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선교
이용원(서울 장신대 총장)
목 차
들어가는 말
I. 부르심 이전의 바울
II. 부르심과 회심
III. 바울의 선교적 사명감과 선교의 꿈
IV. 바울의 설교와 선교
V.바울서신에서 본 선교신학
VI.바울의 신학과 선교
VII.바울의 선교원리와 전fir
맺는 말
기독교 선교를 논할 때 바울의 선교는 결코 무시되거나 경시될 수 없다. 구약의 유대교를 자리잡게 한 것이 모세의 공적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초로 신약의 교회가 세워지고 기독교 복음이 사방으로 확산되어질 때 가장 큰 그릇으로 쓰여진 사람은 바울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압제 하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가나안으로 인도해들이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하기 위하여 모세를 택하셨고, 그를 여러 가지로 훈련시키고 준비시켜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다. 비슷한 형태로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저주와 정죄 아래 있던 인류를 죄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는 일을 위하여 바울을 택하셨고 그를 준비시키셔서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것이다. 물론 그는 선교를 처음 시작한 사람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유일한 인물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사역을 감당하는 일에 그가 중심 인물이었던 것만은 분명하고, 아마 그가 없었다면 기독교 역사 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까지도 달라졌으리라고해도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우리는 바울이 길리기아 다소에서 혈통으로는 유대인이면서 법적으로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로마 시민으로 태어났음을 알고 있다(행 22: 3, 27-28).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다소라는 도시는 길리기아 지방의 수도였고, 희랍인과 동방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던 상업과 교육의 중심 도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희랍 철학이나 수사학을 깊이있게 정식으로 배운 것같지는 않다. 그에게서 희랍적 요소를 볼 수는 있으나 그것은 그 곳 회당 교육을 통해서 받은 영향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부모는 엄격한 유대교의 전통으로 교육하려고 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70인역 구약 성경만이 아니라 희랍적인 다른 요소들도 배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그는 희브리인 중의 희브리인(빌 3: 5)으로 자부할만큼 철저히 유대 전통을 고수하며 살았다. 그는 당대의 석학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으면서 성장한 바리새인으로서(행 22: 3) 흠이 없이 율법을 준수하였고 그 열심 또한 대단한 사람이었다(빌 3: 5-6).
따라서 그는 유대적 교육을 받았으나 동시에 희랍적 문화권에서 성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역시 유대주의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는 비록 희랍어로 번역된 성경(LXX)을 주로 배우기는 하였으나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기까지 그는 유대교 선교사(Jewish missionary)로 봉사하였으리라는 추측까지 하게 한다(갈 5: 11).
그의 모세의 율법과 조상들의 전승에 대한 열심은 그로 하여금 그 율법과 성전 의식을 침해하는 어떤 가르침이나 행위도 참을 수 없게 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의 눈에 바로 그런 반율법적으로 보이는 기독교 신자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율법에 대한 열심히 그로 하여금 교회의 박해자가 되게 한 것이다(갈 1: 13).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로서의 바울을 위하여 다른 하나의 준비를 시키셨다. 그것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 희랍 문화 안에서의 성장과 로마 시민권이었다. 희랍 문화가 지배하던 당시의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로 쓰시기 위해서는 단순히 유대교에서 배운 하나님과 그의 율법에 대한 이해와 열심만으로는 부족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는 희랍-로마 문화의 지배적인 영향 하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성장하고 교육을 받았었다. 그리고 당시의 정치적 지배국이었던 로마의 시민권까지도 가진 사람이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그를 쓰시기 위하여 철저히 준비시키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원리는 오늘도 변함 없이 적용되어야 함은 당연한 논리라고 하겠다.
