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중의 회개 기도[시 39장]
[내용개요]
시인은 악인 앞에서도 말하지 않고 선한 말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1-2절). 이것은 인생이 보잘것 없고 구원은 오직 하나님뿐이기 때문이다(3-7절). 그래서 시인은 회개의 기도를 통해 삶을 회복하고자 한다(8-13절).
[강 해]
시인은 대적들에게 조롱과 박해를 받는 중에 하나님께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며 회복을 호소하였습니다. 그는 인생의 무상함과 연약함을 고백하면서 하나님께만이 구원이 있음을 진술하였는데 이는 하나님만이 구원주가 되심에 대한 표현이었습니다.
1. 묵상 중의 기도
1) 범죄치 않을 것을 다짐함
시인은 행위를 조심하여 혀로 범죄치 아니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이는 사람의 범죄함은 마음과 말과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데 그 중에서도 말로 범죄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악인이 자신 앞에 있을 때에 자기 입에 자갈을 먹이겠다고 했는데 이는 악인이 자신의 말을 듣고 그 말을 인하여 자신을 대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므로 근심이 더 심하다고 진술하였습니다. 이는 시인의 침묵이 외부적인 악한 상황 때문에 생겨난 것임을 보여 줍니다. 시인은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할 괴로운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a. 혀로 자랑치 아니함(시12:4)
b. 입 앞에 파수꾼을 세움(시141:3)
2) 묵상 중에 말을 발함
시인은 묵상할 때에 속이 답답하고 불이 나는 것 같아 도저히 참지 못하고 입을 열어 하나님께 고하였는데,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시어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해 달라는 간구였습니다. 시인은 괴로움을 당할 때 인간의 한계와 연약성을 깨달아 다른 사람에게 입을 열지 않고 여호와를 향하여 입은 열어 구하였던 것입니다.
a. 중심에 불붙는 것 같음(렘20:9)
b.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행함(겔3:14)
3) 인생의 허무함을 진술함
시인은 자신의 일생이 하나님과 비교해 볼 때 너무 짧고 무상하여 자신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일생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일생이 그러함을 말하여 사람마다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인간이 가장 강하게 설 때에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님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바벨탑을 쌓아도 하나님께서 원치 아니하시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모든 인생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고백해야 할 진실입니다.
a. 모든 것이 헛됨(전12:8)
b. 바람을 잡으려는 것(전1:14)
2. 주께 있는 소망
1) 세상의 소망의 헛됨을 노래함
시인은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세상에 대한 소망이 헛됨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재물을 많이 쌓아도 짧은 인생이 지나가면 그 재물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 번의 호흡과 같은 인생이 이 땅에서 추구하는 어떤 것도 궁극적인 가치를 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은 이러한 헛된 소망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주께만 소망을 둔다고 고백합니다. 주께만 영원한 생명이 있고 궁극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a. 실망케 하는 수고(전2:20)
b.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함(눅10:41)
2) 죄과에서 건지시기를 구함
시인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모든 고통의 근원이 자신의 죄에 있음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자신을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기를 간구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심으로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해 달라고 구합니다. 시인이 죄과로 인하여 고난에 처하였을 때 우매한 악인들로부터 조롱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조롱의 말과 비난을 잠재울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구원밖에는 없음을 시인은 깨닫고 있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입을 열지 않고 잠잠히 있음이 주께서 자신의 고난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행하신 일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a. 주의 이름으로 사하심(시25:11)
b. 모든 불법에서 구속하심(딛2:14)
3) 주의 징책을 옮기소서
시인은 하나님께 징책을 자신에게서 옮겨 달라고 간구합니다. 주의 징책으로 인해 자신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를 정도로 탈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징책하실 때 사람이 영화를 좀먹음같이 소멸하게 하시므로 참으로 사람은 허사뿐이라고 고백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을 거두고 명예와 부와 권세를 소유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징책 앞에서는 쉽게 사라질 수밖에 없으므로 인생의 하는 일이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만 인생의 하는 일들이 가치마 있으며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a. 피 흘린 죄에서 건지심(시51:14)
b. 주를 기다림(시38:15)
3. 회복을 구하는 기도
1)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을 구합니다. 또한 자신의 눈물을 보시고 침묵을 깨시기를 구하였습니다. 시인은 눈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도의 모습은 간절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생사를 걸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침묵을 깨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시인과 같이 온 마음을 쏟아 놓는 간절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적인 응답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a. 부르짖음이 상달케 하심(시102:1)
b. 경외함을 인하여 들으심(히5:7)
2) 열조와 같은 객이 됨
시인은 자신이 주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자신의 모든 열조 같다고 말했습니다. 객과 거류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객과 거류자는 본토인들에게 도움을 받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듯이 살 수 없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또한 열조와 같다는 말은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살았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인물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들의 일생은 나그네의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 옥에서 생명을 이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시인도 열조를 돌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갈망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a. 땅에서 객이 됨(시119:19)
b. 나그네와 행인 같음(벧전2:11)
3)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시인은 자신을 용서하사 자신의 생명이 끊어져 죽기 전에 건강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징책을 받을 때 인간은 몸과 마음이 약해집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구한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강건한 복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이 땅에서 복음을 증거하실 때 많은 병자를 치유하시면서 영혼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육을 주관하시는 주권자로서 성도에게 영육간의 강건함의 복을 허락하십니다.
a. 주께서 세상에서 데려가심(창5:24)
b.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음(시36:9)
결론
어려움이 닥쳤을 때 성도는 하나님만을 바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아룀으로써 환난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호소하는 성도의 기도를 항상 들으시며 언제나 응답하심으로써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단어해설]
1절. 자갈. 가축을 어거하기 위해서 입에 물리는 쇠 토막. 성경에서는 징벌, 구속력을 상징함.
3절. 묵상. 소리를 내지 않고 잠잠히 기도함.
5절. 셀라. '들어 올리다'라는 말에서 파생. 즉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할 때 소리를 높이라는 표시.
6절. 분요하며. '법석 떨다, 노호하다, 분주히 돌아다니다'를 뜻.
[신학주제]
기독교적 허무주의.
기독교인은 인간을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므로 선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타락 이후의 인간은 혼자 힘으로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타락 이후의 인간을 악한 존재로 보기 때문에 세상 자체에 대해서도 비관적이다. 전도서 기자의 허무주의도 이러한 비관론적 인간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만약 기독교인이 이 세상 속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보 고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그는 참된 의미에서의 신앙인 일 수 없다. 신앙인 이 세상과 인생에 대하여 낙관적일 수 있는 이유는 다만 최후의 날에 이 세상과 인생에 대해 주의 심판이 있을 때 그 업적이 평가되기 때문이다.
[영적교훈]
인생은 허무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에 인생은 허무한 것이 아니기도 하다. 신앙인은 허무를 직시하면서도 허무에 굴복하지 않는 승리의 신앙을 견지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