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문제제기와 방향
II. 시편의 케리그마 발굴 작업들
1. 시편의 저작 동기를 묻는 일
2. 시(詩)의 삶의 자리의 역사화와 역사적 유비
3. 히브리시의 신학적 특징과 신학적 개작
III. 마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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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문제제기와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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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오늘날 많은 호기심으로 둘러싸여 있다. 왜냐하면, 시편은 심오한 신앙생활의 경건성을 자극, 충동하여 우리의 경건 전통을 매우 예리하게 조율(調律)해 주는 기능과 특성을 가진 책으로서, 그 어떠한 학문적 연구에 의하여서도 이러한 시편의 전통이 헝쿨어지지는 않는 영원한 경전적 가치를 가진 책으로 인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책은 또한 경건 전통의 순진무구(純眞無垢)함을 넘어가는, 이른바, 철저한 비평학적 분석을 통하여 해석되어야 하는 책으로서, 단순한 신앙적 통찰과 시적(詩的) 영감에만 맡겨 둘 수 없는 학구적 연구를 요청하는 책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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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부르그만(W.Brueggemann)이 적절하게 지적해 준대로, 시편은 경전의 그 어느 책보다 더, 비평학 이전적(pre-critical)해석1)과 비평학 이후적(post-critical)해석 "모두"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기를 요청하는 책이다.2) 즉 시편은, 실제로, 그 어떠한 비평학적 분석에 의해서도 결코 동요하지 않는 케리그마적(복음 선포적)해석을 해 온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비평학도 시편이 지닌 "영성"(spirituality)을 삭감시킬 수 없는, 이른바, "성서 속의 성서"(M. Luther)요 "영혼의 해부학"(J. Calvin)이며, 또한, "축소판 성서신학"(a biblical theology in miniature)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책이 "시편"이라고 할 수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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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시편연구는 시편해석사 전반(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현대의 역사비평학자들과 신문학비평학자들의 공시적[synchronic]해석에 이르는 해석사 전반)을 향하여 과감히 자신을 열어 놓는 성서연구여야 한다고 하겠다. 우리에게 "해석사 전반"을 문제삼으라고 요청한 우리 시대의 대표적 성서학자는 브레버드 S. 차일즈(Brevard S. Childs)이다. 그에 의하면4), 해석사 전반에 관한 진지한 고려는 성서 본문을 설명만 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성서 본문의 내용과 진지하게 씨름하도록 요구하여 감히 교회로부터도 신학적 충동을 이끌어내며 마침내는 흔히 "매혹적 성서해석법으로 간주되어 온 알레고리의 유혹"도 능히 지양할 수 있는, 이른바, "필요충족한 기독교 신학"(a fully developed Christian theology)의 입장에 서서 성서를 읽게 하고 또 해석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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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연구의 경우, "해석사 전반의 요청"이란, 일종, 절대적 요청에 가깝다. 즉 시편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히브리 종교, 유대교, 기독교의 예배의전, 기도, 찬송, 교훈 등이 모두 그것에 기초를 두었던 책이란 점에서 그렇다. 시편 해석의 역사는 18세기 이전의 비평학 이전을 비롯하여 18세기로부터 20세기 초 헤르만·궁켈(Hermann Gunkel)의 양식사적 비평학 이전과 그리고 그 이후로 크게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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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이전의 비평학 이전적(Pre-critical) 시편해석은 문자적 응용, 그리스도론적 유형론, 알레고리적 해석 등으로 성격지을 수 있으며, 그것은 주관적인 영적 통찰력에 주로 의존하였으며, 18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시편시의 문학적 특징을 고려하는 연구가 시작되었다(Cf. J.G. von Herder 의 Vom Geist der hebraischen Poesi, 1783과 R.Lowth의 De Sacra Poesi Hebraeorum, 1753). 그러나, 다윈·헤겔의 역사주의적 철학원리에 영향받은 율리우스·벨하우젠(J.Wellhausen)의 종교사학적 시편 연구는, 오경 연구에서처럼, 시편시들의 저작자를 규명하는 문제와 각 시편 시들의 연대를 결정하는 문제(B.Duhm; C.A. Briggs, et al)에 집중하였다.6) 그러나, 이들의 연구는, 비록 시편 시들의 사상들을 "내적 증거"(internal evidence)7)에 의하여 주관적인 판단을 함으로서 시편의 저자에 대한 전통적 견해가 갖고 있는 결정적 오류(시편에 나타나는 "다윗의 시" 모두를 다윗의 저작으로 보는 견해)를 바로 잡기는 하였어도, 그러나, 시편시들의 그 역사적 배경을 밝히는 데에는 결정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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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시편연구의 결정적인 이정표(里程標)를 세운 학자는 헤르만 궁켈(H.Gunkel, 1862-1932)이었다. 그의 시편 연구 방법론인, 이른바, 시편시들의 유형사(history of types) 연구는 시편시들이란 그들의 제의적(祭儀的) "삶의 자리" (Sitz-im-Leben; life-setting)에 따라 자신의 문학적 장르(genre)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이른바, 시편시의 형성 현실을 규명해 내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즉 시편시들은 그 대부분이 이스라엘의 예배환경 - 제의 환경 - 에서 형성, 발전되었다는 것이다.8) 그의 동시대의 시편 연구가인 모빙켈(Sigmund Mowinckel)도 또한 동일한 입장을 취하였으나, 예배의식(제의)적 배경을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추구하는 "제의사적 연구"에로 치우쳐 버렸다.9)이 방향으로 시편연구를 심화하여 간, 후크(S.H.Hooke)와 엥그넬(I. Engnell)의 제의 의식 편향적 연구는 그러나, 구미 신학계로부터 집중적인 공격과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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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궁켈의 시편연구는 자기 이후의 시편연구 방법론들을 비평학 이전의 모든 시편주석방법으로부터 현대 성서비평학적, 학문적 연구에로 근본적인 전환을 하게 만들기는 하였어도, 비평학적 주석과 교회의 실제적 신앙 사이의 갭(gap)을 매꾸라는 신학적 요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하였다. 