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어리석음의 차이[잠 9장]
[내용개요]
본장은 지금까지 열거한 교훈의 결론으로 잔치의 초대라는 비유를 통해 지혜와 어리석음에로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먼저 저자는 지혜가 집을 짓고 식물과 포도주를 마련하여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잔치에 초대하고 있다고 말하였다(1-6절). 그러면서 지혜의 초대를 거절하고 자신만을 의지하는 교만한 자는 해를 당하나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지혜를 얻는 자는 유익을 얻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7-12절). 한편 어리석음은 미련한 계집이 높은 성읍에 앉아서 도적질한 물과 몰래 먹는 떡으로 잔치를 배설하고 사람을 초대하는 것에 비유하였다. 그러면서 그 곳은 죽은 자들이 참석하는 음부와 같은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13-18절). 저자는 이처럼 극단적인 비유를 통해 지혜를 선택할 것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강 해]
솔로몬은 계속해서 지혜를 귀부인으로 인격화하여 묘사해 왔습니다. 본장은 그러한 지혜의 인격화된 본문을 총 정리하는 것으로서,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였고 창조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역하였던 지혜가 세상에 내려와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은 초대하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혜는 사람들에게 찾아와 그들을 생명에로 초대합니다. 지혜와 음녀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에서 서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1. 지혜의 초대
1) 지혜의 초대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창조하였고 사람들에게 생명과 은총을 약속했던 지혜는 소극적으로 사람들이 자기를 찾아오리라고 기다리지만은 않았습니다. 지혜는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으로 사람들의 생활권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거처를 마련합니다. 그녀는 집을 짓고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잔치를 준비한 후에 종들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녀의 잔치 초대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 잔치에의 초대와도 흡사합니다. 또한 고기와 술로 준비된 잔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마련된 성찬식과도 같은 맥락을 가집니다. 지혜의 초대는 특히 지혜가 필요한 자들인 어리석은 자와 지혜 없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천국 잔치에의 초대(마22:4)
2) 초대의 목적
본장은 지혜가 사람들을 초대하는 목적 또는 이유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지혜가 준비한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지혜가 주는 유익을 받아 누리라는 의미입니다. 지혜가 주는 실제적인 유익은 생명과 명철입니다. 지혜의 잔치에 참여하여 먹고 마시는 자는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얻은 자로서 그에 합당한 명철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때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초대와 유익은 하나님의 초대와 마찬가지로 값없이 주어집니다.
a. 생명 얻음(잠19:23)
b. 하나님의 초대(사55:1)
2. 거만한 자와 지혜자
1) 거만자와 지혜자
본장은 지혜의 초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두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지혜라는 기준으로 보면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그것은 거만한 자(악인)와 지혜 있는 자입니다. 거만하고 악한 자는 사실 지혜자보다 더욱 지혜가 필요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지혜를 거부합니다. 거만자는 가르치기가 매우 어려운 부류의 사람입니다. 그는 자만심이 강하고 타인을 깔보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거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발전과 개선의 여지를 항상 인정하기 때문에 겸손히 책망을 받으며 책망하는 자에게 감사할 줄 압니다. 결국 책망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그가 성숙한지 미성숙한지, 지혜로운지 거만한지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지만 없는 자는 그 가진 것까지도 잃게 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합니다. 거만 자는 개나 돼지처럼 좋은 것을 주는 자를 해치고 맙니다.
a. 가진 자는 더 갖게 됨(마13:12)
b. 개나 돼지와 같음(마7:6)
2) 두 사람의 결국
지혜를 소유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소유한 지혜자는 그의 생명의 날과 해가 많아질 것이며,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거만한 자는 지혜를 거부함으로써 지혜가 주는 모든 유익까지도 거부해 버립니다. 지혜자는 더욱 지혜를 구함으로 지혜가 주는 유익을 얻지만, 거만한 자는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므로 지혜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 거만한 자는 마치 신약에서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여겼던 바리새인들과 매우 흡사한데, 그들은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의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영생을 얻지 못한 것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멸망에 이르는 해를 받게 된 것입니다(참조, 요3:18).
a. 하나님을 믿는 것과 영생(요17:3)
b. 예수님을 거부한 바리새인(막2:16-17)
3. 미련함의 초대
1) 미련한 계집의 초대
미련한 계집, 즉 음녀 역시 어리석은 자를 상대로 초청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어러석은 여자로서 지나가든 어리석은 자들을 상대로 호객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큰소리를 내는 시끄러운 여자이며 부끄러움을 모르고 사람들을 유혹하는데, 지혜와는 달리 아무런 잔치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준비한 것은 '물' 과 '떡'이라고 지칭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바 '도적질한 물'과 '몰래 먹는 떡'은 모두 육체적이며 불륜적인 음란 행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지혜의 초청과 잔치는 공적이고 공개적인 것임에 반해 음녀의 초청은 은밀한 것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사람들의 은밀한 본능에 호소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하는 것입니다.
