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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바울인물강해(1) - 사도바울의 성장배경

에반젤(복음) 2022. 4. 10. 18:37

 

바울인물강해(1) - 사도바울의 성장배경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3).

사도바울은 신약시대에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신약의 13 권을 기록하였고, 세계선교를 통하여 복음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그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 성경적인 교리에 대한 바른 가르침은 지난 2000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생애를 연구하면서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살아가는 원리가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I. 사도 바울의 출생과 성장배경

 

사도 바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출생과 성장배경에 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다소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예루살렘에 오게 되었으며,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났는지 또는 그분의 가르침을 들은적이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는 없지만, 바울의 서신과 누가의 사도행전 기록을 통하여 그의 생애를 조명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행동에 나타난 배경은 우리로 하여금 그가 구원받기 이전에 핍박자로서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 바울의 출생과 시민권

 

성경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30살에서 35살 즈음에 스데반의 순교에 동참하였다고 추정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비슷한 시기에 출생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는 다른 지역에서 성장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21:39) 라고 언급합니다. 바울은 다소성을 작은 도시가 아니라고 언급했듯이, 다소는 길리기아의 수도로서 인구가 약 오십만명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태어날 때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그 시민권은 그에게 큰 특권을 주었습니다. 그는 로마 시민권자로서 올바른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었으며, 매질이나 십자가형을 면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황제에게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집안은 부와 명예를 가진 집안이었기에, 그의 부모가 유대인이지만 로마 시민권을 부여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소는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와 같인 유명한 대학 도시였고, 철학과 학문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었고, 바울은 어릴 때부터 이러한 교육적인 분위기에서 자라게 된 것입니다.

 

2. 가족의 유대교 배경

 

바울은 두 가지의 배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헬라와 로마의 환경에서 자랐으며, 또한 그는 엄격한 유대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바울은 선교여행 후에 예루살렘에서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22:3) 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아버지는 정통 유대인이었고, 그는 로마제국의 언어였던 코이네 헬라어를 배웠습니다. 그는 또한 태어날 때부터 히브리어를 접하며 자랐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어릴 때부터 엄격한 바리새인의 가정교육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구약성경을 배웠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께서 신명기 66-9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했던 것입니다. 유대법으로는 다섯 살이 되면 성경을 공부하였고 열 살이 되면 율법의 전통들을 공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이 규례를 따라 다섯 살 대부터 성경을 배웠으며, 열 살 때에 유대교의 중요한 문헌들을 암송하였고 또한 천만 만드는 기술도 함께 익히게 되었습니다.

 

3. 가말리엘의 교육

 

바울이 십대(13-14살로 추정)가 되었을 때에, 그는 다소를 떠나 랍비가 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했습니다. 그의 스승은 가말리엘이었는데, 그는 유대 세계에서 존경받는 스승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22:3). 가말리엘은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습니다. 바울은 가말리엘로부터 유대교의 엄격한 교훈을 배웠으며, 그는 엄격한 바리새인으로서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라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는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3:5-6)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율법의 모든 규율에 대하여 순종하기로 헌신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교육을 통하여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장로들의 유전을 지킴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는 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약 육천명 가량이었는데, 그는 바리새파의 지도자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4. 랍비로서의 사역

 

바울이 가말리엘로부터 교육을 약 5-6 년간 받은 후에, 그는 다소에 돌아가 랍비로서 18-19세가 되어 활동하게 됩니다. 그는 다소에서 약 15년 간을 랍비로서 활동하며 가르치는 사역을 하게 됩니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그를 더욱 열정적인 바리새인으로 만들뿐이었습니다.

 

다소에서 15년을 지낸 후에, 사울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그때, 그는 예루살렘의 교회가 급격한 성장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큰 번민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으로서 스데반의 순교와 기독교의 핍박에 크게 관여하는 바리새인이 됩니다.

 

II. 스데반을 향한 핍박.

 

사도바울은 그의 회심하기 전에도 신실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믿음에 신실했지만,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하여 그릇된 신앙과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잘못된 결정과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3) 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믿지 않을 때에 행했던 잘못된 행동들에 대하여 당시에는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 사실에 대하여 알면서 행동했지만, 사도 바울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의 생애를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우리는 자신의 믿음과 행동에 대하여 진실하고 열정적일수 있지만, 극히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처음에 성경에 등장한 것은 스데반의 순교라는 긴장되고 적대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사도행전 6장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성장과 함께 헬라의 과부를 돌보는 사역을 위해서 선택되고 임명된 초대집사였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7장에서는 사람들로부터 내쳐서 돌에 맞아 순교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산헤드린 공회는 71명으로 구성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돌을 집어 스데반이 죽기까지 던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잔인한 악행을 행하고 있는 동안에, 그들은 자신들의 옷을 사울의 발앞에 두었습니다.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7:58). 사울은 사도 바울이 구원받기 전의 유대식 이름이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을 옳게 여겼습니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8:1). 이 말씀의 의미는 이스라엘의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들이 사울에게 스데반을 공격할 수 있는 권위를 준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마치 하나님의 명령인 것처럼 이러한 일을 수행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와같이 무자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자신에 대하여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3) 전에는 훼방자이며 핍박자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1. 거짓 증인들

 

