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에스겔 강해

상징을 통한 교훈들

에반젤(복음) 2019. 7. 12. 12:15



상징을 통한 교훈들.
겔4:1-5:4절, 138.210.365장.(4)
지금까지 에스겔은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사명을 부여받음으로써 선지자로서 일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1-3장), 이제 에스겔은 이스라엘에 대한 영적인 파수꾼으로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외쳐야 하는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했습니다. 본문은 첫 번째 사역으로서, 예루살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네 가지 상징적인 행위를 통하여 예언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1.포위당할 예루살렘입니다.(1-3절),
1)에스겔이 보여준 첫 번째 상징적인 해위입니다.(1-3절), (1)박석위에 예루살렘 성읍을 그립니다. 여기서 박석은 진흙을 이겨서 만든 일종의 납작한 벽돌입니다. 고대에 바벨론 지방에서는 이것을 집을 짓는데 사용했을 뿐아니라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에도 사용했습니다.
(2)에스겔은 그려진 벽돌을 땅위에 놓은 다음, 그 주변에 성읍을 함락시킬 때 사용되는 여러

공격 도구를 에워싸는 형태로 배치하였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고대 전쟁의 여러 무기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운제: 바퀴가 달린 높은 망대 같은 것으로. 군사들은 이것을 타고 성으로 다가가 성을 향하여 활을 쏘고 돌이나 불덩어리를 던졌습니다. -토둔: 성의 높이와 엇비슷하게 흙으로 비스듬히 쌓아올린 방축입니다. 군사들은 이것을 이용해서 성안을 정탐하거나 혹은 망대나,
공성퇴를 밀어올려 공격했습니다. -진: 군사들이 거주하는 야영 막사입니다. -공성퇴: 성을 공격하는 직접적인 무기로서. 긴 기둥 같은 것의 끝에 사슬로 쇳덩어리를 달아 이것을 앞뒤로 흔들어 성벽을 때려 부수었습니다. (3)에스겔은 전철을 가져다가 성읍. 예루살렘 성읍이 그려진 벽돌 주변에 세웠습니다.(3), 따라서 예루살렘 성읍은 철로 포위당한 형태를 띠었습니다.

여기서 전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빵이나 과자를 굽는데 사용한 "넓적하고 얇은 철판"을 가리킵니다. 2)그 의미입니다.(1-3절), -백성들은 박석 위에 그려진 그림이 예루살렘을 지시하는 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장난감 전쟁 놀이와 같은 공격적인 도구의 배치는 실상 예루살렘 성읍에 대한 적군의 포위 공격이 아주 적대적이고 강력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전철, 즉 넓적한 얇은 철판이지만, 적군의 강력한 공격을 뚫고 도망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그 철판은 예루살렘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강력한 죄의 장벽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2.포로(捕虜) 기간(其間)입니다.(4-8절), 에스겔이 보여준 두 번째 상징적 행위는 포로 기간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1)상징적인 행위들입니다.(4-8절), (1)에스겔은 390일 동안 왼쪽으로만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에스겔이 그의 머리를 예루살렘 쪽으로 향하고 왼쪽으로 누우면 그는 북쪽의 이스라엘을 바라볼 수있었습니다.(단6:1절), (2)우편으로 40일을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6절), (3)팔을 벗어메고 예언합니다.(7절), (4)줄로 몸을 동이고 누워있습니다.(8절),
2)그 의미입니다.(4-8절), -390일과 40일은 각각 북왕국 이스라엘 남왕국 유다가 담당할 죄악에 대한 형벌의 날 수로서 여기서 1일은 일년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390년 동안 죄악에 대한 형벌을 당해야 했고. 유다는 40년 동안 형벌을 당해야 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은 단 한명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반면에 남왕국 유다에는 하나님의 뜻을 좇은 선한 왕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북쪽의 이스라엘이 담당한 죄악의 형벌 기간인 390년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에 의한 왕국의 분열에서부터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할 때까지 기간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주전930-538년경), 사실 북왕국 이스라엘은 분열 당시부터 단과 벧엘에 우상의 제단을 세워 심각한 죄악을 범했는데(왕상12:25-33절),
그때부터 이미 그들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징벌의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쪽의 유다가 담당할 죄악의 형벌 기간인 40년은 예루살렘의 함락에서부터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주전 586-538년경). -벽돌위에 그려진 예루살렘을 향하여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누워있거나 예언한 행위는 꼭 하고야 말겠다는 적극적인 열심과 의지.

