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에스겔 강해

에스겔의 환상과 비전 겔47:1-12

에반젤(복음) 2019. 7. 13. 08:53



에스겔의 환상과 비전

 

                      (겔47:1-12)

 

  에스겔은 B.C 593-565 사람으로 예레미야와 다니엘처럼 팔레스타인 역사의 격동기에 살았던 사람으로 부시의 아들로서 제사장 가문의 출신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 왕과 왕족들, 유다의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사로잡아 갈 때 그 포로들 가운데 섞여 끌려갔습니다.

  에스겔은 포로 생활 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했고 자기 민족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던 자입니다. 그는 제사장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민감하였고 또 선지자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했으며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였으며 죄에 대해서 늘 안타까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에스겔서를 읽어 보면 한마디로 말해서 환상과 비전에 대한 내용입니다. 에스겔은 곧 일어나고 또한 오랜 기간이 지난 다음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이 환상은 너무도 아름답고 신비스러울 뿐만 아니라 다양했습니다. 에스겔은 이러한 환상을 가지고 백성들을 권면하며 때로는 경고하기도 하는 하나님의 파수꾼 일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전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간즉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 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겔 47:1-12)

 

  특별히 에스겔이 본 환상 중에서 필자는 47장에 있는 성소에 흐르는 환상의 내용을 참으로 귀하게 여깁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이 성소에서 흐르는 생명수가 전 세계로 확장되어지는 이상을 봅니다. 이 물은 성전의 제단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 물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생수를 의미합니다. 이 생명수가 임하는 곳은 메마른 땅이 소성되어지고 새생명과 부흥의 원천이 되어집니다. 이 물이 흐르는 곳에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임합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고 물을 계속 마셔야 합니다. 물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죠. 물을 한번 마셨다고 해서 다시 마시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적으로 육신의 갈급함을 채워주는 물도 계속 해서 공급되어져야 하듯이 성소의 흐르는 물 곧, 영생수도 우리의 심령 속에 계속해서 차올라야 합니다. 주님의 생수는 영혼이 목마르지 않는 삶의 생수이고 성령의 기름부음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십니다. 그 여인은 먹어도 먹어도 목마른 갈급함을 주님께 호소했습니다. 그 때 주님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3-14)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7:37-38)

 

  목마른 자 누구나 주님께 가면 영생수가 흘러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물로는 소생이 안되지만 성소의 흐르는 물로는 소생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 이 성령의 물줄기가 흘러나와야 합니다.

  에스겔은 환상이 열려 이 생수가 차오르는 과정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이 어느 정도 차올랐는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바둑에도 급수가 있습니다. 급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보면 수준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같은 말씀을 들어도 세상과 혼합된 말씀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과 혼합된 말씀은 능력이 없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으며 영혼의 소생과 변함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꼭 소성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세상과 혼합되지 않은 깨끗한 물이 흘러야 합니다. 홍수가 났을 때 물난리로 인하여 소동이 일어나는데 특히 마실 물이 없어서 더욱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혼잡한 이론과 지식이 혼합되어 지지 않은 깨끗한 말씀이 증거되어져야 합니다. 그럴 때 성소의 흐르는 물 곧 성령으로 흘러나오는 물을 통하여 죽어 있는 심령들이 살아납니다.

  여러분은 그 성령의 은혜가 어디까지 차 있습니까? 자신에게 은혜의 생수가 어디까지 차 올랐는지 본문을 통하여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영적수준을 측량해 보시기 바랍니다.

 

발목까지 차오른 은혜의 단계

 

“척량한 후에 나로 그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겔 47:3)

주님의 은혜가 발목까지 임한 사람입니다. 이 만큼만 임했기 때문에 교회를 왔다갔다만 합니다. 요한일서에 보면 사도요한이 성도들을 지칭할 때에 자녀, 아이, 청년, 아비들아 이렇게 부릅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요일 2:12-14)

  이것은 그 사람의 영적 나이로 바라보고 말한 것입니다. 교회에는 늦게 신앙생활 하시는 분도 있고, 일찍 신앙생활을 시작한 분도 있기 때문에 나이가 각각 다릅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신앙 수준이 더딘 분도 있지만 어떤 분은 신앙이 정상적으로 성장되어지는 분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 단체가 교회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바라보고 영적 나이로 성도들을 지칭했습니다.

  발목까지 차오른 단계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듣고 소유해야 할 시기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막4:26)

말씀하신 씨의 단계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어도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 13:18-22에 보면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씨 뿌리는 비유로 풀이해 주셨습니다.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마 13:18-22)

  본문을 보면 말씀을 심령 밭에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곳에 씨가 뿌려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짐을 알 수 있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 돌짝이나 길가, 가시밭에 뿌리는 자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도 영적으로 잘 분별해서 심령을 기경한 후에 뿌려야 합니다. 그냥 뿌리면 무슨 말씀인지 알지 못합니다. 심령에 적셔짐이 없습니다. 어떤 설문 조사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성도들에게 설교 시간에 어떤 말씀을 들었는지 조사해 보았는데 60%의 성도들이 모르고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전하는 자도 깨끗해야 하고 듣는 자도 심령 상태가 바르게 되어 있어야 그 심령에 성령의 말씀이 차오릅니다.

