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의 노래[전 1장] [내용개요]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밝히는 본서의 서론인 본장은 인생과 만물의 허무함에 대해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저자의 고백은 결코 염세주의의 소산이 아니라 인생의 허무함을 통해 참된 창조주 하나님을 드러내고, 인생들로 하여금 그에게 의지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 먼저 저자는 인생의 모든 것이 헛되다고 선언한다. 사람의 모든 수고가 헛되며, 인생은 허무하고 순간일 뿐이다(1-3절). 뿐만 아니라 자연들도 무상하며 해아래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4-11절). 더 나아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지혜를 자랑하던 저자는 인간의 지혜조차도 헛된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12-18절). 그러나 여기서 저자가 허무하다고 고백한 지혜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아니라 인간의 지적 충족감을 위해 얻고자한 지식이었다. [강 해] 인생의 무의미함을 노래하는 전도서는 가장 난해한 책중에 하나입니다. 히브리인들은 본서의 정경성을 의심했으며, 해석에 있어서 많은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본서를 단순한 비관주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 없는 인생의 허무함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본서는 성도에게 큰 은혜를 줄 것입니다. 1. 죄악의 결과 1) 만물의 허무 전도자는 헛되다는 말을 되풀이하여 말하면서 인생의 허무를 노래하며, 심지어 세상 모든 것이 다 허무하다고 말을 합니다. 이러한 전도자의 노래는 언뜻 생각하기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들이 인간의 죄로 인하여 헛되게 되어 버렸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분리된 삶과 죄악된 만물은 전혀 의미 없고 공허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a. 죄의 보편성(시53:3) b. 죄의 파괴성(시34:21) 2) 능력의 허무 전도자가 말하는 '해 아래서'는 하나님에게서 떠난 세상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일하는 인간의 모든 수고가 헛되다고 말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은 수고의 땀을 흘릴지라도 땅이 가시와 엉겅퀴만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가인은 살인죄를 벌함으로 말미암아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땅이 그 소산을 주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 속에서 수로의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등진 인간은 지혜로울 수 없으며 유능할 수도 없습니다. a. 수고의 헛됨(창3:18) b. 노동의 무익함(창4:12) 3) 생명의 허무 일간은 자신을 일컬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모든 만물을 지배하며 그 이름을 영원히 빛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착각 때문에 애굽의 왕들은 영원히 살 수 있는 집을 만들기 위해 피라미드를 세웠습니다. 진시왕은 영광을 영원히 누리고자 불로초를 구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들은 인생의 유한함을 보여 줄 뿐이었고 그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인간이 불순종할 때 '정녕 죽으리라'고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a. 인생의 유한성(창3:19) b. 죄의 삯(롬6:23) 2. 비유된 허무 1) 영원하지 못한 만물 전도자는 인생의 허무를 좀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 자연에 빗대어 허무를 노래합니다. 먼저 자연계의 계속되는 순환 과정을 통해서 단조롭고 무의미하게 되풀이되는 인생의 허무를 지적합니다. 해와 바람은 위세가 대단한 것들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해의 찬란한 빛과 거센 광풍을 보고 인간은 놀라워합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그러한 해와 바람의 위세는 일련의 순환되는 과정의 단면일 뿐이고 후에는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이외에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음을 성도는 깨달아야 합니다. a. 피조물의 허무(롬8:20) b. 자연의 순환(시19:6) 2) 채울 수 없는 욕망 인생이 허무한 이유는 채울 길이 없는 인간의 욕창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눈과 귀에 비유하여 전도자는 허무를 노래합니다. 전도자는 왕으로서 절대 권력을 가져 본 사람입니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세상에서 보고 싶은 것을 모두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모두 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눈과 귀에 대한 욕망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무엇을 얻겠다는 생각은 인생을 불만족스럽게 하며 이러한 불만족은 인생을 더욱 괴롭힐 뿐입니다. 우리의 눈은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족함을 얻어야 하며, 주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사람만이 행복 할 수 있습니다. a. 만족함 없는 욕망(잠27:20) b. 눈으로 쏘는 신앙(욥42:5) 3) 썩어질 피조물 전도자는 인간의 무능력과 유한함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력에 빗대어 말합니다. 아무리 한 개인이 뛰어나서 뽐낸다고 할지라도 그의 업적은 결코 새로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컴퓨터와 같은 과학의 이기를 새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전도자가 말하는 것은 인생과 우주의 본질적인 동일성을 말하는 것이지 구체적인 생활 방식이나 사물을 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즉 인간이 아무리 과학을 개발하여 자신의 능력을 자랑할지라도 결국 썩어질 피조물이며, 그 죄악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a. 탄식하는 피조물(롬8:22) b. 허무한 데 굴복하는 피조물(롬8:20) 3. 헛된 영광 1) 헛된 지혜 솔로몬은 자신이 누린 영광을 생각하며 인생의 너무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왕으로 부임하자마자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왕도 가져 보지 못한 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혜로 하나님의 백성을 잘 가르치고 다스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솔로몬의 결심도 죄악 앞에서 한낱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지혜로웠던 왕이었지만 죄악을 범하여 우상을 숭배함으로 그의 영광이 헛된 것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지혜라고 할지라도 지혜 그 자체만으로 인간 이 행복해질 수는 없습니다. ·교만한 지혜(사5:21) 2) 헛된 지식 부모도 자식에게 돈이나 명예를 유산으로 남겨 주기보다는 지식을 주고자 원합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이든지 자녀에 대한 부모의 교육열은 높습니다. 물론 지식이 돈이나 명예를 얻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본질적으로 지식을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이 얻은 지식을 후대에 남기려고 애써 왔으며, 그로 인하여 많은 책들이 지금 우리 손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책들을 인간이 모두 읽거나 이해하기는 이제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지식을 얻고자 하면 할수록 인간은 더욱 피곤해질 뿐입니다. a. 무지한 인간(욥42:3) b. 지식의 유혹(사47:10) 3) 헛된 노력 노력은 그 사람의 성실성을 보여 주며 인간성을 재는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헛된 지혜와 지식을 얻기 위한 노력은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미친 짓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a. 노력의 헛됨(잠16:26) b. 은혜로 주신 노력(요4:38) 결론 세상에 죄가 들어온 후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고 이로 인하여 인생은 허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목적이 가변적일 때 인간은 불행해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 의미와 참 행복은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단어해설] 2절. 전도자가. 원어 <tl,h,qo:코헬레트>는 보편적으로 '설교자'를 뜻하는데, 어떤 모임 또는 집회에서 대중 앞에 연설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3절. 수고가. 원어 <lm;[;:아말>은 '일하다, 애쓰다'는 뜻으로 '해악, 슬픔, 불만' 등의 부정적 의미도 담겨 있다. 이는 인간의 노동이 고통스럽기만 하고 쉽게 성취할 수 없는 일들이 있음을 강조한다. 6절. 이리 돌며. '뒤돌아보다, 향하다, 에워싸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바람이 일정한 방향 없이 부는 것임을 강조하여,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이 없다면 그 방향과 목적을 영원히 알 수 없이 다만 덧없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9절. 한 일을. '형성하다, 성취하다'는 뜻으로 인간이 이루어 놓은 창조물들을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된다. 13절. 마음을 다하며. '위임하다, 저장하다'는 뜻으로 어떤 문제나 대상에게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집중시킨다는 의미이다. 주사. 원어 <@t'n::나탄>은 '주다, 부여하다, 기부하다'는 뜻으로 어떤 의무감이나 고통을 의도적으로 지운다는 의미이다. 14절. 헛되어. 원어 <lb,h,:헤벨>은 '헛됨, 무가치'란 뜻으로 성경에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든 행위가 헛됨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18절. 많으면. 일시적으로 풍부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증가되는 상태를 나타낸다. 여기서는 사람에게 지혜가 계속 증가된다 할지라도 그 지혜가 결코 사람의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줄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신학주제] 인생의 무상함. 본장에서 저자는 인생과 모든 만물의 무상함에 대해 절실한 심정으로 토로하고 있다. 사람의 하는 모든 일들이 헛되며 만물이 모두 헛되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보다도 많은 부귀와 권력을 누렸던 솔로몬의 고백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인간의 지혜조차도 모두 헛되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솔로몬을 유명하게 만든 것이 바로 그의 지혜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러한 고백이야말로 인생의 허무함에 대한 저자의 깨달음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이런 고백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었다. 본서를 기록한 것이 솔로몬의 통치 말년이었고, 이 당시에는 이미 솔로몬의 삶이 초기의 신앙적 삶에서 벗어나 타락의 길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지혜와 부귀를 누리게 되었던 솔로몬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인생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본장에서 저자가 허무함을 토로하고 있는 인생이란 하나님을 떠난 비신앙의 삶이라고 볼 수 있다.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이미 심판을 선고받은 솔로몬은(참조, 왕상11:35)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허무함을 고백함으로써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도록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전도서는 한 허무주의자의 독백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강조하는 변증서라고 할 수 있다. [영적교훈] 역사상 어떤 사람보다 많은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은 본장을 통해 자신이 누렸던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는 말년에 그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 지식에 탐닉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보다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며 인간의 힘으로 인류의 미래를 구원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인간의 노력은 결국 헛된 것이며 그 끝은 멸망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 생명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을 떠난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나아오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참된 인생의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성토들도 세상의 헛된 것들에 미련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믿으며 그 안에서 참된 기쁨을 발견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헛된 추구[전 2장] [내용개요] 전장에서 인생과 만물의 헛됨을 고백한 저자는 본장에서 허무함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교훈들은 솔로몬의 삶의 체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에 더욱 강력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 많은 것들을 추구한다. 어떤 이들은 술을 통해 쾌락을 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정욕을 통해 쾌락을 추구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 부를 쌓고 큰 집과 많은 노비들, 보석들을 사들이며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즐기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헛되며 결국엔 허무함만 가져다 줄 뿐이다(1-11절). 또한 남들보다 뛰어난 지혜를 지닌 자라도 인생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며 죽음 앞에서는 다 똑같은 존재이다(12-17절). 그러므로 일평생 애쓰고 노력한 모든 것이 헛될 뿐이다(18-23절). 결국 사람의 참된 행복은 심령에서 나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만이 소망을 가질 것이다(24-26절). [강 해] 인간은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무엇인가를 원합니다. 인간은 원하는 것들을 가질 수도 있고 못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지고 못 가지는 것에 인생의 행복이 있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이 무엇을 추구하느냐는 것입니다. 본 장에서 전도자는 인생의 헛된 추구로 인한 절망과 무의미함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인생의 즐거움 1) 절제하는 생활을 추구함 전도자는 인생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하여 먼저 절제 있는 생활을 계획하였습니다. 지혜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즉 쾌락과 즐거움을 추구하되 지나침을 삼갔습니다. 그리고 평범 속에 기쁨을 추구했습니다. 예를 들면 따뜻한 가정을 만들기 원했으며, 자신의 육체를 잘 관리하여 건강하기를 원했습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이러한 절제 속에 얻어지는 기쁨도 헛된 것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생활이 인간을 구원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a. 마음의 절제(잠16:32) b. 육체의 절제(고전7:9) 2) 물질을 추구함 인생은 단 한번뿐인 삶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번뿐인 인생을 살면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기 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야망을 가지고 살듯이 전도자도 큰 뜻을 품고 사업을 확장시켰습니다. 그리고 많은 돈을 벌어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사업에 성공하고 나서는 자신의 야망을 이루었다기보다는 자신이 물질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a. 물질을 추구한 결과(딤전6:10) b. 물질을 추구하는 악한 시기(딤후3:1-2) 3) 쾌락을 추구함 인생을 설계하여 야망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허무에서 벗어나지 못한 전도자는 이제 쾌락만을 추구합니다. 즉흥적이며 감각적인 쾌락만을 추구하여 인생의 허무와 괴로움을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따라서 술과 여자를 찾았습니다. 이렇듯 변덕스런 욕구를 모든 향락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채우려고 했지만 헛되다고 전도자는 고백합니다. 즐거움은 잠깐뿐이며,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수고는 대가 없는 괴로운 기억만을 주었습니다. a. 쾌락을 추구하는 모습(딤후3:4) b. 영혼을 거스르는 쾌락(벧전2:11) 2. 세상의 지혜 1) 교만된 지혜 사람들은 지혜를 얻어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인격을 갖고자 합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지혜자와 우매자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세상 지혜의 헛됨을 지적합니다. 죄 아래 놓여 있는 인간은 완전한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죄 아래 있는 지혜자는 교묘하게 악을 행할 뿐이지 우매자와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는 생각은 교만된 것일 뿐입니다. 도리어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더 지능적인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a. 세상지혜의 헛됨(롬1:22-23) b. 교만한 자의 모습(합2:4) 2) 지혜가 해결하지 못하는 죽음 삶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부자, 가난한 자, 비천한 자, 고귀한 자, 선한 자, 악한 자 등 그들의 모습은 서로 틀립니다. 비록 삶의 과정은 틀리더라도 모두가 다다르는 궁극적인 기착지가 있는데 그것은 죽음입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일지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존경받는 사람일지라도 죽음에 압도되며 두려워합니다. 세상 지혜는 결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진정한 지혜자는 지혜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을 구원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a. 사단의 올무로서의 죽음(창3:4) b. 정욕의 결과로서의 죽음(롬8:13) 3) 지혜자의 수고 사람들은 지혜를 가지고 어떤 일을 이루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 수고의 결과 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전도자의 고백입니다. 선을 이루기 위해서 수고하는 일일지라도 그 일의 결과가 악인의 손에 쥐어질 수 있으며, 수고의 대가가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갈 수도 있다는 것이 전도자의 체험에서 나온 지론입니다. 따라서 지혜 자의 수고는 미련할 뿐입니다. 헛된 수고로 인하여 근심만을 더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성도들은 주안에서 얻는 기쁨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a. 의인의 수고(잠10:16) b. 악인의 수고(렘51:58) 3. 