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시편 강해

시편 23편과 하나님의 속성

에반젤(복음) 2019. 9. 8. 20:19




시편 23 편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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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역할 함축되어 있는 이름이나 속성 참고 구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 여호와 로이,(Jehovah Roi) 23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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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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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족함이 없으 여호와 이레,(JehovahJireh) 22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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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로다(1)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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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를 쉴 만한 여호와 살롬,(Jehovah Shalom) 6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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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으로 인도하 (여호와는 <우리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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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도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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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을 소생 여호와 로페,(Jehovah Rophe) 15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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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시고(3) (여호와는 <우리의> 치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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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길로 인도 여호와 치드케누,(Jehovah Tsidkenu) 23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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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는도다(3) (여호와는 우리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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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해를 두려워 여호와 닛시,(Jehovah Nissi) 17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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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을 것은(4) (여호와는 나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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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나와 함께 여호와 삼마, (Jehovah Shammah) 48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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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이라(4)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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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으로 내 머리에 여호와 메카디쉬켐, 31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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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셨으니(5) (Jehovah Mekaddishk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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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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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각 속성이 인간의 절실한 필요에 부응하는 것에 주목하라. 시편 23편은 구조적으로 하나님의 돌보시는 속성이 우리의 필요와 서로 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 준다. 위 도표에 제시된 인간의 필요와 그것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속성을 차례로 살펴보면서, 이것이 시편 23편의 권고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지 검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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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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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 : 여호와 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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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하나님이 목자로 처음 묘사된 시기는, 야곱이 창세기 48 : 15에서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을 때였다. 마치 양이 양치기 혹은 목자를 떠나 헤매는 것처럼 야곱도 하나님을 떠나 방황했지만, 그럴 때조차도 하나님은 항상 그의 목자가 되어 주셨다. 노인이 되었을 때, 야곱은 자신이 여호와 로이(Jehovah Roi)를 경험하고 살았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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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 무엇과 같은가? 이사야가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53 : 6)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먼저 이 동물이 집을 찾아갈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과 그래서 길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다. 둘째로, 양은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거의 없고, 일반적으로 자기를 보호하는 데 무지하다. 양은 여우굴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거나, 가시 덤불에 걸리거나, 혹은 급류에 휘말려서, 처음에는 북슬북슬한 털 때문에 잠시 물위로 떠올랐다가 곧 가라앉아 익사하기 쉽다. 이런 양처럼, 우리도 어떻게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호와 로이, 신성한 목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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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이러한 세 가지 특성 때문에 목자도 세 가지 의무를 진다. 여호와 로이, 선한 목자의 통솔 아래 지상의 목자 혹은 양치기들도 이런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먼저 그들은 본보기를 통해 양들 을 인도해야 한다. 경건의 본을 보이는 데서 나오는 능력은 강력한 것이다. 