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욥이 재산과 자녀를 잃음
1-5절, 의인 욥
[1절]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 . . .
본문은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말한다. ‘우스 땅’은 에돔 지역이었던 것 같고(애 4:21), 욥은 아브라함 시대 사람이거나 그의 몇 대 안의 자손이었던 것 같다.
본문은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고 말한다. ‘순전하다’는 원어(탐 ם?)는 비교적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인격을 가리킨다. 성경이 노아가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증거할 때(창 6:9), ‘완전한’이라는 말도 같은 뜻이다. 또 성경이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는 자이어야 한다고 말할 때도(딤전 3:2) 같은 뜻이다. 우리는 성경말씀에 비추어 또 자기 양심에 비추어 책망할 것이 없는 삶을 살기를 힘써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4:4에서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고 간증하였고,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3:21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는다”고 말했다.
또 욥은 정직하였다. ‘정직함’은 올바름, 기준에 맞음이라는 뜻이며 의롭다는 말과 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바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또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경건의 본질이요(잠 1:7) 그럴 때 사람이 악을 떠날 수 있다(잠 16:6). 노아나 다니엘도 그러했다.
[2절]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본문은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라고 말한다. 욥은 많은 자녀들을 둔 성도이었다. 자녀 출산은 하나님의 뜻이다. 창세기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물론, 자녀를 안 주시는 경우도 있었다. 노아는 500세 이후에 세 아들을 낳았다(창 5:32). 아브라함도 100세에 한 아들을 얻었다. 그러나 자녀 출산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이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다”(시 127:3). 자녀 출산과 양육은 힘든 일이지만, 복되고 보람 있는 일이다.
욥은 자녀들을 낳아 기르면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우리는 수고롭고 복잡한 삶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 에녹도 그러하였다. 창세기 5:21-22,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독신(獨身)은 신앙생활하기에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신앙생활은 현실도피적인 생활이 아니다. 정상적 신앙생활은 현실 속에서 수고하면서 사는 생활이다. 그것은 결혼한 사람들이 자녀들을 낳아 기르며 가정을 이끌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이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 단위이며 성도의 일차적 경건 훈련의 장소이다. 우리는 가정에서 경건한 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함과 그 계명대로 의롭고 선하게 사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가정에서 믿음과 사랑, 겸손과 인내, 순종과 용서 등을 실습한다. 가정에서 잘 생활하는 자가 바르고 좋은 인격일 것이다. 디모데전서 3:4-5,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3절] 그 소유물은 양이 7천이요 약대가 3천이요 소가 5백 . . . .
본문은, “그 소유물은 양이 7천이요 약대가 3천이요 소가 5백 겨리(천 마리)요 암나귀가 5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말한다. 동방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후처의 자손들이나(창 25:1-6), 아브라함의 여종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의 자손들이나(창 25:12-18), 에서의 자손들을 가리킬 것이다(창 36장).
욥은 물질적 부요함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재물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소유물이며 재물의 복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도 복을 주시므로 그가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巨富)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었었다(창 26:12-14).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순종하는 자에게 몸의 소생과 토지의 소산과 가축들의 새끼의 복을 약속하셨다(신 28:4).
그러나 물질적 부요는 신앙생활에 큰 방해물이다. 주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며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하셨다(마 19:23-24). 왜냐하면 부자는 마음이 해이해지고 교만해지고 하나님 대신 재물을 의지하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교훈하였다(딤전 6:9-10).
그러나 부자인 욥은 하나님의 은혜로 경건하였다. 그는 교만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고 재물에 종노릇하지 않았다. 그는 욥기 31:24에서 “내가 언제 금으로 내 소망을 삼고 정금더러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던가”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4-5절]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 . . .
본문은,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 그 잔칫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고 말한다. 욥의 자녀들은, 아마 다 성장한 후에도,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누이들까지 청하여 함께 먹고 마셨다. 그들은 서로 간에 형제애가 좋았다. 욥의 가정은 부모와 자녀간에 또 형제들 간에 사랑과 순종과 우애가 있는 좋은 가정이었다.
