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가정과 같이 후손이 복을 받고사는 우리 가정이 됩시다
(창18장1-8)
성경본문 : 창세기1:1-8
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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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하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창18:1)고 하였습니다.
너무도 감격한 아브라함은 최상의 대접을 하였으니 달려가 크게 영접하고, 물을 떠다가 발을 씻겨 드리고, 급히 떡을 굽고, 송아지를 잡아 요리하여 대접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아브라함의 부부에게는 나이 많아 단산에 이른 몸이지만 아들이 있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믿어지지 않아 아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아브라함 부부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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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의 가정에 모셔들인 여호와 하나님은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심을 믿고, 믿음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며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10:40에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가정에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사랑으로 뜨겁게 얽히어진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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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이 아무리 많은 것으로 갖추어져도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은 가정은 불행으로 가득하지만, 아무리 행복의 조건이 없는 가정이라도 하나님이 찾아오신 가정은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든지 천국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우리의 가정은 주 예수를 영접하며, 가정이 구원받는 은총이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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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브라함의 가정은 형제와 이웃에게 덕을 끼쳤습니다.
아브라함 가정에는 믿는 이보다 안 믿는 이가 더 많았습니다. 우리의 가정 주위에도 안 믿는 친척이 더 많습니다. 그들을 위한 우리는 믿음의 조상임을 잊지 말고 좋은 덕을 끼쳐 믿음의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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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가정이 종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횡으로는 믿음의 덕을 끼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과 그의 조카 롯의 가정 사이에 살림이 커짐으로써 갈등이 자주 생기게 되자 아브라함은 서로 갈라서기를 원하면서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 : 9)고 하기까지 미덕을 끼쳤습니다.
그리하여 롯은 초장이 우거진 소돔 고모라를 택하고 아브라함은 조건이 나쁜 혜브론을 택하였으나, 평화를 위하여 손해를 본 아브라함이 더 큰 축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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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가정에도 형제와 이웃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양보의 미덕을 가지고 무언의 전도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어떤 가정은 착실하게 믿는다고 하면서 이웃과 형제들에게 피해를 줌으로써 도리어 전도의 길을 막는 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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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여필종부(女必從夫)의 부부였습니다.
여필종부 하면 유교풍에 깊이 빠진 표현 같게 생각될지 모르나, 아브라함의 가정은 신앙적인 면에서 본 현대판 여필종부의 부부였습니다.
첫째, 아브라함이 기름진 땅 소돔을 양보하고 헤브론 땅을 차지한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창 13 : 10).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는 여기에 대해서 항변했다는 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부부간에, 형제들 사이에 이해관계 때문에 불복하고 사는 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에서 형제간에 불편한 관계를 가진 가정의 90%가 여자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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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하갈의 사건을 보아 현대판 여필종부의 가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창 16 : 1).
사라가 자식을 낳지 못했을 때 하갈을 남편의 침실에 들게 하여 이스마엘을 생산케 했습니다. 권장할 일은 아니지만, 남편에게 절대 복종하며 남편을 위하는 자세는 대단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을 낳은 후에 문제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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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이삭을 번제물로 바칠 때의 사건을 보아서도 사라는 위대한 여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번제로 드리라 하실 때 아마도 여러분이라면 하나님이 이제는 늙어 노망이 들었다고 반항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라는 한 마디의 이유나 불평 없이 남편의 뜻을 따랐습니다. 더욱이 어머니는 연령이 많을수록 모성애가 더 강하다고 하는데, 사라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가슴에 칼을 맞는 아픔이요, 쓰라림이었을 것입니다.
사라는 얼마나 위대합니까?
평등한 인격을 지닌 남녀임에는 틀림없으나 존경만 받으려는 일방적인 생각보다는, 남녀가 가정을 이루어 부부가 된 이상 현대판 여필종부의 자세로 평화를 유지해 나갈 때 하나님은 그 가정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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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도 하와는 아담을 돕는 배필로 창조되었으며(창 2 : 20-9),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사랑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엡5:22-25).이것이 가정의 형성이며, 원칙이며, 가정생활의 순서이기도 합니다.
현대 문명의 발달로 요즘에는 폭력 남편이 있는가 하면, 폭력 아내도 없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존경받아 가면서 살아가는 여자는 사라같이 믿음 안에서 남편을 순종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찾아 주시는 축복의 가정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말만 잘하고, 많이 배우고, 똑똑하며, 잘생긴 여자와 사는 남자는 한 마디로 골치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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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자녀육성에도 성공한 가정입니다.
첫째로, 나이 많아 키운 자식이지만 이 아들은 절대 순종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에 갈 때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 같으면 순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즘의 자식들은 순종이 없습니다. 말을 전혀 듣지 않습니다. 제 고집대로 제 맘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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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이삭은 부모님의 신앙을 유산으로 받았습니다.
교육 중에 제일 좋은 교육, 유산 중에 제일 좋은 유산은 신앙의 유산인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기독교인들의 자식 중에도 패배의 길을 가고, 형무소의 길을 가고, 방종과 거짓의 길을 가는 이가 너무도 많습니다. 다 갖추어주었어도 믿음이란 유산을 주지 못한 자식은 지옥의 자식이요, 패망의 자식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다 못 주었어도 믿음만 유산으로 잘 주었으면 후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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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하나님을 믿고 부모님의 교훈을 따라 믿음과 사랑과 양보함으로 살았습니다.
가정다운 가정이 없으면 온 세상이 모두 감옥같이 느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삭은 믿음으로 양보와 사랑의 정다운 가정을 이룩하고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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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1.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하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 가정에도 하나님이 찾아오심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아브라함은 형제와 이웃에게 덕을 끼치면서 살았습니다.
우리도 형제와 이웃에게 덕을 끼치며 살기를 바랍니다.
3.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여필종부의 삶이었습니다.
우리의 가정도 남편을 돕는 여필종부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4.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자녀양육에 성공했습니다.
우리 가정도 자녀양육에 반드시 성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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