참된 보람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 전도자는 인생의 헛됨을 지적한 후에 인생의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인생의 기쁨은 돈이나 명예, 혹은 부귀나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인생이 사는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인생은 그분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인생을 통하여 기쁨을 얻으시고자 계획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이해하고 그 뜻을 준행하는 자는 인생의 보람을 맛볼 수 있습니다. a.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결과(잠16:7) b.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자(롬8:8) 2)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인생 무엇을 얻고자 하는 수고와 그 노력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게으른 자를 싫어하시며 성실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따라서 성도는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수고가 헛되며 악한 것은 그 수고가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데에서 선과 악으로 판가름납니다. 인생의 수고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그 수고는 헛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성도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사는 백성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곳에서 수고의 땀을 흘려야 합니다. a. 일하시는 주님(요5:17) b. 일하는 자의 참된 모습(빌2:30) 3) 하나님을 섬기는 인생 전도자는 먹고 마시는 육체의 쾌락을 온전히 헛되다고 비판하지는 않았습니다. 육체의 기쁨에 더하여 영혼의 만족을 위해서 사는 인생이라면 참된 보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혼의 만족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육체의 만족을 얻는 일은 결코 상반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주인이 되심과 동시에 육체의 주인이 되시기도 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육체와 영혼중 어느 한쪽을 경시해서는 안 됩니다. 쾌락을 절제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삶 속에서 얻어지는 자유 가 인생의 참된 기쁨입니다. a. 섬기지 말아야 할 것(출20:5) b. 섬기는 방법(레22:20) 결론 인간의 뛰어난 지혜로도 만족을 얻지 못한 전도자는 쾌락과 물질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절제와 하나님 없는 물질은 헛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전도자는 인생이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자족하며 즐겁게 살라고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단어해설] 7절. 집에서. '집, 가정'을 뜻한다. 경우에 따라서 가족의 구성원이나 집안의 물건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한다. 16절. 우매자. 둔하고 고집만 센 사람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19절. 관리하리니. 전도자의 평생 수고의 결과가 타인에게 넘어가서 그의 관리와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는 것에 대한 한탓이다. 22절. 수고하는. 생존을 위한 양식을 얻기 위해 노동하는 것을 말한다. [신학주제] 인간 지혜의 한계성. 솔로몬이 명성을 떨치게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그의 뛰어난 지혜이고 둘째는 부귀 영화이다. 그러나 그의 부귀영화는 근본적으로 뛰어난 지혜의 소산이라고 볼 때, 결국 솔로몬의 위대한 명성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지혜에서 연유하였다. 그런데 본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지혜가 결코 우매자의 것보다 낫지 못하며 헛된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런 저자의 고백은 인간이 가지는 지혜의 한계성에 대해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한편 성경은 두 가지 점에서 저자의 고백을 뒷받침하고 있다. 첫째로 인간은 앞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아무리 지혜가 뛰어나도 자신에게 닥쳐올 앞일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행위와 앞일을 아시고 계신다(참조, 시142:3).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의 미련함보다 못하다고 가르친 것이다(참조, 고전1:25). 둘째는 사람의 지혜는 계획을 세워도 그 계획대로 실행할 능력이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계획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으며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자신의 뜻대로 모든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참조, 욥42:2). 이상과 같은 점에서 저자는 인간 지혜가 헛되다고 교훈한 것이다. [영적교훈] 세상이 점점 타락의 길로 향하는 것은 쾌락의 탐닉성 때문이다. 즉 한번 쾌락에 빠진 사람은 좀더 자극적인 쾌락을 맛보기 위해 이리저리 방황하게 된다. 부를 얻은 사람은 다시 권력을 얻기 위해, 그것을 얻은 사람은 또다시 육체의 쾌락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좇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디서도 결코 완전한 쾌락을 얻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세상이 주는 쾌락은 인생의 참된 의미를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결국은 파멸일 뿐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오직 참된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구해야 한다. 그럴 때 성도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즐겁고 기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인생[전 3장] [내용개요] 전장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설명한 저자는 본장에서 다시 일반적인 원리를 통해 인생의 허무함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는 인생의 현상들을 하나님의 섭리와 비교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모든 것에 정해진 때가 있다. 그러므로 태어나고 죽는 것, 심고 거두는 것,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현상들은 사람의 계획과 노력으로 되어지지 않는다(1-10절). 왜냐하면 모든 것을 지으시고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다(11-15절). 그러므로 모든 인생은 각기 행한 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각기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만이 축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16-22절). [강 해]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 모든 일을 주관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인간은 어떤 법칙과 때에 따라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유한성을 전도자는 깨달아 우리들에게 복종해야 할 고상한 체제가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섭리 1) 하나님의 방법 신앙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합니다. 신앙을 인간의 좁은 지각으로 이해하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가까운 사람과 갑작스러운 사별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사람이 급작스런 죽음을 당할 때 우리는 원망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했는데 아무 결과를 얻지 못할 때 우리는 절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망과 절망은 불신앙적인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각을 초월하여 자신의 방법대로 일을 하십니다. 인간은 그 방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이해를 못 할지라도 믿어야 합니다. a. 오묘한 방법(신29:29) b. 감추어진 방법(잠25:2) 2)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섭리 안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초월하여 일하실지라도 무질서하게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모든 만물이 착실하고 꾸준하고 정확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일은 분명한 목적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우리가 불안해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염려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믿고 그것을 소망하며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a. 목적 있는 하나님의 섭리(창45:5) b. 보편적인 섭리(시103:19) 3) 하나님의 영원성 인간의 계획이 정해진 방법대로 결과를 얻지 못하며 정해진 목적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의 유한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신 절대자이기 때문에 인간의 계획처럼 자신의 뜻을 변개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운은 어떠한 시대만을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를 통찰하고 계시기 때문에 목적한 대로 일을 이루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절대성과 영원성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그분의 일에 대한 결과를 보지 않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a. 신비로운 섭리(욥11:7-9) b. 전능하신 보호자(딤후1:12) 2. 인생의 본분 1) 하나님을 의지해야 함 인간은 한 해 동안 변하는 자연적인 절기를 바꿀 수 없듯이 하나님의 섭리를 바꿀 수 없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겪는 점차적 변화나 급격한 변화들은 우리의 염려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일어납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그러한 변화에 너무 연연하여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노고'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겪는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걱정과 근심 속에서 사는 삶은 부질없는 일이며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삶이 성도의 삶입니다. a. 의지하는 자의 결과(시2:12) b. 의지하는 자의 모습(시44:5) 2) 영원을 사모해야 함 하나님께서는 인생에게 소망 없는 노고만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죄 많은 세상 속에서 사는 존재이지만, 이로 인해 염려하며 살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을 보는 시각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삶 속에서 영원을 볼 수 있는 신앙을 놓치지 말고 붙잡아야 합니다. 이것이 헛된 삶을 가치 있게 할 것입니다. a. 보혜사와 영원히 거함(요14:16) b. 하나님과 영원히 거함(고전7:24) 3) 선을 행하여야 함 전도자는 인생의 허무를 노래하고 있지만 인생의 무용성을 가르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인생이 허무하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사는 것은 죄악입니다. 인생의 무의미함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그분의 뜻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이 현세의 삶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시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헛되게 생활하거나 근심 속에서 생활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하여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행은 허무한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듭니다. a. 하나님을 위한 선(벧전3:21) b. 악인을 부끄럽게 하는 선(벧전3:15-16) 3. 인생이 깨달아야 할 일 1) 육체의 죽음을 깨달아야 함 우리는 헛된 세상일에 연연하여 세상의 부귀와 명예를 얻고자 애를 씁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세상의 헛된 것을 좇는 인생들을 경고하시기 위해서 육체의 죽음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이 지각을 가지고 동물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이나 동물이나 모두 흙으로 돌아가기는 일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질없는 육체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인생을 소비해서는 안 됩니다. 죽음을 깨닫지 못한 인생은 무의미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a. 죄로 인한 벌(창3:17-19) b. 그리스도만이 구원할 수 있음(요3:16) 2) 하나님의 시험을 깨달아야 함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또한 일의 결과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올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인생의 허무를 절망하면서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삽니다. 그렇지만 전도자는 힘든 인생을 살 때마다 하나님이 인생을 시험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당부합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기쁘게 생각하고 극복하는 인생만이 삶을 보람있게 살 수 있습니다. a. 믿음을 알기 위한 시험(창22:1) b. 시험을 감당하게 사는 하나님(고전10:13) 3) 심판이 있음을 깨달아야 함 전도자는 인생 중에 불의함이 억울하게 찾아올 때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아무리 공정한 재판일지라도 인생 중에는 악이 있을 수 있으며, 공의를 행한 결과가 악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선을 행하기를 포기하며 쾌락을 좇아 악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가올 미래에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불의하지 않으며, 우리의 억울함을 하나님께서 심판날 풀어주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a. 공의로 심판하심(벧전2:23) b. 그리스도의 심판(요5:22,27) 결론 인생은 헛되며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며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행로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법대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허무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심판을 깨달아 그분의 뜻을 이루며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단어해설] 2절. 뽑을 때가. '뽑아 내다' 또는 '뿌리째 뽑아 버리다'라는 뜻으로 뿌리를 뽑는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간의 번성이 자초되는 것을 나타낸다. 8절. 사랑할때가. 원어 <bh'a;:아헤브>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가지는 무한한 애정에서부터는 보편적인 애증 관계를 말한다. 12절. 기뻐하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기쁨을 뜻한다. 사람의 가장 큰 기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을 행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18절. 시험하시리니. '정화시키다, 입증하다'는 뜻으로 연단을 위한 시험을 말한다. 21절. 올라가고. '올라가다'라는 의미 외에 '기르다, 제물을 드리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여기서는 인간의 혼이 죽은 후에 하나님 계신 곳으로 올라가서 심판받게 됨을 말해 준다. [신학주제] 하나님의 주권 이해. 본서 전체를 통해 저자가 계속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이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본장에서도 역시 인간의 모든 노력이 만물의 법칙 앞에서 무상함을 설파함으로 그 이면에서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런 점에서 본장은 저자의 하나님 주권 사상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다. 첫째는 만물의 모든 일들을 직접 간섭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사상이다. 저자는 만물의 죽고 사는 덧, 심고 거두는 것 등 만사가 다 정해진 때에 따라 이루어지며 그 뜻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로써 저자는 자신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하던 우상 숭배가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의도하는 목적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드는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법칙과 그 앞에 선 인생의 허무함을 통해 만물이 하나님을 깨닫고 그만을 경외하게 하시고자 하신 것이다. 이러한 교훈을 통해 저자는 물질적 풍요 속에 인본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힌 백성들을 깨우치고 있다. 셋째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사상이다. 모든 인생에는 각기 행함에 따라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로써 인생이 하나님만을 경외해야 할 이유에 대해 명백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즉 현세의 쾌락은 멸망의 심판을 초래한다고 지적함으로써 구원을 얻기 위해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귄고하고 있는 것이다. [영적교훈] 세상 만물에는 정해진 때가 있다. 특히 죽음의 때는 그 사람의 부귀 공명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런데 본장에서 저자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나는 것은 아니라고 교훈하고 있다. 즉 죽음 뒤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고 이 세상에서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위이다. 세상에서의 쾌락은 잠깐이지만 심판의 고통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세상의 쾌락과 성공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고통과 환난을 감수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영원한 축복의 심판을 예비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부조리의 사회[전 4장] [내용개요] 앞에서 인생의 모든 수고가 허무함을 교훈한 저자는 본장에서 불의 함으로 가득 찬 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는 인생의 허무함이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회와 구조, 모든 것에 나타남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세상에는 권세 있는 자가 설치고 힘없는 자는 억울함을 당해도 하소연할 수도 없다. 또한 열심히 노력하는 자보다 남을 속이는 자가 더 큰 이익을 얻으니 참된 만족과 평안은 어디에도 없다(1-6절). 