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시편 강해

인생의 두 길 - 시편 1편 강해설교

에반젤(복음) 2019. 9. 8. 19:32



인생의 두 길

시편 1:1~6


설교 : 2010년 2월 7일 주일예배

찬송 : 28장, 463장, 459장.

 

조그마한 어느 도시에 시청과 소방서를 건설했습니다. 그 지역사람들은 붉은 벽돌로 지은 그 건물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이유는 주민들이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것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이로 이전한 후 몇 개월이 못 되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문이 꼭 닫히지 아니했고 창문이 잘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날이 가면서 벽이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기초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앞문이 잠기지를 않았습니다. 비가 내리면 비가 새기 시작했습니다. 한때는 그들의 자랑의 원천이 되기도 했던 그 자그마한 아름다운 건물은 점점 폐쇄건물이 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정밀히 조사해보니 십여 리 떨어진 광산에서 폭파 작업을 했는데 그 폭파로 인해서 그 건물의 기초가 흔들리고 금이 간 것입니다. 마침내는 그 자체까지 손상되고 말았습니다.


한 마을의 건물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는 인생의 한 과정을 묘사하기도 합니다. 한 인생이 인생의 여정에서 죄와 타협해서 사는 삶을 살게 될 때에 한 때는 안전해 보이고 건전해 보였던 그 삶이 파탄되고 결국에는 참으로 가장 비참한 인생의 말로를 겪는 것에 대한 교훈을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본 시편의 기자도 인생의 여정에 관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타협키 쉬운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말고 그 유혹을 담대히 물리치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시편 1편은 시편 23편 다음으로 유명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고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시가입니다.

본 시편에서는 두 가지 인생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건의 생활을 사는 복 있는 사람의 인생인 의인의 길(1~3절)과 경견치 않는 생활을 사는 형통치 못한 악인의 길(4~6절)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경건한 생활의 인생길-의인의 삶(1-3절).


1절에서 죄가 그 사람의 악과 타협해서는 안 됨을 부정적인 세 가지 면에서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① 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는 것, ②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는 것, ③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2절에서는 사실상 경건한 생활의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면으로서 경건한 삶을 사는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는 의로운 삶을 사는 결과, 즉 복 있는 사람의 결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좀더 구체적으로 상고해 보겠습니다.


1절에서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복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복의 개념은 오복이라고 하여 건강의 복, 재물의 복 등을 기준으로 여기는 복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 기쁨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물질이 있거나 없거나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궁핍에 처할 줄도 아는 비결을 배워서 풍성한 복이 넘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죄나 부정한 것과는 타협하지 아니하는 정결한 삶을 삽니다. 이것은 도덕적인 정결을 말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을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①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악인의 꾀, 권면, 생활 철학 등을 따르지 않습니다. ②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기서의 “길”이란 분명한 표지판이 있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의를 위하여 불신자들의 생활 방도나 그 형태를 모방하여 취하지 않음을 말씀합니다. ③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앉는 다”는 의미는 “영구히 정착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교만한 자리에나 기롱하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만한 자리에 앉는 사람은 영적인 것, 거룩한 것을 소홀히 하고 기롱하는 자의 자리에 안착하고 맙니다. 훼방하는 무리들과 함께 그 삶을 정착시킵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그러한 위치에 자신을 정착시키지 않습니다.



1절에서 시편 기자가 우리에게 권면하는 것은 악과 장난하지 아니하며 도덕적으로 정결한 삶을 살며, 죄와 타협하기를 거절한다면 참 행복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권면을 받아들일 때 두 사람의 인물이 있습니다. 롯과 요셉입니다. 롯은 악과 장난하다가 타락한 사람이요, 요셉은 처음부터 악의 길을 좇지 않기로 작정하고 복된 길을 가기로 선택한 사람입니다.

롯은 삼촌 아브라함이 선택할 기회를 주었을 때 요단 들을 보고 그곳을 선택했습니다. 그곳은 악을 행하며 죄를 짓는 사람들이 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기만하는 오만하는 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롯이 그곳으로 옮겨가서 그들의 생활양식을 그대로 취하면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악인의 꾀를 좇게 되었으며 죄인의 길에 서게 되었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창19:1). 롯의 최후에는 가진 것도 다 잃고 아내마저 잃었습니다. 겨우 딸 둘만 데리고 불 가운데서 구원받는 사람이 되어 소돔에서 탈출하였습니다(창 19:1).



