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에스겔 강해

네 생물 (겔 1:4-25)

에반젤(복음) 2019. 7. 13. 08:49

네 생물 (겔 1:4-25)

영적적용:사역론





강해

이 시간은 '하나님의 사역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에스겔서 1장을 보면 

세 가지의 형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4-14절까지에는 네 생물의 형상, 15-21절까지는 네 

바퀴의 형상, 그리고 22-28절에는 하나님의 보좌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이 말씀들은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오늘은 그런 관점이 아닌 사역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셋도 취급하지만 그 중에 특별히 네 생물을 중심으로 본문

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네 생물은 겔10:20을 보면 그룹천사라고 했습니다.



이 그룹천사를 잘 살펴보아야 할 이유는 그 천사들은 하나님을 모시고 그 분의 뜻을 받들

어 수행하는 뛰어난 천사들로서 그들에게 귀한 사역적인 원리들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

다. 참고로 이 그룹천사는 하나님을 모시고 수행하는 천사들로 아주 귀하고 특별한 하나님

의 사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천사들 위에 좌정하시고, 이 천사들을 타고 날으

시고, 이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받드는 참으로 귀하게 쓰이는 천

사입니다. 우리가 봉사하려면 이런 사역자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대가집의 며느리가 되려

면 대가집에서 배워야 함과 같습니다.



그럼, 우리가 이 그룹천사에게서 배워야 할 사역의 원리는 무엇일까요?



1.사역의 원리는 임마누엘의 원리입니다.



4절에 "내가 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 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했습니다.

에스겔이 북방 하늘을 보니 어떤 거대한 불덩이 하나가 다가옵니다. 여기 단 쇠는 이 불덩

이의 필라멘트에 해당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킵니다(겔1:27). 그런데 본 환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소재가 신비롭습니다. 즉 생물 위 보좌에 계신 하나님이 계신가 하면, 이 

생물과 함께 하신 하나님, 그리고 이 생물 아래 바퀴 속에 계신 하나님이 나타나기 때문입

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편재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그런데 또 신기한 것은 2절을 보면 그 단쇠같은 하나님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또 나타

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한 곳에 두 가지가 존재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천사

가 하나님의 영광을 덧입었슴을 보여줍니다. 더구나 폭풍 구름 불 등은 하나님께서 임재하

실 때 수반되는 외적인 현상들입니다. 이것을 볼 때 이 네 생물로 이름하는 그룹천사에게는 

하나님이 임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주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해

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천사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듯 예수님과 사람

을 구분하기 어렵게 되어야 합니다. 마치 쇠가 불에 달아 있을 때 그것을 쇳덩이라 혹은 불

덩이라 부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연합의 비밀은 세례를 통해 허락된 것으로 이제는 

체험적인 합일치의 단계로 발전해야 합니다. 주의 일이란 주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

를 사용하셔서 자기의 일을 하시는 것이므로 임마누엘의 원리란 가장 근본적인 사역의 원리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사역을 분부하시면서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10:38에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

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구분이 쉽지 

않을 만큼 우리들도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국제 대학생선교회 회장인 빌브라이트 목사

는 '초대교인들은 마치 불덩이가 굴러 다니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쓰시

는 사역자의 모습니다.



그런데 이 임마누엘의 불덩이가 다가올 때 어떤 것을 동반하고 나타났습니까? 4절에 폭풍

과 큰 구름과 불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폭풍과 구름과 불은 하나님으로 충만한 자에게 동반

하는 능력과 말씀과 지혜와 은사 등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주의 사역을 감당하려면 이렇게 

놀라운 은사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집사를 뽑을 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

는 사람"(행6:3)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면 

주의 사역은 불가능합니다. 삼손도 머리를 잘리우고 하나님의 영이 떠나자 능력이 사라졌습

니다. 그래서 사역자는 언제나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성령의 능력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2.사역의 원리는 변화의 원리입니다.



5-10절에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그 다리는 곧고 그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마광한 구

리같이 빛나며 그 사면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행할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

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했습니다.



이 말씀은 전체적으로 볼 때 그룹천사의 모습이 사람의 형태를 지녔다는 뜻입니다. 머리가 

넷이긴 하나 사람처럼 위에 있고, 다리가 곧고 발바닥이 송아지 같으나 사람처럼 다리 자리

에 있고, 손이 넷이지만 사람처럼 날개 밑에 어께 부분에 달렸고, 다만 이 천사는 날개가 

달렸습니다. 참으로 이 천사의 모습은 특이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모습을 사역자가 반드시 입어야 할 특별한 새 인격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변화

의 원리입니다. 즉 사역하려면 머리 하나로는 부족합니다. 특수한 머리 넷은 있어야 합니다. 