선한 양치기들은 양떼를 "쉴 만한 물가"(23 : 2)로 인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수를 '마시게'하며, 그분과 친교를 나누고, 그들의 영성(靈性)을 진작하도록 도와준다. 목자들은 또한 양들을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3) 인도한다. 이것은 죄에서 멀리 떠나 참된 신앙에 이르게 하는 인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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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목자는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거나 손수 클로버 잎을 뜯어 먹임으로써 그들을 먹여야 한다. 지상의 목자들도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설명함으로써 그들을 먹인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런 책임감을 세 번이나 연거푸 각성시켜 주셨다(21 : 1517). 베드로는 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며 그들을 돕기 위하여 무리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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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감정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신자들은 여호와는(우리의) 평화, 즉 여호와 살롬을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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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목자는 양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 무리를 지켜야 한다. 이땅의 목자들도 양들이 죄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책망과 경고와 대화로 그들을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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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여호와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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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23 : 1). 인생의 기본적인 필요들은 여호와 이레(Jehovahjireh),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에 의해서 충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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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6 : 11)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을 때, 그분은 우리의 일상의 모든 필요를 이 기도에 다 포함시키신 것이다. '양식'은 빵, , 의복, 머리를 가려 주는 지붕, 여행에 필요한 건강, 그리고 육체와 영혼을 유지시키는 데 필요한 이 밖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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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께 바쳐야 할 제물까지 준비해 주신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 이레라는 구절이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해 주신 이름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지은 몇 안 되는 이름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가서, 그를 여호와께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다(22). 아브라함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믿음의 행위로서, 자기 아들을 죽음의 장소에 데리고 가서, 이 가장 귀한 제물을 드리기 위해 칼을 높이 쳐들었다. 그러나 여호와 이레께서 그를 제지하시고, 대신 "뿔이 수풀에 걸린 한 수양"을 준비해 주셨다(13). 아브라함은 그 숫양을 잡아서, 그것을 대신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다. 그때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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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이삭이 제물로 드려야 할 어린 양에 관하여 묻자, 그의 아비 아브라함은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고 대답했다. 어떤 번역가들은 이 말의 순서를 약간 바꿔서 이렇게 해석하였다. "하나님께서 번제할 어린 양으로 자신을 준비하시리라." 히브리어를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하나님이 번제할 어린 양을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가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대신하여 제물로 삼으셨으므로, 그를 통하여 자신을 내어주신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12 : 10 ; 1 : 29, 3 : 16).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육체적·영적 필요를 모두 충족시켜 주시는 하나님, 즉 여호와 이레가 준비하신 최고의 선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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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변화 : 여호와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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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23 : 2). 바로 이 '여호와는(우리의) 평화', 즉 여호와 살롬(Jehovah shalom)의 역할이다. 여호와는 큰 낙심에 빠졌을 때, 그리고 살아가면서 감정의 파고(波高)를 느낄 때 우리를 돌보신다. 자신의 감정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신자들은 여호와는(우리의) 평화, 즉 여호와 살롬을 배울 필요가 있다. 고통과 괴로움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문제의 해결을 통하여 우리에게 쉼을 주시므로, "그는 (우리를) 누이신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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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이레라는 구()는 기드온이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임무를 떠맡았을 때 계시되었다. 여호와는 기드온에게 백성을 솔선하여 미디안을 쳐부수라고 명하셨다. 기드온은 그 임무를 감당하기엔 자신이 너무 연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가 아비의 집에서 가장 어린 아들이며, 또한 자기 집은 이스라엘 12지파 중 지극히 세력이 약한 므낫세 지파, 그 중에서도 지극히 힘없는 집에 속해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언제나 인간으로 하여금 맡은 임무를 틀림없이 완수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이 계시로 인하여, 기드온은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6 : 22)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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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23)". 그때 기드온은 하나님을 위하여 거기에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는(우리의) 평화라는 뜻으로, "여호와 살롬"(24)이라 붙였다. 위기의 순간에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하여 다시 한번 인간이 여호와의 새 이름을 지은 것이다. 기드온은 두렵고 놀라운 임무를 맡았을 때, 여호와 살롬이 그의 마음에 평화를 주신다는 사실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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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이 군대를 모으고 전략을 짜기 전에 제단을 쌓았던 것은 온전히 믿음의 행위였다. 사람이 믿음으로만 여호와 살롬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5 : 1). 