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에스겔 강해

마른 뼈 다시 살아나 에스겔 37장 1절~14절

에반젤(복음) 2019. 7. 13. 08:44



성경말씀 : 에스겔 37장 1절~14절

설교제목 : 마른 뼈 다시 살아나

설교자 :  김부겸 목사

<기도 시>

 

나는 천 개의 바람

 

/ 어느 인디언의 詩

 

 

내 무덤 앞에 서지 마세요

그리고 풀도 깍지 마세요

나는 그 곳에 없답니다

나는 그곳에 잠들어 있지 않아요

 

나는 불어대는 천 개의 바람입니다

나는 흰 눈 위에 다이아몬드의 반짝임입니다

나는 익은 곡식 위를 내려 쪼이는

태양 빛입니다

나는 당신께서 고요한 아침에 깨어나실 때에

내리는 점잖은 가을입니다

새들을 받쳐주는 날샌 하늘 자락입니다

나는 무덤 앞에 빛나는 부드러운 별빛입니다

 

내 무덤 앞에 서지 마세요

그리고 울지 마세요

나는 그 곳에 없답니다

나는 죽지 않았답니다

 

 

<부활절 이야기>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인류의 축제 날입니다. 오늘 저는 부활절의 의미, 특히 영성적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부활절 때마다 발생하는 논쟁, 예수가 부활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은 무익한 것입니다.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고, 또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무익한 것이지요. 부활절의 영성적 의미라면, 예수 부활 이야기 속에 담겨져 있는 더 큰 정신, 깊고 오묘한 진실, 아름다운 삶의 철학 이야기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逆) 토착화 이야기>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에 앞서서 먼저 기독교 복음의 토착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금은 조금 뜸해졌습니다만,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토착화 신학’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기독교 복음이 우리 한국의 풍토에 맞게 ‘변형’(?)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지요. 즉 이스라엘에서 출발한 기독교 복음이 유럽이나 미국의 지역적 풍토에 맞게 ‘변형’되었듯이, 우리 한국민족의 정서와 풍토에 맞게 ‘변형’되어야 한다는 것이 토착화 신학의 기본 이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복음이 한국적 풍토에 맞게 ‘변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국적인 정신들이 계속 그 정체성을 유지한 채로 기독교 복음을 ‘참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토착화가 아니라 역(逆) 토착화지요. 어쩌면 역토착화라는 말도 적절하지는 않고요, 아마 한국적 정신의 지경확대, 한국인이 체득하고 있는 보편적 진리의 그 진폭확대, 기독교 복음을 통해서 더 갈고 닦아지는 ‘한국적 진리’의 수련 …… 등등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유교적 정서라든가 불가의 진리, 특히 동학의 메시지 등에 대해서 별다른 충돌이 없습니다. 현재 우리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종교적 틀이 그런 ‘유교와 불교, 동학’ 등과 충돌을 하고 있지만, 미래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오늘 부활절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께서 권능으로 나를 사로잡으셨다. 주의 영이 나를 데리고 나가서, 골짜기의 한가운데 나를 내려 놓으셨다. 그런데 그 곳에는 뼈들이 가득히 있었다. 그가 나를 데리고 그 뼈들이 널려 있는 사방으로 다니게 하셨다. 그 골짜기의 바닥에 뼈가 대단히 많았다. 보니, 그것들은 아주 말라 있었다. 그가 내게 물으셨다. "사람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내가 대답하였다. "주 하나님, 주께서는 아십니다." 그가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뼈들에게 대언하여라. 너는 그것들에게 전하여라. '너희 마른 뼈들아, 너희는 나 주의 말을 들어라. 나 주 하나님이 이 뼈들에게 말한다. 내가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 내가 너희에게 힘줄이 뻗치게 하고, 또 너희에게 살을 입히고, 또 너희를 살갗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인 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명을 받은 대로 대언하였다. 내가 대언을 할 때에 무슨 소리가 났다. 보니, 그것은 뼈들이 서로 이어지는 요란한 소리였다. 내가 바라보고 있으니, 그 뼈들 위에 힘줄이 뻗치고, 살이 오르고, 살 위로 살갗이 덮였다. 그러나 그들 속에 생기가 없었다. 그 때에 그가 내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생기에게 대언하여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렇게 일러라. '나 주 하나님이 너에게 말한다. 너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불어와서 이 살해당한 사람들에게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그래서 내가 명을 받은 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 속으로 들어갔고, 그래서 그들이 곧 살아나 제 발로 일어나서 서는데, 엄청나게 큰 군대였다. 그 때에 그가 내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이 뼈들이 바로 이스라엘 온 족속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뼈가 말랐고, 우리의 희망도 사라졌으니, 우리는 망했다' 한다.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무덤 속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고,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겠다. 내 백성아, 내가 너희의 무덤을 열고 그 무덤 속에서 너희를 이끌어 낼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인 줄 알 것이다. 내가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서 너희가 살 수 있게 하고, 너희를 너희의 땅에 데려다가 놓겠으니,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나 주가 말하고 그대로 이룬 줄을 알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에스겔 37:1~14)】


