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난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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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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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2-1. 네, 출애굽기로 넘어가도 되겟습니까? (네) 아까 이집트 역사에 관한 질문인데, 추가로 질문을 드릴까요? (괜찮아요.) 바로가 출애굽 초반부에 등장하는데, 한사람이 아닌 것 같고 여러 사람으로 바뀌는 것 같거든요. (네) 그리고 또 영화로 어떤 얘기를 들어보면, 출애굽 당시 바로가 람세스 2세라고 얘기를 하는데, 연대기서상으로 해 보면, 람세스 2세하고 약 200년 차이가 나는 것 같아서, 그 부분에 대해서 좀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 라암셋이라는 지역이 어떤 역할을 했는데, 그때 당시 수도가, 이집트 수도가 어디였는지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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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2-1. 출애굽 연대가 두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BC 1446년 경이다고 하는 것이 좀 보수적 입장에서 보는 그런 학설이고, 라암세스 2세 때라고 하는 것은 13C로 보기 때문에 근 200년 차이가 나는데, 저는 성경 자체에 있는 기록이 훨씬 더 맞다고 봐요. 열왕기 상서 6장을 펴보세요. 1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지 480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4년 곧 시므월 2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정확하죠? 애굽에서 나온지 480년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도 연대 계산이 가능한 게, 솔로몬이 한 960년경 재위 기간이 그렇다고 하면, 어렵지 않게 계산이 나오는 거죠. 480년 하면 1446년 경. 그 정확하게 1446년경이 성경적인 연대인데, 이걸 그 성경 제쳐놓고 자기끼리 해서 역사연구, 유물, 고고학적, 이런 것 가지고. 그런 고고학적이라는 것은 세상 역사란 것은 들쭉 날쭉 차이가 많이 나요. 그래서 저는 1446년 이렇게 연대를 봅니다. 그래서 제가 성지순례를 갔을때도 제가 인솔해가면 가이드가 어느 학설에 맞춰 가이드 할까요 물어봐요. 그래서 BC 1446년경하는 성경대로 좋다 하면 그러면 거기에 맞춰서 가이드하고 그럽니다. 그때 모세를 보호했던 공주있죠? 공주. 갈대상자에 주워올렸던 분이 공주인데, 하셉수트라는 공주인데 이 사람때고요, 그 다음에 그 자라서 박해하던 그 사람은 투트모세 3세라고 보게 되고, 출애굽 때 모세 때에 자기 장자를 잃어버렸던 사람은 아멘호텝 2세라고 봅니다. 이 아멘호텝은 1448년부터 1422년까지 애굽을 통치했던 왕으로 나옵니다. 그렇게 하면 바로가 정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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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솔로몬 왕이 즉위한 해를 보통 970년에서 930년까지 통치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970년에 통치했다고 보면 4년 후가 되니까 966년이죠? 966년에 성전 건축 시작했단 말이에요. 그러면 480년을 보태면 1446년 깨끗하기 때문에 이것은 재론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괜히 학자들이 자꾸 와서, 그 학자들이 하는 것은 성경이 맞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자꾸 흔드는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이거든요. 그런 것 자꾸 따라가다보면 나중에 헷갈려가지고 무엇이 맞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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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성경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에. 그리고 사사시대가 360년. 그리고 모세시대가 한 40년. 여호수아시대 하면 연대가 나옵니다. 그렇게 정리하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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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2-2. 잠시 그 부분에 대해서 질문 드릴 게 있습니다. (추가질문?) 네 만약에 이 계산대로 된다면, 사사시대가 360년 가량이라고 나온단 말입니다. 그러면 그 기간에 사울이 그 기간에 존재합니까? (안 들어갑니다. 사울은 그 사사시대 너머예요.) 그런데 금방 계산을 해보니까, 바로 480년을 계산해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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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2-2. 사실은 사사시대거든요. 재판하다는 것이니까. 모세는 딱 떨어져 나오니까. 모세 40년, 사울 40년, 다윗 40년, 그리 보면 되죠. 집에 가서 그것 계산하면 사사시대는 사사 놓고 몇 년 보태면 나옵니다. 또? 넘어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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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3. 아까 도시에 대해서 제가 여쭈어보았는데요. 