스데반이 소외된 과부들의 구제를 위한 사역을 감당한 후에, 그는 복음 전도의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많은 기적을 베풀기도 했습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6:8). 그러나, 그는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큰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6:9). 그들은 스데반이 전하는 복음에 대하여 깊은 반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것에 대하여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6:10). 그들은 스데반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복음의 메시지에 대하여 합당한 대답을 하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예수님에게 행했던 유대인들의 잘못된 행동을 따라서 했습니다. 오히려 거짓 증인을 세워서 스데반을 모함하였습니다.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6:11). 거짓 증거로 인하여 스데반을 향한 분노와 증오가 예루살렘에 퍼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종교적인 지도자들은 그를 잡고 그를 산헤드린 공회에 세웠습니다.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6:12). 그리고 거짓 증인들은 스데반에 대하여 왜곡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6:13-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데반의 반응은 놀랍기만 했습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6:15). 스데반은 대제사장으로부터 기회를 얻어 자신을 변호하며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하여 전파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설교하면서, 스데반은 그들의 죄를 강하게 지적합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7:51-52). 스데반이 그들은 메시야를 죽었음을 책망하자, 듣던 자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아 스데반을 향하여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사울이 일어나 스데반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조직하여 공격하였고, 마침내 스데반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7:57-8:1).

 

2. 구약의 전례

 

모세가 인도하던 구약시대에 이러한 전례가 있었습니다. 어머님은 이스라엘 사람이고 아버지는 애굽 사람의 아들이 양 부모가 이스라엘 사람인 사람과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을 훼방하며 저주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였는데, 하나님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모욕하고 저주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가두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찌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일찌니라.” (24:1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행위를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스데반은 산헤드린 앞에서 이러한 모독죄로 기소된 것입니다. 산헤드린의 71명은 레위기에 기록된 이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종교적인 지도자를 대표했기 때문입니다. 철저한 유대교의 교육을 받은 바울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법을 잘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고소는 악의적으로 조작된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정보와 차가운 가슴, 그리고 자신들의 영적인 무지로 인하여, 유대의 최고 법정은 스데반의 목숨을 빼앗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비록 공회원 중에는 스데반에 대한 잘못된 고소와 자신들의 행동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바울은 진실로 하나님의 사역을 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증거하듯이, 그는 알지 못하고 행하였던 것입니다.

 

3. 교회의 큰 핍박

 

바울은 성장하는 기독교의 운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스데반의 죽음을 승인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동료 유대인들을 향하여 전쟁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는 집을 다니면서 그리스도인들을 찾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8:3).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그는 이렇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26:10). 그는 많은 사람들을 옥에 가두었으며, 심지어 죽일 때에는 공회원으로서 찬성 투표를 던졌던 것입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갑니다.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26:11). 그는 강제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죽일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서 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믿음이 옳다고 여겼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된 수단까지도 정당화하였으며, 자신은 이러한 행동들이 옳다고 합리화시켰습니다.

 

바울의 핍박이 너무나 강력했기에,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와 사마리아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8:1). 그러나, 핍박이 거세질수록, 기독교는 더욱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누가는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IV. 바울의 생애가 주는 교훈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사도 바울의 초기 생애를 연구하면서 주는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1. 자신의 종교적인 믿음이 확고하더라도, 잘못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있었으나.” (1:13-14).

 

사도 바울의 신앙은 진지했고 확고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극히 잘못된 신앙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가 이러한 잘못된 신앙을 가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는 로마서 10장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10:2). 그는 성경적인 올바른 지식이 없이 율법에 대한 열정인, 자신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하나님께는 열심히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따르지 않고 잘못된 믿음을 갖거나, 자신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들이 자신들의 열심과 의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종교를 숭배하지만, 그 안에는 생명의 진리가 없습니다. 오직 인간으로 절대자에게 드리는 희생으로 스스로 위안을 삼을 뿐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카톨릭에 다니는 대학생이 저의 교회에 오셔서 구원을 받아 변화된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평생 카톨릭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생명의 주를 만나지 못하다가 교회에서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 기뻐하며 찬양하며 간증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의 잘못된 믿음이 깨어지게 된 것은, 그가 생명의 주님을 복음을 통해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해몬드 교회를 다닐 때에 한 집사님을 만나서 전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지난 15년 간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이 주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열정이 있었지만, 자신의 내면에는 큰 공허함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분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자, 그 분은 기뻐함으로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됩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 분은 생명의 주님을 만나 새 생명을 얻어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에 따라 세워져 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는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열정인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에 거침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복음의 진리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그 분의 말씀 안에서 자라가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2. 자신의 지식이 많다 할지라도, 잘못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 2:5).

 

바울은 당시에 가장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는 헬라와 로마의 철학과 문학에 대한 정통하였지만, 그는 영적인 진리에 대하여는 무지했습니다. 그가 다메섹의 동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대에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지식으로 인하여 오히려 영적인 진리에 대하여는 무지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지식과 지혜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추어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진리를 배우며 적용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진화론을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기에 그러한 지식을 거부해야 합니다. 세상이 모든 종교는 구원에 이를 수 있다라고 주장해도,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임을 믿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을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 2:14).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권능으로 영적인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지식을 의지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 우리는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행위로 얻지 못함을 이해해야 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2:8-9).

 

바울의 변화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입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인하여 변화받아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며, 이는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닌 것입니다. 로마서 3장에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3:28).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그 믿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0:3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 영생을 얻으며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자신의 열심과 의를 가지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