그런데 욥은 그 잔칫날이 지나면 자기 자녀들이 혹시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염려하여 그들을 집으로 불러 성결케 하였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하나님게 번제를 드렸다. 욥은 죄의 심각성과 성결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경건과 거룩함과 온전함뿐 아니라, 자녀들의 경건과 거룩함과 온전함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육신적 차원에서 자녀를 위할 뿐 아니라, 영적 차원에서 자녀를 위하였다. 그는 자녀들의 구원과 신앙 인격을 위해, 죄짓지 않게 하기 위해, 혹 지은 죄를 씻음받게 하기 위해 힘썼다. 그는 부모로서 열 명의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그러하였다.
본문은 “욥의 행사는 항상 이러하였더라”고 말한다. 그는 한두 번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그의 행사가 항상 그러하였다. 그것은 참된 자녀 사랑이다. 부모에게 주는 성경의 교훈의 핵심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라는 것이다. 에베소서 6:4는,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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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모든 성도들에게 본이 된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순전하고 흠이 없었고 의롭고 정직하고 악을 떠났다. 둘째로, 욥은 많은 자녀들을 낳아 기르면서도 하나님을 잘 섬겼다. 셋째로, 욥은 물질적으로 부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잘 섬겼다. 물질적 부요는 많은 경우 시험거리가 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지 않았다. 넷째로, 욥은 자녀들의 거룩함을 위해 힘썼다. 자녀들을 경건하고 거룩하고 선한 인격이 되도록 지도하는 것은 부모의 첫 번째 의무이다.
6-22절, 욥이 재산과 자녀들을 잃음
[6-7절]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 . . .
본문은,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욥기 38:7은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놓을 때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다고 말한다.
사탄은 천사들 중 하나이다. 그는 타락한 천사이다. 그의 타락의 죄는 교만이었다(딤전 3:6). 사탄은 실재(實在)한다.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범죄케 했던 뱀은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가 활동한 짐승이었다고 본다. 요한계시록 12:9는 ‘큰 용, 옛 뱀’이 바로 사탄이라고 말한다.
사탄은 땅에 두루 돌아다니며 활동한다. 그는 세상 사람들을 죄 짓게 하고 성도들과 하나님의 일들을 대적하고 어지럽히며 파괴시킨다. 그는 거짓말쟁이요 살인자이며(요 8:44) 다윗을 격동시켜 인구조사를 하게 하였고(대상 21:1)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대적하였다(슥 3:1). 그는 예수님을 시험한 자요(마 4장)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게 하며(고후 4:4) 세상의 죄악된 유행과 풍조를 조장한다(엡 2:2). 그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벧전 5:8). 그는 온 천하를 꾀는 자이다(계 12:9).
사탄의 권세는 크다. 그는 이 세상 임금(요 12:31), 이 세상 신(고후 4:4), 공중에 권세 잡은 자(엡 2:2)라고 불리우며 요한일서 5:19는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해 있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사탄은 마침내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 요한계시록 20:10은,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최종적으로]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운다”고 예언하였다.
[8절]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 . . .
본문은,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고 말한다.
욥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순전하고 정직하고 경건하고 악에서 떠난 자이었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의인이었다. 사람의 판단과 평가는 완전치 못하다. 사람은 다른 이의 중심을 알지 못하고, 그의 외모만 보기 쉽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귀한 종 바울을 비난하고 욕하고 악평하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고 하나님의 평가이다. 잠언 16:25는,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말한다. 구약성경은 열왕들의 역사를 기록할 때, 그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자이었는지, 악한 자이었는지를 기록하였다. 솔로몬은 늙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온전치 못하였다(왕상 11:4). 아사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고(왕상 15:11), 오므리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왕상 16:25), 아하시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왕상 22:52). 열왕기상하에는 29번, 역대하에는 11번, 총 40번 ‘하나님 보시기에’ 혹은 ‘하나님 앞에서’라는 표현이 나온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치 말고 정직하고 의롭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또 그는 남을 볼 때도 외모만 보지 말고 그의 중심을 살펴보려 하고 그의 신앙인격을 유의해 보아야 한다.