또한 아무리 많은 부를 가졌어도 후손이 없으므로 희망이 없는 사람이 있고, 참된 우정을 나눌 친구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없고 반드시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더구나 날 때부터 권력과 부귀를 보장받은 자가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피지배자로 태어나며, 권력을 잡은 자라도 영원하지 않고 뒤에 오는 권력자에 의해 배척받게 마 련이다(7-16절). 이로써 저자는 인간사의 모든 것이 허무하며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강 해] 본장은 솔로몬의 개인적인 체험의 소산이 아니라 객관적인 관찰에서 나온 진술입니다. 삶의 다양한 모습을 잘 관찰하여 그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인생의 허무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 삶의 요체인 사회 생활의 가장 중요한 사항인 정치와 경제가 하나님 중심이 아닐 때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1. 성공을 지향하는 사회 1) 권력욕에 사로잡힌 사회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성공하기를 누구나 갈망합니다. 이러한 성공에 대한 갈망은 사람들의 권력욕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권세를 잡는 데 성공한 사람은 한번 잡은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하여 독재하는 악을 쉽게 범합니다. 성공은 결코 인간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확실한 목적을 갖지 않곤 막연히 성공을 위해서 물리적인 힘을 사용한다면 남을 괴롭히는 독재를 행하게 됩니다. a. 인간 권력의 유한성(욥12:19) b. 하나님 권력의 절대성(벧전5:11) 2) 시기심에 빠진 사회 성공만을 지향하는 사회는 성공을 한 사람 뿐만 아니라 성공을 하지 못한 사람을 죄악에 빠지게 합니다. 이기적인 성공이 성공한 사람을 독재라는 교만에 빠뜨리는 것처럼,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시기를 갖게 합니다. 사회는 한 사람이 그의 수고의 열매를 거두고 누리는 조건에 대해서 기쁜 마음으로 경의를 표해야 함이 마땅 합니다. 그러나 성공만을 지향하는 이기적인 사회는 성공하는 과정 속에 필연적으로 악을 낳기 때문에 서로간에 불신만을 조장합니다. 그러므로 성공한 사람은 경의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시기의 표적이 됩니다. 서로 사랑하며 존경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정당한 목적과 합당한 방법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a. 시기의 해로움(잠14:30) b. 우둔한 자의 시기(욥5:2) 3)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는 사회 성공만을 지향하는 사회는 어떤 사람이 정당한 방법을 가지고 성공할지라도 정당한 대가를 그에게 안겨 주지 않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수고의 대가로 시기의 표적이 되기도 하며, 나태한 사람들에 의해서 그의 능력이 낮게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성공만을 지향하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너무나 많은 것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작은 것을 얻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a. 정당한 대가(시126:5) b. 부당한 소망(눅19:21) 2. 재물에 집착하는 사회 1) 탐욕스런 사회 전도자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사람의 헛됨을 이야기한 후에 이제 재물욕에 노예가 된 사람의 허무에 대해서 말합니다. 사실 돈은 인간이 사회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난에 대비해서 노력하여 재물을 모아 둡니다. 그러나 그의 근면이 도를 넘어 탐욕의 극에 달하게 되어 비천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전락된다면 문제는 틀려집니다. 그것은 더 이상 근면이 될 수 없고 돈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지나치게 돈을 모으는 것은 근면이 아니라 탐욕이며 무가치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a. 탐욕의 결과(민11:34) b. 탐욕을 이김(벧후2:14) 2) 인격이 마비된 사회 전도자는 재물에 대한 집착을 단순한 탐욕으로만 지적하지 않고 더 나아가 미친 짓이라고 단언합니다. 재물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으며 옆에서 돌보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믿을 사람은 없으며 오직 부에 의존하여 인생을 살아갑니다. 즉 재물에 대한 탐욕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조차 마비시키므로 짐승처럼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재물 욕에 대한 경고를 하는 전도자는 인생의 허무가 철저히 인간의 죄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아버지를 배반한 사람(삼하15:4-6) 3) 이기적인 사회 사람이 재물에 대하여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것은 자기를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행복을 지키기 위하여 사람들은 돈을 모읍니다. 그러나 그러한 탐욕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기는커녕 도리어 불행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구두쇠같은 탐욕자는 기쁨이 없이 탐욕자는 기쁨이 없이 격리되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기쁨에 참여하는 것은 기쁨을 증가시켜 줍니다. 최고의 기쁨은 나눔으로써 얻어집니다. 따라서 재물을 모으는 법보다 사용하며 나누는 법을 깨닫는 인생은 허무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도자는 두 사람이 한 사람의 수고보다 나음을 역설함으로 더불어 살 것을 권고합니다. a. 어리석은 부자(눅12:20) b. 부자의 약점(마19:23) 3. 존경받는 사람의 허무 1) 세월을 이기지 못하는 권력 전도자는 인생의 허무를 논하기 위하여 뭇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의 불행을 이야기합니다. 가장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도 인생의 슬픔을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존경받는 사람이 높은 위치에 있다 할지라도, 심지어 왕이라 할지라도 그들도 패배 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왕이라 할지라도 세월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도 늙으면 판단이 흐려지게 되며 끝내 가난한 소년의 지혜보다 못하게 됩니다. 세월을 극복하지 못하는 왕의 지혜를 통해 우리는 인생의 헛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a. 세월의 무상함(창47:9) b. 세월을 아낌 (엡5:16) 2) 일시적인 권력 유능하고 자격 있는 사람이 그의 가치를 인정받을 때 급격하게 신분 상승을 할 수 있습니다. 전도자는 가난한 소년이 늙은 왕을 대신하여 권좌에 오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급작스런 행운이 인생을 가치 있게 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승리는 일시적일 뿐이며 아무리 많은 사람을 다스릴지라도 세월이 흐르면 그도 늙은 왕처럼 잊혀지게 될 뿐입니다. a. 지혜로운 자의 세월(골4:5) b. 잊게 하는 세월(창40:23) 3) 변화하는 권력 변화는 인간들의 자랑입니다. 과거보다 오늘이 더 발전되고 오늘보다 내일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희망에 찬 말을 합니다. 그러나 변화가 인생을 가치 있게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아무리 놀라운 발명일지라도 이러한 변화에 묻혀 퇴색되기 때문에 변화는 인생을 허무하게 만들 뿐입니다. a. 변함없는 하나님(약1:17) b. 필연적인 만물의 변화(히7:12) 결론 세상은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 것만 같은 환영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도자는 부와 권력 등이 그러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인생을 결코 가치 있게 만들지 못하고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너무 많은 부와 재물은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이라는 모순된 삶의 모습들이 인생의 허무를 예증하고 있음을 전도자는 지적합니다. [단어해설] 1절. 학대받는 자. 힘있는 자에게 억압받는 사람을 가리킨다. 성경은 학대받는 자의 대표격을 고아와 과부로 보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라고 명령한다. 2절. 하였으며. 원어 <j"Bev'w]:웨솨베아흐>는 '찬양하다, 칭찬하다.' 는 뜻으로 대부분 하나님의 전능하신 행동을 찬양할 때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하나님 없이 사회 구조적 모순 속에서 학대받으며 사는 것보다는 오히려 죽는 것이 낫다는 의미의 반어법적 표현이다. 7절. 헛된 것. 개인의 무력함을 가리키거나 죄된 삶의 무의미함을 가리키기도 하고 삶의 짧고 공허함을 가리키기도 한다. 9절. 상. 어떤 사람의 노동력을 고용하여 지불되는 대가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두 사람이 함께 수고하면 한 사람이 일하는 것보다 더 나은 임금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12절. 끊어지지. '뽑아 내다, 근절하다, 부수다'는 뜻으로 단순히 뽑아 내는 것부터 뿌리채 뽑아 내는 것까지 두루 사용 될 수 있는 말이다. 여기서는 삼겹으로 묶은 줄의 단단한 결속력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14절. 옥에서. '결박하다, 옥에 가두다, 포로로 삼다'는 뜻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하여 묶는다는 의미이다. 15절. 일어난. 원어 <dm'[;:아마드>는 일어서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여기서 '일어난'이란 말은 왕위에 앉았다는 의미이다. [신학주제] 사회 구조의 죄악성. 인간을 정의할 때 흔히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이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공동체 속에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 발전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사회 발전의 형태로 나타나며, 보다 나은 행복을 향한 인간의 노력은 사회 문명을 좀더 진보시키고 조직을 체계화시키는 데 집중된다. 그러나 성경은 사회 구조의 발전을 통한 인간의 행복 추구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본장에서 저자가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부조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도 본질적으로 인간 사회는 악하며 아무런 구원의 희망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인간의 사회 구조가 완전한 행복 추구의 수단이 될 수 없는 것은 사회 구조의 본질이 악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 구조가 악한 것은 그것을 만든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인간은 처음 창조시에는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아담의 범죄 이후로 선을 행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따라서 인간이 행하고 만드는 모든 것은 악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악인이 의인보다 더 부자가 되고 압제받는 자가 하소연할 곳이 없는 사회적 병리 현상들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필연적인 것들이다. 이런 점에서 본장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모든 인간적인 시도가 헛된 것이며, 인간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전해 주고 있다. [영적교훈] 인류는 가장 큰 재앙인 전쟁을 막기 위해 국제 연맹이나 연합이라는 기구를 만들었지만 지금도 지구상에 전쟁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이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도무지 참된 평화를 이를 수 없음을 교훈해 준다. 현대인들은 오늘도 좀 더 발전된 기술 문명이나 합리적인 제도를 통해 인류의 낙원을 만들고자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은 헛된 것일 뿐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악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물질 문명이나 제도를 통해 희망찬 내일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 없는 삶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전하고 그 들로 하여금 참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인생의 잘못된 태도[전 5장] [내용개요] 본장은 신앙 생활의 헛됨과 재물의 한계성을 들어 인생의 무상함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세상의 어리석고 헛된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예배에 만족하는 경향에 대해 통탄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선언의 내용이다. 특별히 본장은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를 목격하면서 실제적 무신론에 빠진 자들에게 하나님을 경멸하는 반종교적이고 거만한 태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수용하고 청종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늘 바른 자세를 구비하도록 촉구하는 본장은, 어리석은 자들의 형식적 신앙 생활의 허무함(1-7절), 관료들의 탐욕에 의한 학대(8-9절), 재물의 헛됨(10-17절), 하나님이 주시는 복된 삶(18-20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솔로몬은 현세적이고 세속적인 삶을 추구하는 인간은 결코 행복과 만족을 획득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감사히 여기고 받을 때만이 진정한 행복과 보람을 느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강 해] 인생 전반의 모순을 4장과 6장이 보여 준다면 본장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모순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장은 4장과 6장 사이에 삽입된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 내면에 있는 경박한 신앙과 과도한 탐욕은 인생을 헛되게 할 뿐이며, 이런 헛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하나님께 의지해야 된다고 전도자는 역설합니다. 1.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태도 1) 타협하는 기도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이며 의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신앙을 타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기도할 때 이러한 경박한 산앙이 표현되어집니다. 추리는 하나님께 축복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정성을 대가로 지불하겠다고 서원합니다. 십일조를 많이 드릴테니 더욱 많은 재물을 얻게 해 달라는 기도라든지 새벽 기도를 열심히 드릴테니 인생의 성공을 얻게 해 달라는 기도는 결코 신앙의 소산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많은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더 낫다고 전도자는 교훈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제물 때문에 당신의 뜻을 변경시키지는 않으십니다. a. 순결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함(시66:18-19) b. 하나님 뜻대로 기도해야 함(요일5:14) 2) 성급한 결단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붙잡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도 급하면 누구나 그 순간만을 어떻게 해서든지 모면해 보려고 모든 방법을 강구해 봅니다. 그러나 신앙은 절대로 급하게 내리는 결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위급한 사정을 이미 다 알고 계시며, 그러한 위기에 대한 처방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앙인은 하나님께 위급한 사정을 맡기고 그 속에서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신중하게 생각합니다. 급한 마음으로 함부로 입을 열어 서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a. 경솔하게 하지 말아야 함(잠20:25) b. 서원에 대한 경고(마5:33) 3) 지키지 않는 서원 신앙은 결코 무책임한 의존이 아닙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연약함을 핑계삼아 계속 같은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한 죄가 있다면 이제 그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지키기 힘든 서원을 한 경우라든지 서원 한 후 시간이 경과했을 때에는 서원한 것을 잊고 지키지 않습니다. 서원을 지키지 않는 것은 서원하지 아니한 것보다 나쁜 일이며, 하나님을 속이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는 삶을 사는 일이 성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a. 서원을 지키지 못한 야곱의 회개(창35:1-3) b. 신속히 갚아야 하는 서원(신23:21-22) 2. 세상을 향한 잘못된 태도 1) 폭정하는 권력자 모든 사람들은 식물을 먹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권세 잡은 사람이라고 해서 금을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필요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어느 곳을 가든지 부와 권력의 편중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어느 곳에서든지 빈민은 학대받고 공의가 바로 서지 못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헛됨을 보여 주는 일례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로 인해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언젠가 우리를 억압하는 권력자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폭정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a. 학대받는 사람(출1:12) b. 권력자의 말로(행12:21-23) 2) 안식을 얻지 못하는 부자 부자는 재물을 얻는데 있어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들은 걱정과 근심에서 해방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과도한 탐욕이 그들에게 만족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탐욕스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잘못된 태도는 가난한 자들과 같은 풍족한 잠과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부자는 안식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러한 재물의 허무함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세상에 대한 탐욕스런 태도를 버려야 할 것입니다. a. 믿음으로 누리는 안식(히4:3) b.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출33:14) 3) 인간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 권력을 손에 쥐려는 사람이든 재물을 모으려는 사람이든 모두 다 인생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우둔한 자들입니다. 인간은 본시 흙이므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인생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이 마치 대단한 것을 가지고 죽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인생이 세상에 대하여 바른 태도를 가지고 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알아야 합니다. a.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창2:7) b.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인간(창1:27) 3. 