수도하고 라암세스의 어떤 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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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3. 도시가 크게 남쪽에 하애굽, 아니 거꾸로. 우리나라와 뒤집어져 있으니까. 이집트 나라를 말할 때, 하애굽하면 위에 있어요. 왜냐하면 나일강을 가지고 따지기 때문에 나일강 상류가 상애굽이고, 나일강 하류가 하애굽이에요. 그래서 하애굽 수도는 멤피스입니다. 거기서 멤피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지금은 멀지않은데, 옛날엔 제법 먼 데, 라암셋이라는 국고성이죠. 어떤 국가의 큰 창고. 그리고 상애굽할 때 나일강 상류에 테베입니다. 상애굽의 수도. 그 전체가 통일되지 않았을 때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어요. 수도가 중간중간에. 지금 현재 카이로가 수도는 아니고요. 멤피스가 수도였습니다. 이집트를 갔다 오셨죠? (네) 그리 갔다 와도 내도 잘 몰라요. 지도를 갔다놓고 옛날 고지도 그런 걸 놓고 펴놓고 보면, 테베, 멤피스가 중요한 도시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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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4-1. 성경에 보면 하나님 산, 호렙산, 시내산, 이렇게 계속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을 같은 위치로 봐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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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4-1. 네. 지금은 예나지금이나 호렙산이 시내산이고, 시내산이 호렙산으로 같아요. 우리도 보면 한 산을 보고, 두가지나 세가지 이름을 갖고 있는 수가 있어요. 예를 들면 제가 있는 지리산은 옛날에는 그 산을 두류산이라고 그랬어요. 두류. 백두에서 흘러왔다. 백두에서 흘러와서 두류산 하다가 불교용어로 방장산이라고 하거든요. 방장산. 그렇게 하다가 이성계 시대 이후로, 이성계가 쿠데타를 하려고 하는데, 전국의 유명한 산에 가서 산신령에게 물었다고 그래요. 다 오케이했는데 지리산만 노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뜻을, 또 지혜를 달리한다고 해서 지리가 아니고 지이입니다. 다를 이 짜. 지이산 하는 것 보면, 한 산 이름을 가지고 둘 셋 씩 이름이 있기도 합니다. 아바림산, 느보산, 비스가산 이런 말도 있죠? 사실은 한 곳을 놓고 아바림산맥, 비스가산, 느보산, 이쪽에서는 느보산, 한쪽에서는 비스가산 하는 거에요. 호렙산도 어떤 사람은 시내산, 어떤 사람은 호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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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4-2. 보면 떨기나무 저자가 주장하는 시내산 위치는 전혀 다른 곳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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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4-2. 그 시내산만 가지고 말이 안되고, 이를테면 수르광야. 수르광야 하는 것은 바로 애굽에서 나오자마자 수르광야인데, 광야가 한두개만 같으면 틀릴 수 있는데, 이것이 수르광야, 애담광야, 신광야, 시내광야, 그 다음에 바란광야, 다 알려지고 있는데, 그 다음에 시인광야하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으로 그렇게 해야 맞지, 라오즈산을 갖다가 시내산으로 하려고 하면, 거꾸로 가야 되요. 애굽으로. 바란광야로 가려고 하면 거기서 나와서 애굽쪽으로 나와야 되요. 그러니까 이런 것이 자기들 말대로 하면 합리적으로 막하니까, 사람들이 그럴싸 해 하지만, 우리가 보면, 성지순례가서 보고, 지도를 펴놓고 성경지명을 맞춰놓으면 안맞는 게 많아요. 그것도. 앞으로 그런 것도 논의가 되면 또 한번 더 홍역을 치르고 학자들의 고증이 새로 나와야 되는데, 아직까지는 그걸 할 수 없고. 두 번째는 한국 사람들이 이동을 하면 사람들이 바꿔져가지고, 사람들이 침략을 해와서 막 인종도 언어도 다 바뀌고 이렇게 하면 어려울 수 있는데, 그 시내산의 베두인들이란 사람들은 수천년 거기 살고 있어요 그냥. 수천년간 그것뿐 아니라, 후대 기독교의 콘스타티누스 황제 어머니가 지정을 해버렸다. 하는 것은 경솔한 말이고, 그건 잘못된 말이고요.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 여전히 시내산이라고 그러고 있고, 무사산. 호렙산이란 말 잘 안쓰고 모세산이다. 이렇게 말하는데, 또 모세산은 그쪽에 가면 산이란 산은 다 모세산이라고 그럽니다. 물만 있으면 모세우물이라고 그러고, 산만 있으면 다 모세산이라고 그러니까, 그것 가지고는 근거가 안되요. 그래서 저는 볼 때, 그 지역의 어떤 사람이 전쟁이 나서 민족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버리면 혹시 지명을 바꿀 수 있어요. 터키가 그런데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 이집트 땅, 시나이반도 거기는 혹시 어떤 다른 사람이 맡는다해도 그 지명을 바꿀만큼 그런 대규모 이동이 있는 곳이 아니고, 한 두 사람이 나오거나 들어오거나 했는데, 가서 자기가 자기 맘대로 이산을 앞으로 시내산으로 만들자 이렇게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보고, 떨기나무 책도 보았지만, 그걸 가지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뒤집어 엎을 만한 그런 근거는 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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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5-1. 