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도서의 명칭과 저자
1) 명칭
히브리 원문에서는 전도서가 tlhq(코헬렛)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말을 하거나 전달하는 사람, 전도가, 토론가' 등이다. 즉 많은 대중 앞에서 강연한다는 뜻이다. 본 서의 시작은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이었던 설교자의 말'이라는 표제로써 시작하고 있다. 이 말은 솔로몬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본 서의 저자가 솔로몬이라는 견해를 가지게도 한다. 한편 코헬렛은 칠십인역에서는 ejkklhsiasth"(에클레시아스테스)로 번역하고 있다. 이 말의 뜻은 '설교자'라는 것인데, 그 어원은 집회라는 말에서 나왔다. 결국 이 말은 집회에 있어서 그 집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의 기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잇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도자라는 번역은 바른 것이라 할 수 있다.
2) 저자 문제
본 서에서 저자는 스스로 자신을 말하고 있다(전1:1). 그러나 비평주의자들은 본 서의 저자가 솔로몬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왕과 신하가 관련된 금언을 기록할 때(전8:1-10)에는 저자 자신이 신하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터 이후 많은 학자들은 솔로몬을 본 서의 저자로 보지 않았다. 진보적 신학자들에 의하면 마카비 시대(B. C. 150년경)에 5본서가 기록되었다고 한다. 즉 본문에 사용된 언어가 미슈나에서 사용되던 언어로 발전했다. 따라서 본 서는 포로기 시대 이후에 기록되었으며, 저자는 포로기 시대 이후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메시지 전달의 효과를 위해 솔로몬의 입을 도용한 것 같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본 서의 저자는 본 서 스스로 증언하듯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전1:1), 즉 본문 중에서 다른 사람과 비길 수 없는 지혜와(전1:16) 재산(전2:7), 그리고 대규모 토목 사업(전2:4-6)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것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솔로몬을 가리킨다.
2. 전도서의 구성과 주요사상
1) 전도서의 구성
전도서의 구성은 한마디로 자유롭다. 시편 속에 보여지는 것처럼 일목 요연한 질서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성상의 특징으로 이해 독자들에게는 더욱더 다양한 표현 방식과 넘치는 인생관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본 서는 진술 금언의 양식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이 금언은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지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생에 있어서 참다운 가치를 부여한다고 볼 수 있다. 본 서는 그 문체상 자유스럽지만 하나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즉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구원의 진리를 독자들에게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2) 주요 사상
자칫 잘못 본 서를 대하게 되면 '헛되다'라는 표현으로 인해 염세주의자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본 서 전체에 흐르는 사상은 인간의 참다운 삶의 의미는 하나님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무의미한 삶의 연속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한 새로운 차원의 삶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인간사에 나타나는 모든 학문도 성경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본 서에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사고 능력과 자연 종교가 가져다 주는 삶의 목적과 의미를 기록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질문과 답변 뒤에는 항상 온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존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본 서 전체에 흐르는 사상은 인본주의도 염세주의도 아닌 신본주의 사상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전도서의 내용과 기록 목적
1) 내용
본 서는 정확한 문학 양식에 의거하여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본서의 내용은 보는 사람들마다 그 해석들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다양한 관점에서 동일한 주제를 말하고 있다. 저자 스스로는 인생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낭비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제와서 그러한 부분들을 되돌려 놓기에는 너무나 늙었으며, 젊은이들은 인생에 있어서 낭비하는 부분이 없어야 함을 말한다(전12:1). 이세상의 모든 것에서는 참다운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한다(전1:2). 그러나 인생은 인간들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면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라고 한다(전3:12,13; 전9:7-9). 전도자는 인생에 관한 모든 것을 사랑하였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2) 기록 목적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인간이 육체적인 쾌락만으로는 참된 삶의 가치를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 안에 거할 때만이 참다운 이생의 가치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함이다. 즉 인간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으로는 오는 영광과 축복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때는 좌절과 공허함만이 존재하게 된다. 본 서는 인간 스스로의 수준을 넘을 수 없는 세상의 모든 이념들은 모두 무용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결국 노년의 전도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인생에서 다가오는 많은 함정들을 피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늦기 전에 인생의 참다운 변화를 갖기를 원한다, 결국 전도서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 안내자가 되어 준 셈이다.