즉 사람처럼 지혜롭고, 사자처럼 강하며, 독수리처럼 위의 것을 사모하여 거룩하고, 소처럼 

충성하는 기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약한 두 다리로는 안됩니다. 강하며 곧고 발

바닥이 송아지같은 네 다리가 필요합니다. 두 다리는 넘어지지만 네 다리는 어디 세워놓아

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발바닥마저 넓으니 기초로도 만점입니다. 이것은 진리에 선 백절불

굴의 강하고 견고한 믿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두 개의 차가운 손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둘로는 뒤를 돕지 못합니다. 그리고 손도 날개 속의 손이라야 따뜻합니다. 그래서 사방 네 

개의 손과 그 위의 힘있고 포근한 날개까지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도울 수 있는 능력과 뜨

거운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특수한 새 인격이 없으면 주의 일을 감당해 내지 못합니

다.



이것을 성령의 열매(갈5:22)라고 합니다. 어쩌면 슈퍼맨 같은 논리이지만 특별히 붙들어주

시는 능력을 힘입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슈퍼맨이라고 믿어서는 안됩니다. 대신에 

슈퍼맨과 같이 되도록 기도로 도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는 슈퍼맨이 될 수 없기 때문

입니다. 이 능력의 인격 없이 주의 일에 뛰어 들었다가 한없이 후회하고 낙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받고 사역을 쉬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사랑없는 모두의 책임입니다. 또 이것을 본 자녀들이 나는 죽어도 부모의 가는 길은 가지 

않겠다고 돌아서 버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충격받고 쓰러져서 폐인이 되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의 일은 하나님께서 입혀 주시는 특수한 인격이 아니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단과 최일선에서 영적으로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으로 

보호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욕을 받아도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고, 핍박을 받아도 아

무렇지도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기쁘고 즐거워야 합니다. 제자들처럼 매를 맞고 핍박을 받

아도 성령과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봉사하려면 이러한 특수한 인격으로 

덧입음을 받아야 합니다. 이 준비 없이 상처받고 낙심한 성도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상처를 

받지도 말아야 하고 또 조심하여 남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주의 일도 좋지만 먼

저 주 안에서 은혜받아 행복하게 사는 것부터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인격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겔3:7-9에 "그러나 이스라엘 족

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

이라 내가 그들의 이마를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대하도록 네 이마

를 굳게 하였으며 네 이마로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

일지라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다이아몬드와 같이 강

하고 아름다운 새 인격으로 입혀질 때 주의 사역을 비로소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변

화의 원리입니다.



3.사역의 원리는 동역의 원리입니다.



11-14절에 "그 얼굴은 이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리웠으며 신이 어느 편으로 가려면 그 생물들이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

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또 생물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

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서는 번개가 나며 그 생물의 왕래가 

번개 같이 빠르더라" 했습니다.



이 그룹천사는 다른 본문을 참고해 보면 스랍천사와 비슷하게 날개가 여섯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각각 여섯이니까 4×6=24, 모두 24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각 둘로는 몸을 가리고, 또 둘로는 서로 옆의 날개끼리 손잡고, 나머지 둘로는 날아갑니

다.



이 날개들은 하나되어 일하는 동역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하나되어 동역하려면 네 가지의 

요건이 필요합니다. 여기 날개로 몸을 가리는 것은 겸손입니다. 이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

기는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또 날개끼리 손잡는 것은 협력입니다. 서로 다른 은사를 가졌

기에 서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네 생물이 돌이키지 않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함은 일치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동역자들끼리 협력하며 아름

답게 주의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동역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생물들 사이에 번개치며 오르락 내리

락하는 불덩이가 그 해답입니다. 이 불덩이가 무엇일까요? 이 불은 하나님의 영인데 기도를 

통한 성령의 교통을 상징합니다. 즉 이렇게 하나되어 동역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한 성령

의 지도하심을 받을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왕도 두령도 없어도 수억 마리가 하나되어 날아

가는 메뚜기와 같이 한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하나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엡4:2-4에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도 하나이요 성령도 하나이니 이와같이 너

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감동을 받지 못하므로 분열됩니다. 그러나 기도하여 성령의 교통이 

있는 교회는 모든 교인들의 뜻과 소원이 하나로 통일됩니다. 이럴 때 진정한 동역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동역의 원리입니다.



4.사역의 원리는 믿음의 원리입니다.



15-21절에 네 바퀴의 형상이 있습니다.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내가 그 생물을 본즉 그 

생물 곁 땅 위에 바퀴가 있는데 그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있고 그 바퀴의 형상과 그 구조

는 넷이 한결 같은데 황옥 같고 그 형상과 구조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행할 

때에는 사방으로 향한 대로 돌이키지 않고 행하며 그 둘레는 높고 무서우며 그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며 생물이 행할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행하고 생물이 땅에서 들릴 

때에 바퀴도 들려서 어디든지 신이 가려하면 생물도 신의 가려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신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라 저들이 행하면 이들도 행하고 저

들이 그치면 이들도 그치고 저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는 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

의 신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더라"



그럼, 과연 이 바퀴는 무엇일까요? 이 바퀴는 맨 아래에 땅 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맨 위

에는 하나님의 보좌요, 그 아래는 네 생물이요, 이 생물 아래가 바퀴입니다. 하나님은 네 생

물 위에 계시니 하나님도 아니고, 이 바퀴가 네 생물의 아래에 있으니 하나님도 아닙니다. 