하나님과 만나는 것에 대해서 출애굽기 24장 10절에서 11절까지를 보면,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그 중에서도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아는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반면에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본 자가 없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예수님을 본 사람은 그렇게 많은데, 그렇다면 하나님을 본 자가 없다 라는 말이 경우에 따라서는 맞을 수도 없고, 틀릴 수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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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5-1. 네. 그것은 본 사람이 없다고 말할 때는 성부 하나님을 말하는 거죠. 본 사람이 있다 라고 하는 것을 성자를 말하는 것이고, 반면에 모세가 하나님을 봤는데, 하나님을 본 자가 없다고 하느냐? 하는 것은 얼굴을 봤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 면전에, 그런 뜻이겠고, 70인 장로도 하나님을 본다는 것이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대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큰 영광이 나타났을 때 그때는 구름가운데 불가운데 그런 모습이지, 실제로 하나님 얼굴 윤곽을 본다든지 그렇게 본 것을 아닐 거로 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보고,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자가 없다. 하나님을 보고는 살 자가 없음이라. 그 엘리야 같은 분도 보고 싶어했죠. 호렙산 가서 보고 싶어하니까, 얼굴을 보면 안되고, 내 뒷모습만 봐라. 바위틈에 숨어가지고. 바위틈에 숨으면 잠시 이만큼밖에 안보일꺼에요. 샥 지나가면 뭐가 지나갔는지 몰라. 지나가긴 했는데, 뭐가 지나갔는데 그 하나님을 볼 수 없고. 볼 수 없는 건 하나님 입장이 곤란한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이 죽어버리니까. 보는 사람을 배려해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또 우리 육안으로 만약에 하나님을 봐버렸다. 그 봐버리면 그리고 만들고 정신없을 겁니다. 목적은 거기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하나님을 봤다고 그러면 요즘 같으면 디지털 카메라 사진 찍어가지고 그 사진 보고 주느라 아무 일도 못할 거에요. 그래서 어떤 얼굴을 본다할 때, 그 얼굴이라고 하는 것은 꼭 얼굴, 눈, 코, 이런 모습이 아니라, 쉐키나 하는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앞에서 이렇게 보면 되겠어요. 그래서 음성이 들려서 대화했다고 하는데, 모세는 그 음성을 들었지만, 다른 백성들은 멀리서 들어서도 죽겠다는 거야. 제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지 말고, 모세를 통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렇게 한건데, 모세가 하나님과 얼굴 대면하여 말했다는 그런 말은 있지만, 어느 정도로 얼굴을 봤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 불가운데, 딴 사람은 먼데서만 들어서도 듣고 봐도 죽을 것 같았는데, 모세는 그 앞에 가까이에서 면전에서 이야기했다는 뜻이지, 꼭 우리처럼 얼굴과 얼굴을 면대해가지고 뭐 이런 대화가 있었다고 보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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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5-2. 추가적으로 한 개 더 왔습니다. 그 여호와의 사자랑, 그 세 명의 천사가 아브라함을,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기 전에 아브라함을 방문하지 않습니까? 그때 저희의 추측상으로는 여호와의 사자도 있고, 그때에 하나님도 계셨다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판단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접근을 위해서 하나님을 보면 죽으니까 접근성을 위해서 그렇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오신 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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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5-2. 대개 이제 인간의 모습을 하고 땅에 까지 내려오고 한 경우에는 스가랴서라든지, 아니면 사사기의 삼손 집에 왔다든지, 기드온 찾아 왔다던지 할 때, 그 때 여호와의 사자는 일반 천사하고 달라요. 보통 일반 천사가 그 여호와의 사자 앞에 가서 보고하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 앞에 의견을 품하고 이런 모습인데, 그런 경우에 여호와의 사자는 특별한 사자, 즉 예수님이다. 성경 학자들의 견해는 이렇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모습으로 하고, 인간에 대해서 특별히 애정을 가지고 찾아오고 이렇게 하는 분은 예수님이 아니냐. 그것이 성경학자들의 견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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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6. 