4. 전도서가 주는 의미
인생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있다. 전도서는 과거나 현재의 삶이 무의미한 삶일지라도 미래에 대한 참된 소망을 가지고 살으라고 한다. 인간들은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결여된 상태에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인생의 가치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 안에서 살아갈 때 찾아오는 것이다. 세상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면 모든 것이 헛될 뿐이다. 전도서는 이 세상의 모든 창조물을 하나님의 창조물로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생을 사용해야 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본문 해설
1. 솔로몬의 저작설을 반대하는 학설들
1) 영(E Yong)의 견해
그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전도서의 저자가 솔로몬이라는 일반적인 견해를 반대한다. 첫째, 본 서의 저자는 자신이 어떤 폭군 아래 있었던 시민이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성리 될 수 없는 것이 지혜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얼마든지 그렇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본 서의 어투가 솔로몬의 시대보다 후대의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까닭이다. 즉 기록된 말들이 아람어풍에 속한다는 것이다. 알데스(G.Ch.Aalders)도 이 의견에 동의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도 역시 성럽 될 수 없는 것이 아람어풍 이라고 해서 반드시 후대 저작의 증거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루폴드(Leupold)의 견해
그는 솔로몬이 회개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구약에 없는 이유로 솔로몬의 저작설을 반대한다. 즉 솔로몬이 전도서의 내용과 같이 회개한 사실이 있었다면 그것이 구약에 기록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옳지 않다 왜냐하면 전1:2의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고백은 솔로몬처럼 이세상의 온갖 쾌락을 누려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한 구약의 다른 부분에 그의 회개 사건도 대하33:12,13,18에는 기록되었으나 열왕기에는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경의 저자들은 관점에 다라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도 침묵하는 일이 있다.
3) 기타
위와 같은 견해들 외에도 문체가 솔로몬의 잠언과 다르다는 이유와 잠언과 아가서에서는 저자가 솔로몬이라는 사실을 밝혔고, 전도서에서는 침묵하였다는 이유에서 솔로몬의 전도서 저작설을 반대하지만 모두가 선입관에 편증된 견해들이므로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다.
2. 전도서의 특징
전도서는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책 중의 하나로 해석과 정경성에 있어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전도서 속에는 "인생은 궁극적으로 허무하며 창조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만 비로소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뚜렷한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 특징들을 살펴보면 첫째, 땅과 하늘을 구분함으로써 곤고한 인생이 하나님의 은총을 믿음으로 늪에서 벗어나 참기쁨과 의미를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전2:25,26; 전3:12,13; 전5:18,19). 둘째, 창세기의 앞 부분과 유사성을 보인다. 즉 본래 하나님은 정직하고 올바르며 흠이 없는 인간을 지으셨으나 죄로 인하여 저주받고 축복을 상실했으며 죽음이라는 죄의 대가를 받았던 것처럼 본 서에도 본래 인간은 정직하였으나 죄로 인하여 재앙과 저주를 감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전7:20,29). 마지막으로 구약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언약적 명칭인 hwhy(야훼)나 하나님의 율법, 선민 이스라엘의 언급 등이 본 서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저자가 신앙적인 결론을 먼저 말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깊은 신앙의 경지로 이끌려는 의도로 생각할 수 있다.
3. 신학적 가치
전도서는 복음이라는 직접적인 결론에 바로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깊이 연관되어 있거나 답변사기 어려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 중심으로 사고하여 하나님 중심주의 세계관을 갖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복음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는 신약의 내용과 유사하며 실제로 비슷한 내용도 발견할 수 있다.(약4:13-17). 당시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삶 속에서 예측하지 못하는 많은 상황들에 당면하게 된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그 문제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충분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적지않게 문제에 당면한 장본인들이 좌절하거나 낙담하여 실패자로 전락하고 만다. 따라서 그들에게 무엇보다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전도서는 신앙의 좋은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전도서는 그 내용에 있어서도 결코 신학적으로 손색이 없는데 하나님의 이름이 60회나 언급되었고, 6회에 걸쳐 '하나님 경외'를 강조하였다(전3:14; 전5:7; 전7:18; 전8:12,13; 전12:13). 저자는 인생을 크게 두 부류로 분류하였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류(전3:14)와 사악하여 죄악을 일삼는 어리석은 부류(전3:17; 전5:4; 전7:26)가 그것이다. 여기서 어리석다는 것은 단순히 지혜가 없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완악하여 하나님의 뜻을 무시함으로 불손하게 행한다는 의미이다. 본 서에서 특히 특이한 것은 회개나 죄사함의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러나 회생 제사에 대해서 언급함으로 이것도 역시 문제되지 않는다(전55:1; 전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