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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죄악의 잔재정복 2 (삿 1:4-10)

에반젤(복음) 2021. 12. 27. 05:59

죄악의 잔재정복 2 (삿 1:4-10)

 

4.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 5.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죽이니 6.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 7. 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8.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 성을 불살랐으며 9.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10.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오늘 분문은 유다지파와 시므온지파가 연합해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친 내용입니다. 이처럼 두 지파의 잔재정복 전쟁은 조금씩 성과를 거둡니다. 이 잔재정복전쟁은 우리에게도 죄악의 잔재를 처리하는데 여러 힌트를 줍니다. 잔재 정복 어떻게 합니까?

 

4. 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6절에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끊으매" 그랬습니다. 여기 아도니 베섹은 베섹에 사는 브리스 족속의 왕입니다. ‘아도니’라는 뜻은 ‘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베섹의 우두머리’, ‘베섹의 왕’이라는 의미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베섹의 의미도 있습니다. ‘깨뜨림’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아도니 베섹이 깨뜨리는 데는 명수였습니다.

 

그 예로 7절에 나오듯 아도니 베섹이 무려 70명의 왕들을 깨뜨렸습니다. 얼마나 포악했는지 70명의 왕들을 차례로 정복하여 모두 수족의 엄지를 잘라 자기 상 아래서 음식을 주워서 먹게 했습니다. 몇 왕을 그랬다면 다른 왕들은 빨리 그 수법을 파악하여 당하지 않아야지 모두 차례로 당했습니다. 당하는 줄 알면서 당하고 또 당하고, 이게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수족의 엄지를 잘랐습니다. 발의 엄지를 자름은 걷지 못하게 함이요, 손의 엄지를 자름은 창 칼 화살 등 무기를 쓸 수 없게 함입니다. 그렇게 전투력을 무력화시켜 왕노릇을 못하게 하고 모두 구걸하는 걸인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들을 이용해서 조공을 바치게 한다면 더 좋았을 텐데 거기까지 머리가 미치지 못했습니다.

 

브리스 족속들이 그렇습니다. “브리스”란 '시골뜨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이름이 붙여질 만큼 깊은 산골에서 농사와 소작만을 고집하며 문화와 문명과 등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상투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산 위에서 살았는데 산 아래를 내려와본 사람들이 없을 만큼 거길 떠나면 안 되는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종교적인 이유로 한 곳에서만 머물러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브리스의 또 다른 의미는 ‘성벽이 없는 성읍의 거주자들’이란 뜻의 ‘페라조트’에서 유래한 호칭인데 이들은 성벽도 쌓지 않고 군대도 없고 보호기능이 없이 사는 사람들입니다. 침략하지 않는 건 좋지만 침략을 당해서는 안 되죠. 그래서 악한 아도니 베섹에게 정복당해서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무지의 결과입니다. 70명의 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칠십 명의 왕들은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칠십 명의 제자들에게 영권을 주셔서 나가서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게 했습니다. 제자들이 다녀와서 '예수님 병이 고쳐지고 귀신들도 항복하더이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18-20) 하셨습니다. 왜 제자들의 말 끝에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셨을까요? 예수 믿어 구원 받은 자는 다 이런 능력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예수 믿는 성도는 영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막16:17-18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무지한 브리스 사람들처럼 나는 능력을 못 받아서, 나는 믿음이 없어서, 죄도 이길 수 없고 아무 것도 못한다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야가 특별한 사람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니까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약5:17-18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무지하니까 못 받은 줄 압니다. 엘리야처럼 열심히 신앙생활하면 다 됩니다.

 

그걸 알고 그대로 해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였습니다.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한 다음에 엘리야 몸에서 떨어진 겉옷 하나와 자기만 남았습니다. 그는 그 겉옷을 가지고 요단강 앞에서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물을 치자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널 수 있었습니다. 해보니까 되더라는 것입니다. 무지 때문에, 가르쳐 줘도 말을 깨뜨림 때문에, 우리 속의 악을 정복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도 사용하지 못한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을 가지면 아브라함이 되고 바울의 믿음을 가지면 바울이 됩니다. 초대교인들과 똑같이 하면 똑 같은 능력을 받습니다.

 

그런데 유다지파의 군대에게 잡힌 아도니 베섹이 어디에서 죽습니까? 7절에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예루살렘이 어디입니까? 신앙의 성지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곳입니다. 예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장소요, 사2:3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라 했습니다. 말씀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거기 오면 무지와 무능력과 난폭이 죽습니다. 늘 말씀 보세요. 무지가 사라집니다. 늘 기도하세요. 무능력도 불신앙도 사라집니다. 슬픔과 고통도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도대로 진리를 믿고 늘 엎드리면 죄도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잔재정복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것입니다.

 

5. 말씀과 기도로 잔재를 정복하시기 바랍니다.

