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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항존직의 할 임무

에반젤(복음) 2021. 8. 17. 11:15

항존직의 할 임무


1. 들어가는 말



사람이 성공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좋은 동역자를 만나는 것이다. 성공적인 결혼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고 성공적인 목회를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두 부류의 신자가 있는데 첫째는 오늘을 바라보고 사는 신자인데 보상을 생각하다가 보상이 없고 고난이 있으면 떠나는 사람들이다. 둘째는 그 날을 바라보고 사는 신자인데 신랑 앞에 서는 그 날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어떤 고난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오늘만 바라보고 사는 자는 그리스도의 일꾼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이 땅의 순례자이며 자신의 참된 지위가 천국에 있다는 것을 아는 자이다.



교회가 직분 맡을 자를 세우는 일은 축복스런 일이다. 그것은 교회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이요,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초대교회는 교회가 확장됨에 따라 사도가 해야 할 일과 집사가 해야 할 일을 각각 분담해야 했다(행 6:1-7). 또한 안디옥 교회도 크게 성장하여 바나바와 바울을 해외선교사로 파송하는 일에 대하여 금식하며 기도한 후 두 사람을 안수하여 파송했다.

교회 직분의 소중함: 사도 바울은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고 강한 의지를 표현했고, 생명 바쳐 감당하였습니다(행 20:24). 기독교인 직업의식은 청지기 직분과 일맥상통한다. 세계2차 대전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진주만을 폭격한 비행단들을 보라. 이처럼 국가의 명령도 생명 바쳐 감당하거늘 하늘이 내리는 직분이야 얼마나 황송하고 귀한 것인가? 그래서 바울은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라며 감사하였다.



사모해야 할 직분: 어떤 분은 하나님이 맡기신 직분을 소홀히 여기고 직분을 감당치 않으려고 내놓는 것을 큰 양보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디모데전서 3장 1절을 보면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간절히 바란다면 그것은 좋은 욕망이다”(새번역)라고 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 일에 “나를 보내주소서”라고 외쳤습니다(사 6:8). 하나님이 허락하신 직분으로서의 좋은 항존직분자가 되시기를 사모하시고 기도하시며 가장 모범적인 항존직분자의 모델이 되신다면 이 모든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직분에는 상급이 있다: 분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고 말합니다. 이것은 죽은 후에 심판이 있음을 의미한다. 한평생을 살고 나서 상이 없는 인생이란 얼마나 허전하겠는가?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상급은 행위로 받는데 주님은 직분에 충성한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셨다. 그 상급을 바라보며 청지기로서의 삶을 충성되이 정열과 열심히 감당할 때 하나님의 크신 위로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보라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눅 13:30),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고전 9:27).



우리가 맡은 직분: 교회 직분은 한 번 맡으면 거의 영구적이라는 데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 직분을 오래 맡다 보면 직분에 대해 타성이 생겨 무책임해지고 게을러진다. 그래서 직분에 맞지 않는 신자가 되기 쉽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 형식만 남고 실상은 없는 직분자의 모습은 아닌지 반성해 보자.

맡은이가 구할 것은 충성: 직분에 소홀해졌다면 결국 그에 대한 책망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직분은 감당할 만 하기에 주셨으므로 철저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한 달란트 맡은 이처럼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드리고 노하시게 할 때가 있다. 성경에 나오는 사울왕은 맡겨진 직분에 소홀하다가 패망한 대표적인 인물이다(삼상 16:14).



소명감의 회복: 어떻게 하여야 직분을 갱신할 수 있을까? 먼저 하나님께서 주셨던 소명의식을 회복하는 것이다.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이 안수 받고 일어나셨을 그때의 감회는 평생에 잊을 수 없는 감회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세워주셨다’는 소명감으로 가득 찼을 때가 그 때였을 것이다. 그래서 에드워드 루이즈라는 사람은 “항존직분자로 임명받을 때 집사로서, 권사로서, 장로로서 처음 취임 받을 때의 소명감을 회복하는 것만이 직분을 갱신할 수 있는 방법이다”라고 하였다.



처음 감격의 유지: 에베소 교회 지도자들은 많은 칭찬을 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에 있었다. 처음 직분 맡을 때는 감격과 두려움으로 가득찬다. 그런데 얼마쯤 지나면 그런 처음의 감격이 사라진다. 직분이 시들해 보이고, 직분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며, 무감각해진다. 신학자 레오날드는 하나님과의 은밀한 골방 기도만이 이 첫 감격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지적하였다.



자기 훈련: 어떤 그릇이든지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다. 여기서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갈고 닦는 자기훈련을 말한다. 남에게는 지도하고 가르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서는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 오래된 직분자가 범하기 쉬운 약점이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롬 2:21)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고 먼저 자기를 책망하고 훈련하는 일에 게으르지 말자.



내 몸을 쳐 복종하는 삶: 사도 바울은 “내 몸을 쳐 복종케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항상 자기를 쳐서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는 일은 경건하게 살려는 성도의 마땅한 본분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 일을 소홀히 하거나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직분을 항상 새롭게 하여 주님께 복종하는 일은 항존직분자로서 마땅히 노력해야 할 일인 것이다.



