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에스겔 강해

[강해] 에스겔의 소명(召命).

에반젤(복음) 2019. 7. 12. 12:18



에스겔의 소명(召命).
겔2:1-3:3절, 133.138.263장.(2)
본문은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상이 계속되는 부분으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일으켜 세워 선지자로 부르시고 그에게 두루마리 책을 먹임으로써 선지자의 사명을 부여하는 장면입니다.
1.에스겔이 하나님께 부름받습니다.(1-7절), 이상 중에 나타난 지극히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영광앞에 엎드린 에스겔에게 보좌에 앉으신 분(하나님)으로부터 마침내 부르심의 소명이 임했습니다. 1)인자로 부름받습니다.(1절), 인자(벤 아담) 이 호칭은 본서에서 계속 사용되는 말로 무려 93번이나 나타납니다.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를 칭할 때 사용되었기 때문에 아주 익숙한 호칭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이 말은 메시야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여기서는 말 그대로 "사람의 아들" 즉 "인생" 또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은 다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뚜렷이 구별되는 사람됨의 속성입니다. -무능하고 연약하며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존재 혹은 그러한 상태입니다. 에스겔은 이처럼 인자였고 또 인자로 부름받았습니다.

2)신의 능력으로 부름받습니다.(2절), 에스겔은 이상 가운데서 보여진 하나님의 지극한 영광앞에 엎드려 일어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낱 인자에 불과한 에스겔을 일으켜 세우는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그분은 하나님의 신, 곧 성령입니다. 이 신은 1:20-21절에서 생물과 바퀴에게 역사한 바로 그 신으로서 이제 에스겔에게 역사하여서 그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3)보내기 위해 부름받습니다.(3-5절), 에스겔이 이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극한 영광을 접했을 때, 변화산상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마17:4절), 아마도 그는 우울한 현실을 잊고 그 상태로 계속 남아 있기를 원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것은 단순히 에스겔 개인의 영적 풍요를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통해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일꾼으로 쓰시기 위해부르신 것입니다. 본문에서 "내가 너를 보내노라"는 말이 두 번씩이나 언급되고 있습니다. (1)가야할 대상입니다.(3-4절), 누구에게 가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이 가야 할 대상을 지시해 주었습니다. -패역한백성: 은혜를 배반하고 말씀을 거역한자들입니다. -나를 배반한 자: "패역함"과 같은 단어로서 두 번 강조되는 것입니다. -뻔뻔함: 감수성이 없고 딱딱하고 굳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강퍅한 자: 강하고 맹렬하며 완고함입니다. 에스겔이 가야 할 대상은 바로 이같은 특성을 지닌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2)가야할 이유입니다.(5절), 왜 가야합니까? 비록 언약 당사자 가운데 한쪽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파기했을 지라도. 다른 한쪽인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충실하게 지키신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4)부름받은 자의 자세입니다.(6-7절), (1)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6), 에스겔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겪어야 할 어려움과 고통이 세가지로, 가시와 찔레와 전갈에 비유되었습니다. 둘은 식물이고 하나는 동물인데. 모두 사람을 해치는 것들입니다. (2)두려워 말아야 합니다.(6절), 가시와 찔레와 전갈 가운데 처할 사역자가 반드시 갖추어야할 자세 가운데 하나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사역자에게는 필수적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거듭해서,
"두려워 말라"고 격려해 주십니다.(3)보낸 자의 말로 고해야 합니다.(7절), 하나님께서는"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가시와 찔레와 전갈이 위협을 받으면, 사람은 누구든지 세상과 타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당시 바벨론 포로들의 관심과 소망은 유다의 회복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인 예루살렘만은 적군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끝까지 안전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러한 소망과 기쁨의 메시지만을 기대했습니다. 때문에 실제로 그러한 메시지를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말일 뿐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악에 대하여 회개하지도 않고 심지어 죄악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엄중한 심판이었습니다.
2.에스겔이 하나님께 사명을 부여받습니다.(2:8-3:3절), 1)사명자의 세가지 조건입니다.(8절), 첫째."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들어야 합니다. 먼저 자신들이 듣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들으라고 하면 위선자이며. 들은 것 없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 거짓말쟁이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들어야 합니다. 둘째."그 패역한 족속같이 패역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패역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거역하거나 불순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먹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두루마리)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말씀을 먹어서 그 말씀이 자신의 살과 뼈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능력있게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먹지 못한 자는 절대로 말씀을 전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먹지 않고는 일할 수없기 때문입니다. 2)에스겔이 먹어여 할 것입니다.(9-10절), 첫째. 그것은 보좌에 읹은 (하나님)손으로부터 왔습니다.(1:26절), 이것은 두루마리 책의 출저 가 하나님임을 의미합니다. 둘째. 두루마리에는 안팎에 글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두루마리 책의 글씨는 세로로 스였고. 한 면에만 기록됩니다. 여기에서 처럼 두루마리 양편에 모두 기록된 것은 아주 드문 일인데. 아마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씀이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는 듣지 못했다"혹은 "얼핏 들어서 기억할 수 없다"라고 변명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변자인 에스겔을 통해 그처럼 많은 말로 거듭거듭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호8:12절), 또한 이것은 에스겔이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셋째. 두루마리에 기록된 글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의사역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먹고, 먹은 대로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없고 원하는 것을 전해서도 안됩니다. 3)에스겔이 먹은 것입니다.(3:1-3절), (1)먹어야 하는 이유입니다.(3:1절),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2)먹은 것 의 맛입니다.(2-3절),

두루마리 책의 내용은 2:10절에 기록된 대로.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었습니다. 그것을 맛으로 표현한다면 "쓸개처럼 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본문에서 그것을 받아먹은 에스겔은 "꿀처럼 달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마도 그 단맛은 두루마리의 내용(그것은 심판임)에서 비롯된 것이 아이라. 그것의 근원(그것을 주신분은 하나님임)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그것은 신판의 말씀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을 자를 살리시고 갇힌 자를 자유롭게 하며 병든 자를 치료하는 생명과 능력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의 본래 맛은 꿀처럼 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생명력 넘치는 말씀의 능력은 그 말씀을 체험하여 맛본 자들만이 압니다.
-자유케 합니다. 시119:45절에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모며, 요8: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지혜롭게 합니다. 시119:98-100절에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증거를 묵상 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거듭나게 합니다. 벧전1;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치료합니다. 시107:20절에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을 낳습니다. 롬10: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평안을 주십니다. 시119:165절에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믿음으로 나를 이기고 세상을 넉넉히 이기시는 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