  바다에 가면 바닷물이 철썩이는 모래사장이 있습니다. 해변에 가면 그 바닷물에 바지를 걷고 발을 적시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만 적시는 정도의 바다가 전부라고 볼 수 없습니다. 더 깊은 바다가 있습니다. 발만 적시는 바다에는 기껏해야 조개 정도만 건질 수 있지만 깊은 바다로 들어가면 조개 정도가 아닌 엄청난 생물과 귀한 것들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발목 단계는 깊은 사랑을 모릅니다. 발목 단계에 속해져 있는 심령은 더 깊은 은혜를 사모하셔야 됩니다.

 

무릎까지 차오른 은혜의 단계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겔 47:4)

에스겔은 생수가 무릎까지 차오름을 환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단계가 되어야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의지하겠다는 신앙의 삶의 자세가 무릎 신앙입니다. 기도는 영의 호흡입니다. 보이지 않는 성령의 근원이 기도에 있습니다. 씨앗도 싹이 나면서 뿌리도 자라듯 보이지 않는 뿌리가 생명의 근원인 것처럼 기도는 생명의 뿌리와 같습니다.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마 13:21)

  하루에 30분 이상 영의 호흡을 하는 자는 절대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저녁 9시부터 새벽 2시 까지 365일 연중무휴 철야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다 단잠을 자거나 집에서 휴식을 취할 시간에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께 나와 기도합니다.

  우리 목사님은 기도하지 않는 성도에게 절대 교회의 중요한 직분을 맡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개가 감정기분으로 일을 시작했다가 중도에서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돈이 많고 아무리 권력이 있을지라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을 리더로 세우면 교회가 종교의식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하나님 눈치 보다는 사람 눈치 때문에 기도하지 않은 자에게 큰 일을 맡겨놓고 뒤돌아서서 후회합니다.

뿌리가 깊을수록 나무는 커집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죄 때문에 기도하며 울지만 영적으로 성장하고 기도가 깊어질수룩 영혼을 보며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도 만왕의 왕이시고 인류의 구세주 이셨지만 자신의 육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구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영혼들을 구원키 위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기도의 본이 되어주셨습니다.

 

허리까지 차오른 은혜의 단계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겔 47:4)

  에스겔이 환상으로 성소의 물이 허리까지 차 오른 것을 보고 있습니다. 허리의 단계는 교회의 일을 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직분이 아무리 높고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허리 단계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생수가 차지 않으면 교회 봉사를 온전히 하지 못합니다. 대개 허리 단계까지 믿음이 올라온 성도는 무슨 일이든지 시키면 합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가지 못한 자는 중도에서 포기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교회에서 이같은 모습을 매번 깨닫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시119:9)

  영적으로 청년의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기름부음이 여기까지 차올랐기에 세상의 죄와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단계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겔 47:5)

  그러나 청년의 단계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꼭 충만한 단계까지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성소의 물이 창일하게 차오름을 보고 있습니다.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보이지 않도록 깊이 잠긴 단계입니다. 내 의식이 있어도 깊이 잠기면 물결이 흐르는 데로 흘러가게 됩니다. 충만한 단계 곧 성령이 이끄시는 단계입니다.

  이 물이 흐르는 곳은 나무들이 심히 많이 있습니다.(겔 47:7) 물이 흘러 바다로 흘러가 바다의 물이 소생합니다.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다 번성합니다. 성령의 은혜가 흐르는 곳은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그러나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겔 47:11)

  즉 물이 닿지 않는 곳을 말하는 것인데 그 땅은 죽은 땅인 소금 땅으로 변해버립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다 채워져야 하는데 채워지지 못한 자는 그 심령이 죽은 땅입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에게 유익한 것은 받고 유익하지 않는 것은 받지 않는 것은 허리의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심령 곳곳에 뼈속, 살속, 사상속까지 깊이 파고들어 채워져야 합니다. 차고 넘치는 창일한 단계까지 이르러야 생명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 (겔 47:12)

  계절과 달마다 과일의 맛이 틀립니다. 이때가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신비한 맛을 계속 맛 볼 수 있습니다. 성소의 물이 질병을 치료하는 역사, 심령을 회복하게 하며, 죽은 영혼들이 살아납니다.

영적 단계가 낮을 때에는 전도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단계가 높아지니 전도 대상자를 적어 놓고 기도만 해도 대부분의 영혼들이 기도한 대로 돌아옵니다.

  생수가 넘쳐흐르니 전국에서 영혼들이 몰려옵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는 전국에서 찾아오시고 등록하십니다. 생수의 맛을 알기 때문입니다. 2006년 12월에 가장 먼 거리인 전라남도 순천에 사시는 조경호 집사님이 등록하시었습니다. 먼거리를 열심히 다니시면서도 2달 동안 20여명이나 전도까지 하셨습니다. 교회에 창일한 은혜가 흐르니 사업하는 분들에게는 사업의 소성함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치유 받아야 할 자들, 영적으로 소생함을 입어야 할 자들도 은혜를 입습니다. 직접 손을 얹고 기도하지 않아도 예배에 흐르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질병들이 치유가 되는 간증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재 어느 영적 수준의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까?

 

김요한 목사님의 영적인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