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 이해와 요점4.
11. 시편과 잠언
시편의 작시자와 그 연대 역시 다양하다. 시편도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쓰여졌다. 시편에 수록되어 있는 시들 중 많은 것들은 작시자를 알 수 없는 것들이다.또한 여러 시대에 걸쳐 쓰여진 것들이었다. 구약성서의 시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시편은 여러 다른 유형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에 관하여 일반적인 서술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자기들이 친히 알고 있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고 있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고 있었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불확실성과 적의와 복잡함과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가를 확실히 이해하고 있다. 지혜 있는 현인들은 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잠언’이라고 불려지는 짧은 글의 형식을 자주 교훈을 하였다.이스라엘인의 격언들도 본래 일반 민중의 삶에서 비롯된 지혜이다. 솔로몬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그가 잠언 전체의 저자로 이해도 될 수 없다. 솔로몬은 잠언 전체의 후원자로 여겨지게 되었고 개개의 잠언들이 지혜 있는 현인들이 지은 것임에 틀림없다.
저자들의 이름은 잊혀졌지만 그 잠언들의 내용 오랫동안 기억되어 전해져 왔다. 잠언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혜이다. 하나님은 참다운 지혜를 주시는 분이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잠 1:7). 지혜는 인격적인 것이다. 지혜는 항상 당신의 지성과 습관과 목적과 행위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12. 전도서와 아가
성서는 인생에 대하여 독자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 전도서의 저자라 하나님을 믿는 확고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전도서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잇게 될 것이다.
전도서의 저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그리고 다스리는 절대적 주권자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에 순종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전도서 저자는 하나님께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잇는 것이 아니라 “해 아래에서” 행하여지는 인간이 모든 일들에 대하여 의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사물에 대하여 갖고 있는 가치관에 대해서도 철저한 회의심을 갖고 있다. 전도서의 저자와 같은 사람은 인간은 출생과 죽음으로 제한되어 있는 유한한 존재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다.
만일 인생의 의미와 질서가 있다면 현세의 삶의 테두리 안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내세에 그의 삶이 바르게 조정될 것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전도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첫째, 우리에게 인간이 이루어 놓은 모든 성취에 대하여 무조건 긍정할 것이 아니라 의문을 제기해 볼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지식의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의 거짓된 신념의 거품을 제거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두번째로, 아무리 우리가 보지에는 인생이 어둡고 모순 투성이 보일지라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우리 인생에는 의미와 질서가 있다는 것을 전도서 저자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은 이 혼란되어 보이는 세계의 창조자이시다.
세번째로, 비록 우리가 우리의 일의 결과를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힘을 다하여 해야 한다고 전도서 저자는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다.
네번째로, 그는 우리에게 단순성을 권하고 있다. 인생으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마음껏 누리면서 즐거워하라. 마지막으로 그는 그의 충고를 다음과 같은 말로 결론을 맺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아가서는 봄철과 사랑에 관한 책이다.
왜 이 책을 성서안에 편입되었는가?
아가서의 주제는 사랑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남녀간의 사랑이다. 이 아가서의 주된 사상은 매우 명백하다. 그리고 이 아가서의 메시지의 오늘날 이십세기에도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도 ‘사랑’의 개념에는 익숙해 있다. 그러나 아가서는 불멸하는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 유대교의 랍비들은 아가서에 등장하는 남자는 하나님이고 여자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있다.
또는 남자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저자는 인간의 영혼을 상징한다고 생각해 왔다. 어떤 사람들은 아가서에 나오는 남자는 그리스도이고 여자는 교회를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13. 예언자들
성서의 예언자들의 주된 임무는 장차 되어질 일들을 예고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대언자들(spokes men for God)이었다. 예언자들은 자기들이 처한 특정한 상황을 하나님의 시각과 같은 시각에서 그 상황을 보고 그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을 선언한 사람들이었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충실하게 지켜 진실된 삶을 살 것을 계속적으로 촉구하였다.
14. 이사야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위대한 예언자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소명이 그에게 임하였다.이 때부터 이사야는 하나님을 참으로 알게 되었다.
예언자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의 예언을 믿을 것인가”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하는 예언의 내용은 참된가, 하나님께서 이것을 말씀하였는가”를 물었던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설교가
이사야가 사용한 방법들 중의 한가지는 그가 선언할 멸망에 대하여 경고하는 내용을 요약한 이름을 그의 아들에게 붙였다. 이사야는 유다와 다른 나라들 사이의 관계에 관하여 많은 것을 말하였다. 가장 크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들 주의 하나는 외국에 대한 정책이었다.
앗수르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어 모든 것을 잃은 듯이 보였을 때에 이사야는 새로운 방법으로 그의 신앙을 나타내 보여주었다. 그는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 성으로부터 물러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여기저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소수의 신실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을 가르켜 ‘남은 자들’이라고 한다.
이사야는 이 남은 자들이야말로 미래의 소망이라고 종종 말하였다. 이사야는 다른 예언자들과 같이 그는 메시아 왕(the Messianic King) 이 올 곳을 내다 보았다.메시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수립할 구원자를 의미하였다.
그는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히지 않고 굶주린 사람을 먹이지 않은 종교는 참으로 순수한 종교로 여기지 않았다(58장). 인간이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를 인간의 삶의 움직일 수 없는 중심으로 삼을 만큼 하나님을 믿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빛과 구원의 새날을 그의 백성에게 결코 주시지 않을 것이다(59장).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 하나님의 백성이 언젠가는 온 땅에 질서와 빛과 축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소망을 결코 망각하지 말아야만 했다. 예언자의 임무는 만일 사람들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자유와 기쁨과 새로운 생명이 바로 그들앞에 도래할 것이라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었다(61장).
15. 예레미야와 애가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를 예언자로 세워 주신 것을 원망하였다.그러나 그는 예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불같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예레미아는 “나는 아이이므로 말할 줄을 모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그를 반대하는 자들에게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예레미야는 요시아의 개혁은 다만 표면적인 효과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외면적으로는 율법을 따르고 있었으나 내면적으로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우상은 사라졌지만 예루살렘 성전이 새 우상이 되었다
예레미야는 성전에 가서 지도자들과 백성을 통렬할 말로 비판하였다. 그는 진심으로 그의 백성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의 백성의 멸망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내적 갈등이 그를 일생 동안 괴롭혔다. 예레미야는 모세로부터 예수까지를 연결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연결하는 사슬에 있어서 주요한 고리이다.
예레미야는 옛 진리를 반복해서 언급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에 의하여 이 종교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이 종교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 이 종교는 이스라엘 민족의 힘과 통일의 근원이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이 신앙을 잃어버린다면 생존할 수가 없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신앙을 개인적이고 영적인 새로운 차원으로 높여 놓았다. 예레미야 자신의 기도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삶은 항상 사람들이 따라야 할 모범이 되었다. 그의 경건한 글은 그의 후대의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할 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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