비록 사람들간의 갈등과 불협화음으로 집사제도를 도입하게 되었지만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교회의 체질을 더 강화시키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모든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는 창조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때로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어떤 일을 하면서 난관에 부딪치면서 그 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난다. "왜 사서 고생하나?" 그러나 어려움이 있어도 교회를 향한 선한 손길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앞으로 우리에게도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똑같은 문제들, 즉 편애 문제, 소외감 문제, 섭섭한 문제 등 각종 문제들이 일어날 수 있다.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문제, 그런 소외감이 없을 수는 없다. 그때 너무 실망하지 말고, 선한 방법을 찾아 선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흔히 교회에서 생기는 갈등과 소외감을 극복하는 두 가지 좋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소외감을 느낄 때 더욱 교회 일에 뛰어들어 말없이 충성하는 방법이다. 말없이 충성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 싫어하는 공동체는 하나도 없다. 그리고 또 하나는 범사에 감사하며 자숙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방법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갈등과 소외감을 극복하는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결국 사도들이 제자들을 부르고 일곱 집사를 세우도록 했다. 그때 사도들이 집사들을 임명하지 않고, 선택할 사람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후 일곱 집사를 세우는 것은 제자들이 알아서 하도록 맡겼다(3절).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높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제단에서는 겸손하게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에서 인정해 주어 중요한 직분을 맡기면 감사히 받고,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맡기지 않으면 조금 더 기다리며 충성하면 된다. 그런 후에 그 공동체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중요한 일꾼으로 선택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분 자신도 그 직분을 소중히 여기며 교회를 사랑하게 된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항상 다음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의 사역은 그것이 말씀의 봉사이든 공궤이든 모두 거룩한 사역이기 때문에 교회를 위한 봉사의 문 앞에서는 항상 겸허한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겸허한 사람들이 결국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된다. 실질적으로 초대교회에서 선택된 일곱 집사들은 소매를 걷어 부치고 교회의 영적 성숙에 대한 모범적인 길을 앞서 행했고, 그리고 교회와 이웃을 돕는 강한 열정을 가지고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교회의 중요한 일꾼으로 선택될 수 있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일꾼에는 두 종류의 일꾼이 있다. 일을 만드는 일꾼이 있고, 일을 하는 일꾼이 있다. 충성하라는 말은 일을 만드는 자가 아니라 일을 하는 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교회 일을 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일을 하다가 일을 만드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그런데 충성스런 일꾼이 되기 위해서 더욱 중요한 것은 말입니다. 맡겨진 일을 헌신적으로 잘하는 사람도 충성스런 일꾼이지만 말을 소금으로 고르게 함과 같이 지혜롭게 하는 것이 더 충성된 모습입니다. 생명관계로 맺어진 교회생활에서 충성은 일보다 말과 더욱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그리스도의 일꾼이란 '판단 받지도 않고 판단하지도 않는 자'를 말한다 : 먼저 그리스도의 일꾼은 판단 받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상습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에 의해서 판단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판단에 쉽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보라.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사도 바울은 판단 받을 때 그 일을 큰 일로 여기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삶의 지혜이다. 살다 보면 때로 이상한 판단이 귀에 들려 오는 경우가 있다. 그때 너무 지나치게 울분을 가지지 말고 가볍게 생각하라. 정말 참기 힘든 경우에는 주님이 당하셨던 멸시를 생각해 보라. 마가복음 6장 3절을 보니까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말한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판단 받고 멸시받는 것은 더 참기 힘든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관하지 않고 위대한 길을 가셨다.

판단을 듣고 주저앉아 버리면 안된다. 판단을 듣고도 겸손히 반성하면서도 전진하면 넉넉하고 위대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고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누구든지 성공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 벽을 곡 깨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은 판단 받지 않는 자세보다 판단하지 않는 자세이다. 신앙의 성공을 가장 방해하는 것이 바로 이 판단하는 태도이다. 왜냐하면 신앙은 기본 원리가 판단이 아니라 은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판단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데, 우리가 판단하는 모습을 보이면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다.



그러므로 항상 판단하기 전에 자신의 모습을 살펴야 한다. 누구는 판단 못해서 안하는 것인가? 서로 판단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이고, 그렇게 판단할수록 문제는 더욱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 가운데 “권위 하는 자면 권위 하는 일로”(롬12:8)를 지적하고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격려(또는 위로)하는 자면 격려(또는 위로)하는 일로”라고 번역할 수 있다. 또 사도행전에 나오는 “권할 말”(행13:15)은 사도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청중들로부터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는 청을 받는 가운데 나온 말이다. 여기서 바울은 사도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모인 무리들에게 권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권면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에챠”인데 결단, 결정, 상의, 충고 등의 의미를 가진다. 여기에서 권면은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결정하기에 앞서 주는 지혜자의 충고 혹은 아이디어의 제공을 뜻한다. 이것이 정치적인 권면일 때는 하나의 모략을 펴내는 것이요, 왕의 친근자로서 지혜자의 조언을 듣는 것이다. 군대에서는 지휘관을 돕는 참모를 가리킨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권면이란 잘못된 행위를 바르게 교정하려는 윗사람의 권위적인 충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권면은 계획을 수립하는데 돕는 것이요, 일의 성취를 위해 창안하는 조언을 뜻한다.