즉 궁켈의 양식분류방법이 지닌 취약점을 지적하고 또 세미한 개정을 하는데 까지는 갔다고 하여도,10) 폰 라트(G. von Rad)조차도 그의 "응답의 신학" (Israel before Yahweh: Israel's answer)11)을 통하여 비록 하나님과 이스라엘(인간) 사이의 "대화문학"(a dialogical literature)을 기초한 대화신학 같은 것을 제안하기는 하였으나, 그러나, 그 "대화의 원리"가 무엇인지는 결코 밝히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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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베스터만(C. Westermann)의 탁월한 시편연구는, 매우 흥미롭고도 또 주목할만 하게도, 시행착오적인 시편신학을 내어놓기까지 하였다!! 그의 본격적인 시편 연구서는 1961년 「시편의 하나님 찬양」(Das Loben Gottes in den Psalmen, 이 책의 영역본, The Praise of God in the Psalms은 1965년에 출간)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타났으나, 그러나, 그는 여기서 "탄원시"를 포함한 시편시의 모든 양식을 "하나님의 찬양"으로 일원화하는 신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그 책이 출간된지 16년이 지난 뒤, 1977년에 그는 "하나님 찬양"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탄식"을 비롯한 인간고에 관한 제(諸) 탄식이 지닌 신학적 의의와 그 의미를 발견12)하고는 「시편의 찬양과 탄식」(Lob und Klage in den Psalmen, 이 책의 영역본 Praise and Lament in the Psalms는 1981년에 출간)이라는 제목의 개정판을 내어놓기에 이르렀던 것이다.13) 이것은 제 3 세계 신학의 의의에 대한 발견과 제 1 세계 신학의 신학적 자기반성을 보여 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궁켈 이후의 "시편신학"이 가야할 방향에 대한 서구 신학의 시행착오적 모순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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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궁켈 이후의 시편신학의 과제는 "궁켈의 접근방식에 신학적 해석을 첨부하는 방식"이14)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신학적 해석이 중심적으로 첨가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즉 앞으로의 시편 해석학의 과제는, "부르그만"(W. Brueggemann)이 적절히 지적하였듯이,15) 모빙켈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다원적(pluralistic)이고 다양한(diversified)것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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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터만(C.Westermann)의 참회적 반성과 이에 대한 부르그만(W.Brueggemann )의 적절한 반응에 의하면, 이미 폰 라트(G. von Rad)가 오래 전에 불완전하게나마 예시한 데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이 과제는 하나님과 인간의 대화적 언어교류(a dialogically verbal exchange between God and humanity)를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과제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16) 이러한 경우, "탄원시" 연구가 그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이고 그 구성 골격은 하나님의 역사적 행위(Actio Dei)에 대한 시인(詩人: "나" 또는 "우리")의 (a)신학적 응답 (하나님을 향한 탄원), (b)심리적, 인간학적 응답 (시인 자신의 고난에 대한 탄원), 그리고 (c)사회적 응답 (원수에 대한 탄원)을 중심할 것이다.17) 좀 더 간결한 도식은, 부르그만(Brueggemann)이 제안한 것과 같이,18) (a)하나님의 축복을 보장받은 만족스러운 인간 삶의 응답으로서 "방향제시" (orientation; 기쁨, 즐거움, 아름다움[선함], 하나님의 신실함심,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통치법의 노래) → <권리 상실의 고통이 주는 충격> → (b)"방향감각상실" (disorientation: 혼돈과 질곡의 노래) → <탄원 … 놀람, 그리고 희망과 구원 희구의 절규에 의한 충격) → (c)"새로운 방향제시" (new orientation: 놀라운 새 삶을 경험한 감격의 노래) … <찬양과 감사의 노래>라는 (a)→< >→ (b)→< >→(c) … < >의 구조를 띨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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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시편의 케리그마 발굴 작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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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개괄적 관찰을 기초로 하여, 시편시들이 담고 있는 케리그마를 찾아내는 다음의 여러 다양한 길들을 따라가면서 시편 신학 수립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 이 작업의 본론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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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편의 저작 동기를 묻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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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해석의 근본 목적은 그 시편 시들이 어떤 "동기"로 노래 불리워지게 되었고 그리고 그 노래들이 누구에 의해서 어떤 예배 환경 속에서 어떤 용도로 사용 되었으며, 또 그 노래가 그 예배 공동체에게 무엇을 전하고 무엇을 공유할려고 하였는지를 밝혀 내는데 있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시편시들은 저작자들이 하였는지를 밝혀 내는데 있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시편시들은 저작자들의 시적 감정을 서정적(抒情的)으로 표현, 묘사하려고 쓰여진 것이 아니라 저작자들이 그들의 신앙 환경 속에서 그들의 하나님과 대화한 것을 노래로서 표현하고 또한 그것을 예배 공동체(제의[祭儀] 공동체)에서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나누어 공유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지고 모여지고 보존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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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계몽주의와 더불어 성서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길이 열리자 시편 연구가들은 우선 히브리시들의 정신 세계가 무엇이고 그 히브리시들의 문학 현실이 무엇인지를 먼저 묻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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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하여 나타난 첫 학문적 연구의 모습은 시편시의 문학적 특징을 살피는 일이었다. 