바울로 하여금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한 계기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한 부르심과 그의 회심(conversion)이었다. 그런데 바울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그가 적어도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 곧 메시야라는 메시지를 들어 알고 있었고, 그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히어 죽으셨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셔서 모든 사람들의 "주(the Lord)"로 세우셨다는 이야기나, 그를 통해 구원의 길로 알고 있던 모세의 율법은 근본적으로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어 알고 있었다. 이런 내용을 잘 몰랐다면 그가 그토록 철저한 박해자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지식이 그가 돌아서는데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단언할 수 없다. 단지 흔히 이야기하는대로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에서 깊은 충격은 받고 있었으리라고 말할 수는 있다. 스데반의 순교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행 7: 54-60). 하여간 율법을
최고의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던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그들은 매우 위험한 이단자들로 보였기 때문에 그는 그들을 근절해버려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예루살렘에서는 물론이고 멀리 다메섹까지 가서 그들을 색출하여 처벌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때가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는 때가 되었다. 그는 그리로 가는 도중에 그리스도를 극적으로 만났기 때문이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음성과 함께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 9: 4-5; 22: 6-11; 26: 12-18)는 말씀 앞에 그는 굴복하고만 것이다. 그의 앞에 놓인 두 길, 즉 율법과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사이에서 그는 택일할 수밖에 없었고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역하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고 전하는 편에 서게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이 체험은 그로 하여금 참 선교사로서의 고난의 길을 즐거운 마음으로 참고 걸을 수 있게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체험 사건은 단순히 그의 개인의 회심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고 복음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받는 사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를 핍박하던 그가 이제 사도가 된 것이다(고전 15: 8-9). 그의 고백에 따르면 아나니아의 입을 통하여 그는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게 된다.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행 22: 14-15).
그리고 그는 예수의 이름을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앞에서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택한 그릇(행 9: 15)이라는 말을 들었고, 그 후 기도하는 중에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행 22: 21)는 말씀을 직접 듣고 스스로 자신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고 보내심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갈 1: 16). 이때부터 그는 한가지 결심 곧 그리스도만을 알고 그를 전하기 위해서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 결심대로 그 일생을 살았다.
이제 그의 회심과 부르심이 가지는 몇가지 특징적인 면모를 정리해본다면 다음과 같이 요약해볼 수 있다. 1)회심 이전의 바울은 헌신적이고 열렬한 유대인이었다. 2)그의 회심 체험은 그의 삶의 방식과 세계관에 일대 변혁을 가져다주었다. 3)그의 체험은 본질적으로 신비한 체험이었고 그 체험을 통해서 그는 하나의 꿈(a vision)을 가지게 되었다. 4)그가 이 체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시며, 이 예수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것, 그리고 자기가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사자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 등이었다.
선교사로서의 바울은 선교적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위한 뜻이 계셔서 자신을 사도로 부르셨다고 확신하고 있었고(롬 1: 1; 고전 1: 1), 자기는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 일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노라(갈 1: 15)고 고백하였다. 바로 선교적 사명을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만나서 회심한 후에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행 9: 15)을 깨닫고 자기 사명에 대한 바른 정립을 위하여 "혈육과 의논"하거나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가서 주님과 더불어 의논하고 자기의 활동 방향을 바로 세우려 하였다(갈 1: 16-17)고 한다. 자신의 결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다는 확신 때문에 그는 자신의 본능적인 바람과는 다르게 동족을 제쳐두고라도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일생을 바친 것이다. 그의 동족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옛날 모세의 그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출 32: 32). 그의 그런 열정은 이렇게 표현된다.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은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 2-3).