베드로가 예수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마18:21-22)고 하셨다. 그리고 산상보훈의 말씀에는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고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용서하는 넓은 인격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화해의 사귐을 갖도록 해야 한다. 갈등 속에 있는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직임과 사명을 갖고 있는 권사들은 특별히 먼저 용서의 훈련을 통함으로 자아의 인격을 성숙케 하고 화해자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장로, 권사, 안수집사 등의 항존직은 교회 안에서 결코 명예직이 아님을 밝혀 둔다. 그 사명이 얼마나 막중하고 귀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네 가지 면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첫째, 통일된 인격으로 자신이 자신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고,
둘째, 사랑과 존경으로 이웃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며,
셋째,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고,
넷째, 시험과 유혹을 물리침으로 마귀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장로, 권사, 안수집사 등의 항존직은 성숙된 신앙 인격을 가지고 남을 권면하고, 위로하며, 격려하고, 화해자로서 전도인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2. 직분자의 자격과 직무


①불평하는 말 대신에 남을 칭찬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②남을 저주하는 말 대신에 축복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③이간질하는 말 대신에 화해의 다리를 놓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④실망을 안겨 주는 말 대신에 용기를 주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⑤속된 말을 지나치게 하지 말고 신앙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



3.인격적인 자세


직분자는 남을 위로하고 권면하는 직임을 가졌다는 점에서 자신의 인격이 성숙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아훈련에 힘쓰고 인격적으로 남에게 존경을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러 가지 훈련하여야 할 문제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4. 직분자의 올바른 자세


교회에서 항존직분자로서 피택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신앙적으로, 또는 인격적으로 올바른 자세를 갖는 것이다. 사람이 신앙적으로 올바른 변화를 가져오려면 지식(Knowledge)의 변화, 태도(Attitude)의 변화, 그리고 행동(Action)의 변화가 따라야 한다. 여기서는 몇 가지 항존직분자로서 지녀야 할 올바른 자세를 설명하고자 한다. 권사는 바나바와 같이 믿음이 뛰어나고 성령충만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신앙적 자세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1)주일 성수하는 신앙적인 자세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철저히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통을 통하여 그의 삶을 새롭게 하여야 한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주일을 성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업, 직장, 애경상조 등으로 주일예배에 참석을 못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개인적인 취미생활인 등산, 낚시, 스포츠 관람 등을 즐기기 위해 교회에 출석을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권사의 직임을 받은 사람은 이러한 이유를 극복해야 한다. 주일을 철저히 지키는 신앙적인 자세가 없이 어떻게 남을 설득력 있게 신앙으로 지도할 수 있겠는가? 주일성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적인 기본 자세이다.



2)기도하는 신앙적인 자세


기도는 성령을 받는 통로이며, 영적인 권위와 능력을 얻는 길이다. 시편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편145:18)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실 때 그리스도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어 저들을 권면하게 하니 많은 사람들이 바나바의 권면하는 말을 듣고 큰 무리가 주께 더했다고 했다. 그 후 바나바는 다소에 가서 사울(바울)을 만나고 함께 안디옥에 와서 교회에 일 년간 머무르며 큰 무리를 가르치니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신자들을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항존직분자는 신앙적인 면에서 남을 권할 만큼 능력을 가져야 하며, 가르치고 권면하는 직무를 감당하기 위하여 먼저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를 많이 하여 성령충만한 신앙 인격을 구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남에게 멸시받지 않고 존경받도록 바나바와 같이 착한 성품을 가져야 한다.



2)물질 봉사의 신앙적인 자세


바나바는 본래 본명이 요셉이었지만 바나바(번역하면 勸慰者)로 부름받았을 때 자기가 가졌던 밭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바쳤다(행4:36-37). 사실상 누구든지 자기의 소유를 팔아 헌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엔 어떤 의미와 가치가 주어져야 하고 개인적인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교회에서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헌금하는 생활이다. 성서적으로 의무화되어 있는 십일조 헌금은 물론 감사헌금과 절기헌금을 함으로 다른 사람을 권하고 지도하는 입장에서 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가대원이나 교회학교 교사들을 사랑으로 대접하고 그들을 격려하는 일도 힘써 해야 할 사명인 것이다. 물질의 희생을 통한 봉사도 신앙적인 자세 가운데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3)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는 신앙적인 자세


성경공부는 우리의 일생을 다 바쳐 해도 모자란다. 진리를 이해하고 깨닫는 것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지도자가 되려 하면서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몰라서는 안 된다. 특별히 권사의 직임을 받은 사람은 구역에서 책임을 맡고 남을 지도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공부하는 자세를 확립해야 한다.

성서에 나타난 항존직분자 모델로서의 바나바

바나바는 구브로(Cyprus)에서 출생한 레위인으로서 원래 이름은 요셉이며 예수를 영접한 후 사도 바울과 함께 이방인 전도의 개척자로서 활동한 인물이다. 그의 이름의 뜻은 “위로의 아들”(Son of Consolation), 또는 “권위자”(勸慰者), 그리고 희랍어로는 “권면”, “격려”라는 뜻을 가졌다(참조, 행4:36, 13:15, 9:31). 그의 이름에서 나타나는 대로 그는 성서에 나타난 권사의 모델로서 적합하다고 생각되는데 여기에서는 성서를 중심으로 그의 신앙과 미덕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바나바는 그에게 주어진 신앙 이름대로 권사의 전형적인 모델이라고 생각된다. 희랍어 “파라클레시스”는 ‘권면’(exhortation)이란 뜻을 가졌는데, 바로 바나바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로서 헌신적인 봉사의 모범자였고, 남을 권면하고 화해시키며, 교회 심부름을 기쁨으로 했던 사람이다.



1)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다(행11:24).