로버트·로우드(Robert Lowth)의 "히브리시의 평행법"(De Sacra Poesi Hebraeorum, 1753)에 관한 연구는 가장 초기의 학문적 시편 연구의 모습이었다.19) 이 연구를 통하여 밝혀진 것은, 시편의 히브리시들이 가진 독특한 특징인데, 그것에 의하면, 히브리시들은 구절체들이 둘 또는 셋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목할 만한 점은 이들 구절체들 사이에서는 마치 그네가 흔들리는 것 같은 반복 평행의 진동(振動)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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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은, 놀라웁게도, 시편시들의 케리그마를 발견해 내는데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그러면서도 매우 중요한 한 도구를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즉 시편시들은 반복어법적 평행법을 통하여 스스로 그 읽는 자들에게 해석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본문 해석의 궤도 이탈을 방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 있어서 산문체로된 기타 다른 성서 본문보다는 시편 본문이 케리그마 발굴을 더욱 용이하게 하고 동시에 지나친 확대해석을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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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시편 15편의 경우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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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자 누구오니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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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성산에 거할자 누구오니이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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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a.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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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자니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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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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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벗에게 행악치 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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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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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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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두려워 하는 자를 존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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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변치 아니하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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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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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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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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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구도는 그 반복적 평행법 때문에 매우 간명하게 구성되어 있다. 즉 라는 3부 구조가 뚜렷하다. 특징적인 것은 "결어"를 제외한 <질문→대답>의 제의적(祭儀的) 교독형식이 모두 "동의적 평행법"에 의하여 "하나의 주제"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즉 "성소(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자"는 "의로운 자"이고 의로운 자는 "토라의 윤리에 복종하는 자"이다라는 하나의 주제가 집중적으로 강조된다. 성전(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들은 모든 종교 의식적 광란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그 의식에 참여하는 자들의 일상적 "삶의 윤리"에만 집중된다.20) 놀라움이다! 이것은 또한 하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조건들을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에만 국한하는 신약의 가르침(마태 7:21-23)과 상응한다. 결국, 이 시는 구약의 제의 종교가 선포하는 "구원의 은사"는 마술적 권능이나 종교 의식적 행위 또는 내밀한 신비종교의 규칙을 통하여 오지 않고 오직 예배자의 "일상적 삶"으로부터만 온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것이 이 시의 케리그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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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시편 해석의 첫 걸음은 시편 시의 "리듬"과 "평행법적 특성"을 고려하여 그 본문을 소리내어 읽는 일을 몇 차례 반복하는 일이다. 