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 1
IV. 루터의 사상
1. 오직 성경으로
루터에 의하면 기독교인에 대한 최고이며 최종의 권위는 단연 성경이다.
교회의 참된 권위는 번잡스러운 스콜라 신학이나,
성유물, 성자 숭배에서 나오지 않는다.
또한 로마 교황이나 교회 회의가 교회의 최종 권위는 더욱 아니다.
왜냐하면 교황이나 교회 회의도 인간들의 모임이기에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류 없이 교회의 성토를 지도할 유일한 원천은 성경 뿐인 것이다.
루터가 "오직 성경"이라 말할 때 다음과 같은 의미가
가미되어 있음도 주의깊게 보아야 한다.
첫째, 성경 저자들의 저술사항의 특징
(율법, 역사, 기도, 시가, 예언 등과 같은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의 커다란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이 통일성은 다름이 아닌 성경 전체가 오직 그리스도에게 정향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성경이 그리스도에게만 정향되어졌다고 믿을 수 있는가?
루터는 "성경이 스스로 자신을 해석자"(Scriptura sacra sui ipsius interpres)로
"성경에는 주님이시며 왕이신 그리스도"(Christus Dominusac Rex Scripturae)만을
관계시킨다고 한다.
이러한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 해석은 성경 각부분에 대한 신학적 비판이 허용되었고
"성경은 자기 자신의 비판가"(Scriptura sacra sui ipsius critica)가 되어
성경 안에서도 참된 성경이라는 가치 구별이 생기고 말았다.
루터는 말한다:
"당신은 지금 당장 모든 책들을 구별하고 어느 책이 가장 좋은 책인가를
결정할 입장에 놓여 있다.
모든 책들 가운데서 참된 핵과 정수, 제일 칫째로 꼽혀져야 할 책들은
요한복음과 성 바울의 서신들, 특히 로마서 그리고 성 베드로의 첫 번째 서신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책들을 먼저 그리고 매우 자주 읽는 것이 좋고,
매일 성경 통독을 통해 자신의 일용학 양식처럼 친숙해지는 것이 좋다.
당신은 이 책들에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이적들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들을
많이 찾아볼 수 없고, 어떻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죄와 죽음과 음부를 정복하며
생명과 의와 구원을 주는지에 관한 뛰어난 설명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요약해서 말한다면 요한복음과 요한일서, 바울 서신서들, 특히 로마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베드로전서는 그리스도를 당신에게 보여주는 책들이다.
그 책들은 당신이 그밖의 다른 책이나 다른 가르침을 듣거나 보지 않더라도
당신의 구원을 위해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당신에게 가르쳐 준다."
루터의 "오직 성경"이란 말이 지금까지 꾸준히 지속되어 오던
교회사의 전통을 모두 부정하는 말이 결코 아님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루터는 성경에 직접적이고 분명한 가르침이 없는 경우에는
교회의 전통을 따르고자 했다.
유아세례가 그 좋은 예가 된다.
루터는 유아세례에 관한 성경의 명백한 규정을 도저히 찾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아세례의 보존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는 "어린이의 복음"에서 그리스도가 어린 아이들을 자기에게 오게 할 정도로
자상한 모습을 보여주셨음을 근거로하여 유아세례를 부정한 이유가 없다고 했다.
또한 루터는 예수님의 세례명령(마28: 19)과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전가족 동시세례에서 유아세례의 원형을 되았다.
이상과 같이 루터는 성경에 반하지 아니한 교회사의
전통, 관습, 교리에 대해서는 오히려 적극적이며 또한 매우 관용적이었다.
2. 오직 믿음과 은혜로
루터에 의하면
"오직 믿음과 은혜"라는 말의 뜻은 사람이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중세교회의 성례전에 기초한 죄사함, 행위구원,
면죄부에 의한 죄의 경감이나 구원, 사제를 통한 죄의 고백을 하기 위한
고백성사와 같은 무겁고 부담스러운 과정을 단숨에 제거해 버린
인류역사의 대 자유헌장과 같은 것이다.
누가 뭐라해도 "오직 믿음과 은혜"의 헌장을 선포한 루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위대한 인물이다.
"오직 믿음"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그 조건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결코 율법, 할례, 희생제사, 인간의 선행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속주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이 구원은 은혜로, 값없이 이루어진다.(롬 3:24f).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하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으며,
우리는 하나님께 아무 것도 드리지 않고, 단지 우리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을 받아들이므로 구원을 경험한다.
그리서 (이 의는) 믿음의 의.... 수동적 의라고 할 수 있다.
수동적인 의란 지금까지 지었던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없어진 것이 아니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가 죄를 덮어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우리의 책임으로 돌리시지 않으심을 말한다.