그리고 21절을 보면 분명히 네 생물과 바퀴는 구분되어 있으니 네 생물도 아닙니다. 그런데

도 이 바퀴 가운데 생물의 신 즉 성령이 계신다고 했고, 더군다나 이 바퀴 안에 신이 위의 

네 생물까지 통제하고 있으니 아무리 봐도 알송달송합니다. 그렇다고 생물에 하나님의 신이 

안 계신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거기에도 단쇠와 같은 영광으로 성령이 임해 계십니다. 

그런데도 아래 바퀴 안의 신의 통제를 받고 있으니 정말 이해하기 힘이 듭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의 권세를 받은 지상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이 바퀴의 환상 속에 교회

의 비밀이 다 들어 있습니다. 지상의 교회는 네 개의 바퀴 즉 사방 즉 세계적입니다. 또 황

옥과 같음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임을 보여줍니다. 또 바퀴 안에 바퀴는 교회는 이중적

임을 보여줍니다. 즉 에클레시아 교회 안에 수많은 지 교회, 혹은 제도적 교회 안에 진정한 

무형적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다 인정해야 합니다. 또 바퀴가 두려울 만큼 큰 것

처럼 교회는 사단과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또 바퀴의 둘레나 안에 

눈이 가득한 것처럼 교회는 신령한 존재이며 많은 공동체적인 회원들로 이루어졌습니다. 또 

언제나 생물과 일체가 되어 행함은 교회는 인간 만의 단체가 아님을 보여 줍니다. 또 생물

에 의해 땅의 바퀴가 들렸는데 이는 교회는 장차 재림의 날에 들려질 것을 보여줍니다. 또 

네 생물을 움직이는 운전수가 바퀴 안의 신이었는데 이것은 교회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뜻합

니다. 그리고 이 성령의 내주로 인해 생겨진 믿음이 하늘의 권능과 보좌를 움직이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는 교회의 권

세를 가리킵니다. 운전대가 아래 지상교회에 있어요. 그래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셨습

니다. 여러분에게 하늘의 권능들을 움직이는 믿음의 운전대를 맡기셨음을 기억하십시오. 마

치 어떤 작업차 운전사가 운전대에서 내려와 아래 운전대를 잡고 작업을 하는 것과 같습니

다.



이것은 바로 우리에게 사역에 있어서 믿음의 원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역사와"(살전1:3)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역사해야지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도 가만

히 계실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지상의 예루살렘 교인들이 기도하자 하

나님께서 천상의 천사들을 동원시켜 구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사역의 원리 중 귀한 믿음의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환경과 요행만을 바라지 말고 열심히 믿음으로 일하시기 바랍니다.



6.사역의 원리는 충분한 재고의 원리입니다.



18절에 "그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며" 라고 했습니다.

주의 사역에 한 개인의 눈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람의 육신의 눈은 보이지 않은 부분이 더 

많습니다. 이와같이 주의 사역에도 여러 방면의 신령한 눈들이 함께 모아져야 일을 그르치

지 않습니다. 물론 인본주의적인 눈은 배제해야 합니다. 모세의 눈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

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의 장인의 눈을 붙여 주셨습니다. 신령한 눈을 가진 분들의 조

언을 우리는 충분히 검토해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마지막. 사역의 원리는 질서와 도구의 원리입니다.



22절에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펴 있어 보기에 심히 두려우며" 

했고, 또 겔10:20에 "하나님의 아래 있던 생물이라" 했습니다.

이 그룹천사가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 아래 있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주종이 바뀌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잠30:22). 그러나 우리들이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까? 입으

로만 주라고 부르지 우리가 다 주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 주의 일한다고 성령을 부리

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도구로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아야지 성령을 부려서는 안됩니

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는 주의 뜻을 여쭈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 역사

하심에 따라서 순종해야 합니다. 내가 능력받았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부리려고 하면 성령은 크게 모독을 받고 슬퍼하시며 결국은 그 감동

이 소멸되고 맙니다. 그리고 교회의 질서에도 순복해야 합니다. 아직 영적 환경이 열리지 

않았으면 준비만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님의 도구가 될 때 나타나는 일입니다. 24절에 네 생물의 날개 소리

가 마치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도구가 되어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권위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 가지면 사람을 통해 

예수님이 나타나 설교하십니다. 그래서 가버나움 회당의 예수님처럼 권세있고 감동적인 말

씀이 사역자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또 사람이 기도하지만 예수님이 나타나 기도하십

니다. 이와같이 모든 것이 주님의 권위로 이루어집니다. 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래서 

나는 철저히 감추어지고 순복의 자세로 준비되어져야 하나님이 쓰십니다. 이것이 질서와 도

구의 원리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에스겔의 이상을 통하여 귀중한 사역의 원리들을 배웠습니다. 주님이 쓰시는 

주의 일군들이 되기를 사모하십시다. 그리고 위의 다섯 원리로 충성하십시다. 예수님께서도 

이 원리로 사역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임마누엘의 원리, 변화의 원리, 동역의 원리, 믿음

의 원리, 재고의 원리 그리고 도구와 질서의 원리를 꼭 기억하십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룹천사와 같이 저와 여러분을 귀하게 써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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