그러나 그의 이런 동족에 대한 사랑과 열정보다는 주어진 사명을 위한 복음에의 헌신의 열정이 앞섰다. 그는 늘 유대인에게 먼저라는 원칙으로 산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단호하게 돌아서서 이방인들에게로 향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에서 온 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일 때에 유대인들이 시기가 가득하여 복음을 거부하고 비방하는 것을 보고 바울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 46)
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 가장 크고 시급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런 사명감은 단순한 사명감이 아니라 빚진자 의식으로 나타난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 14)는 것이다. 즉 복음을 전할 대상에는 차별이나 구별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하나님의 귀한 자녀가 되는 데에는 우열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로도 표현된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이런 빚진 자 의식이나 부득이 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복음 전도자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의식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면 그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 9)라고 외치던 예레미야를 연상케 하는 의식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이나 열정은 철저한 헌신이 따르지 않는 한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따라서 바울은 훌륭한 하나님의 일군답게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따르는 헌신의 사람이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때로부터 그의 삶을 마감하는 날까지 그의 최대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으며, 자기의 모든 계획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데로 초점이 맞추어졌다. 심지어 감옥에 갇히는 일까지도 하나님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이요 그것을 이루는 길이라고 확신하였기에 자신의 투옥도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빌 1: 12)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바울의 선교적 사명감은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함으로써 열매를 맺었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사명감과 더불어 원대한 선교적 꿈을 품고 있었다. 이방인을 향한 복음 전파자로 부름받은 그는 3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통하여 아시아 지역과 아가야와 마게도니아 지방까지를 선교지로 삼아 복음을 전하고 교회들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그의 꿈은 훨씬 큰 것이었다. 그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형제들아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롬 1: 13)
고 함으로써 그가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음을 나타내었고, 나아가 그의 꿈은 로마 제국의 서쪽 끝인 스페인까지를 선교지로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 19-20).
그의 꿈은 아직 복음이 전혀 미치지 못한 지역에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어서
내가 너희에게 가려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Spain)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롬 15: 22-24)
고 하면서 로마 방문에 이어 스페인 선교까지, 다시 말해서 당시에 알려졌던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자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일단 하나님께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을 확신한 이상 바로 이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믿었으므로 그것을 선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한 충동(driving compulsion)을 느끼고 있었다. 바울의 전도행적을 보여주는 사도행전에는 그가 행한 설교의 실례를 세 번 보여주고 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설교(행 13: 16-41), 루스드라에서 행한 권면(행 14: 15-17)과 아덴에서의 설교(행 17: 22-31)가 그것이다. 그 외에도 데살로니가 회당에서 행한 설교의 요약(행 17: 2-3),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과의 고별사에서 보여준 그의 설교의 핵심 요소(행 20: 21)에서도 그가 행한 설교의 실제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고린도에서 행한 설교의 한 단면을 그의 서신에서도(고전 2: 2)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실례들을 보면 대체로 회당에서 행한 설교와 교회에서 또는 이미믿는 성도들을 위한 설교, 그리고 이방인들을 향한 전도를 위한 설교로 분류해볼 수 있다.
회당에서 행한 설교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설교를 예로 들어보면 그것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먼저 그는 유대 민족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그가 전하는 복음이 거기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주고, 자기가 조상들이 바라고 믿던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성취를 증거하고 있음을 밝힌다. 둘째 부분에서는 약속된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오셨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를 거역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음을 밝힌다. 결국 이런 메시지를 그의 동족 유대인들이 수용하지 못하고 반발하는 것이 그의 회당 설교가 유대인들에게 거부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그는 결코 거기에서 움추러들거나 변명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담대하고 분명하게 그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셋째 부분에서 그는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사죄의 메시지를 전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임할 결과에 대하여 엄숙한 경고를 한다. 아마 이것은 가는 곳마다 회당을 찾아가 말씀을 전하였던 내용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생생한 설명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루스드라와 아덴에서 행한 이방인을 향한 설교는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을 베풀기 위한 예비적인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설교가 바울의 설교를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와같은 예비적인 또는 철학적인 변론으로는 효과적인 선교가 이루어지지 않았음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선교를 위한 최고 주제는 '십자가'와 '회개'와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이 여기에서도 분명해지는 셈이다.