바나바는 그의 성품이 착할 뿐 아니라 신앙적인 면에서도 성령 충만한 신앙을 가졌고 믿음도 뛰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많은 사람들이 인은 영적인 권위가 생기는 법이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합심하여 열심히 기도하였을 때 성령을 받았고, 그 능력에 의하여 전도하고 초대 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바나바도 성령이 충만했었기(행11:24) 때문에 성공적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교회 지도자들이 영적인 권위나 능력이 없다면 주님의 일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일은 세속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권사의 사명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무릎꿇고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그래야 신앙적인 권위와 능력을 부여받아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고 권면할 때 영향력 있게 할 수 있게 된다.



2) 바나바는 헌신적인 봉사의 모범자이다(행4:37).


바나바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예루살렘이나 또는 그 부근에 있던 토지를 팔아 사도들 앞에 바쳤다. 뿐만 아니라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을 할 때 노동하면서 전도하는 일에 봉사한 사람으로 나타나 있다(고전9:6). 가진 재산을 헌납한 신앙심이라든지 친히 노동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전도한 행위는 바나바가 헌신적인 봉사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권사의 직임 가운데는 교회가 필요로 할 때 헌금이나 구제활동, 봉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사명이 있다. 왜냐하면 권사는 남을 격려하고 권면하는 직책이기 때문이다.



3) 바나바는 중재인으로서 화해하는 일에 힘쓴 사람이다(행9:27).


사울이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한 후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과 사귐을 가지려고 하였을 때 제자들은 그를 만나 주지 않았다. 왜냐하며 제자들은 평소에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고,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까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러 갔던 사람이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를 두려워하였고 그가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경험했던 일, 즉 그가 어떻게 주님을 만나고, 주의 음성을 듣고, 다메섹에서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설명해줌으로써 사울로 하여금 예루살렘에서 잠시 머무르며 제자들과 사귀도록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바나바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반목 상태에 있었던 사울과 주의 제자들 사이에서 중재자로 화해의 사역을 잘 했던 것이다. 바나바는 실로 지혜, 사랑, 관용의 덕을 가지고 화해자로서 살았던 그리스도의 종이었다.



특별히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음으로 수 많은 성도들이 더해갔지만 교권을 잡으려고 했다든지 자기를 영웅시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바나바는 화해자로서 아름다운 삶을 산 사람이었을 뿐 만 아니라 겸손한 주의 종이었다.



항존직분자의 직무 가운데 중요한 것은 “권위자(勸慰者)로서 남을 권면하고 위로하는 일이다. 어떤 형제자매가 잘못된 생각을 한다든지, 잘못 이해함으로써 오해하는 일이 있다든지, 다른 사람과 갈등 속에 있을 때 권사는 그들을 찾아가 잘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권면하여 올바른 길로 인도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마음에 상처받은 사람들, 또는 병든 자를 찾아가 위로하는 일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믿음의 낙심자들을 찾아가 권면하여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새롭게 해 주어야 할 사명도 있다.

4) 바나바는 교회의 심부름도 열심히 잘하였다.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헬레니스트 유대인들과 논쟁하다가 마침내 미움을 사 생명이 위험하게 되었을 때 바나바는 그를 가이사랴로 호위하여 가서 선편으로 다소에 보내는 일을 도왔다(행9:29). 또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로 파견해서 가게 했다. 이는 당시 안디옥에서 유대인 이외의 사람들이 신앙에 들어섰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에 전해져 유대인 간에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그 사정을 알아보기 위하여 바나바를 보낸 것이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많은 교인들이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다소로 가서 사울(바울)을 데려다가 함께 사역을 하면서 안디옥 교회의 기초를 놓게 되었다(행11:22-26).

바나바는 글라우디오(클라우디우스)황제 때 예루살렘에 큰 기근이 들자 사울과 함께 교회가 보내는 보조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가게 된다. 그리고 그는 안디옥으로 돌아올 때 조카인 마가 요한(마리아의 아들)을 데리고 왔다(행12:25). 교회는 선교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심부름할 일꾼이 필요하다. 봉사의 직무와 전도의 사명,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교역자 외에 많은 평신도 자원 봉사자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존직분자의 직임을 받은 사람들은 바나바와 같이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는 주의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5) 바나바는 전도에도 힘썼다(행13-14장).


바나바는 예루살렘에서는 물론 안디옥에서도 전도를 많이 했다. 특별히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여 구부로에 보냈을 때 전도자로서 활약했고, 또다시 소아시아의 고원지방 갈라디아 지역에 전도하러 보냈을 때도 전도자로서 바울과 함께 사역을 했다. 이 때에 바나바는 연장자로서 설득력 있고 부드럽게 청중들에게 전도하였는데, 바울은 세찬 논쟁으로서 전도를 한 것 같다. 그래서 항상 핍박자들이 돌을 들어 칠 때에는 바나바를 노리지 않고 바울을 표적으로 삼았다(행14:19). 바나바가 초대교회에 큰 공적을 남긴 것은 바울을 찾아내 함께 동행하면서 이방인의 전도에 힘쓴 결과이다. 바나바가 사울(바울)을 만나 그를 돕지 않았다면 초대교회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런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바가 성서적으로 항존직분자의 모델이라면 항존직분자는 적극적으로 전도하는 일에 교역자를 도와 교회를 견고케 하는 자들이라고 하겠다.

