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과 아비멜렉[창 20장]
[내용개요]
본장은 믿음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아브라함의 두번째 실수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기록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사건과 위기에 처한 아브라함을 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주고 (1-7절), 아비멜렉이 자신을 속인 아브라함을 질책한 것과 하나님의 은혜로 아브라함이 더 큰 축복을 얻은 결말을 기록하고 있다(8-18절). 본장은 결국 인간의 구원이 인간의 인격이나 지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렸음을 보여 주고 있다.
[강 해]
본장은 아브라함이 가데스와 술 사이에 있는 그랄로 이주한 직후에 발생한 실수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는 자기 아내 사라를 그랄 왕에게 줌으로써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이는 그가 이십사 년 전 애굽에서 저질렀던 실수의 재현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허물을 덮으시고 그랄 왕이 범죄하지 못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1 . 아브라함의 두번째 실수
1) 그랄로 거처를 옮김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 살던 아브라함은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에 있는 그랄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거처'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이곳은 팔레스타인 남부, 사해 서쪽에 위치하였던 조그마한 성읍입니다(참조, 창10:19) 이곳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기근을 피하여 내려갔던 땅이기도 하며(참조, 창26:1-6), 또한 훗날 아사 왕이 구스 군을 추격해 왔던 곳이기도 합니다(참조, 대하14:13).
a. 그랄로 옮김(창20:1)
b. 연약한 믿음(마8:26)
c. 기근을 피하여 간 그랄(창26:1-6)
2) 거짓말하는 아브라함
그랄로 거처를 옮긴 아브라함은 그 곳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눈에 보이는 인간적 위협들을 물리친다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많은 크리스챤들이 믿음을 잃고 수치를 당하며 타락하게 됩니다.
a. 죽음의 공포로(히2:15)
b. 거짓이 사람을 속임(렘9:8)
c. 거짓말은 진리와 거리가 멀어(요일2:21-27)
3) 하나님의 간섭하심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랄 왕 아비멜렉은 사라를 취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꿈으로 나타나셔서 그의 하는 일이 부당함을 지적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로 말미암아 아비멜렉의 집안에는 불임의 화가 미쳤으니 이는 결국 '네가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적으로 적용된 것입니다. 사라를 보호하는 이 같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간섭은 장차 태어날 이삭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a. 전능하심(렘32:17)
b. 전지하심(요일3:20)
2. 아브라함이 책망을 받음
1) 두려워하는 아비멜렉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아비멜렉은 이튿날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신복들 앞에서 시인하고 그들을 주의시켰습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의 겸허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a. 모두 다 응함(수23:14)
b. 심판의 시간이 임박함(계14:7)
2) 아브라함을 책망하는 아비멜렉
신하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그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켰던 아비멜렉은 이제는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나와 내 나라로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다'고 책망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거짓된 말과 행위로 말미암아 아비멜렉은 간음죄를 범할 뻔하였습니다. 뿐만 실제로 곧 신성 모독죄를 범하였습니다.
a. 미혹이 사람을 속임(고후11:4)
b. 선을 행치 않음(시53:1)
3) 아브라함의 변명
아비멜렉의 책망에 대해 아브라함은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이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은 악을 쉽게 저지를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에게 닥칠 화를 두려워하여 거짓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불신자의 행위를 두려워하여 거짓말을 한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잘못이었습니다.
a. 여호와를 거스름(사32:6)
b. 마음이 약한 자(살전5:14)
3. 환난 중에 얻은 축복
1) 잘못된 것을 시정하는 아비멜렉
인간은 누구나 항상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인간이 연약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즉각 깨닫고 돌이킬 때 하나님과의 관계는 바르게 회복되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돌려보내었습니다. 그리고 물질적으로 보상하여 마음으로 사과함으로써 화해를 청하였던 것입니다.
a. 하나님의 계명(출20:14)
b. 하나님의 구원(빌2:12)
2) 환난 후 임한 축복
환난 후 아브라함은 재물의 보상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그리고 잃을 뻔했던 아내와의 관계도 회복할 수 있었고 그 수치를 씻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큰 축복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는 전지 전능하시고 자기를 한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입니다.
a. 화평을 도모(히12:14)
b. 아비멜렉의 보상(창20:15-16)
3) 기도하는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이는 자신의 거짓말과 아비멜렉의 불의한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아비멜렉의 손 집안에 미쳤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의 집안에 미쳤던 진노를 거두셨습니다.