a. 부끄러움을 모름(잠7:13)
b. 자기 샘에서 물을 마심(잠5:15)
2) 그 결과
본장은 그러한 음녀의 초대에 응하는 자는 진정으로 어리석은 자임을 지적합니다. 그는 음녀의 초대에 응하므로 스스로를 죽음의 자리로 내던진 것입니다. 성경은 속여서 먹는 식물의 결국이 어떠한지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음녀가 주는 음식은 그것을 먹고 누린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다줍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를 가리켜 생명을 주는 양식이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양식인 것은 성경 전체가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참된 양식인 지혜와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음녀를 선택합니다.
a. 속여서 먹는 식물의 결국(잠20:17)
b. 생명을 주는 음식(요6:35)
결론
본장은 앞에서 나온 음란에 대한 구절들과 함께 성적 부도덕을 저지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행동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순간의 쾌락으로 스스로를 죽음으로 이끄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지혜롭게 판단하고 행동함으로써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어리석은 자리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단어해설]
1절. 다듬고. 도구를 사용하여 파고 자르고 새기는 것 또는 우물을 파는 행위를 가리킨다.
2절. 상. '탁자, 상'을 가리킨다. 원래 '짐승 가죽을 벗기다'라는 뜻의 아람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동물의 가죽을 탁자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5절. 마시고. 단지 마시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축하와 관련된 잔치에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을 의미한다.
6절. 버리고. 하나님을 버리고 배교자가 될경우나,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버릴 경우 또는 자기 자신의 죄악된 삶을 버릴 경우 등에 사용된다.
7절. 거만한 자. 모든 훈계와 충고를 거부하고 경멸하며 스스로를 높이고 교만한 마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8절. 책망하라. 사법적으로 시비를 가리기 위하여 판단하는 것이나 이웃이 범죄했을 때 책망한다는 의미가 있다.
9절. 의로운 사람. 하나님의 말씀대로 경건하고 신실한 삶을 살며, 높은 윤리적 차원의 삶을 살아가는 자를 말한다.
14절. 높은 곳. 원어 <ymerom]:메로메>는 '높음, 높은 곳'을 뜻한다. 주로 하나님의 지위나 위치를 묘사할 때 많이 사용되지만, 교만하고 오만한 자의 스스로 높임을 묘사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16절. 지혜 없는 자. '부족하다, 결핍되다'라는 뜻으로 윤리적으로 지급하고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자를 의미한다.
17절. 도적질한. 비밀리 행해지는 도둑질을 가리킨다. 여기서 도적질한 물을 불법적인 성적 관계를 말한다.
18절. 음부. 원어 <l/av]:쉐올>은 '무덤, 구덩이'를 가리키는데 성경에서는 죽은 자가 가는 지하 세계 또는 지옥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신학주제]
초대의 비유. 저자는 지혜와 어리석음의 극단적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잔치에의 초대라는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 먼저 지혜의 초대를 살펴보면 지혜가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었다고 표현하였다. 여기서 굳이 일곱 기둥을 말한 것은 지혜의 완전성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는 히브리 사고에서 일곱은 완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혜의 잔치에 배설한 음식은 식물과 혼합한 포도주이다. 특히 혼합한 포도주란 일반 포도주에 몰약과 같은 향을 섞어 도수를 높임으로써 흥을 고취시키기 위해 만든 술로 잔치에서 최고의 대접을 의미한다. 따라서 저자는 지혜야말로 인간에게 완전한 행복을 제공할 수 있음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어리석 음의 초대는 미련한 계집의 잔치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성읍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초대한다. 이는 미련함이 지니는 교만의 속성을 잘 보여 준다. 또한 그 여자가 마련 한 음식은 도적질한 물과 몰래 먹는 떡으로 어리석음의 행위는 모든 것이 악으로 향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그 곳은 죽은 자들이 참석하는 음부 깊은 곳으로 어리석음의 결과는 심판과 멸망임을 말해 주고 있다. 이상과 같은 저자의 잔치 비유는 신약에서 예수에 의해 사용된 잔치 비유(참조, 눅13:29)와 매우 유사한 형식을 띠고 있다. 그런데 예수의 잔치 비유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구원을 의미하고 있다는 점으로 볼 때 본장에 나타난 잔치의 비유 또한 하나님 안에 있는 구원에의 초대를 상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장은 잠언의 전체 주제가 하나님 안에 있는 구원임을 더욱 명확히 증거하고 있다.
[영적교훈]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끊임없는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마약과 동성애 같은 비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비도덕적인 쾌락은 본장에서 말하는 미련한 계집의 잔치와 같이 죽음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이다. 그것이 지금 당장은 인간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고 쾌락을 주지만 독사의 독과 같아서 서서히 인간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삶을 파괴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결코 세상이 추구하는 쾌락의 길을 좇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련하고 어리석은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 곳에는 인간의 영혼을 살찌우는 음식과 참된 기쁨을 주는 포도주가 넘쳐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