출애굽기 30장 12절에 보면, 그 말씀에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따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찌니, 이는 그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온역이 없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왜 계수를 할 때, 속전을 드리지 않으면 온역이 따르는 것입니까? 그리고 이후에 보면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합니다. 다윗의 실수가 교만한 마음으로 계수한 것 때문인가요? 아니면 생명의 속전을 드리지 않아서 인가요? 이 부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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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6. 네. 문제를 한데 묶지 말고, 묶으면 복잡하니까. 하나만 하면 속전이라고 하는 것은 반세겔 내고 했던 건데, 어디까지 오냐면 예수님 때도 그 반세겔 왜 안내느냐? 베드로에게 성급하게 내신다 했던 바로 그 속전입니다. 그리고 이 속전이란 것은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속했다. 소속됐다 하는 의미로 드려지는 건데, 지금은 우리가 속했다는 것이 교적부에 속하기도 하고, 세례받아 속하기도 하고, 이렇게 소속감을 가지고, 지금 그 정신에 의해서, 따라서 내는 것이 주일 헌금이에요. 이것은 성막 유지관리 이런데 썼습니다. 성전세 하는 것이고 속전하는 것은. 그래서 우리가 정말 그 1년에 한차례씩 그 사람들은 속죄를 하죠. 속죄를 할 때 성전과 성막과 이 전체가 유지관리되면서, 그 최고의 정점은 성전이 유지 관리 보수되어 가지고 어디까지 가냐면, 속죄하는 데까지 가요. 물론 그 제물은 제물대로 바치지만, 그 성전, 성막 전체가 유지 관리되는 것은 별도로 내는 거에요. 예를 들어서 일반 사람들이 내는 십일조는 레위인들의 생활비고요, 혹은 제사장들의 생활비로 하는 것이고요, 성전, 그들의 죄를 속하는 모든 성막 중심으로 하는 모든 시설의 유지 관리, 보수, 영선, 이런 전체는 성전세라고 하는 속전을 내가지고 그걸 가지고 하는데, 우리도 사실은 회계가 정확하게 그리 잘 안됩니다만, 주일 헌금 그걸 따로 모아가지고 감각상각비도 적립해나가고, 유지관리, 에너지 전체가 주일헌금 가지고 해요. 그것은 부자라고 더내지도 말고, 가난한 자도 덜내지도 말고, 똑같이 금액이 뭐, 일년 중에서 반세겔 하는 게, 장정의 4일분 노동치라고 하니까, 1년 3차 내거든요. 성전세를 3차 내면 1세겔 반인데, 1세겔 반이면 한 열명에서 열두명되는 노임되는 금액이에요. 제가 오래전에 계산을 해보니까, 6,7만원 하면 60만원하고 한 7,80만원 정도되는 거라. 그걸 갖다가 52주간에 갖다가 나눠내면 주일헌금을 우리가 15,000원 정도 내야 될겁니다. 12,000원 이상 해야 그게 맞는 얘기라. 그런데 내가 잘 모르지만, 우리 주일헌금이 1인당 12,000원 안내는 것 같아요. 그렇죠? 속전을. 그러니까 그 원래 속전의 원리는 속죄가 이뤄지는 그 제단, 성막의 관리비용으로 보면 되겠고요, 그래서 해마다 내야 해요. 이용할 때마다. 그리고 십일조 같은 것은 레위인, 제사장 생활비로 드려지고, 헌물도 마찬가지. 그런 것은 성서사전을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나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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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윗이 한 것은 순전히 교만이죠? 교만인데, 다윗의 왕실의 권위가 땅위에 떨어졌어요. 짐작하시죠? 왜 떨어졌는지. 우리아 아내 사건으로 인해가지고 왕자들간에 칼부림이 나고, 나중에 압살롬이 아버지에게 덤벼가지고 나라가 엉망이 되고, 세바와 살문나가 이리 해가지고 얼마나 소용돌이를 치고 이리하다보니까, 국력도 많이 소진되고 나라가 막 이렇게 흔들리는데, 그래도 다윗이 은근히 ‘내가 이만큼 회복해 가지고...’ 이런 생각이 자꾸 나는 거에요. 그런데 그걸 나중에 자꾸 세보려고 하니까, 요압이 뭐라고 말리죠? ‘아니,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면 이보다 더 줄 수도 있는데, 뭘 꼭 세보려고 하느냐?’ 그런데 못말리죠. 그러니까 다윗이 사단에게 충동되었을 때는 요압보다 못한 거에요. 사람이 그 자존심이 깨지거나, 아니면 교만이 들뜨거나, 여러분, 자존심이 깨지면 누구처럼 자살도 할 수 있어요. 사람이 남자에게 있어서 자존심은 생명과 같은데, 그게 깨지만 자살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교만이 들뜨면 다윗같이 실수한다는 거에요. 괜히. 그러니까 이렇게 사탄이. 역대기에 가서 보면 사탄이 충동질했다는 거에요. 혹시라도 우리가 자존심이 상하거나 하지 않도록, 특히 우리 부인들이 조심해야 되요. 부인들이 잘 실수하는 게, 손으로 남편 때리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요즘 그런 사람 있다 합니다만, 손으로 남편 때리진 않지만, 말로 남편을 상하게 해가지고, 자존심을 바닥까지 떨어지게, 자존심 은행계좌에 잔고가 하나도 안 남게, 그렇게 하면 남자는 자살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럴 수 있다는 거에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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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교만해가지고 우쭐거리고, 뭘 좀 하면 교만하고 그러는데, 그런 것도 위험한 생각이에요. 항상. 그래서 뭘 했다손 쳐도 하나님 은혜지, 그게 뭐 자기가 잘나가지고 우쭐하는 그런 것은 심히 경계할 문제라고 봅니다. 그거 속전 안낸다고 하나님이 사람 죽여버리고 하면 다 죽여야죠. 지구상에 있는 사람 전부다. 요즘 그런 운동하고 다니는 사람 있어요. 목사가. 성경에 짜먹을 건 다 짜먹고 성경에 아직 안짜먹은 게 있는데 성경대로 하면, 속전이란 게 있으니까, 그걸 안내기 때문에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안된다 하고 그런 집회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미리 말씀드리는데, 그건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 때문에 사람 죽이고 하는 건 아니고, 다윗을 죽여야 될텐데? 