그 성서 본문이 시(詩)이건 산문(散文)이건, 그것이 "구전"(口傳) 단계를 거쳐서 온 것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개역성서의 시편이 지닌 장점은,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시편시 고유의 리듬을 살리려고 애썼다는 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역성서의 시편에 평행법적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것은 리듬을 실리려는 노력의 장점을 오히려 삭감시키고 있다. 그 무엇보다도, 성서의 확대해석이 지닌 위험을 방재해 준다는 점에서 시(詩)의 평생법적 특성을 참조하는 습관은 설교자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이다(Cf. 창 1:26-28의 "이마고·데이"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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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의 경우, 어느 경우에서나, 그 시(詩)의 "저작 동기"를 묻는 일은 케리그마를 발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시(詩)는, 그것이 비록 의전(儀典)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동기유발의 충동 없이는 형성되지 않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편 15편의 경우, 그 시(詩)의 저작 동기는 아주 분명하다(시 24편 3-6절의 경우에도 동일한 해석이 가능하다). 즉 이 시(詩)는, 1절의 "질문"(성소에 들어 갈 자격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2절 이하의 "답변" 사이의 관계로 미루어 볼 때, 이스라엘이 왕조 초기부터 있어왔던 <"토라"에 관한 협의 관습>의 전통(삼하 21:1ff; 사 33:14ff; 믹 6:6-8; 겔 18:5ff)을 이 시가 반영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이렇게 볼 때, 1절의 "질문"은 예배 참여자들이 성소(예배 장소)의 입구에서 성소 안쪽을 향하여 던진 질문으로서 "토라에 관한 협의 /자문/ 의논"의 성격을 띤다. 따라서 "대답"(2절 이하)은 성소(예배 장소) 안으로부터 제사장 또는 제의(祭儀) 예언자가 대답할 성질의 것이다(슥 7:1ff; 학 2:1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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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성소에 들어갈 자격을 전적으로! "토라의 실천" 여부에 두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제사장이나 제의(祭儀) 예언자 모두가 그 대답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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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러한 문맥에서 제기되는 그 케리그마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시편 종교에 있어서 "제의"(祭儀), "성소", "예배"는 토라의 실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시편 종교에 있어서 예배 장소(성소)의 문은 "의(義)의 문(門)"이고 (cf. 시 118:19-20) "영원한 문"(cf. 시 24:7,9)이다.21) 토라의 실천 없이는 의(義)의 반열에 들 수도 없고 야훼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수도 없다. 물론, 히브리적 의(義) 개념도 여기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그러므로, 저작 동기는 매우 예언자적인 충동을 갖는다. 즉 예배 참여의 자세와 정신을 윤리적 삶의 실천 없이 형식적으로 되풀이만 하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예언자적 힐책으로 나무라면서 경고하여 "예배와 삶의 일치" 그리고 "예배 행위와 토라 수행 행위 사이의 일치"를 도모하려는 복음 선교적 동기를 갖고 있는 것이 이 시(詩)의 저작 동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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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성전 종교에 있어서의 "구원"은 제의적(祭儀的) 선포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 "구원"은 결코! 제의행위(祭儀行爲) 그 자체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토라의 준수 행위로부터 온다는 것이22) 이 15편 시의 중심 메시지요 케리그마적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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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의 저작 동기를 알아내는 일이 지닌 그 중요성은, 시편 형성 역사를 통하여 점차적으로 이루어진 "시편의 표제를 붙이는 작업"에서 이미 뚜렷이 드러났다고 하겠다. 각 시편의 표제는 결코 각 시편 시의 저작과 동시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후대에 일어난 신학적 해석 과정의 한 결과라고 하는 것은 19C 역사주의 학풍을 이은 종교사학파의 학문적 노력에 의하여 분명하게 밝혀진 바이고23) 또 최근 "경전사적 비평학"24)에서는 더욱 더 분명하게 지지를 받고있는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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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편과 51편의 표제는 다윗의 생애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시 저작의 동기로 설명하고 있으나, 역사 비평학적 연구는 그 시들이 다윗의 생애와는 관계없이 저작되었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시편 3편의 표제는 4[5]절에 나오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언급으로 미루어 볼 때, 압살롬을 피하던 다윗 시대와 시편 3편의 시대를 연결시키려는 주석 활동(exegetical activity)의 한 산물일 뿐이다.25) 시편 51편의 표제도 또한 18(20)절로 미루어 볼 때,26) 후대의 해석 활동의 한 산물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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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는 시편 표제들이 지닌 그 해석학적 성격을 통하여 시편시들의 역사적 현재화가 이미 경전 형성 과정에서 매우 진지하게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즉 성서 본문의 역사적 현재화는 그 자체가 복음 선포요 설교 행위이다. 