a. 간구하는 자(시91:15)
b. 의로우시고 은혜로우심(시145:17)
c. 기도의 능력(행4:31-32)
결론
그랄로 내려간 아브라함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전과 똑같은(참조, 창12:10-20)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는 마치 방탕한 자식의 소행과 그 책임을 감당하는 부모의 사랑을 연상케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좋으신 분임을 알고 그분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단어해설]
1절. 가데스. 이스라엘 영토의 남방 끝에 위치한 지역. 일명 '가데스바네아' 또는, '게데스'라고 불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지역으로 가나안 입성 전에 모세가 이곳에서 정탐꾼들을 보낸 바 있다. 술. 이스라엘이 홍해 도하 후 가장 먼저 당도했던 곳으로서 애굽 동북방의 이 광야를 '수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랄. 바닷가에 위치한 블레셋 족속의 땅. 유대 산악 지대의 가사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2절. 아비멜렉. 원어 <&l,m,ybia}:아비멜레크>는 '아버지 왕'이다. 블레셋에서 왕을 칭하는 공식
용어.
3절. 현몽.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계시를 나타내는 한 방편.
7절. 선지자. 하나님의 내시는 영감으로 장차의 일을 예언하고 그 방책을 선포하는 고대의 지도자. 원어 <aybin::나비>는 '예언하는 자, 이상을 보는 자'이다.
12절. 이복 누이. 배가 다른 여동생으로서 아버지는 같으나 어머니가 다른 남매.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가 축첩자였음이 암시된다.
15절. 너 보기에 좋은 대로 거하라. 아브라함에 대한 아비멜렉의 우호적인 제의로서 아브라함은 그의 관대한 배려로 그랄에서 장기 체류하였다.
16절. 은 천 개.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를 범하려 했던 실수의 사죄 대가. 원어 <#s,K, #l,a,:엘레프 케쎄프>는 은의 무게 단위를 나타내는 히브리인들의 화폐 기준. 히브리인들은 은의 무게로 통용의 기준을 삼았다. 은 하나 무게는 대략 11g정도. 그러므로 은 천 개의 무게는 약 l1kg인 셈이다. 네 수치를 풀게 하였노니. 원어 <!yIn"y[e tWsK]:케쏘트 인이님>의 문자적 의미는 '눈 들이 덮이다'이다. 아내의 부끄러움을 볼 다른 이들의 눈을 가렸다는 뜻일 수 있고 남의 아내를 범하려 했던 아비멜렉 자신의 눈이 가려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선히 해결되었느니라. 원어 <jk'y::야카흐>는 '증명하다, 바로잡다'라는 의미로서 모든 이들 앞에서 사라의 결백을 증명한다는 뜻.
18절. 태를 닫히셨음이더라. 자녀의 출생이나 잉태 등 일체의 일들이 전능자 하나님의 소관하에 있음을 암시한다.
[신학주제]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 개입. 하나님은 위기에 처한 아브라함을 구하시기 위하여 아비멜렉의 꿈을 통하여 나타나셨다. 이것은 자연적인 방법만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방법으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형태를 보여 주는 것이다. 노아의 대홍수나 홍해의 갈라짐,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등은 모두 구속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초자연적 섭리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동정녀 탄생을 비롯한 모든 초자연적 사건을 제거해야 한다는 불트만의 비신화적 성경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하나님의 계시와 섭리를 모두 초자연적인 사건에만 의존하는 신비주의적인 신앙 또한 잘못된 것이다. 본장에 언급된 꿈을 통한 섭리는 하나님의 계시 통로(참조, 창28:12)로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참조, 신13:1;렘23:32). 그러므로 하나 님의 뜻에 관한 최종적인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의존해야 한다.
[영적교훈]
본장에서 영적 이스라엘의 조상이며 믿음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저질렀던 실수 또다시 저질렀다. 이처럼 인간은 아무리 뛰어나도 연약하여 스스로 죄에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희망을 가지는 것은 아브라함의 거듭된 실수도 용서하시고 끝까지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아비멜렉의 꿈에까지 나타나셔서 택한 아브라함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오늘날에도 온갖 사단의 유혹과 시험에 무방비 상태로 놓인 성도들을 지키시며 끝까지 구원을 이루어 주신다.
'***신구약 성경강해*** > - 창세기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22장 시험받는 아브라함 (0) | 2019.07.08 |
---|---|
창세기 21장 이삭과 이스마엘 (0) | 2019.07.08 |
창세기 19장 소돔의 멸망과 롯의 구원 (0) | 2019.07.08 |
창세기 18장 강해 (0) | 2019.07.07 |
창세기 18장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0) | 2019.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