  오늘 성경 이야기는 멸망의 위기 앞에 선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에스겔 선지자가 선포한 부활(復活)의 메시지입니다. 즉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절의 핵심적인 메시지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적 정신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활하는 것입니다.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부활하게 하는 것이며, 마른 뼈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아름답고 거룩한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절의 핵심적 메시지입니다.

 

  <메말라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오늘 이 시대에서 메말라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이 부활절에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사명이 있다면, 그 ‘메말라 있는 것들’을 찾아서 그것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일입니다. 그게 부활절을 맞는 우리의 아름다운 사명입니다.

 

첫째 지금 이 시대에서 메말라 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메말라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각박해 졌습니다. 지쳐 있습니다. 부드러운 마음을 잃어버린 채, 살벌해져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송곳처럼 뾰족해져 있습니다.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서 서로서로를 찌르는 인간의 슬픈 자화상, 그게 우리 시대의 인간의 얼굴입니다. 그 메마른 인간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야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게 부활절을 맞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그 방법은 여러 가지이겠지요!

 

 둘째 지금 이 시대에서 메말라 있는 것은 ‘하늘의 정신’(철학, 사상, 영성)입니다. 하늘의 아들 딸인 우리들이 그 ‘하늘의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오로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늘로부터 왔으므로 하늘로 돌아갈 존재인 우리들이 그 하늘의 정신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게 우리 시대 비극의 큰 원인입니다.


  우리가 만약 그 하늘의 정신을 메마르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지구마을에서 좀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서로를 미워하거나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일 없이, 서로서로 도우면서, 서로서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면서 넉넉한 마음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메마르게 내팽개쳐 놓은 것은 ‘하늘의 정신’입니다.


  셋째 지금 이 시대에서 메말라 있는 것은 ‘땅의 신비’입니다. 지구촌의 땅에서 생멸(生滅)하는 모든 것들은 신비 그 자체입니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 하나, 바람 속에 유영하는 먼지 하나, 그리고 땅 바닥에 기어 다니는 벌레 하나하나 모두는 ‘신비로움 그 자체’입니다. 저 산과 바다, 저 강과 나무, 저 빌딩과 빌라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들은 모두 존귀하고 신비로운 인격의 신비체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땅의 신비체들을 학대하고 있고, 무시하고 있고, 살해하고 있는, 저주하고 있습니다. 우리 현대 인류는 땅의 신비를 메마르게 방치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대 인류를 불행에 빠트리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마른 뼈 다시 살아나’라고 잡아보았습니다. 부활절을 맞는 우리에게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네 삶에서 ‘메말라 있는 소중한 것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일일 것입니다.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잘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이제는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