인생의 바른 태도 1) 고결한 목적을 가져야 함 세상에 대한, 또는 하나님을 향한 인생의 태도가 잘못된 이유는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쁨은 목적 있는 삶의 태도에서 없이 인생의 허무만을 노래하면서 일순간의 쾌락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절대로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고결한 목적을 가지고 매일매일 그 목적을 위하여 성실히 사는 사람은 기쁨에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재물이나 명예, 고결한 목적이 될 수 없으며 그러한 것들은 얻는 순간에만 기쁨이 될 뿐이지 지속적인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a. 인생의 목적(고전10:31) b. 만물의 목표(롬11:36) 2) 자기 몫에 만족해야 함 사람들이 과도한 탐욕을 품고 끊임없이 헛된 것을 갈망하는 이유는 자신의 분깃에 대하여 깊이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서는 누구에게든지 알맞는 몫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며,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이것을 선물로 받지 않고 마치 자기 것인양 자기 분깃에 대하여 불평합니다. 이렇듯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잘못된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자기 몫을 깨닫고 만족하는 사람이 참 신앙인입니다. a. 자기 몫에 불만족한 사람(마25:18) b. 불만족한 사람의 결과(마25:29-30) 3) 하나님을 만나야 함 인간의 진정한 욕구는 단순한 행복이 아니라 평안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아픈 기억과 현재의 고통, 그리고 미래의 나쁜 징조에서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따라서 피난처를 찾을 때 인생은 평안을 얻고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피난처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는 경건한 삶이야말로 인생의 바른 태도입니다. a. 하나님을 만난 욥(욥42:1-6) b. 예수님을 만난 나다나엘(요1:49) 결론 돈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재물을 바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노여움만을 일으키는 일입니다. 인생은 결코 재물로 만족지 못할 것입니다. 인생은 과도한 탐욕으로 근심만 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선물에 만족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성실히 이행하는 사람은 인생의 바른 태도를 지닌 것입니다. [단어해설] 4절. 더디게. '미루다, 연기하다'는 뜻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고의적으로 미루는 것을 말한다. 7절. 말이 많아도. 목적이 뚜렷하지 않고 수다스러우며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10절. 은을. 거래의 통상 기준을 나타내며 돈으로 번역된다. 즉 은은 돈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이다. 14절. 패하나니. 일반적으로 '주다'를 뜻하며 사물과 명성의 경우에 사라지거나 쇠퇴해져 감을 나타낸다. 15절. 벌거벗고. '벌거벗은, 옷이 벗겨진'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인 사람과 동일함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 16절. 바람을. 움직이는 공기, 즉 바람을 가리킨다. 바람은 비실체적이며 공허한 행복을 의미하기도 하며 우수한 질이나 상대적인 가치를 나타내기도 한다. [신학주제] 형식적 신앙의 허무함. 전도자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경외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앞장에서 밝힌 후에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1절)라는 말씀을 통하여 우매자의 제사의 허무함과 아울러 순종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전도자는 본장에서 우매자의 제사의 허무함의 원인으로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본서 전체에서 암시되어지는 내용으로서 자연 만물과 인생의 허무함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악의 결과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한편으로는 악을 행하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제사 드리러 오는 행위를 지극히 경멸하신다. 왜냐 하면 이러한 이중적 행위는 죄를 형식적 제사라는 허울로 감추고 하나님을 속이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말씀을 생각하면서(참조, 삼상15:22),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의 중요성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도서는 외식적인 기도, 무절제한 서원의 남발 등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시정을 촉구하였다. 전도자는 이러한 부분의 해결책으로써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러한 영적 원리는 본서의 기본적인 주제이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으로서, 인간이 구비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자세이다. [영적교훈] 하나님을 떠난 이 세상에는 죄가 존재하며, 그 결과 인생의 허무함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인생의 허무함을 반드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의뢰하고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며, 모든 불의에 대하여 궁극적으로 심판을 수행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뜻 안에서 참된 가치를 실현하며, 안식과 평안을 누리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 우리의 소망을 세상의 재물에 두지 말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매순간 자족하는 삶을 영위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
인생의 모순들[전 6장] [내용개요] 본장은 사회 속에서 엿보여지는 여러 가지 불의와 부조리한 면들을 들어 해 아래 사는 인생들의 허무함을 다루는 수분의 마지막 장이다. 4-5장과 동일하게 사회속에서 보여지는 해로운 면들을 부각시킴으로써 인간의 허무함을 나타내 주고 있다. 본장은 특별히 인간이 일상 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행복의 요소들이 결코 참다운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인간의 외적 번영이 반드시 선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인간에게 모든 부요와 존귀를 주시고도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시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기쁨이 수반되지 않는 번영은 인생을 조금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본장은 재물과 부요를 누릴 수 없는 인간(1-2절), 자녀가 많고 장수하여도 만족할 수 없는 인간(3-6절), 욕망의 무제한성(7-9절), 인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반문(10-1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 해] 전도자는 사람이 세상에서 아무리 값진 것을 가진다 할지라도 인간은 그것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이처럼 즐길 수 없는 인생 때문에 우리는 항상 만족하지 못하고 그로 인하여 절망하게 됩니다. 이러한 절망에 대한 돌파구로 전도자는 하나님께 의지하라고 인생들에게 권고합니다. 1.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인생 1) 육체적 원인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외적 요인과 내적 요인이 모두 충족되어져야 합니다. 외적 요인은 재물이라든지 권력과 같이 세상에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에 내적 요인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육체적 성향이나 정신적 성향을 말합니다. 이 둘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인생은 만족함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내적인 요인을 무시하고 외적인 요인들을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즉 부, 명예, 권력과 같은 것을 통해서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인생의 행복은 두 가지 요인의 균형 있는 발전으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적 요인 중에 하나로 손꼽을 수 있는 건강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얻기 위해서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가 건강을 잃어버립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모을지라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병으로 고생한다든지 죽어버리면 헛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a. 육욕(롬7:23) b. 악을 산출하는 육체(갈5:19-21) 2) 정신적 원인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지만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바른 인격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많은 재물이나 권력이 도리어 해가 될 뿐입니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지탄을 받습니다. 권세를 가진 자가 바른 인격을 소유하지 못하면 그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칩니다. 그러므로 비인격자들은 많은 것을 얻으면 얻을수록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해를 받습니다. a.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음(창1:27) b. 흙으로 빚어짐(창2:7) 3) 도덕적 원인 행복의 외적 요인을 고루 갖추고 건강과 인격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경건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인생의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죄로 인한 불안을 해결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단절된 사람은 인생의 참된 가치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 경건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들이 세상적인 관점에서 기쁨을 누린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잠시뿐이며 영원한 안식을 누리지는 못합니다. a. 영적인 존재(욥32:8) b. 영혼의 깨끗함(잠20:27) 2. 인생이 헛된 이유 1) 육체의 헛됨 인간은 삶의 허무를 극복해 보려고 여러 가지 것을 추구해 봅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그 방법을 바로 찾지 못하고 그릇된 방법을 좇을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그릇된 방법 중에 하나가 육체의 탐닉입니다. 육체의 욕구를 충족함으로써 삶의 허무를 극복하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떤 습관이든지 그것에 적응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맛좋은 음식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혀는 그 맛에 적응한 후에는 처음에 맛본 미각의 희열을 느끼지 못합니다. 즉 육체의 욕구는 어느 정도 충족되면 그 식별력이 떨어지게 되어서 그것들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이 둔화됩니다. a. 썩어진 것을 거둠(갈6:8) b. 정욕에 몰두함(롬13:14) 2) 지혜의 헛됨 산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사람은 산 아래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있음 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저 높은 하늘에 있는 별을 따지 못하기는 두 사람 모두 똑같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지력을 향상시키려고 애를 쓰지만, 인간의 지혜는 우둔한 자보다 조금 나을 뿐이지 그 지혜가 행복을 주지는 못합니다. 즉 지혜자나 우둔한 자 모두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기에는 무력합니다. a. 더러워질 수 있는 지혜(겔28:17) b. 유혹당하는 지혜(사47:10) 3) 미래에 대한 야망의 헛됨 우리는 현재의 고통을 완화하려고 꿈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따뜻한 미래를 꿈꾸어서 현재의 고통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공상에서 나온 꿈은 훗날 더 큰 상처를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는 절망감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언제나 현재를 충실하게 이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도는 미래를 현재를 미래로 바꾸려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a. 장래를 알지 못함(전8:7) b. 예상할 수 없는 인생(눅12:19-20) 3. 겸손해야 할 인생 1) 하나님이 계획하신 인생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서 인간은 무엇보다도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디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삶을 계획하지 못했으며 앞으로 계획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대한 계획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인간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정해져 있으며, 그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정해져 있다고 전도자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하나님의 계획에 복종하는 사람만이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고 보람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정해진 삶은 숙명론과는 다른 것입니다. 숙명론과는 달리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살피시며 계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를 숙명론으로 생각해서 는 안 됩니다. a.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롬11:33) b. 지혜로 인간을 지으심(시104:24) 2) 하나님의 강하신 힘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비관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계획을 숙명론과 동일시할 때 이러한 결과를 낳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의 계획과 숙명론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강함을 비교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바로 아는 자는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되며 겸손하게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길 것입니다. a. 사람보다 강함(고전1:25) b. 하나님 안에 있는 지혜(골2:3) 3)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능하신 하나님이 인생을 계획하시는 이유는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그 앞에서 잠잠하여 그분의 뜻에 복종할 때 인생의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그림자 같은 인생이 보람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모실 때입니다. a.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사45:12-13) b. 자연을 다스림(시89:9) 결론 인생은 부조리합니다. 많은 것을 얻은 사람일지라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엉뚱한 사람에게 누리는 일을 넘겨줄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세상 것을 많이 얻으려고 애쓰지 말고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다투는 자는 많은 부귀 영화 속에서도 빈곤함을 느낄 것입니다. [단어해설] 2절. 누리게 하심을. '권력을 행사하다, 지배하다, 마음대로 다루다'는 뜻으로 주어진 물질과 명예에 대한 활용을 나타낸다. 3절. 매장되지 못하면. 히브리인들에게 사람이 죽어서 약속의 땅에 묻혀서 열조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하나였다. 따라서 죽어서 매장되지 못하고 시신이 버려지는 것은 저주로 여겨졌다. 4절. 어두운 중에. '밤, 흑암'을 뜻하며 무감각, 무덤이라는 비유적인 의미도 잇다. 어두운 중에 간다는 것은 죽음의 영역으로 사라짐으로써 존재 자체가 망각되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5절. 평안함이라. '휴식, 안락, 평온'을 뜻한다. 평안함이란 움직임이 없는 안전한 상태를 의미한다. 7절. 수고는. '노동, 수고'를 뜻하는데 주로 노동의 어두운 측면, 즉 고통스럽고 성취하지 못하는 노동의 무상함을 의미한다. 8절. 지혜자가. 전문적인 기술자나 학식 있는 자를 뜻한다. 여기서는 세상에서 처세술이 뛰어나 부귀와 명예를 소유하고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9절. 나으나. '좋은, 선한, 즐거운'이란 의미로 실제적이거나 경제적인 이익이나 호감을 의미한다. 10절. 칭한 바 되었으며. 특별한 말이나 메시지의 전파를 말하나 특별히 이름의 명명을 뜻할때는 어떤 대상에 대한 고백과 가치 평가를 의미한다. 12절. 그림자같이. 원어 <lxe:첼>은 '그늘, 그림자'를 뜻하는데 긍정적으로는 그늘, 보호, 방어라는 의미를 갖지만 부정적으로는 무상하고 덧없는 것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헛된 생명의 모든 날, 즉 인간의 생애를 그림자에 비유하고 있다. [신학주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번영의 허무함. 전도자는 본장에서 인간의 외적 번영에 대한 바른 평가를 시도한다. 전도자는 인간의 재산과 장수와 자녀의 축복도 하나님의 희락의 선물이 없으면 전혀 무의미하며 진정한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솔로몬은 부요를 누리지 못하는 인생은 이 땅에 태어나지 못하고 낙태된 자보다 더욱 불행하다고 비유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잠언에서는 재물을 얻고 부요하며 존귀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이 땅에서 지혜롭게 산 결과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히브리 사회에서도 많은 자녀를 낳고 장수하는 것을 큰 복으로 여겼다. 이처럼 구약의 성도들은 보편적으로 지상의 여러 가지 외적 축복들을 하나님의 영적 은혜의 상징물로서 간주하며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본장에서 전도자는 이러한 일반적 견해를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고 있다. 즉 재물과 부요와 존귀가 있을지라도 누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고, 많은 자녀를 낳고 장수한다 할지라도 심령에 낙을 누리지 못한다면 불행할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세상적 재물이나 명예나 영화를 소유한다는 것이 축복을 보장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 세상적 요소들이 사용되고 주어질 때, 그때만이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처럼 본장에서 전도자는 외적 요소의 소유보다 소유권자의 내면적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영적교훈] 부를 추구하는 인생은 허무를 경험하게 될 뿐이다. 전도자는 인생을 그림자에 비유했다. 즉, 인생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금방 사라져 버리는 일시적 실체에 불과하다 말한다. 행복을 보장받기 위하여 부를 추구하는 인생이 있다면, 그림자에다가 치장을 하려고 하는 우매한 자인 것이다. 더욱이 인생은 유한하여 한번 흘러가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시간을 투자하는 데는 분명 한 목적을 갖고 투자해야 된다. 만약 행복을 추구한다고 하면서 허무만을 추구한다면, 그의 인생은 분명 덧없는 인생이 될 것이다. 성도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과 평안 속에 그 행복이 있다.
