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의 파송(派送),
겔3:3-27절, 355.372.534장.(3)
2장에서 에스겔은 이상 가운데서 선지자로 부름을 받고(2:1-7절), 또한 두루마리 책을 받아 먹음으로써 선지자의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2:8-3:3절), 이제 본문은 선지자로서 에스겔이 감당할 사명이 어떤 것인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이 감당할 사명의 대상. 장소. 책임. 그리고 원칙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1.사명의 대상은 패역한 족속, 이스라엘입니다.(4-11절), 1)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대상은 그와 말이 같은 자기 동족입니다.(4-6절), 그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족입니다. 그들은 다른 어느 민족보다도 에스겔이 전하는 메시지를 잘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고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 없었습니다. 2)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했습니다.(7절), 여기서 굳은 과 강퍅함은,
"강하고 딱딱하며 뻔뻔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3)사명자(使命者)의 자세(姿勢)입니다.(8-11절), (1)두려워 말아야 합니다.(8-9절), (2)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10절),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정확한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힘있고 설득력 있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3)하나님의 말씀만 전해야 합니다.(11절), 사역자가 받기 쉬운 유혹 가운데 하나는 사명을 맡기신 분보다 사역의 대상을 먼저 의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당장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고. 사역자들은 그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위험을 잘 아신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어떠한 형편이든지 오직 보내신 자,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합니다. -백성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이 섞인 말을 전합니다.
2.사명의 장소는 포로지인. 델아빕입니다.(12-15절), 1)에스겔은 신비하고 놀라운 이상중에 서 선지자로 부름받고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12-15절), 그리고 계속되는 이상 가운데서 그는 주의 신(성령)의 인도로 이제 사명을 감당할 사역의 장소를 직접 소개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곳으로옮겨가는데 있어서 그는 근심과 분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에스겔이 왜 근심하고 분노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포로로 잡혀왔음에도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죄악을 일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코자 에스겔을 보내셨습니다. 2)의미 있는 침묵의 기간입니다.(15절), 에스겔은 이상중에 소개받은 사명의 장소. 자신의 사역지인 델아빕으로 갔고 그곳에서 민답히 7일을 보냈습니다. 여기서 "민답히"(마쉬밈) 라는 말은 어떤 일에 "놀라고 당황하고 압도된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마도 에스겔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인해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에 대한 신비감과 두려움입니다. -자신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사명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입니다. -유대인 포로민들의 비참한 생활상과 그들의 죄악에 대한 근심과 분노입니다. 에스겔은 이같은 사실로 인해 깊은 침묵 가운데서 민답히 칠일을 보냈는데, 결과적으로 이 기간은 하나님의 이상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무엇보다 앞으로 감당해야 할 사역에 대해 준비하는 기간이 되었습니다. 에스겔의 선지 사역의 시작이 말이 아니라 침묵과 묵상으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3.사명의 책임은 파수꾼에 비유됩니다.(16-21절), 1)에스겔은 파수꾼으로 세워졌습니다.(17), 파수꾼은 성벽 위나 산꼭대기 혹은 특별히 고안된 망대 위에 배치되어 적군의 동태를 면밀하게 응시하고 살피는 자입니다. 이렇게 파수꾼을 세움으로써 파수꾼이 적의 갑작스러운 공격이나 어떤 움직임을 파악하여 사전에 충분히 대비할 수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파수꾼이 자신의 책임을 다할 때 성밖의 사람들은 성안으로 피신할 수 있고 성문을 보호함으로써 성을 수비(守備)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파수꾼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성읍 안팎의 사람들은 적의 공격 앞에 무방비 상태가 되어 생명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파수꾼은 성읍 주민들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사실에 기초하여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혼을 책임지는 영적인 파수꾼으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2)세상 사람에게 고하여 깨우쳐야 합니다.(18-19절),
영적인 파수꾼 곧 선지자로서 에스겔은 그가 의인이든 악인이든 간에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고 깨우쳐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어떤 편견이나 차별도 있을 수 없었는데 모두가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똑같은 영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1)깨우치지 않은 경우: 파수꾼이 임박한 위험이나 공격을 알고도 나팔을 불어 알리지 않을 경우. 사람들은 갑자기 적군의 공격을 받아 죽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2)깨우친 경우: 파수꾼이 힘써 알리고 깨우쳤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파수꾼의 말을 듣지 않을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라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지와 불순종으로 인해 당연히 죽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파수꾼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임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파수꾼에게 중요한 것은 "책임을 다했느냐"하는 것이지 "일의 결과가 어떠했느냐"가 아닙니다.
파수꾼은 알리고 깨우치는 자일뿐 건지고 살리는 구원자는 아닌 것입니다. 주님의 일꾼들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줍니다. "사역자는 결과에 신경을 쓰지 말고 오직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라."입니다. 3)파수꾼의 깨우치는 소리는 악인에게는 물론 의인에게도 외쳐져야 했습니다.(20-21절), (1)깨우치지 않은 경우: 의인이 타락하면 그는 과거의 의로움에 관계없이 현재 타락한 상태에 있는 자신의 죄로 인해 죽을 것입니다.
(2)깨우친 경우: 악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파수꾼의 깨우침을 받고도 회개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죄로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힘써 깨우쳐 줌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한 파수꾼은 그의 피값에 대한 책임을 면할 것입니다.
4.사명의 원칙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따라야 합니다.(22-27절), 1)일어나 들로 나갔습니다.
(22-23절), 주님의 일꾼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지시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2)집에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24-25절),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골짜기에서 에스겔은 하나님께로부터 몇가지 신체적인 속박의 행위에 대하여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중 첫번째 속박은 집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닫고 칩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3)두번째 신체적인 속박은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어 벙어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26절)
물론 그러한 현상은 한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는 벙어리가 되었습니까? 죄악을 책망해야할 선지자가 벙어리가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은 분명히 하나의 징표로서 주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곧 패역한 족속에 대한 뚜렷한 징표로주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화가 날 때 오히려 분노를 터뜨려 말하기보다 입을 꾹 다물고 침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지금 에스겔이 벙어리가 된 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을 반영한 것으로서 타락하고 패역한 백성들에 대하여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하면 좋을지 몰라 입을 봉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파수꾼의 사명을 맡은 자로서 에스겔은 백성들을 향하여 외쳐야 했습니다.(27절) 이같은 사역을 위해서 에스겔의 입은 열려야 했습니다. 어느 때에 에스겔이 입을 열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전해야하고.
하나님의 충실한 대변자가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하면서 전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권위나 이름으로 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권위와 그 이름으로 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은 사역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명심해야 합니다. 자신은 단지 하나님의 도구이며 그분의 종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대상에 대하여 관심이나 사랑이 없을 때 대체로 그와 말하지 않고.
또 말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합니다. 더욱이 관계가 깨어져 교제 자체를 끊게되면 만날 생각조차 갖지 않게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언약을 깨뜨리고 자신을 배반한 그 백성에 대해서 언제까지 침묵하시든지 혹은 아예 관계를 끊고 잊으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먼저 언약을 깨뜨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적인 잘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잠시 침묵하신 후에 에스겔을 통해 그들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 백성을 향한 그분의 사랑의 표현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들이 살 소망과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같은 사랑이 강권하기에 모든 주님의 일꾼들은 같은 사랑으로 세상을 향해 입을 열어야 할 것입니다. 롬8:38-39절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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