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설교 /D. L. 무디

[스크랩] 무디의 부흥운동

에반젤(복음) 2022. 3. 23. 22:06

무디의 부흥운동



두와잇 엘 무디의 부흥운동 - 영혼 구령의 열정에 불타 올랐던 무디
피니가 19세기 중엽 미국 영적 각성운동을 주도했다면, 무디는 19세기 하반기를 장악했다.
무디를 주축으로 일어난 부흥운동의 영향은 1904년을 지나 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때까지도 지속되었다.
무디는 평생 동안 설교와 서신을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인 약 1억 명 이상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수백만 명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였다.
흔히 부흥은 하나님의 주도하에서 초자연적인 역사와 더불어 일어난다.
그러나 무디의 부흥운동은 일반 영적 각성운동과는 달리, 그의 영혼 구령에 대한 열정 속에서 서서히 부흥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부흥의 열기는 "미치광이 무디"라 불릴 정도로 끊임없는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헌신의 삶을 통하여 유지되었다.
이처럼 그는 복음 전파를 위해 전력 투구했으나, 인간적인 측면에서 평가한다면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무디는 안수를 받지 안은 평신도였다.
또한 음성이 좋지 않고 콧소리를 하며 카리스마적인 강인한 성품마저 지니지 못했고, 뛰어난 행정가나 재력가도 아니었다.
더욱이 교육은 초등학교 5학년 수준으로 문법에도 맞지 않는 언어를 구사하는 참으로 변변치 못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의 눈에 확연히 드러날 정도의 방언이나 예언, 기적의 은사를 지닌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무디는 이 세상에서 재능 있는 특출한 사람보다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자신을 철저히 주님 앞에 드렸다.
복음을 위해 자신을 송두리째 바친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가진 은사와 지식과 재능이 얼마나 되느냐 보다 그것을 어떻게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가망성이 없었던 사람
무디가 4살 되던 해에 41세의 젊은 나이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의 상황은 13살 되던 해에 가정형편 때문에 정규 학교 교육을 중단해야할 정도로 심각하였다.
더욱이 무디를 포함하여 어린 아들 일곱에 쌍둥이 자매까지 유복자로 낳게 되어, 과부 혼자서 아홉 자녀를 기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많이 맡아서 밤낮으로 일을 했지만, 때때로 임금조차 못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한마디 불평이나 짜증 없이 그녀는 언제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용기를 잃지 않았다.
특히 그녀는 아이들의 신앙 훈련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비록 그들에게 어떤 변화는 없었지만, 꾸준히 말씀과 기도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녀는 늘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68:5)는 말씀을 굳게 믿고 애송하였다.
하나님이 훌륭하게 썼던 위인들이 처음부터 모두 특출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무디 역시 난폭하고 심술궂은 아이로서 가끔 큰 말썽을 일으키곤 했다. 그래서 아무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헝클어진 삶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 미래가 불투명할 정도로 영적인 어두움 속에 있었다.
어떻게 이런 아이가 자라서 하나님의 위대한 도구로 쓰일 수 있단 말인가?
주변 사람들이 평가할 때 그는 불우한 환경 때문에 탈선한 청소년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결손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대부분 곁길로 나갈 것처럼 말하지만, 하나님이 역사 하시면 불가능이란 없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믿음을 가지고 말씀과 기도로 꾸준히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부모들이 밤낮 흘리는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이 외면하시겠는가?
무디는 결국 17세가 되던 해에 교회를 출석하는 것이 싫고, 돈을 많이 벌어볼 욕심으로 집을 떠나게 된다.
그가 처음 도착한 곳은 매사추세츠 주 클린턴 시였다.
그 곳에서 그는 조그만 신문사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신문발송 과정에서 실수하여 결국 쫓겨나고, 보스턴에 있는 삼촌이 경영하는 양화점에서 일하게 된다.
조건은 주일학교에 정기적으로 출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디는 애초부터 세상 욕심에 가득차 고향을 떠나와서 교회에 자주 간다는 것은 오히려 출세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돈이 좀처럼 쉽게 벌리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도 "하나님의 일보다 세상의 일을 더 생각해서는 안된다. 너는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안된다.
네가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이 너를 따라 다니실 꺼야"라고 하신 어머니의 말씀이 그를 늘 괴롭혔다.