왜 그런 걸 질문한 문제죠. 다윗이 실수했는데 왜 7만명이 딴 사람이 죽었느냐? 네. 그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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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7-1. 네 다음 질문 드리겠습니다. 출애굽기 15장 15절에서 17절에 보면, 안식일에 대한 명령이 나오는데, 거기서 이제 좀 생각해볼 게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 우리의 토요일에 안식일에 지키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금요일 해지는 때부터 토요일 해지는 때까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주일을 지키고 있는데요, 창조원리에 따라 우리도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지키는 것이 기존의 시간대로 주일 지키는 것보다 더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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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7-1. 네 이것은 우리가 한번 우리 교회 주보에 한번 나간 적이 있었죠? 안식일과 주일,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가. 중요하기 때문에 부목사님이 내셨는데, 차라리 그냥 안식일 하려면 안식교 하는 대로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 그렇게 하지, 뭘 꼭 주일 만들어가지고 속을 썩이느냐? 이게 더 좋은 질문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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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7-2. 저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원리가. (창조원리가 금요일 해질때부터 토요일 해질때 이게 유대인들이야.) 유대인들이 그렇고, 주일을 지금 아침 00시부터 밤 24시까지로 주일을 인식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일 시간이 토요일 저녁부터 주일 저녁까지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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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7-2. 저도 생각을 안해 봤는데, 왜 안식일에서 주일로 바뀌었는지가 더 큰 문제에요. 그것만 해도 한 학기는 공부해야 될 정도로 복잡해요. 제가 주보에 한번 낸 적이 있는데, 이 말이 났으니까, 지금 안식교가 뭐라고 하고 있느냐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일요일 휴업령을 내려가지고 때와 날짜를 변개했다. 그때까지는 안식일을 지켰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에 그 안식일을 주일로 바뀌었다. 로마의 태양신을 섬기는 날로 바뀌었다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교회를 막 공격해가지고, 성도들은 모르니까, 아, 정말 그런가보다 하고 또 거기 넘어가면 옳은가 보다 그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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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은 주일 지키는 날을 두가지로 불렀습니다. 첫째는 주의 날, 퀴리아키 헤메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말인데 주의 날 이렇게 하는데가 있고, 그 다음에 안식후 첫날 하는데가 있어요. 안식후 첫날 하는데가 성경에 몇 번 나오고, 그 다음에 사도시대에서 속사도시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는 제 팔일이라는 말을 써요. 요새는 제팔일 안쓰죠? 제 팔일이 아니고, 주중 첫날 이렇게 하잖아요. 우리는 주중 첫날 하는데, 초대교회에서는 안식후 첫날을 제8일이라고 해가지고, 우리가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죠? 유대인들이. 제 8일해가지고 그 주일 지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8일이란 말까지 쓰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게 제8일이고, 승천하신 게 제8일이고, 성령강림이 제 8일이고, 할례가 제8일이고, 제 8일 막 그렇게 해가지고 주일 지키는 것을 강변하는 그런 문서들이, 그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부터가 아니라 훨씬 그 이전부터, 다시 말하면 사도시대부터 속사도시대로 넘어가는 1세기말에서 2세기로 넘어가는 그때부터 이미 그런 문서가 이미 있는데, 그 안식교 학자들이 그런 문서를 안 받아들이는 거에요. 왜 안받아들이냐면요, 성경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문서는 가치가 없다. 이래서 안받아들인다는 거야. 암만 역사적 사료가 있어도 성경이 아니면 우리는 인정하지 않겠다 하기에 대화가 안되죠? 그래서 저는 반드시 성경과 역사. 물론 역사가 날조된 역사라면야, 그건 가치가 없어요. 그러나 날조되지 않은 역사란 것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안식교인들하고 이야기를 하면, 그 문제가 대화가 안되는 거라. 저는 날조되지 않은 역사라고 할 때는, 콘스탄티누스가 변개했다. 그건 성경에 안 나오잖아요? 자기들의 교리를 정당화할 때는 역사를 인용하고, 우리가 우리 것을 정당화할 때는 안 받아들이겠다. 성경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대화가 안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지금 그런 사람하고 대화를 안 합니다. 