우리가 구원받은 후 하나님을 위하여 살려고 노력할 때,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4 : 9, '여호와 살롬'과 비교하라)고 성경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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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양이 누워 있는 것을 한번쯤 세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런 양들을 너무 오랫동안 혼자서 누워 있게 두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혼자서 한 바퀴를 빙 돌 때, 양들은 자기의 털에 질식해 죽을 염려가 있고, 또한 독충이나 독뱀에 물리거나 감염될 소지도 많기 때문이다. 여호와 살롬은 양들이 안전하게 누워 있을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신다. 그리고 급류를 두려워하는 양들을 위하여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눕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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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 여호와 로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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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23 : 3). 여호와는 자신의 병든 양들을 치료하시고, 온전하게 회복시키시는 목자다. 이런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 '여호와는(우리의) 치료자'라는 뜻을 가진 여호와 로페(Jehovah Rophe)이다. 상당수의 동물들이 자기 보호 본능을 가지고 있으나, 양은 이것을 거의, 혹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양들은 대부분 자기가 상처를 입었는지 혹은 병들었는지를 스스로 알지 못한다. 양들에게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들을 돌보는 것은 목자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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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로페라는 구() '여호와는 (우리의) 치료자'("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는 출애굽기 15 : 26에 있다. 이스라엘을 돌보는 하나님의 목자 모세는 무리를 이끌고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왔다. 삼일 동안 백성들은 물을 얻지 못했다. 이것은 두렵고 생명을 위협당하는 경험이었다. 백성들이 마라라 불리는 물웅덩이에 이르렀으나 그 물이 써서 마실 수 없게 되자 마침내 그들은 불평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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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물은 해롭지는 않으나 맛 때문에 먹을 수 없거나, 혹은 오염되어 마시기 위험한 물을 의미한다. 이곳 물은 틀림없이 이 두 가지 경우에 다 해당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모세는 한 나무를 발견하고, 그것을 꺾어서 물 속에 던졌다. 하나님은 종종 이러한 상징적인 행위들을 통해 자신의 내적 사역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신다. 그 나무가 실제로 물을 달게 하는 작용을 했을 수도 있고, 혹은 마시기에 적합하도록 물을 변화시키신 하나님의 기적을 보여 주는 가시적인 상징물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하나님은 '여호와가 치료하실 수 있다'는 교훈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이러한 일을 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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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고치신 이 사건을 통하여 여호와 로페는 질병을 다스리시는 능력을 보여 주셨다. 먼저 하나님은 예방 조치를 통하여 '치료하신다.'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을 잘 따른다면,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에서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의미로,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26)라고 약속하셨다. 조건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26)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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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생활을 절도 있는 마음으로 잘 통제하여, 여호와 로페의 예방 치료의 효과를 향유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건강에 해를 끼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들은 마약이나 알콜, 혹은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는 기타의 다른 물질들을 섭취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많은 영역에서도 뚜렷하게 절제하는 생활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건강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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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로페의 치료에서 두번째로 나타나는 것은 치료 조치이다. 마라의 쓴 물을 고치신 것처럼, 하나님은 병든 자들을 치료하신다. 모세에게 이 약속을 하신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하나님은 그의 누이 미리암의 문둥병을 치료해 주셨다(12 : 1116). 오늘날에도 여호와 로페는 변함없이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질병들을 치료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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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의 물 속에 던져진 나무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치료 능력을 나타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에게 육체적 치유가 즉시 일어나는 것은 아닐지라도(어떤 경우에는 부활 때까지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전 15 : 42 참고), 십자가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모든 치유 관계를 상징한다. 사도 바울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는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든 결함으로 말미암은 저주를 친히 담당하셨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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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과학의 기적은 흔한 감기의 치료책도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평범한 어머니라도 아이들이 눈이 수북이 쌓인 들판으로 놀러 나가려 하면, 감기의 예방 조치로서 두터운 옷을 둘러 입힐 줄 안다. 만일 아이들이 감기나 유행성 독감에 걸리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그들에게 코프 시럽이나 아스피린 같은 적절한 약을 먹일 것이다. 이와 똑같이, 여호와 로페도 우리에게 크신 사랑으로 두터운 옷을 입히시며, 의롭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셔서, 우리가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예방 조치를 취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질병이나 죄악에 빠지기라도 하면, 그에 가장 적합한 치료를 베푸신다. 때로 이것은 죄의 용서라는 형태일 수도 있고, 또 어떤 때는 기적적인 육체의 치유일 수도 있다. 또 다른 어떤 때에 이것은 관계의 회복이나 혹은 정신적인 문제의 해결일 수도 있다. 여호와(우리의) 치료자, 곧 여호와 로페가 바로 이런 일을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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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 치드케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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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죄책을 씻어야 할 우리의 절실한 필요를 채워 주시는, '여호와 우리의 의', 여호와 치드케누(Jehovah Tsidkenu)이다.