[9-11절]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 . . .
본문은,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라고 말했다고 말한다.
사탄의 비난은, 욥이 까닭 없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물질적 복 때문에 섬긴다는 것이다. 즉 욥의 신앙은 기복(祈福)신앙이라는 것이다. 욥의 신앙이 기복신앙인가?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동기가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적 복 때문인가? 그러면 물질적 복이 없으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도 중단될 것이다. 그가 물질적 복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도 버릴 것이다. 하나님 때문에 고난을 받거나 순교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기복신앙은 고난을 견디기 어렵고 순교는 더욱 불가능할 것이다.
성경은 순수한 신앙을 가르친다. 예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 씨 뿌리는 비유 중에, 돌밭에 떨어진 씨는 환난과 시험에 넘어지는 경우를 가리켰다(마 13:20-21).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말했다(행 14:22). 또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말했고(빌 1:29), 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라고 증거했다(롬 14:7).
[12절]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 . . .
본문은,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욥의 소유물을 주관하는 권세를 주셨다. 손은 힘을 상징한다. 사탄은 세상의 것을 상당히 주장한다. 그는 욥의 모든 재산을 없애고 모든 자녀를 죽이기도 하였다. 누가복음 4:6에 보면, 사탄은 예수께 말하기를, 나에게 절하면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너에게 주리라,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므로 내가 나의 원하는 자에게 그것을 준다고 하였다. 사탄은 상당한 권세를 가졌다.
그러나 사탄은 오직 하나님의 허락 속에서만 또 하나님의 허락하신 한계 안에서만 그 권세를 가지며 그것을 사용하고 활동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온 세상에 유일한 주권자이시다. 그는 사탄과 악령들도 주장하신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많은 귀신들을 쫓아내셨다. 귀신들은 심지어 돼지 속에 보내시기를 그에게 간구하였었다(마 8:31). 세상 끝에 하나님께서는 사탄과 악령들을 지옥에 던져 넣으실 것이다(계 20:10).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고난을 허락하심은 유익케 하시는 깊은 뜻이 있다. 사람은 평안할 때 교만해지고 해이해지고 범죄하거나 탈선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천국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사람이 고난을 당하면 세상의 헛됨을 알고 죄를 멀리하고 더 거룩해지며 더 하나님만 사모하고 의지하며 천국을 소망하게 되고 또 무엇보다 겸손해진다(시 119:67, 71; 고후 1:8-9; 12:7).
[13-22절]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 . . .
욥은 하루아침에 큰 재앙을 당하였다.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사자가 욥에게 와서 말했다.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말했다.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과 종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말하였다. “갈대아 사람이 세 떼를 지어 갑자기 약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말했다. “주인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더니 거친 들에서 대풍(大風)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그때, 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말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赤身)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그가 주관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다. 그는 이 모든 일에서 범죄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았다. 열 정탐꾼의 불신앙적 보고를 받고 밤새도록 통곡하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던 이스라엘 백성과는 너무 대조가 된다. 욥의 신앙과 의로운 인격은 고난 가운데서 더욱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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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탄과 악령들이 성도들에게 때때로 고난을 주지만 오직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만 줌을 알고 두려워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욥처럼 물질적 복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지 말고, 즉 기복 신앙을 가진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바르게만 살자. 셋째로, 우리는 재산과 자녀들을 잃었으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찬송하며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니이다”라고 말한 욥처럼,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원망치 말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그가 주시기도 하고 취하시기도 함을 인정하자.
'***신구약 성경강해*** > - 욥기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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