에베소 장로들을 향한 고별사(행 20: 21)에도 복음적 설교의 핵심적인 면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구원의 길은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어야 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바울의 설교는 회개와 믿음으로 요약해서 표현할 수 있다. 그는 항상 사람들로 하여금 지난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는 영적 굴복 행위(act of spiritual surrender)를 하게 하려고 했다. 회개를 통해서 지난 날의 잘못을 고백하고 자신의 약점과 부족을 인정하며,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죽음에 이르는 길임을 고백하고 이제 죄로 물든 세상과의 단절을 다짐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을 통해 죄의 용서됨을 발견하고 참 생명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바울은 기독교 신학의 초석을 놓은 위대한 신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이론적이고 교리적인 신학에 몰두하였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이론 신학자이기보다는 선교사였기 때문에 선교적 신학자(missionary theologian)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신학은 선교적 노력과 관심의 결과였고 신약 성경에 포함된 그의 서신 13권은 모두 그런 선교적인 노력과 관련되어 있다.
고린도서는 도시에서의 선교사명과 타락시키는 세력들에 대한 신생 교회들의 저항에 대해 보여준다(고전 1: 11, 5: 1, 6: 1-11, 10: 14, 고후 6: 14).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의 교회들 사이에서와 사도들 사이에서 각각 율법과 은혜를 주장하는 긴장 상태를 보여준다(갈 2: 1-21, 5: 1-12). 에베소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활의 의미들과 신생 교회들을 위한 교회론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엡 2: 1-22, 3: 6, 10, 4: 1-16, 5: 21-6: 9). 빌립보서는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의 태도에 관하여 순종의 대가와 십자가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빌 2: 5-15). 골로새서는 이방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신자들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하여(골 2:6, 3: 1-4) 기독론을 전개하고 있다(골 1: 15-20). 데살로니가서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신생 교회들의 의심과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살전 4: 13- 5: 11, 살후 2: 1-12). 디모데서와 디도서는 교회의 회중들 중에서 지도력을 기르기 위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딤전 2: 8-3: 13, 5: 1-22, 딤후 2: 2, 딛 1: 5-9). 빌레몬서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개인적 사회적 관계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몬 1: 16).
바울의 대표적인 교리서신으로 간주되는 로마서까지도 이론적인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쓰인 것이 아니라 선교적 관심의 결과로 나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전 우주는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그의 통치 하에 있다(롬 1: 18 이하). 2)모든 사람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죄의 노예가 되었다(롬 1: 1-3; 20). 3)쬐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이었다(롬 3: 21-3: 20). 4)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는 그들로 하여금 거룩한 삶에 이르게 하다(롬 6: 1-8: 39). 5)그것을 믿는 자들로 선교에 동참하게 한다. 유대인 선교(롬 9: 1-10: 4), 세계 선교(롬 10: 5-11: 24), 끝날까지의 선교(롬 11: 25-36), 선교와 영적 은사(롬 12: 1-21), 선교와 악한 정부(롬 13: 1-14), 선교와 기독교 공동체(롬 14: 1-23), 선교 전략(롬 115: 1-33), 선교와 개 교회들(롬 16: 1-27)이 그 내용인 것이다.
또 다른 대표적인 교리 서신으로 알려지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서신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데살로니가 전서는 그 도시에서 바울이 처음으로 말씀을 전한 후 일년 쯤 지난 때에 쓰여진 글이다. 그가 그 도시에 머물렀던 기간이 5개월 정도였다고 할 때 그 기간은 그가 근본적인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가르치기에는 충분한 것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직 서로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을 때에 그가 전하고자 했던 내용들을 글로 써서 전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그 서신의 선교적 내용을 해스팅스의 성서사전(Hasting's Dictionary of the Bible)은 이렇게 요약 정리해주고 있다.
1)살아계시는 한 분의 참 하나님이 계신다(1: 9). 2)우상숭배는 죄로서 마땅히 버려야 한다(1: 9). 3)하나님의 진노가 이방인들에게는 그들의 불순한 생활로 인하여(4: 6), 그리고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의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복음을 반대함으로 인하여나타났다(2: 15-16). 4)심판이 갑자기 예기치 않은 때에 임할 것이다(5: 2-3, 5). 5)죽음에 내어준 바 되고(5: 10)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을 입은(4: 14)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베풀어주실 구세주(1: 10)이시다. 6)이제 그의 나라가 세워지고 모든 사람들이 그리로 들어오도록 초청함을 받고 있다(2: 12). 7)이제 믿고 돌아서는 사람들은 그들을 구하시려고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그 구세주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다(1: 10,4:15-17). 8)그 동안에 그들의 삶은 깨끗하고(4: 1-8) 쓸모있어야 하며(4: 11-12) 깨어 근신해야 한다(5: 4-8). 9)그런 목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었다(4: 8, 5: 19).
