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역 장로 개혁은 더 나아지기 위해, 퇴보하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도 생존과 발전을 위 해서는 당연히 개혁을 해야 하며, 당연히 모든 제도가 그 대상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피조물이라면 당연히 새 하늘, 새 땅, 새 제도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람 되지만 지금 이 땅의 많은 교회를 들여다보면 왜 교회가 개혁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 을 것이다. 또 장로와 목사, 그리고 그들이 속한 당회의 내면을 지금 당장 들여다본다면, 장로직제가 왜 개혁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목사직제도 예외는 아니다. 어쨌든 섬김과 감사로 충만한 당회도 있겠지만, 견제와 다툼으로 얼룩진 당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장로라 하면, 종신직이라는 것과 의식이 보수적이라는 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바로 그 점이 개혁의 대상일 수 있다. 장로직은 대의정치와 의회정치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왜 종신제(사실상의 종신제)여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생각해 보시라. 이 세상 어느 조 직에 종신제가 있는가? 종신제는 언제나 부작용과 부패를 수반해 왔음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지 않은가? 한 사람이 한 자리에 평생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은 본인에게도 부담이요, 그 조직과 구성 원들에게도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종신제가 조직 발전에 부정적이라는 것은 이미 입증되고 있다. 비록 교회와는 속성이 다르지만 기업의 예를 들어보자. 평생 고용제는 사라진지 오래고, 시간을 때우면 봉급이 나오고 햇수만 채우면 저절로 승진이 되는 연공서열식의 인사관리 방식도 급격히 무너져 버리고 있다. 오늘날 우리 나라 교회의 개혁이 자주 논의되고 있는데, 개혁의 관건은 목사와 장로의 사생활과 목사직제 및 장로직제의 개혁에 있다고 감히 말해 본다. 장로직제만이라도 종신제에서 탈피하도록 한다면, 교회가 훨씬 더 새로워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자고로, 사람을 바꾸기 전에는 개혁을 이룰 수가 없다. 교인이나 목회자의 입장에서 특정인의 장로직 독점을 막고 인재 등용의 기회를 확대하려면 임기제가 좋다. 또 장로 입장에서 종신 장로직으로 인한 개인적인 부담을 줄여 주려면 안식년제가 필요하다. 장로의 역할은 뭐니 뭐니 해도 교회 일에 대한 의사 결정에 있다. 특정인이 수십 년 동안 교회의 일을 독점하여 결정할 수 있다면, 그 조직은 사조직으로 전락하기 쉬울 것이다. 사조직으로 전락한 사기업 같은 교회를 가끔 볼 수 있지 않은가? 이런 경우 교인들은 '목회를 위한 수단적 존재'에 불과해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고, 교회가 종신 장로들의 성향이나 특성에 영향받거나 제한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바로 여기에서 권위주의, 물질적 부패, 교권주의 등 부작용이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또 종신 임직을 받는 당사자들도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된다. 몇 년간도 아니고 거의 평생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이상적이기는 하나 현실적으로는 무리이다.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 에게도 영향을 준다. 신앙과 사회적 역량이 가장 왕성할 때 집중적으로 교회 일을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생각한다. 장로가 된 후 오히려 신앙이 정 체됐고, 성경에 대해 무지해졌고, 가정에 불화가 생기더라는 장로들의 고백을 잘못된 신앙 때문이라며 나무라기만 할 것인가? 짐을 지고 가는 나귀도 쉬어 가게 하거나 다른 나귀와 짐을 교대로 지게 한다. 그것이 효과 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지쳐 있거나, 앞으로 일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최선을 다하기 어렵고 무사 안일에 빠지기 쉽다. 매너리즘에 빠진 장기근속 목사와 장로가 얼마나 많은가? 또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교회 일꾼들이 낙담을 하게 되는가? 이 점은 목사나 장로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해당된다. 특정 인에게만 많은 기회를 보장해 주는 건 불공평하다. '기회는 한 번 뿐'일 때 최선을 다하는 법이다. 모든 공직이 반드시 임기제로 되어 있고, 연임을 적당히 제한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재충 전하고 쉬도록 의무화하고 있고, 한 자리에 오래 있지 않도록 순환시켜 주고 있는 데에는 나름대로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장로 자신의 인식이라고 본다. 장로직을 계급으로 인식하지 말아야 한다. 장로는 '기능'이지 '계급'이 아니다. 장로 종신제의 폐해를 해소하려면, 장로들 스스로가 열심히 일하고 적당한 시기에 스스로 휴직하거나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5년 내지 10년의 시무라면, 한 사람의 일생에서 할애할 수 있는 적정한 기간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러나는 걸 죄악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교회와 당사자를 위해 일정한 기간 뒤에 물러나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지런히 노력을 해도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로 급변하는 세상이다. 목사든 장로든 충전도 하지 않고, 낡은 사고로 무작정 버티고 앉아 어른 노릇이나 하려고 한다면, 젊은이들이 우선 그 교회에 남아 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또 교인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여 반영도 하지 못하면서, 목회자와 주도권 쟁탈에 열심이고, 교계 정치 판에 데뷔할 생각이나 한다면 차라리 여의도 국회로 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종신제를 폐지해야 하는 중요한 현실적 이유의 하나는 장로와 목회자와의 인간적 갈등으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장로가 평생 그 교회에만 시무해야 한다는 것도 본인에게는 물론 목회자에게도 불행한 일이 되기 쉽다. 혹시 신앙관이 다르고 철학이 다른 목사와 장로의 만남이라면 거기엔 희생이 따를 수 있다. 그럴 경우에는 헤어지는 게 좋다. 그걸 신앙으로 초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할 말이 없겠지만. 팀웍이 안 맞는다 해도 임기가 정해져 있다면, 문제가 고질화되지는 않다. 그러나 종신직이라면 답답해진다. 그래서 목사는 설교로 장로를 까고, 장로는 기도로 목사를 고발하여 교인들을 피곤하게 하는 공방전을 더 이상 벌여서는 안 된다. 물론 능력 있고 의욕이 넘치는 장로들까지도 장로직에서 물러나게 하자는 건 아니다. 그런 분들은 계속 임기를 연장시켜 주면 된다. 20년 이상 한 자리에서 일하는 걸 장려하는 듯한 제도들도 이제 신중히 폐지했으면 한다. 功이 있으면 이면에는 過가 있기 마련이다. 20년간이나 헌신해옴으로써 기여해온 긍정적인 면 못지 않게, 20년간이나 자리를 지킴으로써 초래한 부정적인 면은 없는지 냉철히 평가해 봐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제도만이 성경적이라는 데에는 찬성할 수 없다. 이 세상에 영원히 최선인 제도는 없다. 시대가 바뀌면 본질을 더 잘 보전하고 확산하기 위해서라도 수단과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 장로직을 그만 두는 건 시무 장로에서 물러나는 것일 뿐, 예수 믿는 걸 그만 두는 건 아니 다. 개교회의 시무 장로에서 물러나 더 큰 차원에서 한국 교회 전체를 위한 일에 관심을 갖 는 예비역 장로들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의용 지음 <교회문화혁명>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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