세상을 사는 지혜[전 7장] [내용개요] 본장부터는 허무한 인생 속에서도 나름대로 보람 있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교훈적 형식으로 언급하고 있다. 젊은 시절에 인생의 허무함을 몸소 경험한 후에 신앙을 회복한 전도자는, 하나님의 참된 지혜를 소유한 인생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제시해 주고 있다. 특별히 본장은 솔로몬이 자신이 장년 시기에 저술한 잠언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잠언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어는 어떤 행위에 대해 상대적인 관점에서 표현한다는 독특성을 지니고 있다. 즉 저자는 '보다 나으니'라는 비교급의 형식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만 참된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음을 역설하는 전반부(1-14절), 중용에 대한 성경적 시각을 분명히 드러내 주는 중반부(15-18절), 말씀을 의지하든 지혜자의 능력과 인간의 부패함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후반부(19-29절)로 구성되어 있다. [강 해] 본장은 이제까지와 다르게 지혜로운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인간적인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지혜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지혜는 인본주의적 지혜와는 달리 우매한 것보다 월등한 우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가 이러한 지혜를 근거로 신중하게 말아가야 함을 전도자는 역설합니다. 1. 지혜자의 마음 1) 명예를 아는 지혜자 지혜로운 사람은 명예를 아는 사람입니다. 명예를 존중히 여기는 사람은 사람이 진정으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인생을 살아야 할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우둔한 사람은 육체의 즐거움을 위해 재물을 탐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의 연각을 구하기보다 진리를 밝히는 명예로운 길을 선택합니다. 성도의 존귀한 이름이 탐욕때문에 더럽혀지지 않도록 자신을 절제하며 죽음으로 신앙을 지킵니다. a. 제자의 이름을 더럽힌 가롯 유다(마26:14-16) b. 뛰어난 이름(빌2:9) 2) 영원을 사모하는 지혜자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의 헛됨과 영원한 것을 비교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둔한 사람은 한시적인 쾌락을 추구합니다. 잠깐동안의 세상 연락을 즐기기 위하여 영원한 세계를 놓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죽는 날을 출생하는 날보다 더 낫게 여깁니다. 이것은 죽음 자체를 사모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출생하는 날은 한정된 삶을 예고하지만, 죽는 날은 영원한 삶에 들어선다는 사실을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애착을 가지는 출생은 죽음으로 치닫는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외면하는 죽음은 도리어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a.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전3:11) b. 아들의 특권(요8:35) 3) 책망을 즐겁게 생각하는 지혜자 우둔한 사람은 책망을 싫어하며 칭찬만을 원합니다. 지혜로운 왕이 판단이 흐려지는 이유는 늙음과 뇌물 두 가지 때문입니다. 늙어서 판단력이 흐려질 경우 어리석은 결정을 내립니다. 그리고 뇌물은 칭찬하는 말로서 책망을 멀리하게 하며 간교하고 아부하는 사람만을 곁에 두게 합니다. 따라서 왕의 판단은 아부하는 자들의 칭찬 때문에 흐트러지게 됩니다. 고통스럽지만 진리를 바로 알려는 태도가 사람을 지혜롭게 합니다. 잔칫집만 선호하는 사람은 인생의 쾌락만을 추구할 뿐이며 내세를 소망하지 못하게 됩니다. a. 영혼을 살리기 위해(잠23:14) b. 범죄에 대한 징계(신25:1-4) 2. 세상을 사는 지혜 1) 신중하게 일하는 지혜 지혜로운 사람은 결단코 조급한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우둔한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일을 빨리 시작하려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일의 시작보다 그 끝을 중요하며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하여 신중하게 계획을 짠 후에 시작합니다. 따라서 세상을 사는 지혜는 먼저 급한 마음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급한 마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며 노를 발하게 하므로 일을 그르칩니다. a. 악한 때에 신중한 지혜자(암5:13) b. 행동을 삼감(잠14:15) 2) 자족하는 지혜 지혜로운 사람은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구분합니다. 하나님께서 굽게 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을 인간이 곧게 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범위 내에서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는 사람은 인생을 기쁘게 살아갑니다. 인간은 장래의 일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현재의 삶에 자족하며,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근신해야 합니다. a. 자족하는 비결(빌4:11-13) b.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족(합3:17-19) 3) 중용을 선택하는 지혜 지혜로운 사람은 지나치게 지혜를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자신의 지혜에 집착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신앙은 이성을 초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은 파멸의 길에 빠지고 맙디다. 사실 지혜자가 어떤 가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의거하여 세상을 바라보지만 세상의 모든 일을 바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자기 의로움 때문에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악행 중에 장수하는 악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욥의 세 친구는 지나치게 지혜를 중시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욥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진정한 지혜는 중용의 길에서 터득됩니다. a. 자기 절제를 요구하는 중용(고전9:25-27) b. 자신을 지키기 위한 중용(잠2:11) 3. 지혜자의 고백 1) 인간 이성의 한계 전도자는 가장 완전하고 진지한 자세로 삶을 탐구하여 지혜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전도자의 탐구와 지혜에 대한 열망은 결코 피상적인 것이 아니었고, 돈과 같은 어떤 세상적인 대가를 얻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지혜를 얻는 데 있어서 그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였고 주제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였습니다. 좋은 것들은 그 상대적인 측면에서도 연구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도자의 열의와 탐구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그의 지혜로 인생의 비밀을 알 수 없었습니다. 왜냐 하면 그 비밀은 인생의 지각 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a. 이성의 한계(고전1:25) b. 진리에 대한 편견(막2:6-8) 2) 인간 의지의 나약함 전도자가 지혜로써 인생을 탐구하여 얻은 결과가 몇 가지 있었습니다. 이렇듯 약간의 진기를 깨달은 전도자는 기뻤지만 이내 절망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전도자는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의를 아는 의인은 있지만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않는 의인은 세상에 없습니다. 인생 중에는 죄의 유혹과 올무가 곳곳에 놓여 있습니다. 인간의 나약한 의지로는 그러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진리를 발견한 후에도 나약한 인간 의지와 연약한 능력 때문에 좌절합니다. a. 연약한 인간(신28:56) b. 주가 담당하신 우리의 연약(마8:17) 3) 인간 본성의 죄악됨 전도자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속에 악함이 있음을 고백하면서 지혜의 헛됨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직하게 만드셨으나 우리가 스스로 타락하여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로울지라도 악한 죄를 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타락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의 지혜는 무용지물입니다. a. 마음의 악함(마15:19) b. 출생하면서부터 악함(시51:5) 결론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인생을 산다면 보람되게 살 수 있습니다. 이 지혜는 결코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도에 지나치지 않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지혜를 실천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우리를 절망시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지혜를 받았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단어해설] 1절. 보배로운 기름. 감람유를 가리키는데 향수나 향유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의 상징이나 물질적인 번영을 상징한다. 4절. 연락하는 집에. 결혼식이나 축하 해사 등의 잔칫집을 가리킨다. 8절. 낫고. '좋다, 유익하다'라는 의미로 하나님 또는 사람에게 선이나 기쁨을 만들어 주는 상태를 말한다. 13절. 굽게 하신 것을.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시련과 환난을 뜻한다. 16절. 지나치게. 스스로의 분수를 뛰어넘어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19절. 유사. 한 성읍을 다스리는 절대 권력자인 전제 군주를 의미한다. 21절. 저주하는 것을. '사소하다, 가볍게 여기다'라는 뜻으로 상대의 인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낮추어 평가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24절. 통달하랴. 원하는 문제의 모든 해답들 완전히 습득하는 것을 나타낸다. 26절. 깨달은즉. 원어 <ax;m;:마차>는 '발견하다, 이해하다'는 의미로 어떤 대상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과 생각을 통해 온전하게 알게 되는 것을 말한다. [신학주제] 중용에 대한 성경적 시각. 전도자는 보다 나은 지혜로운 삶에 대해 여러 가지 비교 형식으로 언급하고, 종국에 가서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삶으로 유도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이 세상의 삶 가운데서 중용의 삶을 살 것을 권고하고 있다. 지나치게 의인이나 지혜자, 악인이나 우매자가 되지 말라고 권고한 내용은 헛된 인생에서 지혜로운 삶을 살도록 권고한 본서 전체의 맥락과 외형적으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자신의 의중에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 장수하는 악인이 있다는 말도, 의롭게 살 경우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구약의 일반적 사상과 다르게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말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본서가 쓰여진 전제 조건을 알아야 한다. 전도자는 '해 아래' 즉 죄악된 이 세상에서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사건들의 허무함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도자는 '자기 의'를 추구하는 인본주의적인 의인이나 인간적인 지혜자, 혹은 그 반대로 인간적인 악인이나 우매자도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것이 곧 중용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영적교훈] 세속 철학에서 중용이란 어느 양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적당한 중간을 가리킨다. 그러나 본장에서 말하고 있는 중용은 이미 계시된 하나님의 규범을 변개하거나 가감하지 않고 온전히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전자는 인본주의적 처세술이라 할 수 있고 후자는 철저한 신본주의적 사고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참 생명의 길은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그 하나님의 길을 걸어가는 것으로서, 그 것이 곧 중용임을 우리 성도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권위에 교훈[전 8장] [내용개요] 전장에서 지혜로운 중용의 길을 잠언 형식으로 제시하였던 전도자는 본장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도덕적 통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외적 주제의 전환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앞의 내용과 단절되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지혜롭고 바른 삶에 대한 요구가 동일한 맥락에서 소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전도자는 본장에서 세상의 여러 가지 모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공의를 실현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세상적 조류에 휩쓸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겸허하게 복종하며 살도록 유도하고 있다. 특별히 본장은 하나님의 계획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전도자는 현재 세상에 팽배해 있는 혼란 과 무질서에 대해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이 시행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왕에 대한 지혜자의 자세가 드러나는 전반부(1-8절), 악인의 번영과 의인의 고통에 대한 신앙적 이해가 서술되는 중반부(9-15절),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유한성이 비교되고 있는 후반부(16-17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 해] 본장은 권위에 대한 교훈을 통해서 세상사는 지혜가 무엇인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먼저 세상적인 권위일지라도 일단은 복종해야 함을 설명하고 있으며 그 다음 후반부에 가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에 복종할 것을 권면 합니다. 이러한 권위들이 때때로 부당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유한성 때문이라고 전도자는 지적합니다. 1. 왕의 권위에 대한 지혜 1) 우리의 필요에 의해 생긴 권위 인간들이 세상 집단 내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그 집단을 위해 통치자가 있어야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집단을 유지하고 완전케 하는 데 왕의 통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합당한 정부는 그 백성을 보호하고 바르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보호 때문에 그 국가의 백성들은 그들의 의무를 이해하고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왕의 권위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생긴 것이므로 복종해야 합니다. a. 세상 권세에 복종해야 함(막12:17) b. 모든 제도에 순종해야 함(벧전2:13) 2) 하나님이 주신 권위 인간의 권력기구는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고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것입니다. 왕의 권세는 그 자신의 타고난 탁월함이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의해서 얻어진 것입니다. 만약 왕의 권세가 왕의 능력 때문이라면 그 왕보다 탁월한 사람은 왕의 권세에 복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의 권세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에 세상 어떤 사람도 왕의 권세를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왕의 권세를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리 주님과 사도들은 통치자들에게 순종해야 함을 가르쳤습니다. a. 권세의 근원은 하나님(롬13:1) b. 위정자들에게 복종할 것(딛3:1) 3) 왕의 권위에 대한 지혜자의 판단 왕의 면전에서 항상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왕의 명령을 단순하게 복종하지 않습니다. 순종하는 것이 안전한 길이지만 불의한 명령에 대한 순종이라면 양심을 속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혜자는 왕의 명령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판단합니다. 지혜자는 다니엘이 그랬던 것처럼 왕의 명령에 거부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안전한 길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의로운 길도 선택합니다. a. 하나님을 거역하는 권세(단5:22-23) b. 권세의 해악(시2:2) 2.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지혜 1)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는 지혜 자연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는 불가사의하고 불변적인 힘에 의해 진행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를 알지 못하는 우리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몇 가지 법칙을 이해하는 지혜를 가진다면 우리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통치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지식으로 일하시지, 불완전한 생각으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시행 착오가 없으며 우리처럼 실패와 성공을 통해 배우시지 않습니다. 모든 계획이 불변하는 한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진행됩니다. a. 만물을 창조하심(사40:26) b. 만물을 주관하심 (대상29:12) 2) 미래의 운명을 바라보는 지혜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과 변치 않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 행위에 불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감추어진 장래에 대해 불안해 합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하나님의 통치를 불안해하지 않고 복종합니다. 하나님이 장래 일을 감추신 것은 우리에게 성실함을 요구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장래 일을 치리 안다면 우리는 게을러질 수 있습니다. ·악인의 멸망(스8:22) 3) 인내하는 지혜 하나님의 통치에는 정한 목적이 있고 불변하는 어떤 계획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감추어진 장래를 인내합니다. 우둔한 사람은 자신의 장래를 변경하려고 발버둥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시간을 거스르기보다는 그 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립니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정해진 시간을 초월해서 살아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복종이 인내로부터 시작됨을 알아야 합니다. a. 불가해한 하나님의 섭리(욥26:14) b. 인간지혜의 한계(전3:11) 3. 권위에 대한 지혜 1) 일시적인 모순 우리는 악인이 그들의 행위에 대해 축복을 받는 것처럼 번성하고 의인이 그들의 의에 대해 형벌을 받는 것처럼 고통을 당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의와 불의에 대한 혼란이 모순된 권위부터 나옴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불의한 권세자의 부당한 횡포에 대해 절망합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부당한 압제에 놀라거나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립니다. 지혜자는 모순된 상태가 우리 삶의 최종적인 결론이 아니며 영원히 지속될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a. 