교리 서신이 이처럼 선교적 기초에서 쓰여진 것이라면 좀더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다른 서신들이 더욱 그러할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의 신학을 간단히 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라 할 수 없고 또 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 이후로 바울 신학의 핵심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以信得義, justification by faith)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결국 이것은 구원론의 중심 요소일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할 때 그 복음의 핵심적 내용이 되는 것이니 결국 선교적 메시지의 요약된 정수라 할 수 있다.
바울 신학의 또 하나의 출발점은 회심 이전의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만 믿었던 그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과 모든 사람들에게 그 통치하시는 주권을 행사하시면서 누구나 아무런 값없이 불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이다. 바울은 바로 이런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으면 안되고 그 전할 사명이 자기에게 주어졌다고 믿었다.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많은 차이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복음 앞에서는 같은 자리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어느 민족 어떤 사람이라도 구원에 이르는 길은 인간의 윤리적 성취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필요한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예비해 주시었다. 곧 그 복음을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law)를 얻어야 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기는 하나 그것을 행할 능력은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죄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sin)가 구원을 위한 필수 요건으로 떠오른다. 죄를 안고서는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구원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death)를 의미하게 된다. 죄가 저주와 죽음에로 가는 길인데 거기에서 자유를 얻는 것은 곧 구원에 이르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유를 얻은 사람은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삶은 살게 된다.
바울의 신학은 모든 인간의 모습을 하나님 앞에 선 죄인들이라고 하는데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 하에 놓이게 되고 구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예외없이 필요로 하게 된다. 그리고 이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길 밖에 없다. 이렇게 구원의 반열에 들어온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며 현실적으로는 교회의 일원이 된다. 여기에는 역시 민족이나 빈부귀천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바울의 신학은 그대로 선교 신학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게 된다. 한 마디로 그의 신학은 복음적인 선교 신학인 것이다. 이런 모든 신학이 선교적 관심과 노력의 결과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울의 신학에 비추어 볼 때 오늘의 신학이 선교적 관심과 노력과는 거의 무관하게 이론적인 탐구나 주장에 치우치고 있는 면은 마땅히 반성되고 바로 잡아져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선교신학자와 선교사로서의 바울은 어떤 원리와 전략을 가지고 일하였을까? 우리는 누구나 이런 질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선교 여행을 나설 때 미리 그의 여정을 계획하거나 교회를 설립할 전략적인 지점들을 선정하고나서 그런 그의 계획들을 실천에 옮겼다고 볼 수는 없다. 여기에서 전략이라는 개념을 '인간의 관찰과 경험을 기초로한 의도적이며 공식화된 인위적인 활동 계획'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바울은 전혀 선교 원리나 전략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의 지시와 통제를 철저히 따르는 융통성있는 활동 방식을 전략이라고 할 때에는 그가 훌륭한 선교 전략들을 개발 활용한 전략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복종한다는 점을 최고의 선교 원리와 전략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성령께서 열어놓으신 문들을 통해 나아갔을 때 복음을 뜻하지 않게 널리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게도니아 선교를 시작한 이야기(행 16: 6-10)에서 이런면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얻기 위해서는 기도의 생활이 필수적이었으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기도 생활을 통해서 그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상을 통해 새로운 선교 활동의 장들을 찾기도 하고 준비하기도 하였다(행 16: 9, 18: 9, 22: 18, 23: 11). 그것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인 줄 믿고 순종하였던 것이다.