교회가 전도의 사명을 효율적으로 감당케 하기 위하여 항존직분자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서정호 목사 (영암교회)






항존직의 교회생활


1. 들어가는 말



사람이 성공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좋은 동역자를 만나는 것이다. 성공적인 결혼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고 성공적인 목회를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두 부류의 신자가 있는데 첫째는 오늘을 바라보고 사는 신자인데 보상을 생각하다가 보상이 없고 고난이 있으면 떠나는 사람들이다. 둘째는 그 날을 바라보고 사는 신자인데 신랑 앞에 서는 그 날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어떤 고난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오늘만 바라보고 사는 자는 그리스도의 일꾼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이 땅의 순례자이며 자신의 참된 지위가 천국에 있다는 것을 아는 자이다.



교회가 직분 맡을 자를 세우는 일은 축복스런 일이다. 그것은 교회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이요,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초대교회는 교회가 확장됨에 따라 사도가 해야 할 일과 집사가 해야 할 일을 각각 분담해야 했다(행 6:1-7). 또한 안디옥 교회도 크게 성장하여 바나바와 바울을 해외선교사로 파송하는 일에 대하여 금식하며 기도한 후 두 사람을 안수하여 파송했다.

교회 직분의 소중함: 사도 바울은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고 강한 의지를 표현했고, 생명 바쳐 감당하였습니다(행 20:24). 기독교인 직업의식은 청지기 직분과 일맥상통한다. 세계2차 대전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진주만을 폭격한 비행단들을 보라. 이처럼 국가의 명령도 생명 바쳐 감당하거늘 하늘이 내리는 직분이야 얼마나 황송하고 귀한 것인가? 그래서 바울은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라며 감사하였다.



사모해야 할 직분: 어떤 분은 하나님이 맡기신 직분을 소홀히 여기고 직분을 감당치 않으려고 내놓는 것을 큰 양보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디모데전서 3장 1절을 보면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간절히 바란다면 그것은 좋은 욕망이다”(새번역)라고 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 일에 “나를 보내주소서”라고 외쳤습니다(사 6:8). 하나님이 허락하신 직분으로서의 좋은 항존직분자가 되시기를 사모하시고 기도하시며 가장 모범적인 항존직분자의 모델이 되신다면 이 모든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직분에는 상급이 있다: 분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고 말합니다. 이것은 죽은 후에 심판이 있음을 의미한다. 한평생을 살고 나서 상이 없는 인생이란 얼마나 허전하겠는가?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상급은 행위로 받는데 주님은 직분에 충성한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셨다. 그 상급을 바라보며 청지기로서의 삶을 충성되이 정열과 열심히 감당할 때 하나님의 크신 위로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보라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눅 13:30),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고전 9:27).



우리가 맡은 직분: 교회 직분은 한 번 맡으면 거의 영구적이라는 데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 직분을 오래 맡다 보면 직분에 대해 타성이 생겨 무책임해지고 게을러진다. 그래서 직분에 맞지 않는 신자가 되기 쉽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 형식만 남고 실상은 없는 직분자의 모습은 아닌지 반성해 보자.

맡은이가 구할 것은 충성: 직분에 소홀해졌다면 결국 그에 대한 책망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직분은 감당할 만 하기에 주셨으므로 철저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한 달란트 맡은 이처럼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드리고 노하시게 할 때가 있다. 성경에 나오는 사울왕은 맡겨진 직분에 소홀하다가 패망한 대표적인 인물이다(삼상 16:14).



소명감의 회복: 어떻게 하여야 직분을 갱신할 수 있을까? 먼저 하나님께서 주셨던 소명의식을 회복하는 것이다.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이 안수 받고 일어나셨을 그때의 감회는 평생에 잊을 수 없는 감회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세워주셨다’는 소명감으로 가득 찼을 때가 그 때였을 것이다. 그래서 에드워드 루이즈라는 사람은 “항존직분자로 임명받을 때 집사로서, 권사로서, 장로로서 처음 취임 받을 때의 소명감을 회복하는 것만이 직분을 갱신할 수 있는 방법이다”라고 하였다.



처음 감격의 유지: 에베소 교회 지도자들은 많은 칭찬을 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에 있었다. 처음 직분 맡을 때는 감격과 두려움으로 가득찬다. 그런데 얼마쯤 지나면 그런 처음의 감격이 사라진다. 직분이 시들해 보이고, 직분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며, 무감각해진다. 신학자 레오날드는 하나님과의 은밀한 골방 기도만이 이 첫 감격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지적하였다.



자기 훈련: 어떤 그릇이든지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다. 여기서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갈고 닦는 자기훈련을 말한다. 남에게는 지도하고 가르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서는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 오래된 직분자가 범하기 쉬운 약점이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롬 2:21)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고 먼저 자기를 책망하고 훈련하는 일에 게으르지 말자.



내 몸을 쳐 복종하는 삶: 사도 바울은 “내 몸을 쳐 복종케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항상 자기를 쳐서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는 일은 경건하게 살려는 성도의 마땅한 본분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 일을 소홀히 하거나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직분을 항상 새롭게 하여 주님께 복종하는 일은 항존직분자로서 마땅히 노력해야 할 일인 것이다.