그리스도에 의해 멸망됨(요일3:8) b. 그리스도의 재림 때 심판받음(살후2:8-9) 2) 모순 속에 남아 있는 축복 권위의 모순으로 인하여 인생이 무질서한 상태가 될 때 우리는 당혹감을 느끼며 낙망합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이러한 절망적인 인생의 모습 속에서 낙심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낙심되는 인생 속에서 현재 누릴 수 있는 축복들을 발견합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태라 할지라도 어디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며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인생의 모순들을 부정하고만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모순들과 싸워 승리합니다. 그리고 승리의 기쁨을 마음에 누리는 능동적인 삶을 삽니다. a. 인자와 진리로 보호받음(잠20:28) b.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경륜을 알게 됨(엡3:9-10) 3) 하나님의 선하심 악인이 흥하는 것 같은 모순된 인생을 절망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불신하는 자들입니다. 악이 세상에 존재하더라도 하나님 안에 악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속에서 티끌만한 죄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이 있는 한 공의로운 심판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의의 칼을 드실 때 세상 권위의 모든 모순들은 제압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a. 거짓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히6:18) b. 하나님의 보호(시31:23) [단어해설] 1절. 광채가 나게. 지혜로 인하여 사람의 얼굴빛이 밝아진 상태로 그 사람의 심성이 변하여 자비롭고 은혜로운 마음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3절. 급거히. '혼란되다, 당황하다'는 뜻으로 예상하지 않았던 위험한 일이나 불길한 일에 직면한 사람의 모습을 말한다. 8절. 주장하여. '지배하다, 권한을 행사하다'는 뜻으로 어떤 사람 또는 대상에게 독재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권력을 마음대로 남용하는 것을 말한다. 12절. 죄인. 원어 <af;j;:호테>는 '세속적인 성향을 가지며 상습적으로 죄를 범하여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가리킨다. 15절. 희락. 깊은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기쁨, 희락을 뜻한다. 여기서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얻는 기쁨을 가리킨다. 16절. 보고자. 하나님의 말씀을 본다는 것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고, 말씀에 눈을 감는다는 것은 완악한 마음을 표시한다. [신학주제] 왕의 권위에 대한 순종. 본장에서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의 인간 정부의 역할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그리하여 왕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왕은 하나님의 위임을 받은 대리 통치자로서 신적 권위를 가진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권력에 순종하는 태도가 참다운 지혜자의 도리라고 밝히고 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인도하도록 위임받았다. 그러므로 그 는 '왕의 명령을 지키라', '왕은 그 하고자 하는 것을 다 행함이니라', '왕의 말은 권능이 있나니', '무릇 명령을 지키는 자는 화를 모르리라' 등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왕의 권위가 절대적임을 암시하고 그 권위를 무시하거나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을 업신여긴 것과 같이 심판에 처해진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신약에 와서 더욱 분명하게 표현되는데, 인간 정부는 현대의 모든 무질서를 바로잡는 하나님의 방편으로 정의되고 있다(참조, 롬13:1-7). 그러므로 솔로몬은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는 삶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태도임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세상 권력자들은 자신의 지위와 힘을 남용하여 불의를 자행할 우려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가 완벽하게 시행될 날을 기대하며 당면한 학정과 불의를 견디어 낼 때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는 세상이 실현될 것이다. [영적교훈]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 되신다. 그러나 그분은 단지 여느 독재자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거나 자신의 이기만을 챙기는 분이 아니다. 도리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나아가 그 아들과 더불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사랑의 왕이시다. 바로 이 같은 왕이시기에 우리는 기뻐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합당한 영광을 드리며, 신실함과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발 앞에 무릎 꿇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세상의 권세 잡은 왕들에 대해서 분명 순종하는 태도를 가져야 된다. 그러나 이것이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세상 권력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가 분명히 선행됨을 인식하고, 그 통치와 같은 맥락에서의 세상 권력에 대한 순종이기 때문이다.
부조리한 세상[전 9장] [내용개요] 본장에서 전도자는 세상의 많은 사건들이 인간의 통제 능력을 초월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현실적인 모순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본서 저자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을 설명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많은 증거들을 제시해 왔다. 하나님의 계획을 부인하게 만드는 요소들에 대해 답변했으며, 번영이 반드시 선하지는 않고, 불행이 반드시 악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내용과 동일한 맥락에서 본장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를 요청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본장은 어두운 현실속에서도 최종적 승리를 확신하며 낙관적으로 살아가도록 당부하는 전반부 (1-12절), 세상 지혜의 한계성을 지적하는 후반부(13-18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 해] 전도자는 본장을 통해서 또다시 인생의 부조리함을 고발합니다. 즉 해 아래의 세상만을 본다면 선과 악이 혼재되어 있으며, 지혜와 무지가 똑같아 허망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논조는 본서 1-2장의 것과 같습니다. 전도자는 결론부에 이르러 세상의 헛됨을 다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의인과 악인의 동일한 운명 1) 축복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사실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때가 악인이 복을 받을 때입니다. 누가 행운을 차지하는지 그 기준이 세상에서는 모호합니다. 의인들이 때때로 번영을 누리지만, 행운이 전적으로 의인의 것은 아닙니다. 악인도 의인처럼 복을 받고 번영합니다. 거룩한 사람과 비열한 사람의 운명이 이 세상에서 공존합니다. 거룩한 사람이라고 해서 더 나은 삶을 반드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이 전혀 징계받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역시 외적으로 특별나게 두드러진 축복을 받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부조리가 우리로 하여금 해 아래 있는 삶의 헛됨을 일깨웁니다. a. 축복의 근원(창9:1-2) b. 축복의 형태(창14:19-20) 2) 시간 인생에게 주어진 시간이 의인이나 악인이나 동일합니다. 의로운 일을 많이 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인생의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기회가 주어집니다. 시간은 선과 악의 불공평한 분배를 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악인이나 의인이나 똑같이 시간을 성실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의로운 행위에 대한 대가로 하나님께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지는 못합니다. 헛된 인생이 가치있게 되는 것은 더 많은 시간을 얻어서가 아니라 시간을 가치 있게 보냄으로 가치 있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a. 지혜자의 시간(엡5:16) b. 미래의 불확실성(눅12:19-21) 3) 죽음 우리의 선행이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악인이나 의인이나 누구든지 육체가 죽어 썩습니다. 이러한 무서운 필연성이 영원의 소망을 가지고 있는 의인을 두렵게 하며 절망에 빠뜨립니다. 어떤 삶을 살든지 똑같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헛된 것으로 보게 합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죽음의 부조리함에 주저하지 않고 죽음 저편의 세계로 꿰뚫는 눈을 가집니다. a. 기운이 쇠함(창25:8) b. 혼이 떠남(행5:10) 2. 현재의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법 1) 주신 복을 누리라 현재의 부조리한 면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절망에 빠져 심한 우울증세를 보일 수 있다. 그리고 방종하여 무절제한 쾌락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부조리한 세상을 보람되게 살기 위해서는 중용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육체적 욕구가 죄악의 소산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본성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조리한 세상을 불평 불만 속에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을 찾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미각을 살려 음식을 맛있게 먹고 하나님이 주신 미적 감각을 살려 예쁜 옷을 입는 것은 절대 죄악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의 복을 누리며 만족하게 살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a. 현세의 복(창24:35) b. 넘치는 복(왕상3:13) 2) 주신 사명을 감당하라 우리는 삶의 어두운 모습들에 빠져 절망하며 더 이상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악인에게 돌아가는 상을 보며 일체의 노력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생은 어리석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여전히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에 대한 사랑을 한번도 거두신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실하심대로 우리도 좌절하지 말고 우리의 사명을 계속적으로 이행해야 합니다. a. 사명을 이행함(살후3:8-10) b. 사명의 목적(빌3:11-14) 3) 다가올 미래를 소망하라 현재 의인이 보상받지 못하고 의인과 악인이 동일한 삶을 산다고 해서 의인의 보상이 끊어진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지 않으며 다가올 심판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정한 시기에 의인에게 상을 주며 악인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소망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부조리한 인생의 절망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a. 준비할 미래(마6:31-32) b. 미래의 소망(렘29:11) 3. 지혜의 힘 1) 가장 큰 능력 세상의 허무를 극복하는 사람은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이웃의 삶을 구할 수 있습니다. 전도자는 세상의 어떤 무기보다도 지혜가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진 일들은 아무리 그 승리의 소리가 클지라도 결국 소멸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지혜는 모든 힘을 이끄는 힘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없이는 그 모든 힘들이 불법적이고 파괴적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혜로 일을 처리해야 하며 모든 힘이 지혜에 의해서 통제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a. 지혜의 값(욥28:16) b. 지혜의 이익(잠3:13-14) 2) 조용한 능력 지혜는 결코 소란스럽지 않습니다. 전도자는 지혜가 조용히 들려 온다고 말했습니다. 알차지 못한 것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고 더 큰 소리를 냅니다. 지혜의 중심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야망의 시끄러움과 격동, 자만심 그리고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주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만이 지혜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a.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욥28:28) b. 진리를 이해하는 지혜(호14:9) 3) 때때로 모욕을 당하는 지혜자 지혜자는 큰 능력을 가지며 자신과 더불어 위기에 처한 이웃을 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여 가치 있는 삶을 열어 줍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조용한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좁은 길을 걷게 됩니다. 때로는 우둔한 자에게 모욕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이러한 일로 실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혜자의 말이 우둔한 자의 호령보다 더 크게 세상에 들려지기 때문입니다. a. 유혹당하게 할 수 있음(사47:10) b. 인생의 확고한 기초(마7:24) 결론 의인이나 악인이나 모두 덧없고 모순된 세상을 삽니다. 내일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헛된 것을 추구하며 덧없는 인생을 살기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단어해설] 2절. 깨끗한. 원어 <r/hF;l'w]:웰라타호르>는 물질적 깨끗함, 윤리적 깨끗함, 그리고 제의적 깨끗함을 모두 내포한다. 5절. 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상이나 축복이 아니라 인간이 투자한 노동력에 대한 대가로서의 삯을 의미한다. 8절. 향기름. 일반적으로 올리브 기름을 가리키는데 기름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향유나 향료 등으로도 쓰인다. 성경에서 기름은 대개 번영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9절. 분복. '배당, 몫, 영토'라는 뜻으로 아내가 남자의 분복이라는 말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유업임을 강조하고 있다. 11절. 유력자. 전쟁에 관한 지식을 갖춘 사람을 가리킨다. 12절. 걸리고. 짐승이 사냥꾼의 덫에 걸린 것을 의미한다. 14절. 흉벽. 성채를 보호하기 위해 둘러쌓은 흉벽을 가리킨다. 15절. 가난한. 원어 <@Kes]mi:미쓰켄>은 재산이 많지 않아서 생계를 위해 노동해야만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17절. 종용히. 단순히 움직임이 없음을 뜻할 뿐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다 끝마치거나 전쟁에서 승리를 얻은 후에 갖게 되는 휴식을 뜻한다. [신학주제] 본장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의 특징. 전도자는 1인칭 단수의 표현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섭리가 대단히 오묘함을 강조한다. 그는 의인과 악인이 아무런 구별 없이 동일하게 무덤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신비 중의 신비로 취급한다. 어찌하여 제사와 선을 행하지 않는 비종교적이요 세속적인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들과 동일한 취급을 받을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더욱이 이 표현을 왜곡하여 모든 사람들은 동일한 운명에 처해진다는 맹목적인 결정론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장은 문자주의적인 해석으로는 진의에 도달할 수 없다. 본서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각 구절의 의도를 심층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즉 전도자는 하나님의 독단적 결정을 인간이 모두 알 수 없으므로, 판단하기보다는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전도자는 결코 비관주의나 허무주의에 빠져 탄식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세상적 선물들을 기쁘게 수용하고 활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행동과 역사는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계획에 의지할 뿐이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며 주관자이시다. 인간은 단지 상대적인 의미만 있을 뿐이다. 이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인간의 이해는 절대적일 수 없으며, 하나님의 뜻은 심오하여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고,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인 권위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적교훈] 전도자는 의인과 악인의 운명이 비슷하다는 사실이 비관적 태도나 게으름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로 인하여 냉소 적인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고 열심히 생활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전도자는 기본적으로 인생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한다. 비록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존재할지라도 고민하지 말고 즐겁게 살아가라고 충고한다. 오늘날 성도들은 전도자의 이러한 충고를 잘 수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분별하며 살아야 한다.
