열어야 합니다. 회개의 문, 기도의 문, 찬송의 문, 말씀의 문을 열어야합니다. 그리고 그 문을 영원히 닫지 않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면 “문을 열면 내가 너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신랑 되신 예수님과 영원히 먹고 마시며 부족함 없는 만족과 기쁨을 만끽하게 될 것입니다.
기회를 놓친 신부
신랑이 문틈으로 손을 넣는 것을 보고 신부의 마음이 동했습니다. 사랑의 불길이 다시 타올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어나 문을 열어 보았지만 이미 신랑은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6~). 허겁지겁 달려나가 찾아보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신랑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르짖어 기도하여도 주님께서 귀를 막으시고 잠잠하시며, 침묵하실 때, 무덤에 있는 자와 같다고 시편 기자(시 28:1)는 말했습니다. 그것은 주의 백성의 죄로 인하여 노하신 결과입니다.
거리로 찾아 나서지만 야경꾼들에게 조롱만 당합니다(7~). 신부는 신랑을 찾기 위하여 밤중임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 밤길에서 뜻밖에 봉변을 당한 것입니다. 그녀는 야경을 돌던 경비병들에게 매를 맞았으며, 거리의 여자처럼 취급받았습니다. 경비병들이 그녀의 옷을 벗겨 취함으로 말할 수 없는 모욕감을 안겨 주었던 것입니다. 신부는 왕인 신랑 곁에 있을 때에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할 왕비였습니다. 하지만 신랑을 잃고 헤매는 지금은 거리의 여자에 불과한 것처럼 업신여김을 받았습니다. 이제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기회는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만왕의 왕이신 신랑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원수 마귀에게 봉변을 당하고, 상처를 입으며, 멸망의 자식으로 취급을 받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운명에 빠지고 만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눅 14:18~24).
신부는 만나는 사람마다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8절)라고 부탁을 합니다.
이 얼마나 애절하게 사랑하는 자를 찾는 모습입니까? 그 사랑하는 자를 찾아다니다가 병이 났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을 찾아야 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으로 이 여인이 사랑하는 자를 만나고자 하는 것만큼 예수님을 사모하면서 찾아본 경험이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얼마만큼 절실했고,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병이 난 적이 있으며 무엇인가 주님과 대화가 잘 안되어 애타는 마음에 병이 날 만큼 예수님을 사모한 적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찾는 신앙의 길에서 기도의 생활에서 약간의 어려움과 장애가 있어도 얼마나 쉽게 중단하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께서는 언제나 오래 참음으로 우리들을 기다려 주셨고, 우리 주님께서 항상 우리를 먼저 찾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가슴으로 품어 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42:1)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병이 나도록 신랑을 사모하여 찾아다니는 신부의 갸륵한 마음처럼,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애타게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랑 되신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까웠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지금 예수님을 모셔 들입시다. 그리하여 신랑 되신 예수님께 미운 신부가 되지 말고 사랑 받고 인정받아 충성하며 승리하시는 신부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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