그러므로, 시편의 설교화는 이러한 성서 본문의 역사적 현재화를 재연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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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詩)의 삶의 자리의 역사화와 역사적 유비(類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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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켈의 양식비평학적 시편 연구가 이룩한 결정적 공헌은 시의 문학 형식과 내용, 그리고 시의 양식과 삶의 자리 사이의 불가분리적 관계성을 밝힌데 있다. 그리하여, 궁켈은 결과적으로 "시편신학을 그 위에 수립할 수 있는 한 튼튼한 기초"27)를 놓았다고 하겠다. 따라서, 시의 삶의 자리에 관한 그의 연구는 또한 시편 설교화(시편 케리그마화)에도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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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는 영혼의 표현이다. 경전시의 경우, 그것은 그의 신(神)을 향한 시인 자신의 영혼의 고백이다. 시인의 심혼을 사로잡은 신앙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처하였던 삶의 자리는 불가분리적으로 그 시인의 시(詩)의 형식을 결정하게 된다. 특히, 고대 이스라엘 시문학이 지니고 있는 그 인습성, 전형성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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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궁켈의 시편 시 유형(types)분류법에 따르면,28) 유월절, 칠칠절, 장막절 등 등의 기쁜 축제의 날에 불렀던 제의송(祭儀頌)들은 하나님의 역사적 주권과 창조의 주권을 찬양하는 "찬양시"라는 문학 유형을 탄생시켰고, 전쟁의 패배, 적군의 침략위협, 자연의 대 재해, 심각한 질병, 심각한 참회, 원수의 무고(誣告), 깊은 소외(疎外)의 고독 등 등의 재난에 처하여 금식제를 선포하고 하나님께 구원을 기원할 때 불렀던 노래들은 하나님을 향한 절규, 자신의 고통의 토로, 원수로 인한 탄식 등으로 구성된, 소위, "탄식시" 또는 "탄원시"라는 문학 유형을 탄생시켰으며, 대 운명전환의 감격적 체험과 함께 감사제물을 들고 제단 앞으로 나아가서 불렀던 노래는 "감사시"라는 문학유형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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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편시에 대한 이러한 형식의 유형 분류는, 사실 엄격히 말한다면, 기록된 문서의 문체나 문학 형식 보다는 오히려 그 시들의 "삶의 자리"를 유형분류의 더 근본적인 표준으로 생각하고 진행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예컨데, 시편 23편이나 27:1-6과 같은 철저한 "신뢰(의지)의 노래"(Vertrauesnpsalmen)를 "탄식시에서 자라난 시"라고 보고 탄식시(탄원시)의 종속 양식으로 범주화하였던 것30)은 그의 시 유형 분류가 시의 형태보다는 시의 환경에 더 비중을 두고 진행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그 대표적 입증자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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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켈의 시편시 유형분류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더 세분화되어서, 야훼의 유일한 왕권과 유일한 통치권을 중심주제(motif)로 삼는 시들은 찬양시의 종속 양식인 "대관식시"라고 분류하였으며,31) 현존하는 지상(地上)의 왕을 위하여 그의 왕권의 견고함을 하나님께 빌고 기원하는 노래는 "제왕시"라고 분류32)하기도 하였다. 그는 그 이외에도 작은 단위의 여러 "유형들"을 제시하였는데, 주목할 만한 점은, 그의 시의 유형사 연구와 시의 삶의 자리에 대한 연구 방법론은, 그 후, "주제"(motify) 연구로 계승되어 "전승비평학"을 탄생시키기까지 하였다는 점과, 그리고, 유형에 대한 연구와 삶의 자리에 대한 연구가, 시 연구 뿐만 아니라, 설화문학(특히, 창세기)에 대한 연구에서도 어디까지나 "공통"의 문학유형과 "공통"의 삶의 자리가 그 연구의 특징적인 결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시편시의 해석에 있어서 시편시로부터 "역사적 유비"의 가능성을 크게 열어 놓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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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시인의 현실들(찬양시, 탄원시, 감사시, 신뢰시 ... 등 등의 현실들)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현실들과 명백한 "공통성"을 갖고 있으며 우리 현실의 "예표"(prefiguration)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 학술적으로 입증이된 셈이다. 여기에, 시편 해석의 모범적 길잡이가 제시되어 있는 셈이며 시편을 케리그마로 선포할 수 있는 학문적 문호가 열려진 셈이라고 하겠다. 시편이 대 예배 설교 본문으로 뿐만 아니라 기도회나 짧은 시간의 경건회에서 설교 본문으로서 오래 동안 사용되어 오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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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히브리시의 신학적 특징과 신학적 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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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만하게도, 구약의 히브리 시편들이 신구약 성서를 관통하는 성서적 케리그마를 갖고 있는, 일종 "케리그마의 보고(寶庫)"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시편시들이 갖고 있는 그 신학적 특징과 신학화의 노력들을 많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히브리시의 신학적 특징과 신학화의 노력은 주로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의 종교가 갖고 있는 종교시들과의 비교의 맥락에서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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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편시들의 신학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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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시들은 중동 종교들의 종교시들과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중동 종교시들의 다신론적 배경과는 달리 시편시들은 철저히 야훼 유일신 신앙의 기초 위에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cf. monarchical monotheism33)). 