지혜자와 우매자[전 10장] [내용개요] 본장에서는 지혜로운 인생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전도자는 여기서 지혜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기 위하여 막연하지만 서로 연결된 일련의 잠언들을 나열하고 있다. 사실 지혜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지혜는 고작해야 매우 제한된 도움을 줄 뿐이며, 때때로 아무 소용이 없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본주의적인 지혜일 때 그러한 것이기에, 본장에서는 우매함과 비교하여 참 지혜를 긍정적인 측면에서 평가하며 지혜롭게 생활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전도자는 지금까지는 인생의 모습을 세세하게 묘사한 가운데 그 허무를 극복하고 대처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삶의 방법을 짧은 잠언 형식으로 기술했었다. 그런데 본장에서는 우매한 자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그 폐단을 구체적으로 나열함으로써 지혜로운 삶의 귀중성과 필요성을 상대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우매한 자들의 행동과 폐단의 실례들을 언급한 전반부(1-7절), 우매한 자들이 당하게 되는 피해를 나타낸 중반부(8-15절), 한 나라 통치자들의 우매함의 폐해를 묘사한 후반부(16-20절)로 구성되어 있다. [강 해] 본장은 전도자의 지혜의 말과 현명한 관조를 기록한 잠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교훈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본장에서 전도자는 지혜자와 우매자의 행태를 비교함으로써 지혜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덧붙여 지도자와 한 나라의 정치에 관련된 지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참된 지혜는 인간 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를 튼튼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1. 악행을 멀리하라 1) 공동체에 손해를 입히는 우매자 전도자는 어리석은 행동이 가져다 주는 피해에 대해 '죽은 파리가 향 기름으로 악취가 나게 하는 것같이 작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로 패하게 하느니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 말은 적은 악이라고 해도 그것이 공동체에 커다란 손해를 끼친다는 의미입니다. 전도자는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다는 말로 지혜자와 우매자를 서로 비교하였습니다. 여기서 오른편은 옳은 것을 가리키며, 왼편은 불의를 가리킵니다. 우매자는 전인격이 어리석은 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매자는 사람들 앞에 자신을 뽐내며 자랑하나 실상은 자신의 우매함을 널리 광고하는 것입니다. a.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함(살전5:22) b. 행함이 없는 믿음(약2:26) 2) 자리를 떠나지 말라 전도자는 주권자가 분을 일으킬 때에 자리를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권자는 선한 왕이 아니라 악한 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전도자의 말은 폭군에게서 올바르지 못한 대우를 받을지라도 주권자에게 대항하지 말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라는 뜻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고 인내하면 그 고통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선으로 악을 이기도록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a. 직무에 충실야 함(고전4:2) b. 경거망동을 삼가야 함(벧전4:11) 3) 우매자의 악한 통치 우매자가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면 그는 공의롭게 일을 처리하지 않고 사사로운 개인적인 관계에 따라 일을 처리합니다. 우매자는 외적인 것에 치중해서 살기 때문에 내적인 것을 보시는 하나님과는 다른 삶을 추구합니다. 그들의 영화는 백성들의 수모와 땀을 강제로 빼앗아 이루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전도자는 사회의 혼란 상태가 전적으로 주권자의 책임이라고 하였습니다. a. 학대자의 손에 권세가 있음(전4:1) b. 악인이 처처에 횡행함(에3:1) 2. 우매자는 실패하게 됨 1) 어리석은 자의 함정 전도자는 다른 사람을 해하는 자의 결국에 대해서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돌을 떠내는 자는 그로 인하여 상할 것이요 나무를 쪼개는 자는 그로 인하여 위험을 당하리라'고 했습니다. 악인은 그 손의 행한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악인이 모든 사람을 다 속여도 하나님만은 속이지 못합니다. 악인은 그 의지하는 것이 돈, 권력 등 세상적인 것들입니다. 돈이나 권력 등 일시적인 것들을 의지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a. 속히 베임을 볼 행악자(시37:1) b.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심(갈6:7) 2) 일을 준비케 하는 지혜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위해 준비해야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나무를 쪼개기 위해선 도끼의 날을 미리 갈아야 합니다. 만약 날을 갈지 아니하고 나무를 쪼개면 힘만 들고 나무는 쪼개어지지 않습니다. 이렇듯 준비성이 없는 일은 실패하게 됩니다. 전도자는 범사에 사람을 준비하도록 만들고 효율적인 행동을 취하도록 하는 것은 곧 지혜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는 일이 이루어질 때를 위해 준비하게 하고 계획을 세워 추진하게 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 일을 성취시킵니다. a. 베틀의 북보다 빠른 세월(욥7:6) b. 최대로 활용해야 함(엡5:16) 3) 어리석은 자의 말 은혜로운 말을 하는 지혜자와는 달리 우매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킨다고 전도자는 말하였습니다. 우매자는 그 말의 시작이 어리석음에서 시작합니다. 그는 자기 자신 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말을 많이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그들은 한치 앞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매자들은 사람들을 해롭게 하며 시끄럽게 합니다. 그들은 책임지지 못할 일들을 저지르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해롭게 합니다. 우매자는 자신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가기에 피곤한 인생입니다. a. 간사한 혀(시52:2) b. 죽는 것이 혀의 군세에 달림(잠18:21) 3. 국가의 번영과 멸망 1) 나라의 승패 전도자는 먼저 저주받을 나라에 대해서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에 연락하는 이 나라여 화가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복받을 나라에 대해서 '왕은 귀족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려 함이 아니라 기력을 보하려고 마땅한 때에 먹는 이 나라'라고 했습니다. 복 있는 나라는 지혜로운 왕의 통치를 받는 나라입니다. 왕이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왕의 신분에 벗어나 행동하면 그것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문제가 됩니다. a. 깨끗한 곳이 없음(사28:8) b. 선악을 바르게 분별함(왕상3:9) 2) 게으른 자의 집이 무너짐 전도자는 게으른 통치자의 모습을 '게으른즉 서까래가 퇴락하고 손이 풀어진즉 집이 새느니라'고 표현했습니다. 게으른 자의 집이 무너지듯 그 사람의 인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게으른 자는 열심히 일해 수고의 떡을 먹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쉽게 살아가는 것에 관심이 있으며, 쾌락을 즐기는 데 주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으른 나라가 파탄에 이르며 결국에는 망하는 것처럼 쾌락을 추구하는 인생은 결국 망하게 됩니다. a.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음(잠12:24) b.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함(잠20:4) 3) 왕을 저주하지 말라 불의한 왕이라도 그를 왕위에 앉히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방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모든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불의한 왕을 저주하녀 통치자의 불행을 비는 것은 악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부자란 재물을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권세와 신분이 높은 자나 고귀한 신분을 가진 자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부자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불의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비록 불의한 통치자라고 하더라도 그들을 저주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저주함으로써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a. 권위를 업신여기지 말아야 함(유1:8) b.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함(롬12:21) 결론 우리는 본장을 통해서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려운 때를 살아갈수록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지혜란 어떤 환경이나 여건 가운데서도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며 우리의 삶을 축복으로 이끌어 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단어해설] 1절. 파리. '바알세붑'이라는 복합 명사의 일부로 사용되기도 한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이스라엘 땅으로 내려와 그 당을 황폐케 한 애굽의 군대를 상징한다. 4절. 공순. 원어 <ap;r::라파>는 '치유하다, 건강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치유와 회복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상대방을 어려워하며 고분고분함을 뜻한다. 8절. 담. 벽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다. 여기서 벽을 허는 행위는 타인의 영역을 위협하거나 침략하는 행위를 상징한다. 11절. 방술. 주술적 행위나 점술을 가리키는데 특별히 피리를 불거나 특별한 사술을 행하여 뱀을 길들이는 기술을 말한다. 12절. 은혜로우나. 월등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상대방에게 큰 관심을 갖고 베푸는 은혜를 의미한다. 13절. 광패. 정상에서 벗어나 비합리적으로 비쳐 버린 상태를 가리킨다. 16절. 어리고.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젊은 소년, 소녀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지식이 부족하고 삶의 경험이 부족해서 사리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는 때를 의미한다. 17절. 복. 원어 <rv,a,:에쉐르>는 특별히 인간에게만 사용되는데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물질적이고 육체적이고 모든 축복을 총칭하는 말이다. [신학주제] 우매자의 특성. 우매자는 근본적인 면에서 지혜자와 다르다. 우매자는 근원적으로 지혜자와 반대편에 서서 지혜자와 반대되는 모습과 특성을 나타낸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의 정신적 특성과 양식에 의거하여 생활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우매를 드러내게 된다. 예수님께서도 죄인 된 인간은 그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밖으로 드러내어 다른 사람도 역시 더럽게 만든다고 말씀하셨다(참조, 막7:14-23). 전도자는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본질은 외적으로 표출된다는 점을 강조하여 지혜와 우매의 차이점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사소한 우매는 커다란 지혜를 무효화시킬 수 있는 파괴력이 있다.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삶의 회의와 허무를 느끼며 비관 주의적 시각을 소유하게 되기도 한다. 또 우매한 자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야기된 모순은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형태와는 분명히 대조된다. 하나님의 세계에는 질서가 있으며, 모든 구조가 지혜롭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져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세상의 어리석은 자들로 인한 삶은 모순되며 상호 불만을 자아내게 하는 요소들로 가득 차게 된다. [영적교훈] 전도자는 혀를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일련의 교훈을 제시하기도 한다. 어리석은 자들은 끊임없이 허탄한 말을 지껄인다. 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하다가 극단으로 치우치면 조절 능력을 상실하고 몰상식한 언행을 일삼게 된다. 우매자들은 불쌍하게도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미래의 심판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이러한 우매를 보면서 솔로몬은 미래에 관한 지식의 결핍에 대해서도 충고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만을 경외하여 지혜를 소유하라는 간접적 교훈이기도 하다. 오늘날 성도들도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혀를 우매한 자와 같이 놀리려는 유혹을 많이 받는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자랑하기도 하고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거짓말로 남을 속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유혹을 하나님에 대한 경외로 잘 극복하여 모든 성도들이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선행을 행하라[전 11장] [내용개요] 본장은 전도자가 지금까지 논해 온 인생에 대한 견해를 총괄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본장에서는 허무한 인생 속에서도 다가올 심판을 염두에 두면서 세로운 모험과 가능성을 향해 도전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특히 본장에서 전도자는 거듭 반복해서 인간은 자기 인생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고 또 인생의 길을 임의대로 변경할 수 없으므로 다만 매일의 생활을 마음껏 즐기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특별히 본장에는 비유적인 표현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 전도자는 자신의 뜻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당시 고대 근동 지방의 무역업의 풍습, 자연의 현상, 농사법의 원리 등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구제와 근면(1-6절), 현재의 중요성(7-8절), 청년에 대한 권면(9-10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장을 통하여 자신의 안일만 추구하는 삶보다, 남을 위하여 구제와 봉사의 삶을 권고하는 삶이 한 단계 진전된 삶의 형태임을 알 수 있다. [강 해] 본장에서 전도자는 인간의 일상 생활에서 추구해야 할 올바른 삶의 철학과 지혜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도자는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제를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비와 베푸는 가치에 대해, 그리고 베푸는 시기와 합당한 기회에 관해 언급하였습니다. 이어서 전도자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죽음과 심판을 준비할 것과 늦기 전에 특히 젊은 시절부터 준비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1. 힘써야 할 구제와 자비 1)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전도자는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했습니다. 이 말은 구제세 대한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는 것은 보상 을 바라보지 말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에 인색한 마음으로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인색함이 없는 너그러운 구제는 물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a. 가난한 형제에 대한 의무(신15:7) b. 하나님께서 주신 것(고전4:8) 2) 많은 사람에게 나눠 주라 전도자는 유한한 인간이 앞으로 어떠한 재앙이 임할 것인지 알지 못하므로 부지런히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라도 이 땅 위에 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앙이 임하기 전에 자신이 소유한 재물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폭풍이 갑자기 불어닥치듯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때에 오는데, 그때에는 피할 시간도 없이 당합니다. 이것을 아는 자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까지 최선을 다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구제하고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살게 됩니다. a.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둠(고후9:6) b. 구제를 좋아하면 풍족하게 됨(잠11:25) 3)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 전도자는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않을 것이며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푸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일기의 작은 장애를 예상하여 파종이나 추수하는 일을 주저하는 자는 아무런 일도 못합니다. 환경과 조건에 대하여 지나친 계산을 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믿음을 가진 자들에 의해 성취되어 갑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셨으며 통치하십니다. 우주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계, 인간사 모든 것을 섭리하시며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 만사를 당신의 뜻대로 성취하십니다. a.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림(사55:10) b. 모든 일에는 때가 있음(전3:1) 2. 죽음을 기척하라 1) 근면에 힘써라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는 전도자의 말은 사람이 사는 동안 힘써 일해야 함을 교훈해 줍니다. 아침과 저녁은 모든 시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근면하게 일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결과를 베풀어 주십니다. 인간이 열심히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되어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입니다. 성토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근면히 행함으로써 충실히 활용해야 합니다. a. 힘을 다해 일해야 함(전9:10) b. 의를 심어야 함(호10:12) 2) 가치 있는 인생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며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전도자의 말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아름답고 아치 있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며 낙을 누리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이 세상이 비록 죄에 오염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삶을 통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사후의 세계가 달라집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주어진 시간은 사람에게 있어 매우 가치가 있습니다. a. 지혜의 유익(전7:11) b. 분량에 충실해야 함(롬12:3) 3) 알 수 없는 미래 전도자는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서 항상 즐거워하라고 말합니다. 즉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버리고 오로지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는 것보다 미래를 잘 대비하는 일도 없습니다. 사람이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믿음으로 미래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미래를 보장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a. 사는 동안에 기뻐해야 함(빌4:4) b. 공수래 공수거의 인생(전5:15) 3. 청년에게 권고함 1)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라 전도자는 청년에 대하여 어린 때를 즐거워하여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청년에게 마음에 원하는 길과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방종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른 마음과 바른 눈을 가진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을 바르고 즐겁게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가라는 권면입니다. 사람이 어떠한 환경 가운데 있든지 기쁨이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최고의 은사요, 엄청난 축복임이 분명합니다. a. 기쁨으로 식물을 먹음(전9:7) b. 