비록 사람들간의 갈등과 불협화음으로 집사제도를 도입하게 되었지만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교회의 체질을 더 강화시키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모든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는 창조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때로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어떤 일을 하면서 난관에 부딪치면서 그 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난다. "왜 사서 고생하나?" 그러나 어려움이 있어도 교회를 향한 선한 손길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앞으로 우리에게도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똑같은 문제들, 즉 편애 문제, 소외감 문제, 섭섭한 문제 등 각종 문제들이 일어날 수 있다.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문제, 그런 소외감이 없을 수는 없다. 그때 너무 실망하지 말고, 선한 방법을 찾아 선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흔히 교회에서 생기는 갈등과 소외감을 극복하는 두 가지 좋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소외감을 느낄 때 더욱 교회 일에 뛰어들어 말없이 충성하는 방법이다. 말없이 충성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 싫어하는 공동체는 하나도 없다. 그리고 또 하나는 범사에 감사하며 자숙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방법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갈등과 소외감을 극복하는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결국 사도들이 제자들을 부르고 일곱 집사를 세우도록 했다. 그때 사도들이 집사들을 임명하지 않고, 선택할 사람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후 일곱 집사를 세우는 것은 제자들이 알아서 하도록 맡겼다(3절).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높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제단에서는 겸손하게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에서 인정해 주어 중요한 직분을 맡기면 감사히 받고,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맡기지 않으면 조금 더 기다리며 충성하면 된다. 그런 후에 그 공동체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중요한 일꾼으로 선택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분 자신도 그 직분을 소중히 여기며 교회를 사랑하게 된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항상 다음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의 사역은 그것이 말씀의 봉사이든 공궤이든 모두 거룩한 사역이기 때문에 교회를 위한 봉사의 문 앞에서는 항상 겸허한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겸허한 사람들이 결국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된다. 실질적으로 초대교회에서 선택된 일곱 집사들은 소매를 걷어 부치고 교회의 영적 성숙에 대한 모범적인 길을 앞서 행했고, 그리고 교회와 이웃을 돕는 강한 열정을 가지고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교회의 중요한 일꾼으로 선택될 수 있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일꾼에는 두 종류의 일꾼이 있다. 일을 만드는 일꾼이 있고, 일을 하는 일꾼이 있다. 충성하라는 말은 일을 만드는 자가 아니라 일을 하는 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교회 일을 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일을 하다가 일을 만드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그런데 충성스런 일꾼이 되기 위해서 더욱 중요한 것은 말입니다. 맡겨진 일을 헌신적으로 잘하는 사람도 충성스런 일꾼이지만 말을 소금으로 고르게 함과 같이 지혜롭게 하는 것이 더 충성된 모습입니다. 생명관계로 맺어진 교회생활에서 충성은 일보다 말과 더욱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그리스도의 일꾼이란 '판단 받지도 않고 판단하지도 않는 자'를 말한다 : 먼저 그리스도의 일꾼은 판단 받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상습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에 의해서 판단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판단에 쉽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보라.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사도 바울은 판단 받을 때 그 일을 큰 일로 여기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삶의 지혜이다. 살다 보면 때로 이상한 판단이 귀에 들려 오는 경우가 있다. 그때 너무 지나치게 울분을 가지지 말고 가볍게 생각하라. 정말 참기 힘든 경우에는 주님이 당하셨던 멸시를 생각해 보라. 마가복음 6장 3절을 보니까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말한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판단 받고 멸시받는 것은 더 참기 힘든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관하지 않고 위대한 길을 가셨다.

판단을 듣고 주저앉아 버리면 안된다. 판단을 듣고도 겸손히 반성하면서도 전진하면 넉넉하고 위대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고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누구든지 성공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 벽을 곡 깨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은 판단 받지 않는 자세보다 판단하지 않는 자세이다. 신앙의 성공을 가장 방해하는 것이 바로 이 판단하는 태도이다. 왜냐하면 신앙은 기본 원리가 판단이 아니라 은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판단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데, 우리가 판단하는 모습을 보이면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다.



그러므로 항상 판단하기 전에 자신의 모습을 살펴야 한다. 누구는 판단 못해서 안하는 것인가? 서로 판단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이고, 그렇게 판단할수록 문제는 더욱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 가운데 “권위 하는 자면 권위 하는 일로”(롬12:8)를 지적하고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격려(또는 위로)하는 자면 격려(또는 위로)하는 일로”라고 번역할 수 있다. 또 사도행전에 나오는 “권할 말”(행13:15)은 사도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청중들로부터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는 청을 받는 가운데 나온 말이다. 여기서 바울은 사도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모인 무리들에게 권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권면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에챠”인데 결단, 결정, 상의, 충고 등의 의미를 가진다. 여기에서 권면은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결정하기에 앞서 주는 지혜자의 충고 혹은 아이디어의 제공을 뜻한다. 이것이 정치적인 권면일 때는 하나의 모략을 펴내는 것이요, 왕의 친근자로서 지혜자의 조언을 듣는 것이다. 군대에서는 지휘관을 돕는 참모를 가리킨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권면이란 잘못된 행위를 바르게 교정하려는 윗사람의 권위적인 충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권면은 계획을 수립하는데 돕는 것이요, 일의 성취를 위해 창안하는 조언을 뜻한다.