안 하는데, 우리는 알고 있어야 돼요. 또 어떤 날 누가 와서 이런 문제가지고 푹 찔러가지고, 창조원리대로 하면 주일 지키는 게 아니고, 유대인들 대로 안식일 지키는 게 맞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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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성경에 66권 안에 주일성수라는 말이 없습니다. 주일날 모여서 떡을 떼고 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약시대 안식일 지키라는 명령은, 안식일을 어기면 돌로 쳐죽이는 수도 있었어요. 그렇게 그런 법은 아니고, 우리가 지금 매주 첫날에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 명령에 의해가지고, 예수님 계명에 의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하나님께 그런 계명을 우리가 그렇게 하겠다고 자원해서 만든 절기에요. 만든 시간입니다. 물론 예수님 부활한 걸 기념해서 예배드리지만, 부활한 걸 기념해서 예배드리라 이렇게 한 곳 없어요. 우리 교회가 그렇게 해야 되겠다고 성령과 교회가. 신약시대 중요한 결정은 성령과 우리는 이렇게 이렇게 결정했다 하고 선포해요. 사도행전부터 그렇죠?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다른 짐을 지우지 않는 것이 가한 줄 아노니.’ 이렇게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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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러분, 그 세례 받을 때 그렇게 아마 서약을 했어요. 교회가 정한 헌법과 12신조와 대소요리문답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고 이렇게 하는데, 그 교회가 정한 예배 모범 속에 매주 첫날에 정한 시간에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걸, 공예배를 성실히 드리기로 하고 우리가 자원해서 약속한, 교회가 성령의 지도를 받아서 그렇게 만든 것이지, 성경에 주일 성수하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말이 나오면 고신측에서 발끈합니다. 저 노목사가 무슨 신신학 자유주의 해가지고 주일성수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지 말라는 게 아니죠? 사실을 말하면, 성경이나 그 어떤 성경에 쓴 율법이나 신약성경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렇게 정한 거에요. 우리가 드리기로.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위에서 말한 것이고, 신약시대에는 우리가 우러나서 그렇게 정한 시간에 예배드리겠다고 정한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했으면 또 우리가 약속한 것도 지켜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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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보면 쌍방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안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가지고 우리에게 이렇게 이렇게 해주겠다는 거에요. 이게 은혜의 언약,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의 언약이란 것은 우리가 어떻게 어떻게 하면이 아니고, 그냥 일방적으로 ‘내가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해주겠다. 네 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해주겠다.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해주겠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어떻게 하면 이란 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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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처럼 우리도 철이 들어가지고 교회가 하나님께서 이미 베푸신 은혜가 너무 크고 감사하기 때문에, 주일 성수하면 복받는다 그런 게 아닙니다. 한번도 그런 적이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주님 부활하신 날에 모여서 한 마음으로 예배드리겠다. 하고 우리가 교회가 정한 거에요. 성령께서 지도하여서, 성령의 감동하는 지도하에서 우리가 정한 것을 우리가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갖고 주일 성수 안하면 꼭 그걸 갖다가 왜 안식일 범하느냐! 보통 보수교단에서 그런 식으로 옛날에 윽박지르고 했는데, 교회 역사를 잘 모르니까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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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여기 몇가지 예를 들어보면, 안식일 문제를 주일 넘어가는 얘기를 할 때, 사도 요한의 직 제자요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었던 이그냐티우스가 2세기 사람인데, 그가 남긴 편지 중에 마그네시아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들은 더 이상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았고, 주일을 준수하는 새 희망을 소유하게 되었다.’ 하는 문구가 나와요. 그 다음에 2세기 초엽에 기록된 기독교 예배 지침서 디타케라고 하는 사도 교훈서이라고 하는 거기에 기록되기는, ‘그러나 매주 주일마다 모여서 떡을 떼고 너희 제사가 순결하게 되도록, 너희의 범죄를 고백한 후에 감사를 드리도록 하라.’ 