 

8절에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성을 불살랐으며" 했습니다. 여기 예루살렘은 장차 거룩한 도성이 될 성지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을 취하는 일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루살렘 성은 여리고 성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견고한 성입니다. 예루살렘은 평지인 여리고와는 달리 삼면이 깊은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 면도 험한 산곡과 겹겹의 성곽에 둘러쌓여 있는 난공불락의 도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다윗이 이 성을 정복할 때 접근할 틈을 찾지를 못해 수구를 통해서 정복하는 기상천외한 특공작전을 벌입니다. 그리고 로마가 가장 어렵게 정복한 성이 바로 예루살렘 성이었습니다. 그래도 함락된 것은 축제를 이유로 100만 명이 넘게 그 좁은 곳에 모였기 때문에 먹을 것이 없고 병들어 장사할 힘도 없어 저항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도 5개월 버텼으면 대단한 것입니다. 그 만큼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죄악의 잔재 정복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것처럼 어렵습니까? 어렵다면 오늘 분문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유다지파가 예루살렘을 정복할 때 무슨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칼날과 불로써 정복했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난공불락 도성을, 그것도 철병거와 쇠로 만든 칼을 가진 그들에게, 청동기시대의 동칼과 불쏘시게 가지고 접근했다니,

 

번번이 승리하던 십자군이 전쟁에서 진 것도 상대방이 십자군의 칼을 무력화시키려고 십자군의 칼보다 강한 칼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장군의 명검을 만들듯 철을 겹치고 겹치고 또 겹치되 사이 사이에 강철을 넣어 불어 넣고 망치질하기를 계속하여 강하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칼을 만들었습니다. 칼이 좋기 때문에 겁 없이 다가가 칼을 휘둘러 십자군의 칼을 두 동강 내버렸습니다. 그런데 동칼로 어떻게 예루살렘을 정복합니까?

 

그이처럼 발전이라고는 1도 안 된 원시적 방법으로 난공불락의 도성을 정복했습니다. 성경이 그걸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어떤 메시지입니까? 칼은 성경말씀이요, 불은 성령이니 기도를 의미합니다. 말씀과 기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발전이 안 된 방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승리자라는 말씀을 믿고, 불은 성령이니 열심히 기도해 보세요. 기도가 부족하니까 늘 넘어집니다. 기도가 부족하니까 죄악이 뿌득뿌득 뚫고 나옵니다. 그래서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의 복음에 서서 몸 바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6. 죄악의 잔재처리는 저 높은 곳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10절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한 가나안 사람들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여호수아 14장을 보면 아르바는 가장 큰 거인이요 우리 육적인 모습을 상징합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 갈렙에 의해 처단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그 아낙의 소생 세 사람을 죽이는 사건이 나타납니다. 그 세 사람이 바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입니다.

 

이 세 거인들의 이름을 연구해 보면 대부분 우상의 이름입니다. 세새는 ‘태양신’, 아히만은 운명의 신인 ‘메니의 형제’, 달매는 ‘둑, 고랑, 이랑’의 뜻으로 농사를 신으로 알고 사는 사람입니다. 육적인 예표에다 우상의 이름이라면 골3:5의 “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아낙의 소생 셋은 3이니까 완전수라 보통 강한 것이 아닙니다. 삼겹줄은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했습니다.

 

육적인 삼겹줄이 요일2:16에 나타납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을 에던동산 이후 자기 이름으로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고 가는 모든 세대의 온 인류가 미혹에 빠져 지옥을 향해 달려갑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헤브론은 ‘연합, 동맹’, 기럇 아르바는 ‘네 구역의 성읍’ 혹은 ‘유명한 네 사람의 성읍’이라는 뜻입니다. 그 유명한 사람들이 동서남북에서 동맹을 맺고 연합군을 편성했으니 이기기 쉽지 않습니다. 원래 연합군은 합동작전에 취약해서 실패하기 쉬운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스스로 분열한 적은 없습니다. 거기다 헤브론은 가나안에서는 가장 높은 지대로 해발 약 927미터나 됩니다. 그런데 전에 갈렙이 올라가서 이겼고, 유다지파가 2차로 또 올라가서 이겼습니다.

 

여기에 승리의 비밀이 있습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땅의 것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의 것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와도 다윗도 땅에 것을 바라보는 순간 넘어졌습니다. 천하의 장사 삼손도 넘어졌습니다. 눈과 귀를 세상에 내주는 순간 집니다. 그러므로 죄를 멀리 하시고 늘 성경 보고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꽉 채우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하지 않으면 주님을 모실 수 없고 예수님의 사랑 받는 신부도 제사장도 왕도 되지 못합니다. 백보좌의 심판대처럼 우리 마음에 악의 잔재를 처리하는 그 기능이 살아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을 알고, 기도에 힘쓰고, 세상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 나라 바라보며 저 높은 것을 향해 날마다 나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