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23 : 3) 분이 바로 여호와 치드케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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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많은 경우에 있어, 자기의 길로 가는 것 혹은 제길을 벗어난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다......각기 제길로 갔거늘"(53 : 6). 우리가 죄의 길을 걸어 간다면, 우리에게는 죄에 대한 책임이 있다. 우리는 지옥에 떨어지는 심판 혹은 벌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우리를 인도하시는 우리의 목자, 여호와 로이는 또한 그분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도록 새로운 신분을 은혜로 부여해 주시는, 여호와 우리의 의, 여호와 치드케누이기도 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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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치드케누라는 구()는 예레미야 23 : 6에 처음 나온다. 때가 이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던 유대인들이 그분을 메시아로 바로 깨닫고 구주로 영접하게 될 것이다. 예레미야는 그때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우리의 의'로 알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 여호와의 의를 통하여,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경험한 칭의(稱義)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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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는 타고난 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의로운 신분은 우리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셔야만 한다. 그러므로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23 : 3) 분은 바로 여호와 치드케누이시다. 그분은 우리가 행한 어떤 일 때문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위하여"(3) 자신 백성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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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 여호와 닛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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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23 : 4). 두려움을 이기는 이러한 용기는 '여호와 나의 깃발', 여호와 닛시(Jehovah Nissi)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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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우리가 헤아려 알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거나, 반대 세력이 압도해 옴을 느낄 때 종종 일어난다. 어린 아이는 어둠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자러 갈 때, 어머니가 이층까지 바래다 주기를 바란다.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누군가와 동행하기를 원한다. 다른 많은 두려움들도 우리를 괴롭힌다. 그러나 여호와 나의 깃발, 여호와 닛시를 알 때, 우리는 용기와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걸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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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닛시라는 구()는 전쟁 용어이다. 전투 중에 자기 부대에서 멀어지게 된 군인은 전쟁터 위로 나부끼는 자기 군대의 깃대나 깃발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그 깃발 아래로 빨리 달려가서, 혼자 싸우는 위험한 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여호와 나의 깃발, 여호와 닛시가 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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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칭호는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쟁하러 나갈 때 계시되었다. 이 전투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도망쳐 나온 후 처음 치르는 것이었다. 구약 시대 내내, 이스라엘은 아말렉과 계속 전쟁을 하였다. 여호수아는 군대를 이끌고 르비딤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그동안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쥐고 산꼭대기에 서 있었다. 모세가 그의 손을 들고 있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이 이겼고, "모세가......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17 : 11). 모세가 지쳐서 팔을 더 이상 올릴 수 없게 되었을 때, 아론과 훌이 대신 그의 손을 붙들어 올렸고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계속 이 전쟁을 탄원하게 하였다. 그 결과 여호수아는 그날 승리를 거두었다.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15). 이것은 사람이 지은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여호와 나의 깃발은 '승리하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전쟁은 사람들이 할지라도,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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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렉은 구약 시대에 육체의 상징이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옛 본성을 이기기 위해 육체와 싸운다. 이 전쟁에서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이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우리에게 보장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씨름하고, 달리고, 싸워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 나의 깃발, 여호와 닛시가 승리할 것이기 때문에, 전투의 결과에 확신을 가지고 주를 섬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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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 여호와 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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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기자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 여호와 삼마(Jehovah Shammah)의 임재를 확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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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과 더불어 우리가 받은 가장 큰 은혜 가운데 한가지는, 우리 삶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라고 명령하시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임재를 이렇게 약속하셨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3 : 12).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대위임(大委任)을 주셨을 때, 예수님도 이렇게 약속하셨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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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삼마라는 이름은 에스겔 48 : 35에 나온다. 