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료/바울신학

[스크랩] 바울인물강해(2) - 바울의 구원 (행 9:1-9)

에반젤(복음) 2022. 4. 10. 18:32

바울인물강해(2) - 바울의 구원 (행 9:1-9)

 

땅에 엎드려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 9:4-5).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인생의 중대한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인생에 간여하심으로 인하여, 바울은 극적인 회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바울은 영원한 죽음에서 건짐을 받아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경험으로 이렇게 기록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6:23).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유대교의 율법을 따르는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믿어 구원받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바울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모습을 통하여 주님이 주시는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스데반의 순교이후에, 바울은 더 나아가 기독교를 몰살하고자 하는 계획을 실행합니다. 처음에는 우발적인 분노로 시작한 핍박이 점차 잔인하며 조직적인 핍박으로 변해갔습니다. 바울의 목표는 교회를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 8:3). 그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투옥시켰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을 앞에서 큰 범죄였지만, 바울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바울은 모세의 율법과 유대주의를 보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공격을 예루살렘에만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바울이 자신의 회심의 이야기를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에게 간증할 때에, 그는 자신의 악한 행동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 26:9-10).

 

다메섹은 외국 도시 중의 하나였습니다. 바울은 핍박을 피한 그리스도인들이 다메섹으로 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대제사장에게서 공문서를 얻은 후에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고 했습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 9:1-2).

 

바울이 회당에 갈 공문을 대제사장에게서 받은 이유는, 로마가 대제사장에게 죄수들을 잡을 수 있는 권한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유대교를 포기한 유대인들을 향하여는 죽음의 형벌을 내릴 수 있을 만큼 범죄자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옥에 가두는 일을 하기 위해서 대제사장에게서 공문을 얻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은 범죄자로 취급이 되었던 것입니다.

 

1. 바울의 거듭남의 경험

 

바울은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기 위해서 가는 도중에 회심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성경은 바울의 회심의 경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바울의 회심에 대하여 세 번을 언급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저자의 기록이며, 둘째는 예루살렘의 유대인들 앞에서 바울의 간증이며, 세 번째는 펠릭스와 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간증입니다.

 

바울의 회심에는 다음의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1) 바울이 하늘의 빛을 보았습니다. (9:3; 22:6; 26:13)

2) 바울이 놀라서 땅에 넘어집니다. (9:4; 22:7; 26:14)

3)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이 바울에게 직접 말씀하십니다. (9:4;22:7; 26:14).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9:4)

4) 바울은 주님께 응답합니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9:5; 22:8; 26:15).

5) 주님은 바울에게 이렇게 반응하십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9:5; 22:8; 26:15).

6) 바울은 순종적인 질문으로 반응합니다. “...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22:10)

7) 주님은 바울에게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9:6; 22:10; 26:16).

 

바울은 언제 회심했을까요? 바울이 거듭난 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땅에 넘어진 후에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그는 주여 뉘시오니이까 그러자, 주님이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이때 바울은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가 진정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고 승천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순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메시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구원자로 믿고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주님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었던 것임을 철저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구주로 영접하게 됩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자, 그는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었으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2. 바울의 회복

 

바울의 구원이후에, 주님은 바울에게 다메섹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순종하여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 9:8). 그리고, 바울은 사흘 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먹거나 마시지를 못했습니다.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9:9).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돕도록 하기 위해서 아나니아라고 하는 한 사람을 이미 준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9:10-11). 이미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와서 자기를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할 것임을 보이셨습니다.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9:12). 그러자, 아나니아는 이미 바울의 행위와 다메섹에 와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려고 하는 그의 계획을 알고 있었기에 염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 9:15). 주님은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택함을 입은 그릇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나니아는 순종하였습니다. 아나니아가 바울이 있는 집에 가서 안수하자 바울이 다시 보게 되었고 음식도 먹을 수 있도록 회복이 되었습니다.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9:17-19).

 

3. 바울의 침례

 

바울은 자신의 육체가 회복이 된 후에 침례에 순종하였습니다. 바울은 삼일전에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았고, 이제는 예수님께서 지상사명을 통해서 주신 계명에 따라서 새생명의 증거로 침례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 28:19). 주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와같이 주님의 명령대로 침례에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의 침례는 구원받기 위한 과정으로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구원받은 이후에 자신의 믿음의 증거로 침례에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와같이 침례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믿음의 순종으로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바울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그릇으로 택하셨고, 그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후에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의 간증을 이렇게 나누었습니다.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될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 26:15-19).

 

바울은 주님을 만난 이후에 하나님의 택한 그릇으로 쓰임받기 위하여 준비된 일꾼임을 깨달았고, 그는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주님께 헌신하였습니다.