둘째로 바울은 복음의 불변하는 진리를 고수하되 부차적이고 문화적인 것이라고 판단되는 것을 기꺼이 양보한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이 오늘날 우리가 선교 현장에서 회심자들이 본질적인 복음의 내용만이 아니라 부차적인 것들까지도 우리에게서 배우고 따라주기를 바라는 현상과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복음만이 아니라 우리의 관습이나 문화까지 전해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에 관한 한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 . . . .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 8-9)
라고 선언함으로써 복음에는 타협이나 양보가 있을 수 없음을 밝히 보여주었다. 그 대신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복음 이외의 문화적인 면에 있어서는 철저히 적응이라는 원리를 따랐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것처럼,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에로 인도하려고(고전 9: 19-23) 했던 것이다. 이런 원리는 때로는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바울은 할례 문제에 초월해 있었지만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행하려 했고(행 16: 3) 디도에게는 거부한 것(갈 2: 3-4)이다. 우상의제물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이미 초월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다시 말해서 선교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 8: 13)고 선언한다.
셋째로 바울은 제한된 지역에서의 집중적 선교 활동을 폄으로써 그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바울의 선교적 소명감은 '멀리 이방인에게'(행 22: 21)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알려진 모든지역을 찾아가 복음을 전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당시의 번영하는 4개 지역 곧 아시아에 속한 갈라디아와 소아시아, 유럽에 속한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에서의 전도 활동에 집중하였다. 이런 집중적인 방식을 통해 그는 10년만에(AD 47-57) 전혀 교회가 없던 이 지역들에 많은 교회들을 든든하게 세우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바울은 세계의 모든 이방인을 한꺼번에 복음에로 인도하려고 시도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아직 복음화되지 아니한 몇몇 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도 그 지역의 중심이 되는 도시들에 교회를 설립하였다. 회중을 많이 모으는데 힘을 쏟기보다는 교회를 세우고 자립적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거기에 머물면서 일하였다. 그리고 일단 스스로 설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 일들을 다른 동역자들에게 맡기고 다음 사역지 곧 아직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복음을 전하러 갔다. 이렇게 도시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는 그 주변 지역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세워진 교회는 언제나 새로운 선교기지가 되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대도시 중심의 선교는 여러가지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였다. 그것은 로마의 행정 중심지로서 적어도 바울처럼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는 신변 보호를 보장받을 수 있었고, 희랍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서 통역을 필요로하지 않으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곳들은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로서 흩어진 유대인들이 회당을 가지고 있는 곳들이었으므로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하고 그들이 거부하면 이방인에게로 향했던 바울의 전도 우선순위와도 부합되는 것이었다. 실지로 회당 자체가 일종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으니 곧 혈통으로는 이방인이었으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God-fearers)이 있었고, 그들은 흔히 복음의 선봉장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넷째로 선교 방법의 하나로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삶의 모범을 통해서도 복음을 전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로마서에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what I have said and done)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롬 15: 18)
고 함으로써 말과 더불어 행함이 복음전파의 수단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또 데살로니가 전서에서는 "너희는 . . . . . . .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 되었으니"(1: 6)라고 함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바울에게 이끌리어 나왔고 그를 통해 주님을 알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도요 종으로서 본래 가지고 있던 고귀한 것들(바리새인, 학식, 로마 시민권 등)을 오히려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여기면서 지도자이되 섬기는 지도자(servant-leadership)로서의 삶의 본을 보인 것이 선교의 한 수단이 된 것이다.
다섯째로 그는 혼자 선교사역을 담당하려 하지 않고 가는 곳마다 동역자들을 발굴하여 사람들이 그와 더불어 선교사역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그의 동역자들은 다양하였다. 레위인 바나바, 한쪽으로만 유대인의 피를 받은 디모데, 헬라인 디도, 유대인이 아닌 의사 누가, 회당장이었던 소스데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아볼로, 마가와 실라 등 그의 동역자를 모두 열거하기는 어려우며, 그 출신도 각 계 각 층에 퍼져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외로운 전도자가 아니라 많은 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을 지휘한 선교 사령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섯째로 그의 전략의 하나는 융통성이었다. 대상에 따라 다른 접근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회당에서나 시장 거리에서나 공회당에서나 가정 집에서까지도 복음을 전할 기회를 만들었고 상황에 따라 다른 접근 방법을 찾아 이용하였다. 아덴에서는 이교 철학자들의 한 가운데 서서 그들의 문화와 종교에서 접촉점을 찾았고, 물리쳐야할 우상숭배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고 오히려 그들의 종교성을 들어 그들을 칭찬함으로써 복음전파의 기회로 삼는 것이었다(행 17: 22-31).