예언을 마치며 에스겔은 영원한 도성을 묘사하고, 하늘에서도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여호와 삼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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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함께 하시는 목자가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안위하실 때에(23 : 4), 그분은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신다. 목자는 지팡이를 야생 동물들을 치는 곤봉으로 사용한다. 그의 막대기는 곤란한 지경에서 양을 이동시키는 도구이다. 그것을 사용하여 목자는 물이나 구덩이에 빠진 양을 끌어올릴 수 있다. 엄밀히 해석하면, '안위하다'는 말은 '인도하다'는 의미이다. 여호와 삼마는 지팡이로 적들을 물리치고, 막대기로 우리를 위험에서 건져냄으로써, 양들을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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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 : 여호와 메카디쉬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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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23 : 5). 성경 전체에서, 기름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용도를 위하여, 물건과 사람과 장소를 거룩하게 하는 데 사용되었다. '거룩하게 하다'는 말의 기본적인 뜻은 '구별하다'는 것이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후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짓고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에 관한 몇 가지 지침을 주셨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시고 그들과 더불어 만나실 수 있을 만큼, 그들은 충분히 거룩하고 성결한가? 여호와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31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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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가 여호와 메카디쉬켐(JehovaMekaddishkhem)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성화하여 거룩해질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도록, 친히 우리를 구별해 주신다. 여호와 메카디쉬켐만이 우리를 거룩케 하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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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대에 기름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목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양의 머리에 기름을 발랐다. 깨끗하게 하는 것도 그 중 한 이유였다. 양에게 더러운 상처가 생겼을 때, 목자는 기름으로 그 다친 곳에서 오물과 더러운 것들을 씻어 냈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가 죄를 짓고 영혼에 상처를 입을 때도, 여호와 메카디쉬켐은 성령의 기름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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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치유의 피를 우리에게 덧입혀 주셔서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과 똑같이, 치료의 기름도 병을 낫게 한다. 그리고 기름은 고통을 덜어 준다. 햇볕에 피부가 그을렀을 때, 우리는 변색된 부위를 가라앉히기 위해 기름이나 로션을 바른다. 기름은 태양에 의해 타버린, 몸의 본래 유지를 회복시켜 준다. 목자가 양에게 기름을 발라줄 때, 그는 그것들의 본래 몸의 상태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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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삼상 16 : 13 ; 61 : 1, ; 10 : 38 참고). 여호와 메카디쉬켐은 인생의 강한 불 속으로, 삼위일체 중 제3위를 보내셔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깨끗하게 하시며, 고통을 덜어 주시고, 치료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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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로이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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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처럼 양을 돌보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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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가 양들을 전적으로 돌보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 똑같이, 예수님도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10 : 11)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를 돌보시기 위해 자신을 다 내어 주셨으므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11)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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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로서, 예수님은 '자기 양'을 개인적으로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3) 인도하신다.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오되"(4). 목자와 양의 친밀한 관계는 예수님과 신자의 관계를 반영한다. 일단 한 신자가 목자와 양의 관계에 들어오면,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는 "생명을......더 풍성히" 얻게 되리라는 약속도 받는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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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보호 아래 양을 치는 목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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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서 목사라는 말은 또한 목자를 의미한다. 목사는 자기의 보호 아래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지킨다. 목자로서, 목사는 문제의 해결과 결정 등을 통하여 양들을 인도한다. 그는 교훈과 상담과 교육 등으로 양들을 먹인다. 그는 제자 훈련과 경책(警責)과 살피는 일 등을 통하여 양들을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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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목자라면, 주일학교 선생들과 소집단의 지도자들도, 주일학교와 소집단 모임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목자적 사역을 확장시키는 사람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일학교 선생과 소집단 지도자들도 또한 목자들이다. 모든 목사는 보다 더 큰 무리에게 목자이고, 선생들과 지도자들은 주일학교와 소집단 무리에게 목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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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선한 목자이시지만, 그분은 자신의 이름으로 일하는 인간 목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자신의 친밀한 배려를 전하신다(21 : 1517 ; 20 : 32 ; 벧전 5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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