이렇게 아주 초기 문서에 이런 지시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2세기 초엽에 위경이긴 하지만 바나바서신이란 책이 있어요. 외경도 아니고 위경입니다. 가짜 경전이긴 해도 역사적으로는 가치가 있는 거라. 역사적으로. 경전적 가치가 있는 게 아니고.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제 8일을 기쁨으로 지킨다.’ 이런 구절이 역사적으로 나온다는 겁니다. 주후 112년 폰투스하고 비두니아 지방의 총독 플리니우스라는 사람이 트라야누스 로마 황제에게 보고하기를 ‘그들은 지정된 날에 동이 트기 전에 만나서 교송으로 신과 그리스도께 맹세함으로써 결속하는 관습을 행하였습니다. 이 맹세는 어떤 범죄를 위한 맹세가 아니라, 강도질, 간음, 신앙의 위반을 금하고, 기탄물(?)이 요구가 될 때 그것을 거절하지 않기로 맹세하였습니다.’ 하고 역사적 사료가 있습니다. 다섯 번째, 순교자 유스티누스가 제 3세기 중엽에 일요일이라는 날에 모이는 기독교 집회의 예배 순서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순서를 보면, 성경봉독, 설교, 기도, 주의 만찬 의식과 헌금 봉헌이 있었다. 이렇게 합니다. 역시 주의 날에 모였다. 그러니까 안식교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4세기 초, 313년 콘스탄티누스 이후에 그런 것이 규정된 게 아니라, 사도들 시대부터 속사도 시대로 넘어오는 일찍부터 초기부터. 처음에는 안식일하고 병행을 했어요. 안식일 집회도 가고 주일 집회도 가는 거야. 그래가지고 나중에 주일 집회하고 이중으로 드려지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한거라. 유대인들이 자꾸 떠드는 할례를 자꾸 주장하고 하니까, 분리가 일어나게 되고, 두 번이나 모일 필요가 없고, 회당 때문에. 회당이라는 장소 때문에 유대교 모이는 곳에 가다가 점점 이방인 수도 늘어나고 하니까, 교회는 따로 모임을 하면서 그 모임을 주일 하나만 지키는 걸로 해왔습니다. 이렇게 된게 어떤 결정적인 종교회의에서, 몇 년도 몇월 무슨 회의에서 안식일을 폐하고 주일만 지킨다 이렇게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게 없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이게 정착되어버렸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생각해볼 때, 한국 교회는 어차피 지구의 자오선이라는 게 있어가지고, 미국 지키는데 우리는 안 지키는 거에요. 그렇죠? 시간 어차피 안 맞습니다. 그 지키는 것은. 그리고 우리는 하루 먼저 와요. 이스라엘 땅보다 거의 하루가. 그래서 이것은 어느 토요일이나. 토요일 하는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금요일도 없어요. 일요일도 없는 거라. 몇 번째 날이 있을 뿐이지. 몇 번째 날이 어디서부터 몇 번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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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아무 의미가 없고 한가지 주일을 만들어 지킬 때 기본 정신은 하나 있습니다. 그 기본 정신이 뭐냐. 사람이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안식이 필요하다. 휴식이 필요하다. 즉 육체적 노동이란 것은 엿새쯤 일하면 하루쯤 쉬어야 된다는 거야. 그 원칙은 창조원리에서 존중되어야 되겠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가 유대인들처럼 안식,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이 아니라, 주일에 주님 부활하신 날에 모여서 예배하는 거에요. 쉬는 게 아닙니다. 유대인들 안식은 예배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쉬는 거에요. 집에서. 우리는 쉬는 것만 아닙니다. 예배하는 거에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이해하셔야지, 유대교가 갖고 있는 안식일 개념에 안 맞는다고 해가지고 엉뚱한 소리하면 역사를 너무 몰라서 하는 소리죠. 그래서 안식일 문제, 주일 문제 이것은 언제 더 요약을 하던지 해서, 따로 한번 특강을 하도록 할 맘이 있습니다. 그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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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8. 출애굽기 마지막 질문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데, 그 장소가 성전의 성막과 성소 내지는 지성소에서 대화를 나누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은 성막이나 성전을 만들든지, 잃어버린 언약궤를 새로 만들든지, 아니면 없더라도 레위기에 기록된 대로 여러 가지 것을 해야 되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리고 이스라엘 땅에 새로이 성전이 세워진다면 그 설계도가 솔로몬 성전일지, 스룹바벨 성전일지, 헤롯성전일지, 아니면 에스겔 성전일지, 목사님께서는 어느 성전의 설계도를 사용할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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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8. 제가 할 것은 아니고요. 예. 왜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도 없고, 제사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느냐 하는데, 그들이 두 번 그러니까, 처음에 솔로몬 성전이 없어졌을 때, 바벨론에 가가지고 성경을 보기 시작했어요. 성경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번제가 아니라, 번제를 원하시는 게 아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이렇게 알았다는 거에요. 