경건한 삶을 추구했던 요셉의 생애를 보십시오(창39~50장). 그는 애매히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왔으나 그는 마음에 의인의 길을 걷기로 하나님 앞에 작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런 원망과 시비가 없이 보디발의 집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맡기며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의 아내가 유혹할 때 그는 담대히 그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그 유혹으로부터 피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인의 길을 가기로 결단을 내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후일에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에도 요셉이 유혹을 받았을 때 피했던 것처럼 “정욕을 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도덕한 장소에 있으면서 우리가 승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술을 마시고 그 다음 단계에 들어가는 첫 단계부터 피해야 합니다. 이 모든 유혹에서 피하며 죄와 타협하지 않는다면 복이 있습니다.

경건한 사람은 복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입니다(2절). 우리가 생활방식을 바꾸려 한다면 절대적인 표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 절대적인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위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9, 11). 복 있는 사람은 주의 율법을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짐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괴롭히는 것이며 내 생활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겨서도 안 됩니다. 이러한 생각은 악인의 꾀를 좇는 사람들의 삶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사랑하며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십니까?



다윗은 왕으로서 얼마나 분주한 사람입니까? 그렇지만 모든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시 119:97)

1절에서 우리에게 복을 약속했다면, 2절은 우리에게 행복의 수단을 마련해 주고 있으며, 3절에서는 그 결과에 대해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3절)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 결과입니다. 경건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삶을 나무의 네 가지 특징을 들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입니다. 이 나무의 뿌리가 시냇가에 내려져서 안전하고 견고하고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와도 부러지지 않고 견고히 서 있음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박은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둘째로, 과실을 맺는 나무입니다. 뿌리가 깊이 내려진 나무는 자연적인 결과로 그 나무의 풍성한 괴실이 열립니다. 우리들의 삶속에서도 괴실이 풍성히 열리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맺어야 할 열매들은, 전도의 열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 그리스도인의 품격을 나타내는 성령의 열매(갈 5:22-23) 등이 있습니다.

셋째로,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나무입니다. 어려운 때에도 영향 받지 않습니다. 역경에 처했을 때에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즉 그 영혼은 시들지 않으며, 이떤 형편에 처해있든지 자족할 줄 알 뿐만 아니라 풍성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넷째로, 형통하는 나무입니다. 오늘의 언어로 말하면 성공하는 나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 생애에 주신 목표를 성취해가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런 나무는 사람이 불면 불수록 뿌리가 더욱 깊이 내려갑니다. 더 견고해 집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17:7-8)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험악한 세상에 살면서 죄와 타협하지 않고 정결한 삶을 유지하는 것은 복된 삶입니다. 내 삶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단을 내리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십시오. 모이기를 힘쓰십시오. 내일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흔들리지 않고 견고히 서 있는 신령한 나무로 자랄 것입니다. 영적인 성장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신체적 성장을 위해 음식과 적당한 환경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영의 양식을 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요시 여기는 자리에 나와야 합니다. 교회의 모임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2. 경건치 아니한 인생길-악인의 삶(4-6절).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견고한 나무”에 비유되지만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겨는 타작할 때 알곡으로부터 분리되는 껍질입니다. 추수할 때 키질해서 날려 보내는 것입니다. 전혀 가치가 없습니다. 겨와 같은 악인의 삶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그 집에 부딪쳐 그 무너짐이 심한 기초 없는 집과 같습니다. 이러한 삶을 솔로몬은 전도서 2장 11절에서“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11)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떠한 삶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구원받은 의인으로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은 것과 같은 삶을 살고 계십니까? 5절의 경고를 기억하십시오.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서있을 수 없음을 경고하십니다. 믿음으로 주님께 나오지 아니한 사람, 영생을 위해 주님을 의지하지 아니한 사람은 믿는 자의 회중에 참여치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악인의 인생길은 결국에 망할 것입니다(6절). 심판하시는 분은 공평하시며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삶에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협하려고 하는 어떤 신호가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 신호를 발견하신다면 지금 즉시 그 문제들, 연약함 들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오십시오.

도움 되시는 주님께서 당신을 도우시며 새로운 정결한 삶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또한 나는 참으로 행복한 그리스도인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은가, 참으로 시들지 않고 내 삶의 열매가 풍성하며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성공하는 그리스도인인가, 주님을 기뻐하는가를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며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가. 견고하며 결실하는, 말씀다라 살며 말씀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나가는 그리스도인인가 아니면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도 시편 기자와 같은 복 있는 삶이 지속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