일곱째로 바울의 선교 전략은 삼자원리(three self principle)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가 세운 교회들은 자치(self-governing), 자립(self-supporting), 그리고 자전(self-propagating)하는 교회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세운 교회들은 스스로 지역 복음화의 사명을 위해 일하였으며 외부의 통제나 지도를 받지 않고 오직 성령에만 의존하면서 세워진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일들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생 교회들은 재정적으로도 외부의 어떤 힘에 결코 의존하지 않았다.
여덟째로 바울 자신의 선교를 위한 재정적인 정책은 자비량 선교였다. 그는 스스로 일함으로써 자신과 동료들의 필요를 감당하였고, 앞에서 말한대로 신생 교회들도 재정적으로 자립하게 했으며 동시에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들을 위하여 그들의 궁핍을 외면하지 않고 도우도록 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스스로도 교회가 보내주는 선물을 거절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받아 사용하였다(빌 4: 15-16). 이러한 원리는 오늘의 선교에서는 보기 힘든 원리였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바울의 선교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한가지 요소는 고난이라는 요소이다. 바울의 선교적 생애는 고난으로 특징지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사도로 부르실 때부터 주님께서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he must suffer for my name)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행 9: 16)고 하심으로써 그의 사도로서의 삶이 겪을 고난을 예고해주셨다. 그리스도를 통해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종이 됨으로써 얻어지는 자유였기(고전 9: 19-23) 때문이다. 그리고 선교 즉 구원의 역사를 펼쳐갈 때 이 세상의 신 곧 사탄이 그것을 방해하려고 갖은 수단을 다 쓰는 것이 당연한 일임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들을 정복하시기는 했으나 마지막 날이 오기까지 그들은 여전히 선교를 위한 순종 행위에 엄청난 방해물들을 놓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러한 세상의 권세들이 믿음과 사랑, 기도와 고난을 통하여서만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숱한 고난을 당할 때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체우노라"(골 1: 24)고 하면서 그 고난을 복음을 전하는 특권에 대한 대가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원리 또한 오늘이라고 변할 수는 없다. 십자가는 하나의 장식품이 아니라 여전히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은 사도 바울의 행적과 그의 서신들을 통하여 우리는 선교사로서의 바울과 선교 신학자와 선교 전략가로서의 바울을 살펴보았다. 간단히 말해서 그의 신학도 선교적 관점에서라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서신이나 활동은 모두 그런 관심과 노력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언급한대로 이방인 선교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바울이 아니다. 그러나 이방 선교를 본 궤도에 올려서 복음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일이 바울에게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결실을 맺게된 것은 확실하다.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가 유대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참된 생명의 세계 종교가 되어 만민에게 구원의 길을 여는 일은 힘들었으리라는 것도 분명하다.
이런 엄청난 사역을 위하여 학자적 두뇌와 열정으로 넘치는 가슴, 철저한 헌신을 할 수 있는 의지력 등의 자질을 골고루 갖춘 바울을 하나님께서는 택하시어 쓰시었고, 바울은 그의 부르심에 그대로 순종함으로써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받들어 이룬 것이다. 물론 바울이 선교와 관련된 모든 문제에 해답을 주지는 않았고 그런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서신을 보낼 때에도 그것을 선교학 교과서나 선교 신학의 이론서의 일부로 쓰지 않았다. 결국 어떤 문제들은 아마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한 체 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에게서 배운 여러 가지 통찰력을 통하여 현대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선교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지침들을 발견할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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