창조자를 기억해야 함(전12:1) 2)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라 전도자는 청년에게 마음에 기뻐하며 원하는 길과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고 권하면서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심판하실 것을 기억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고 두려워하는 자는 죄악의 길로 행할 수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의 생명은 창조주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 또한 창조주의 권한 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선언하였습니다 (참조, 롬3:19) a. 체부보다 빠른 날들(욥9:25) b. 의인과 악인을 심관하심(전3:17) 3) 악을 멀리하라 근심으로 마음에서 떠나게 하라는 전도자의 말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걱정과 근심을 제거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전도자는 청년의 때에 몸으로 범죄치 말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청년의 때에는 어느 시기보다도 몸으로 범죄하기 쉬운 때입니다. 혈기 왕성하므로 육체의 정욕이 더욱 강한 것입니다. 그래서 청년의 때에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세상 향락을 추구하며 타락하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청년의 때에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a. 청년 같은 기세가 흙에 누움(욥20:11) b. 악인의 길은 망하게 됨(시1:6) 결론 우리는 본장을 통해 구제를 비롯한 선행의 중요성과 그것을 힘써 행해야 함 을 교훈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이 땅에는 가난한 자가 항상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부지런히 찾아내어 그들을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단어해설] 1절. 식물을.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식량을 뜻한다. 이와 같은 식량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인데, 풍성한 식량은 축복을 의미한다. 2절. 재앙. 원어<b[er::라에브>는 '굶주리다'라는 뜻으로 굶주림은 게으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리는 심판이며 인력으로 해결 못하는 큰 기근은 재앙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3절. 쓰러지면. 생명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서의 쓰러짐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우매한 자가 자신의 우매함으로 말미암아 당하게 되는 재난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할 것을 나타낸다. 4절. 풍세. '바람, 호흡'이란 뜻으로 생물에 대해 사용될 때에는 호흡을 뜻하고 자연계에 대해서는 바람을 뜻한다. 5절. 태. 여인의 자궁이나 위를 지칭하고 상징적으로는 인간의 육체적 본성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인간의 생명을 잉태하고 인간의 본성을 갖추도록 해주는 생의 신비를 묘사하고 있다. 6절. 아침. 원어<rq,Bo:보케르>는 햇빛이 어둠을 헤치고 밝은 광명을 찾아 나아가는 것을 나타내며 아침, 여명을 뜻한다. 아침은 죄를 회개하거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으로 예배자의 의로운 음성이 가장 잘 들리는 시간이다. 7절. 빛. 낮과 밤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 빛은 하나님의 창조물이지만, 모든 생명체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근거가 된다. 또한 이 빛은 영광스러움을 나타내기 때문에 빛을 아름다운 것으로 본 것이다. 8절. 즐거워. 원어 <jm'c;:사마흐>는 마음과 영혼이 관련되어 발생하는 전적인 기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즐거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한다. 9절. 마음에 원하는 길. 방종하고 타락한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길을 말한다. [신학주제] 선행의 삶에 대한 권고. 본장에는 잠언적 교훈을 사용하여 직접적으로 근면하고 구제하는 생활을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전도자는 장래의 불안정함으로 인하여 염세주의에 빠지지 말고 열심히 생활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적 활동을 모두 이해할 수 없으므로 가장 바람직하고 유일한 행동 방침을 발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저하는 생활 태도를 버리고 먼저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한다. 전도자는 해상 무역과 농사를 비유로 들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베풀고 구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구제는 하나님의 보상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상급을 기대하며 꾸준히 봉사와 헌신을 지속하도록 권고한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때에 적절한 보응을 베푸실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미래에 임하게 될지도 모르는 재앙에 대비해 많은 사람에게 자비와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그러면 고난에 처하여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 되돌려 받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전도자는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도록 권유한다. 이러한 주장은 본서 전체에 흐르는 허무 사상을 극복한 것으로서 피조물과 겸손한 자세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환경의 열악함이나 불확실한 장래를 핑계삼아 게으름을 합법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이고, 분명 인간 은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영적교훈] 우리들은 흔히 인생을 즐긴다 하면 거부감을 갖기 쉽다. 그러나 인생은 노동 자체만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또한 인간의 건전한 쾌락까지 죄악시될 수는 없다. 도리어 성경은 인간이 건전한 기쁨을 위해 피조되었으며, 보다 적극적으로 그 기쁨을 향유, 창조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참조, 살전5:16). 물론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법안에서 그리해야 한다. 전도자가 거듭 즐거워하며 기뻐하라고 청년들에게 권면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청년의 때는 인생의 절정기이다. 이와 같은 때에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생각으로 자기 영혼을 피폐화시켜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의 법안에서 적극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사고 방식을 가져야 한다.
창조자를 기억하라[전 12장] [내용개요] 본장은 본서의 결론 부분이며 동시에 솔로몬의 인생관이 단적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계획에 입각하여 살아가는 방식이 함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본서는 세상 질서의 실재에 대하여 보다 낙관적인 시각으로 서술하는 잠언과 는 달리 현실의 질서에 신비적인 혼란이 내재한다고 본다. 즉 하나님의 질서는 인간이 도저히 인식할 수 없는 불가해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서의 저자인 전도자는 회의주의나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의 배후에 존재하시면서 만물의 시기를 예정하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일 면 염세적인 경향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본심은 주어진 인생을 하나님의 선물로 보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을 결론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야 함을 강조하는 전반부(1-8절), 전도자 자신에 대해 소개하는 중반부(9-11절), 끝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임을 밝히는 후반부(12-14절)로 구성되어 있다. [강 해] 본장에서 전도자는 본서의 결론으로서 창조주요 이 역사의 주인이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 가장 지혜롭게 가치 있는 것임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장차 올 죽음과 심판을 고려하여 인간의 근본적인 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 창조자를 기억하라 1) 곤고한 날 전도자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데도 시기와 때가 있는 것입니다. 청년의 황금기를 보람 있고 가장 가치 있게 사는 방법은 창조주를 기억하고 창조주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자를 기억하지 못하면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게 됩니다. 청년의 때에는 나름대로의 가치 있는 무엇을 추구하며 몰두할 때입니다. 자신의 젊음을 창조주 하나님에 바쳐야 합니다. a. 신속히 지나가는 날들(욥7:6) b. 목표가 분명해야 함(고전9:26) 2) 노년이 이르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는 청년의 때에 창조자를 기억할 것을 권면하면서 노년이 이르기 전에 그리하라고 말합니다. 젊은 날에 신앙 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해 버린 사람은 나이 먹은 후에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어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젊은 날에 하나님을 기억하여 열심히 섬겨야 합니다. 인생의 죽음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큰 영화와 부귀를 누린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죽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젊은 날에 하나님을 기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이 땅에서의 삶과 내세에서 됩니다. a.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짐(창27:1) b. 영광을 위해 창조하신 인간(사43:7) 3) 죽음이 오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는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라는 비유를 통해 인간의 죽음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며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다가 그 때가 지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전도자는 죽음이 오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죽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 앞에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a. 흙으로 돌아갈 인생(창3:19) b. 무너지는 육신의 장막(고후5:1) 2. 전도자의 삶 1) 지혜로 가르침 솔로몬은 지혜를 가지고 백성들을 가르쳤습니다. 솔로몬이 백성을 지혜로 가르칠 수 있었던 동기는 자신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참조, 잠9:10). 야고보서 기자는 위로부터 지혜를 받은 사람은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며 양순과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이나 거짓이 없다고 하였습니다(참조, 약3:17). a. 하나님께 구하여 얻은 지혜(왕상3:12) b. 성공으로 이끄는 지침서(시119:105) 2) 잠언을 많이 지음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로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을 글로 남겼는데 그것이 잠언입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헛되게 사용하거나 게으르게 사용하지 않고 그 지혜를 사용하기 위하여 연구하였습니다. 그 연구의 소산이 잠언입니다. 이 잠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를 그가 잘 선용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며(참조, 잠8:11),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낫습니다(참조, 잠16:16). 성공적인 인생, 훌륭한 인생을 살기 원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지혜를 가져야만 합니다. 훌륭한 사상, 훌륭한 신앙이 마찬가지이듯이 훌륭한 지혜도 그 행함을 통하여 입증이 됩니다. a. 잠언 삼천을 말함(왕상4:32) b. 여호와의 입의 말씀(사34:16) 3) 진리의 말씀 솔로몬은 자신의 말이 아름다워지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가르친 것은 모두가 진리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 진리의 말씀이란 하나님의 완전한 영감으로 인해 전해진 말씀을 일컫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말하며 살도록 창조하셨고 우리는 이웃과 말로 대화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는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 입술을 잘 관리하여야 합니다. 솔로몬처럼 아름다운 말을 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인생의 진리를 잠언으로 남긴 후에 이 진리는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확증했습니다 a. 주야로 묵살해야 할 말씀(시1:2) b. 지키는 자에게 상이 큼(시19:11) 3. 하나님을 경외하라 1) 지혜자와 스승의 말씀 전도자는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과 같다고 했습니다. 지혜자의 지혜로운 말씀은 받기에 거북스러울 수 있습니다. 또 그 말씀의 진리를 행할 때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일시적이 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훈계와 채찍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통을 맛보게 하여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잘 박힌 못에 물건을 걸어 두는 것처럼 지혜로운 말씀에 자신의 삶을 의탁해야 합니다. a. 마음을 찌른 말씀(행2:37) b.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스9:8) 2) 경계를 받으라 솔로몬은 지혜자의 말씀을 통해서 경계를 받으라고 권고합니다. 여기서 지혜자의 말씀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신령한 지혜를 뜻하는 것입니다. 경계를 받는다는 것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바르게 걷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부지런히 살펴서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그분의 칭찬을 들 을 수가 있습니다. a. 경계의 목적(딤전1:5) b. 경계를 지키면 존영을 받음(잠13:18) 3) 인간의 본분 세상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대로 여러 가지 종류의 삶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러한 모든 추구가 헛된 것임을 명시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죽음의 불가피성과 보편성을 언급함으로써 인생의 허무와 무가치함을 예리하게 지적하였습니다. 그는 결론 부분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했습니다. 참 지혜가 있다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대로 순종하게 됩니다. a. 외경심을 가진 자가 복됨(시112:1) b.주의 뜻대로 행해야 함(마7:21) 결론 청년의 때에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과 인간의 본분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는 전도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미련한 자들이 훈계를 업신여기는 법입니다. 우리는 앞서 간 믿음의 위인들이 그들의 체험을 통해 교훈한 것을 진리 안에서 의미 있게 생각하고 보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단어해설] 1절. 청년의 때. 힘과 소망이 가장 왕성하여 자신의 목적한 바를 이룰수 있는 능력이 있는 때를 말한다. 2절. 어둡기. 원어<&v'j;:호쉐크>는 '흑암, 어두움'을 뜻하는데 빛을 잃고 어두워진다는 것이며, 여기서는 인생의 황혼기를 상징한다. 3절. 맷돌. 두 개의 단단한 돌들 사이로 곡식을 문질러서 가루로 만드는 도구로 여기서는 사람의 인테 중 음식물을 부수는 작용을 하는 이를 비유고 있다. 5절. 살구나무. 아몬드 열매를 맺는 유실수를 말한다. 보통 4-8m 정도로까지 자라며 일반적으로 2-3월경 잎이 나기 전에 꽃이 핀다. 처음에는 분홍빛이지만 꽃이 질 대에는 흰색으로 변하는 특징이 있다. 6절. 바퀴. 깊은 우물에서 물을 퍼올리기 위해 두레박에 연결된 도르레 역할을 하는 바퀴를 가리킨다. 7절. 주신. 원어 <@t'n::나탄>은 '주다'라는 뜻으로 소유권의 완전한 이전이 아닌 위임하거나 잠시 둔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9절. 지혜로움. 고상한 도덕성과 함께 삶의 경험들에 관한 사고 방식과 태도 면에서 타인에게 귀감이 됨을 나타낸다. 10절. 아름다운. 겉으로 보기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참된 기쁨과 축복을 주는 내면적 아름다움을 포함하고 있다. 13절. 결국. 원어 <#/s :쑤프>는 '결말이 나다, 끝내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하실 때를 나타낸다. [신학주제] 인생의 본분. 전도자는 본서를 쓰게 된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전도자는 본서의 최종 결론으로서 인간의 본분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말씀에 대한 준수라고 선언하였다. 사실 전도자는 이 결론을 유출하기 위해 계속해서 인생의 허무와 하나님의 섭리의 불가해성을 강조해 온 것이다. 그는 인간에 대한 허황된 낙관주의와 세속적 비관주의를 모두 배격하고 오직 피조물로서 겸허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최선을 다하도록 촉구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궁극적 심판을 상고한다면 인간의 본분은 더욱더 분명해진다. 전도자는 본서를 통하여 인생의 다양한 창조적 긴강을 물리치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지혜를 소유하도록 거듭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전도자가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13절)라고 권고한 내용은 단지 소극적으로 율법의 조항을 기계적으로 준수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제시된 것도 아니다. 오로지 주어진 현실을 하나님의 선물로 인식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라는 적극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모두 이해할 수 없고, 인생의 여러 국면이 모순과 부조화 속에 빠져 있을지라도 실망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권고하는 내용이다. 이것이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근본된 본분이다. [영적교훈] 어떤 어려운 상황하에서도 가장 우선적으로 행해야 할 성도들의 본분이 있다면,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종말에 심판주로 임할 그분께 올바로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현세에서도 기억하며 살아가라는 뜻이다. 이것은 서로 상호 관련되어 있는 특성이 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분의 규례에 순종할 수밖에 없고, 또한 종말에 임할 심판을 기억하며 오늘을 성실하게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보살핌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살아가듯이, 성도들도 안전과 행복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창조주이시며 영적으로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규례에 절대 복종하는 길밖에 없다. 이것은 성도의 본분이며, 특권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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