베드로가 예수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마18:21-22)고 하셨다. 그리고 산상보훈의 말씀에는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고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용서하는 넓은 인격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화해의 사귐을 갖도록 해야 한다. 갈등 속에 있는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직임과 사명을 갖고 있는 권사들은 특별히 먼저 용서의 훈련을 통함으로 자아의 인격을 성숙케 하고 화해자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장로, 권사, 안수집사 등의 항존직은 교회 안에서 결코 명예직이 아님을 밝혀 둔다. 그 사명이 얼마나 막중하고 귀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네 가지 면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첫째, 통일된 인격으로 자신이 자신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고,
둘째, 사랑과 존경으로 이웃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며,
셋째,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고,
넷째, 시험과 유혹을 물리침으로 마귀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장로, 권사, 안수집사 등의 항존직은 성숙된 신앙 인격을 가지고 남을 권면하고, 위로하며, 격려하고, 화해자로서 전도인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2. 직분자의 자격과 직무


①불평하는 말 대신에 남을 칭찬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②남을 저주하는 말 대신에 축복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③이간질하는 말 대신에 화해의 다리를 놓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④실망을 안겨 주는 말 대신에 용기를 주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⑤속된 말을 지나치게 하지 말고 신앙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



3.인격적인 자세


직분자는 남을 위로하고 권면하는 직임을 가졌다는 점에서 자신의 인격이 성숙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아훈련에 힘쓰고 인격적으로 남에게 존경을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러 가지 훈련하여야 할 문제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4. 직분자의 올바른 자세


교회에서 항존직분자로서 피택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신앙적으로, 또는 인격적으로 올바른 자세를 갖는 것이다. 사람이 신앙적으로 올바른 변화를 가져오려면 지식(Knowledge)의 변화, 태도(Attitude)의 변화, 그리고 행동(Action)의 변화가 따라야 한다. 여기서는 몇 가지 항존직분자로서 지녀야 할 올바른 자세를 설명하고자 한다. 권사는 바나바와 같이 믿음이 뛰어나고 성령충만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신앙적 자세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1)주일 성수하는 신앙적인 자세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철저히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통을 통하여 그의 삶을 새롭게 하여야 한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주일을 성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업, 직장, 애경상조 등으로 주일예배에 참석을 못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개인적인 취미생활인 등산, 낚시, 스포츠 관람 등을 즐기기 위해 교회에 출석을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권사의 직임을 받은 사람은 이러한 이유를 극복해야 한다. 주일을 철저히 지키는 신앙적인 자세가 없이 어떻게 남을 설득력 있게 신앙으로 지도할 수 있겠는가? 주일성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적인 기본 자세이다.



2)기도하는 신앙적인 자세


기도는 성령을 받는 통로이며, 영적인 권위와 능력을 얻는 길이다. 시편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편145:18)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실 때 그리스도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어 저들을 권면하게 하니 많은 사람들이 바나바의 권면하는 말을 듣고 큰 무리가 주께 더했다고 했다. 그 후 바나바는 다소에 가서 사울(바울)을 만나고 함께 안디옥에 와서 교회에 일 년간 머무르며 큰 무리를 가르치니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신자들을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항존직분자는 신앙적인 면에서 남을 권할 만큼 능력을 가져야 하며, 가르치고 권면하는 직무를 감당하기 위하여 먼저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를 많이 하여 성령충만한 신앙 인격을 구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남에게 멸시받지 않고 존경받도록 바나바와 같이 착한 성품을 가져야 한다.



2)물질 봉사의 신앙적인 자세


바나바는 본래 본명이 요셉이었지만 바나바(번역하면 勸慰者)로 부름받았을 때 자기가 가졌던 밭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바쳤다(행4:36-37). 사실상 누구든지 자기의 소유를 팔아 헌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엔 어떤 의미와 가치가 주어져야 하고 개인적인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교회에서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헌금하는 생활이다. 성서적으로 의무화되어 있는 십일조 헌금은 물론 감사헌금과 절기헌금을 함으로 다른 사람을 권하고 지도하는 입장에서 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가대원이나 교회학교 교사들을 사랑으로 대접하고 그들을 격려하는 일도 힘써 해야 할 사명인 것이다. 물질의 희생을 통한 봉사도 신앙적인 자세 가운데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3)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는 신앙적인 자세


성경공부는 우리의 일생을 다 바쳐 해도 모자란다. 진리를 이해하고 깨닫는 것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지도자가 되려 하면서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몰라서는 안 된다. 특별히 권사의 직임을 받은 사람은 구역에서 책임을 맡고 남을 지도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공부하는 자세를 확립해야 한다.

성서에 나타난 항존직분자 모델로서의 바나바

바나바는 구브로(Cyprus)에서 출생한 레위인으로서 원래 이름은 요셉이며 예수를 영접한 후 사도 바울과 함께 이방인 전도의 개척자로서 활동한 인물이다. 그의 이름의 뜻은 “위로의 아들”(Son of Consolation), 또는 “권위자”(勸慰者), 그리고 희랍어로는 “권면”, “격려”라는 뜻을 가졌다(참조, 행4:36, 13:15, 9:31). 그의 이름에서 나타나는 대로 그는 성서에 나타난 권사의 모델로서 적합하다고 생각되는데 여기에서는 성서를 중심으로 그의 신앙과 미덕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바나바는 그에게 주어진 신앙 이름대로 권사의 전형적인 모델이라고 생각된다. 희랍어 “파라클레시스”는 ‘권면’(exhortation)이란 뜻을 가졌는데, 바로 바나바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로서 헌신적인 봉사의 모범자였고, 남을 권면하고 화해시키며, 교회 심부름을 기쁨으로 했던 사람이다.



1)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다(행11:24).