그래서 루터는 우리 인간을 "죄인이자 의인이라" 부르며
그리스도를 통해 의가 전가(inputatjon, not impartation) 되었다고 한다.
의의 전가는 다른 말로 법정칭의라고도 할 수 있는데
법정에서 실제로 죄가 있는 자에게 죄가 없다고 판결을 내릴 때
죄인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3. 십자가의 신학
"오직 믿음과 은혜"라는 루터신학을 잘못 이해하면
그리스도인의 선한행위는 전혀 불필요한 것으로 보여지기 쉽다.
왜냐하면 구원을 이루는 것은 오직 믿음과 은혜이니 신자는
선행과 전혀 관계없이 천국행 입장권을 이미 받았다는 억지를 쓸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루터 사상을 터무니없이 왜곡시킬 뿐이다.
루터는 결코 선한 행위 그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여기 증거가 있으니 1518년 하이델 베르그 논쟁에서 루터는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과 십자가의 신착 (Theological crucis)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영광의 신학이 인간을 윤리적 행적과 율법의 성취로써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한 행위자로서 인도하지만
십자가의 신학은 인간이 고난과 수난에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신자는 이제 그 자신이 무엇인가를 행하려는 대신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멸절시키시고, 자신 안에서 일하시도록
자신을 하나님의 이끄심에 맡긴다는 의미이다.
루터에게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진 십자가는 "하나님의 실재성의,그의 은총의,그의 구원의...
그리스도의 교회의 올바른 인식을 위한 척도를 제공한다.
또한 십자가는 이러한 실재성들이 전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숨어계심이다.
이 십자가는 외형적으로 비굴과 무력, 불행과 재앙, 그기고 처참한 곤경을 말해준다.
그래서 세상적인 체험과 이성은 십자가를 증오하고 경멸한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멸시와 천대 때로는 가련함으로 동정을 받을만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십자가에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담겨져있다.
이 비밀은 무엇인가?
세상 철학이나 이성 그리고 경험세계가 설명할 수 없고
오직 신앙의 시각에서 알려지고 이해되어지는 비밀이다.
멸시,저주,무력,절망,재앙과 같은 부정과 모순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에서 죄인의 몸으로 고통받는 하나님을 발견하였다.
이 새로운 발견 위에서 루터는 십자가의 시련속에서 보여주시는
한없는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과 은총에 감격하였다.
참으로 놀랍고 깊은 진리가 여기 있으니 십자가의
"허약함 속에서 강한 능력이 있고 비굴함 속에서 영광의 면류관이 있고,
죽음속에서 참 생명력 있는 삶을 창조한다는 사실,
바로 이 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나타난다.
루터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신학과 하나님의 신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신학을 통해 성도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릴 수 있다.
십자가를 마음을 열어 영접한 성도의 전 실존은 이제 그 방향이 달라진다.
행위에 기초한 교만이나 의로움이 소멸되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으로 체험된다.
한량없이 은혜로우시고 사랑스러운 하나님이 체험된다.
매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를 은혜로 즐겁게 질 수 있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비굴하고 초라하게 보이는
저주받은 이 십자가를 통해 나날이 창조적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하여 선하고 착하고 아름다운 행위가 십자가를 통해 신자의 삶속에서 분출된다.
이런 의미에서 선한 행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십자가를 지는 성도의 자연발생적 사건이 된다.
4. 만인제사장 주의
루터에게는 세례받은 모든 성도가 전부 제사장이다.
카톨릭 교회의 사제의 허락이나 동의가 없어도 성도는 스스로 성경을 볼 수 있고
마치 거울을보는 것처럼 성경을 통해 자기 자신의 삶의 지침을 비추어 볼 수 있다.
또한 사제나 카톨릭 교회의 성례전의 도움 없이
자기 스스로의 기도를 통해 단독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교회의 직분은 불필요한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성경은 주께서 "혹은 사도고,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엡4:1) 그리고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1-2)고 분명히 언급했는데
이 말씀들과 만인제사장주의와는 상치되는 것이 아닌가?
결코 그렇지 않다.
루터에게 교회의 직분은 만인제사장 주의와 조금도 상치되지 않는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을 위하여
말씀과 성례전에 봉사할 특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따라서 직분은 하나님에 의해서 창설되고 명령되고 질서지어진 것이지만
이 직분이 어떤 특수 계층으로 자리를 잡아
권력을 휘두르는 기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교회 직분자들은 하나님의 특수 소명을 받았지만
그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회 구성원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자신들의 직분을 단지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에만 사용해야 한다.
부름받은 목사와 평신도 사이에는 기능적인 직분 상의 구별만 있을 뿐
신분이나 존재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개신교 성직 임명은 카톨릭이 말하는 성례전의 일부가 견단코 아니다.
출처: 그리스도인의 복된 삶 원문보기 글쓴이: 그리스도의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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