거기에는 또한 하나님의 "성"(sexuality)개념이 또한 전적으로 배제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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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우리는 시편시들 중에서 "왕"을 찬양하는 성격의 "제왕시"라는 것은 없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시편의 제왕시는 결코 왕을 찬양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왕을 위하여 하나님께 비는 기도이거나 왕을 도와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일 뿐이다. 이러한 신학적 현상은 성전을 주제로 한 시들에서도 나타난다. 즉 성전(聖殿)의 노래(시온 노래)는, 시편의 경우, 성전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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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시 양식 중 절대 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탄원시의 경우, 구약 시편의 그 탄원시는 엄격히 "만가"와는 구별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만가는 시편에서는 나타나지 않음!!)34) 그리고, 탄원시인들이 그들의 하나님을 부를 때는(invocation의 경우에는) 결코 신의 이름에 수식구(중언부언의 찬양사)를 붙이지 않는 특징이 있다. 즉 시편 탄원시의 "기도"는 기도의 대상인 신(神)에게 아첨하는 찬사를 매개로 하여 신의 개입이나 신의 응답을 끌어낼려는 의도는 전적으로 배척한다. 이 점은 고대 바벨론 종교의 탄원시와의 비교를 통하여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35) 특히, 시편에 나타나는 "신뢰시" 유형은 주변 종교의 종교시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도 주목할만 하다. 여기에는 분명 이스라엘 고유의 유일신 사상과 하나님의 유일한 왕권사상(divine imperium)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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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스라엘시들의 신학적 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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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9편은 0본래 바알을 찬양한 가나안 페니키아(우가릿)의 찬양시였다는 것을 밝혀서 학계를 놀라게한 긴즈버그(H. L. Ginsberg)는, 많은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시편 29편이란 "바알"이라는 이름이 있는 자리에 "야훼"를 대치해 넣는 정도의 수정만으로 후일 구약 경전속에 들어 온 시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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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그리하여, 야훼의 "소리"는 폭풍신의 천둥소리로부터 "야훼의 음성" 또는 "야훼의 말씀"에로의 신학적 전이(轉移)와 신학적 개작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시편 104편(애굽시의 이스라엘적 개작)에도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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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9A에 대한 필자의 논문37)도본래 태양신을 찬양하는 것이 주제였던 가나안시가 "태양"이라는 단어 앞에 히브리어 전치사 "라메드"(lamed)기 붙여지자 곧 그 태양신 찬양시는 즉각 태양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업적을 찬양하는 이스라엘적 성격의 하나님 찬양시로 개작되었다는 것을 밝힌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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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유형의 이스라엘 신학의 시편 신학화 현상은 시편으로부터 케리그마를 찾는 일을 매우 고무시키고 있음도 분명하다. 시편 주석은 참으로 많은 부분에서 이러한 신학화 현상을 드러내어 밝혀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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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마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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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은 주석적 도움이 없이는 적절한 케리그마 선포의 대본이 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시편은 본래의 구전(口傳)적 단계에서도 묵상 또는 명상의 교본은 결코 아니었다.(시편 1편의 "묵상"이라는 표현은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라고 번역해야 한다.38))리듬과 평행법의 파도에 맞추어 크게 소리내어 읽어야 하는 찬양과 탄식과 감사와 기도의 고백문이다. 그러므로, 시편은 하나님의 행위(Actio Dei)에 대한 신앙인의 응답이다. 그러므로, "케리그마"의 선포가 시적(詩的) 은유(metaphors) 속에 깊숙히 숨겨져있는 것이 시편이다. 실로, 시편은 케리그마의 보고(寶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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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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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서 말하는 "비평학 이전적"이라는 말은 경멸적 어투로 그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언어가 아니다. 오히려, 이 말은 궁켈, 모빙켈, 베스터만 등 등의 저작으로부터 온 학문적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은 시편해석을 지칭하는 말일 뿐, 시편에 대한 영적 통찰을 배척하지 않는 비평학 이전적 방법도 존중한다는 의미의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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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Walter Brueggemann, The Message of the Psalms (Minneapolis: Augsburg Pub. House, 1984), pp.15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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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H. J. Kraus, Theology of the Psalms(Minneapolis: Augusburg Pub. House, 1986), pp.11-16, esp.