그리고 대상에 대한 심각한 위협과 도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움직일 수 없도록 몸을 동여맨 행위는 변할 수 없는 "예언의 확고 부동함"을 의미합니다.

3.포위될 때의 비참한 상황입니다.(9-17절), 1)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세 번째 상징적인 행동을 연출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9-15절), (1)여러 곡물을 섞은 혼합식을 합니다.(9-13절), -밀. 보리. 콩. 팥. 조 귀리를 한데 섞어 떡(둥근 빵조각)을 만듦니다. -그렇게 만든 떡을 저울로 달아서 이십 세겔식만 하루 한끼로 먹습니다.(한 세겔은 대략 11.4g 이므로. 20세겔은 230g 정도임).
-그 떡을 먹을 때에도 물도 역시 저울로 달아 1/6힌 만큼만 매끼마다 마십니다. -그 떡을 만들 때에 인분으로 땔감을 삼습니다. (2)인분 대신에 쇠똥으로 대신 땔감을 삽습니다.(14-15절), 지금까지 에스겔은 하나님의 특이한 명령을 받고서도 묵묵히 순종했지만 본문의 명령에 대해서는 자신도 모르게 "오호라. 주 여호와여 !"하면서 탄식의 말을 토로했습니다. 왜 그러렇습니까?
여기에서 에스겔이 지금까지 제사장이 되기 위해 엄격한 교육을 받아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2)그 의미입니다.(16-17절), -식량이 핍절할 것임. -물이 핍절할 것임. -연료가 핍절할 것임. -안정이 없을 것임. -긍지가 상실될 것입니다.
4.포위당한 결과입니다.(5:1-4절), 1)상징적인 행위들입니다.(1-4절), (1)날카로운 칼로 머리털 과 수염을 깎습니다. (2)깎은 머리털과 수염을 삼등분합니다. (3)1/3씩 따로 처리합니다. (4)땅에 흩어진 터럭을 조금 주워 옷자락에 쌉니다. (5)옷자락에 털을 조금 꺼내 불 속에 던집니다. 이것으로써 기이한 행동은 모두 끝났고 곧이어 에스겔은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징적인 행위와 관련지어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2)그 의미입니다.(1-4절), 에스겔의 이같은 행위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을 단지 구경거리로 만 보지 않고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예루살렘과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에스겔의 행위를 주목하여 본 자들은 에스겔의 행위 속에 담겨 있는 의미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행동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날카로운 칼: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쓰임받은 바벨론 군대입니다.
-깎인 에스겔의 머리텅과 수염: 예루살렘 성읍의 주민들. 넓은 의미로는.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불에 살라진 1/3의 터럭: 성이 함락될 때 불살라질 시체들, 이들은 성읍이 포위 공격당하고 있을 때 굶주림이나 전염병으로 죽을 자들로 성이 함락되고 불탈 때 그 시체들도 함께 불에 태워질 것입니다. -칼로 침을 당한 1/3의 터럭: 성이 함락될 때 바벨론 군사들의 칼에 의해 죽임을 당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바람에 흩어진 1/3의 터럭: 바벨론

군대에 붙잡혀 여러 곳으로 포로되어 끌려갈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끌려간 그곳에서도 계속적인 칼의 위협을 당합니다. -에스겔의 옷자락에 싸인 소량의 터럭: 흩어져 포로되어 간 땅에서 살아남을 사람들입니다. -옷자락에서 나와 다시 불살라진 터럭들; 흩어져 포로되어 간 땅에서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죽을 사람들입니다. 이같은 해석에 근거하면, 네번째 상징적인 해위의 메시지는. 예루살렘 성과 그 주민들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입니다.

다시 말해 무섭고 철저한 심판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의 행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같은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해야 했습니다. 유대인 사회에서 머리와 수염을 깎는 것은 애통과 회개의 표시였습니다.(욥1:20. 렘48:37, 겔7:18절), 그렇다면 머리와 수염을 깎아야 할 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바로 자신들의 죄악을 슬퍼하고 회개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죄악중에 있는 모든 자들입니다. 먼저 자신을 위해 울어야합니다.
자신의 죄악에 대하여 애통해 하며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임박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에스겔의 상징적인 행위는 심판 전에 행해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이기도합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마지막 심판을 앞두고 있는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여러 통로를 통하여 회개의 메시지를 전해 주십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에 귀기울이십시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돌이키십시오 때가 지나면 파멸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은 왜임합니까? 그것의 근본적인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이유는 그 죄를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회개가 있는 곳에 파멸의 심판은 없습니다. 요일1: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