바나바는 그의 성품이 착할 뿐 아니라 신앙적인 면에서도 성령 충만한 신앙을 가졌고 믿음도 뛰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많은 사람들이 인은 영적인 권위가 생기는 법이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합심하여 열심히 기도하였을 때 성령을 받았고, 그 능력에 의하여 전도하고 초대 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바나바도 성령이 충만했었기(행11:24) 때문에 성공적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교회 지도자들이 영적인 권위나 능력이 없다면 주님의 일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일은 세속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권사의 사명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무릎꿇고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그래야 신앙적인 권위와 능력을 부여받아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고 권면할 때 영향력 있게 할 수 있게 된다.



2) 바나바는 헌신적인 봉사의 모범자이다(행4:37).


바나바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예루살렘이나 또는 그 부근에 있던 토지를 팔아 사도들 앞에 바쳤다. 뿐만 아니라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을 할 때 노동하면서 전도하는 일에 봉사한 사람으로 나타나 있다(고전9:6). 가진 재산을 헌납한 신앙심이라든지 친히 노동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전도한 행위는 바나바가 헌신적인 봉사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권사의 직임 가운데는 교회가 필요로 할 때 헌금이나 구제활동, 봉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사명이 있다. 왜냐하면 권사는 남을 격려하고 권면하는 직책이기 때문이다.



3) 바나바는 중재인으로서 화해하는 일에 힘쓴 사람이다(행9:27).


사울이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한 후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과 사귐을 가지려고 하였을 때 제자들은 그를 만나 주지 않았다. 왜냐하며 제자들은 평소에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고,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까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러 갔던 사람이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를 두려워하였고 그가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경험했던 일, 즉 그가 어떻게 주님을 만나고, 주의 음성을 듣고, 다메섹에서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설명해줌으로써 사울로 하여금 예루살렘에서 잠시 머무르며 제자들과 사귀도록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바나바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반목 상태에 있었던 사울과 주의 제자들 사이에서 중재자로 화해의 사역을 잘 했던 것이다. 바나바는 실로 지혜, 사랑, 관용의 덕을 가지고 화해자로서 살았던 그리스도의 종이었다.



특별히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음으로 수 많은 성도들이 더해갔지만 교권을 잡으려고 했다든지 자기를 영웅시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바나바는 화해자로서 아름다운 삶을 산 사람이었을 뿐 만 아니라 겸손한 주의 종이었다.



항존직분자의 직무 가운데 중요한 것은 “권위자(勸慰者)로서 남을 권면하고 위로하는 일이다. 어떤 형제자매가 잘못된 생각을 한다든지, 잘못 이해함으로써 오해하는 일이 있다든지, 다른 사람과 갈등 속에 있을 때 권사는 그들을 찾아가 잘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권면하여 올바른 길로 인도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마음에 상처받은 사람들, 또는 병든 자를 찾아가 위로하는 일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믿음의 낙심자들을 찾아가 권면하여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새롭게 해 주어야 할 사명도 있다.

4) 바나바는 교회의 심부름도 열심히 잘하였다.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헬레니스트 유대인들과 논쟁하다가 마침내 미움을 사 생명이 위험하게 되었을 때 바나바는 그를 가이사랴로 호위하여 가서 선편으로 다소에 보내는 일을 도왔다(행9:29). 또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로 파견해서 가게 했다. 이는 당시 안디옥에서 유대인 이외의 사람들이 신앙에 들어섰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에 전해져 유대인 간에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그 사정을 알아보기 위하여 바나바를 보낸 것이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많은 교인들이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다소로 가서 사울(바울)을 데려다가 함께 사역을 하면서 안디옥 교회의 기초를 놓게 되었다(행11:22-26).

바나바는 글라우디오(클라우디우스)황제 때 예루살렘에 큰 기근이 들자 사울과 함께 교회가 보내는 보조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가게 된다. 그리고 그는 안디옥으로 돌아올 때 조카인 마가 요한(마리아의 아들)을 데리고 왔다(행12:25). 교회는 선교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심부름할 일꾼이 필요하다. 봉사의 직무와 전도의 사명,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교역자 외에 많은 평신도 자원 봉사자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존직분자의 직임을 받은 사람들은 바나바와 같이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는 주의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5) 바나바는 전도에도 힘썼다(행13-14장).


바나바는 예루살렘에서는 물론 안디옥에서도 전도를 많이 했다. 특별히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여 구부로에 보냈을 때 전도자로서 활약했고, 또다시 소아시아의 고원지방 갈라디아 지역에 전도하러 보냈을 때도 전도자로서 바울과 함께 사역을 했다. 이 때에 바나바는 연장자로서 설득력 있고 부드럽게 청중들에게 전도하였는데, 바울은 세찬 논쟁으로서 전도를 한 것 같다. 그래서 항상 핍박자들이 돌을 들어 칠 때에는 바나바를 노리지 않고 바울을 표적으로 삼았다(행14:19). 바나바가 초대교회에 큰 공적을 남긴 것은 바울을 찾아내 함께 동행하면서 이방인의 전도에 힘쓴 결과이다. 바나바가 사울(바울)을 만나 그를 돕지 않았다면 초대교회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런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바가 성서적으로 항존직분자의 모델이라면 항존직분자는 적극적으로 전도하는 일에 교역자를 도와 교회를 견고케 하는 자들이라고 하겠다.

교회가 전도의 사명을 효율적으로 감당케 하기 위하여 항존직분자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서정호 목사 (영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