 

4. 바울의 구원의 증거

 

사도바울은 구원의 경험이후에 놀라운 삶의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변화는 단순한 지적인 변화가 아니라, 그의 삶의 모든 것이 변화되는 획기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구원받기 전의 바울은 예수의 이름을 증오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미워했지만, 구원이후에 바울은 예수의 이름을 경외하며, 자신이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제자가 되었습니다. 구원이전의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투옥시키며 죽이기도 했으며, 나아가 기독교를 멸절시키려고 했지만, 구원이후의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위하여 핍박을 받았고, 감옥에도 끌려갔으며 결국은 스데반처럼 순교를 당했습니다. 구원이전의 바울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의의 길이라고 전했지만, 구원이후에는 은혜로 받는 구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구원이후의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남으로 그의 삶이 온전히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의 삶은 성령의 권능으로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였고, 결국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따르며 전하는 제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인 것입니다.

 

5. 성령의 역사하심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의 간증을 나누며 주님이 하신 말씀을 언급했습니다.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 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 26:14). 주님이 말씀하신 가시채를 뒤발질 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그리고, 이 말씀이 바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가시채는 가축들을 몰기 위해 가축을 찌르는 뽀족한 막대기였습니다. 주님께서 바울에게 하신 말씀은 바울안에 역사하는 성령의 사역이었습니다. 비록 바울이 기독교를 잔멸하려는 일에 몰두하는 동안, 그의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광경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말하는 스데반의 천사와 같은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 6:15). 바울은 스데반이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던 것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7:56). 그리고, 바울이 하늘로부터 오는 빛을 보고 예수님의 음성인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라는 음성을 들을 때에, 스데반이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는 간증을 결코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는 스데반이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라는 했던 기도를 결코 못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지속적으로 핍박하고 있었지만, 그는 가시채를 향하여 차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인이 가시채로 가축을 몰아가듯이, 성령께서는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몰아가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의 음성을 무시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공격하는 일을 지속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알지 못하여 행했기에, 하나님은 바울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그의 삶에 간섭하심으로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딤전 1:13-14). 우리 주님의 은혜가 바울에게 풍성하게 임하게 된 것입니다.

 

왜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그의 간증에 이러한 비유를 포함했을까요? 바울은 다메섹에서 자신에게 말씀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왕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 26:14). 바울은 아그립바의 배경과 그의 성경지식에 대하여 알고 있었습니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게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아그립바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이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 26:26-28). 바울의 아그립바에게 믿음의 권유를 하자, 그는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라고 응답했습니다. 바울은 성령께서 아그립바의 마음에 말씀의 역사로 인하여 갈등이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아그립바 왕이 더 이상 진리를 거절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그립바 왕은 복음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울의 무죄를 확신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일러 가로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뻔하였다 하니라.” ( 26:32). 아그립바는 바울의 믿음이 진실됨을 알고 있었고, 예수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주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에 성령께서 깨닫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가시채를 발로 차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구원 간증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기를 원하십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바울이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선교 여행을 통해서 오랫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후에, 그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3:23)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6:23) 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죄의 대가는 사망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은 영원한 생명인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삯을 피하고,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을 선물로 받을 수가 있을까요? 바울은 2차 선교여행을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분명히 주고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심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감옥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게 되고, 옥터가 움직이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벗어지게 됩니다. ( 16:25-26). 간수가 이러한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알고 스스로 자결하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죄수들이 도망하면 자신이 그 책임으로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 16:28). 그러자, 간수가 바울과 실라의 모습에 감동을 받고 이런 질문을 합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 16:30). 그러자, 바울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16:31). 그러자, 간수는 예수를 믿음으로 영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르게 됩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듯이, 바울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듯이, 간수가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 후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은 모든 사람이 침례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침례를 받은 후.” ( 16:33).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자, 간수는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다가 맞은 자리를 씻기고 상처를 치유해 줍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모든 가족들도 복음을 듣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과 실라는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반응하였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후에 침례에 순종하였습니다.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침례를 받은 후.” ( 16:33).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물에서 침례에 순종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따라서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영접한 영혼들에게 침례를 베푼 것입니다.

 

침례는 마음에 이루어진 구원을 표현하는 상징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 분과 함께 장사되고, 새생명으로 살아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침례는 믿음으로 마음에 이루어진 우리의 구원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인 것입니다. 침례는 우리의 구원을 상징하는데, 물에 잠기는 것은 우리의 옛사람의 죽음을 상징하며,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과 새생명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성령의 역사에 반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니.” ( 16:8).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세상에 보내심으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게 하셨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니.” ( 16:8). 우리가 성령님을 대적하면 할수록,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로 더욱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부담감을 듣고 회개하고 주님께로 나아와야 합니다. 예배마다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신다면, 회개하고 주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진리를 받아들이라고 부담감을 주신다면, 더 이상 거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면, 비로서 참된 자유와 평안을 얻으며 누리게 될 것입니다.

 

[출처] 바울인물강해(2) - 바울의 구원 (행 9:1-9)|작성자 이성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