복음의 열정을 지닌 사람
무디가 양화점에서 일한 지 1년 되던 어느 날, 무디의 성경 지식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그의 주일학교 선생 킴블(Edward Kimble)이 그를 찾아왔다.
킴블 선생은 무디가 영적으로 우둔하여 도무지 복음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결심한 사람같이 보이지 않아 여러 날 기도하며 망설이던 끝에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왔던 것이다.
킴블 선생은 무디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드린 체험이 있는가 물었다.
그러자 무디는 "글쎄요, 저는 기독교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것에 깊이 관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킴블 선생은 포기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받아드릴 것을 촉구하였다.
결국 무디는 양화점 뒷방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요1;12).
바로 이 날을 기점으로 무디의 삶은 하나님 중심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 이듬해에 무디는 장래의 행운을 잡기 위하여 시카고로 갔다.
도착하자 먼저 주님을 위해서 일할 주일학교와 교회를 찾았다.
이곳에서 여러 사람들의 신용을 얻어 8개월만에 5천 달러를 벌었고, 미국 전역을 상대로 구두를 팔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젊은 구두 장사를 당신의 일꾼으로 쓰시려 부르고 계셨던 것이다.
그는 얼마 후 구두 파는 재미를 점점 잃어버리고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무디는 거리와 골목, 역전 대합실, 하숙집 근처 등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모아들였다.
노스필드의 소년 무디가 시카고에 온 지 불과 6년, 80여 학급에 학생 수 1,500명, 교사 100명이 넘는 어린이 전도자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이제 그는 세상 야망을 이루기 위한 열심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직업으로 전환하였던 것이다.
1871년 초 무디가 시카고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할 때, 청중석의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쿡과 하커스트 부인(Sarah Cooke & Hawkhurst)이 자주 무디의 주위를 끌었다.
예배가 끝나자 무디에게 "저희들은 오랫동안 당신을 위하여 기도해 왔습니다", "어째서 거듭난 성도인 나를 위해 기도한단 말입니까?", "왜냐하면 당신은 권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You need power).
성령의 권능이 당신의 설교 가운데 임해야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될 것이 아닙니까?"
그 후 무디의 머리 속에는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고 맴돌았다.
그의 갈급함은 증폭되어 사역을 위하여 이 능력을 받지 못한다면 더 이상 살 수 없으리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성령의 기름부음'(the anointing of the Holy Ghost)을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성령의 권능에 붙들린 사람
그가 뉴욕시의 월가(Wall Street)를 거닐던 어느 날 하나님의 권능이 강하게 임하였다.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나도 강렬하여 무디는 하나님의 손을 거두어 달라고 간청해야만 했다.
이 놀라운 체험을 경험한 이후에 무디는 1년 전에 만난 생키(Ira D. Sankey)와 함께 전도 집회를 개최하였다.
그렇다고 어떤 새로운 진리를 제시하거나 다른 부흥운동에서 처럼 입신·진동·신비적인 역사가 나타난 것도 아니었다.
설교는 예전과 다름이 없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평이한 언어로 전하였다.
그런데도 그의 집회 때마다 강한 성령의 임재하심이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했다.
그리고 무디는 부흥의 영에 사로잡혀 18세기 존 웨슬리 이후 가장 큰 부흥의 불을 영국과 미국에 붙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디의 집회는 맘모스 집회가 되었다.
영국 수정궁에서 집회할 때는 5만 명이 회집할 정도였다.
무디의 부흥운동은 독특한 점이 많았다.
늘 성경 지식의 부족함을 깨닫고 끊임없이 성경연구에 몰두했으며, 많은 청중을 동원한 집회가 있은 다음에는 서재에 돌아와 수많은 책과 함께 씨름했다.
또한 치밀한 조직과 전략을 세워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 때 홀로 일을 추진하지 않고 적재 적소에 인재를 등용하여 분담시키는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지닌 다양한 재능들을 잘 발견해 내는 독특한 은사를 가지고 있어, 그들을 복음 사역에 참여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고도, 시간도, 체력도 다 소모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영혼 구원의 열정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사람만 보면 뒤쫓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하루 24시간 동안 최소한 한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결심을 그대로 실천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사용하실까? 하나님은 그 사람이 가진 세상적인 지위나 직분을 보고 사용하시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은 외모나 지식이나 재산, 학위를 가지고 그 분의 일에 능력 있게 사용하신 적은 한번도 없다.
비록 나약하여 절망과 실패의 소용돌이 속에서 실수를 많이 한다하여도, 오직 영적인 일에 끊임없이 매달리고 기도하며 고민하는 사람을 쓰신다.
하나님은 학벌 부족, 재능 부족 혹은 환경 탓으로 돌리며 물러서는 자보다 온전히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하려는 사람을 일꾼으로 사용하신다.
영적인 일에 무관심한 사람, 꿈이 클지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은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신 적이 기독교 역사에 단 한번도 없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잘 활용할 때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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