바벨론 포로되어 갔을 때. 야, 우리가 하나님을 알자.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느냐? 그것은 성경을 읽어보는 길 밖에 없다. 그래서 성령을 읽어보고, 해석하고, 가르치고 하는 것이 성전이 없을 때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 예배다. 그렇게 해서 회당 예배라는 것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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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다시 이들이 또 다시 각성하기를 AD.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죠? 파괴되고 예루살렘와 나라 자체가 다 파괴되었을 때, AD. 90년경에 얌니야 회의라는 게 열려요. 유대인 랍비 회의입니다. 얌니야 회의에서 시작해서 135년 바로코크바까지 이어지는 것까지, 90년에서 135년이면 한 20, 30년. 그러니까 성전 불타고 없어진 걸로 하면 한 50년 넘게, 그 어간에도 유대인이 다 없어진 것이 아니고, 팔레스타인에 남아있었어요. 남아있었을 뿐 아니라, 자기들을 위해서 회당을 하나 짓는 것까지는 허락을 해달라. 해가지고 로마 황제의 재가를 얻어가지고 얌니야에 회당을 만들었습니다. 회당하고 학교만큼은 허락해 달라. 그래 허락받아가지고 그들이 이제 예루살렘 성전이 없어졌으니까 우리가 제사도 못 드리고 어떻게 하느냐. 하고 다시 그들이 성경을 들여다보니까,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인애다 인애. 인애가 뭐냐면 자비. 헤세드. 친절. 사랑. 영어로 Loving Kindness. 친절한 사랑, 이런 것이 제사보다 낫다. 이걸 발견한 거에요. 그래서 그들이 다시 형제를 돌보는 것이 제사보다 낫다 해가지고, 거기 다시 언젠가 자기들 손으로 예루살렘 터에다가 유대인 손으로 유대인 성전을 질때까지는 동물 제사는 중단되고, 인애가 참 제사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도. 그들의 동포애라는 것은 끔찍하게 합니다. 그 유대인들의 인애. 동포애란 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그렇게 해요. 우리만 미워하지, 자기들끼리는 너무너무 사랑하고 공동체를 잘 이루고 그렇게 해요. 다시 예루살렘에 성전이 지어질 때는 전혀 다른 성전을 지을텐데, 제가 주장할 만한 것은 아니고, 제 짐작으로 말해도 괜찮죠? 어차피 다 짐작이니까. 제 짐작으로 볼 때는 로마 베드로성당을 능가하는 성전을 짓지 않겠는가. 유대인들의 건축 기술이 세상에서 뛰어나거든요. 돈은 세계에서 제일 많으니까. 그리고 다른 모든 종교가 전부 이슬람의 메카에 그런 어마 어마한 신전이라든지, 성베드로 성당이라든지, 그 러시아에 가면 이삭 성당이라든지, 스페인의 톨레도 대성당, 이런 것 보면 그야말로 어마 어마한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돈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데, 솔로몬 성전은 그리해봐야 우리 예배당 요만큼만 안하거든요. 요렇게 초라하게 안 짓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서에 있는 것도 별거 아니야. 스룹바벨에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야말로 제가 짐작하기로는 지구상에서 어떤 신전, 어떤 성전, 어떤 성당보다도 더 웅장하고 아름답고 그렇게 짓지 않겠나. 그래서 그걸 보고 죽을 수만 있으면 한이 없을 거 같애요. 틀림없이 제 생각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또 그 터는 지금 현재 황금 돔 성전이라는 그것 때려 부수고 그 위에만 짓지, 딴 데는 안 짓습니다. 딴 데 지으려고 하면 벌써 짓고 남았죠? 돈이 없어서 안 짓는 거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것이 부서지는 것이나, 새로운 성전이 세워지는 걸 본다면, 세계사의 3대 쇼라고 하죠. 베를린 장벽 무너진 것하고, 거기 오말 성전이 부서지고 유대인 손으로 새성전 짓는 것하고, 우리나라 남북통일 되는 것, 이 세 가지만 보면 근대사의 3대 쇼를 다 보는 것인데, 그런 대단한 성전이 지어질 걸로 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시간 문제일 뿐이지, 언젠가는 그것이 지어져야 되겠고, 거기가 세워지게 되면 그 사람들은 이미 세계를 세계정부로, 지금 WTO라든지, WHO라든지, 전부 W가 붙어있는 것은 전부 세계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거든요. 세계화. 제일 세계화는 WWW죠. W가 또 WW니까. 그래서 온 세상을 완전히 하나로 만들어서 통치하려고 하는 그 세계 정부의 수장되는 적그리스도가 거기 앉아가지고 자기를 보여서 하나님이라고 할 때까지 그런 걸 보게 될텐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종말론 특강이 있으니까, 거기서 좀더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되어서 이제 그만 마쳐야 되겠죠? 사무엘까지 하려면 내일까지 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도 뭐 할 것은 해야 되죠. 그렇죠?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고, 다음 주간에 종말론 한 후에, 여러분이 계속 문제를 제기하면 원고는 제가 계속 써나가고, 그렇게 해서 난제가 다 정리되게 하겠습니다. 같이 기도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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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어보니까 출애굽기 정도까지밖에 살피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에 있는 문제들도 우리가 좀더 생각하고, 좀더 살펴서,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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