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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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B.S.Childs, Biblical Theology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3), pp.8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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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A.Briggs,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Book of Psalms, vol. I (ICC; Edinburgh: T.&T.Clark, 1906, 1976), pp.liv-lix; B.S.Childs,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s as Scripture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9, 1986), pp.50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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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f. C.A.Briggs, ibid, pp. lxxxvii-xc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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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Ibid., pp.lvii-lv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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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f. H.Gunkel, Einleitung in die Psalmen (Go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33,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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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f. S.Mowinckel, The Psalms in Israel's Worship (vols.1-2; Nashville: Abingdon, 1962, 1977,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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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Westermann의 시편연구서, Praise and Lament in the Psalms (Atlanta: John Knox Press, 1981)는 궁켈 이래 정형화된 "개인 감사시"를 "선언적 찬양시"라고 수정하고 전통적 "찬양시"는 "서술적 찬양시"라고 칭하였으며, H.J.Kraus는 그의 시편 주석 Psalms 1-59 (Minneapolis: Augsburg Pub. Co., 1988)에서 "탄원시"를 "기도시"라고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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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G. von Rad, Old Testament Theology (New York: Harper & Row, 1962), pp.355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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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f. Ee Kon Kim, “‘Outcry', Its Context in Biblical Theology”, Interpretation 42/3 (July 1988), pp.229-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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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C.Westermann, "The Role of the Lament in the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in Praise and Lament in the Psalms, pp.259-280. Also printed in Interpretation 28(1974), pp.20-38. 특히, 그의 논문의 서두말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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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B.S.Childs, Introduction to the OT as Scripture, p.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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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W.Brueggmann, The Message of the Psalms, p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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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C.Westermann, Praise and Lament in the Psalms, p.259-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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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Ibid., pp.169-194; idem, The Psalms: Structure, Content, and Message (Minneapolis: Augsburg Pub. House, 1980), pp.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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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W.Brueggemann, The Message of the Psalms, pp.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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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김이곤, "히브리시 운율양식에 나타난 평행법", 「오늘의 시편 연구」(문희석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4), pp.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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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H.J.Kraus, Psalms 1-59, pp.23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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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Ibid., pp.228-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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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Cf. G. von Rad, OT Theology, I,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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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Cf. C.A.Briggs,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Book of Psalms, I., pp. lvii-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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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이곤, "차일즈의 성서해석 방법론", 「신학연구」22(1980), pp.4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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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H.J.Kraus, Psalms 1-59,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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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Ibid., pp.5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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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Cf. W.Brueggemann, The Message of the Psalms, pp.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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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H. Gunkel, Einleitung in die Psalmen, p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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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김이곤, "찬양시", "탄식시", "개인감사시" 「오늘의 시편연구」(문희석편), pp.15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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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H. Gunkel, Einleitung in die Psalmen, p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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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Ibid., pp. 9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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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Ibid., pp. 14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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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H. J. Kraus, Theology of the Psalms, p. 25; Cf. W. F. Albright, From the Stone Age to Christianity(New York: Doubleday & Co., 1940, 1957), pp. 257-272; J. B. Pritchard, Ancient Near Eastern Text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3rd ed.: Princeton: Princeton Univ. Press,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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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김이곤,「구약성서의 고난신학」(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89,1996),pp. 106-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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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J. Begrich, Gesammelte Studien zum AT(Munchen: Chr. Kaiser Verlag, 1964), pp. 168-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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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H. L. Ginsberg, “A phoenician Hymn in the Psalter”, in Atti del XIX Congress Internationale degli Orientalisti(Roma: 1935), pp. 472-476. (중인) Cf. M. Dahood, S. J. Psalms 1-50(New York: Doubleday & Co., 1965), p.175; Ginsberg의 논리에 대한 비판적 반응. P. C. Craigie, Psalms 1-15 (Waco: Word Books, 1983), pp. 24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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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김이곤, "시편 19A에 나타난 태양찬양 주제의 이스라엘적 개작", 「신학사상」18(1977, 가을), pp.68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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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김이곤, "시편 1편의 hgh와 nbl의 변역문제",「성경원문연구」(대한성서공회), 제 2 호 (1998년 2월), pp.4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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