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없는 르비딤
이름 : 김춘섭
날짜 : 2002-11-26 12:35:52 (IP : 202.123.145.54)
조회 :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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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7:1-7
가끔씩 겪는 불편한 것들이 전기와 수도 사정입니다. 특히 물이 나오지 않으면 여간한 불편이 아닙니다. 이온수니 육각수니 물에 대한 관심이 대단합니다. 기름 값보다도 더 비싼 물을 마시고 있으며, 물장사로 대기업이 되고, 태평양 건너 미본토에서 알프스의 물까지 도착하고 있습니다.
먼길을 가는 나그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샘물입니다. 그곳에서 목을 축이고 새 힘을 얻어 또 다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물을 얻기 위한 야곱의 노력이 창세기에 나옵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을 가시기 위해 사마리아를 지나시다가 수가성 야곱의 우물가에서 여인에게 마실 물을 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최초의 음성인 "빛이 있으라"는 말씀 전에 이미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은 이미 창세 전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출애굽의 본문은 물이 없어 목말라하는 인생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14장), 제일 먼저 기착한 곳이 마라였는데, 그곳에서 처음 맞이한 사건도 바로 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물은 있었지만 써서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백성들이 불평을 하였고, 모세는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 지시한 나무를 던졌더니 단물이 되어 모두 마시게 되었습니다(15장). 그후 엘림에서 쉬고 계속되는 여행 중에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로 백성들을 배불리셨고(16장), 다시 길을 인도하시던 중 오늘 본문이 시작됩니다.
1. 물이 없는 곳에 장막을 치게 하심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1절)" 하는 말씀으로 오늘 본문이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 노정을 따라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마실 물이 없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쉴만한 물가가 아닌 물이 없는 르비딤으로 인도하셨습니까?
이때 목이 마른 이스라엘 회중은 지도자 모세를 향하여 원망합니다.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2절)."고 모세에게 고함쳤습니다. 지도자 모세는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고 말합니다. 지금의 그런 행위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백성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목이 갈한 백성들은 멈추지 않습니다.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3절)"면서 모세를 향하여 원망합니다.
살던 애굽은 나일강의 홍수가 걱정이었지 물이 부족한 걱정은 없었던 애굽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물도 없는 곳으로 인도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따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물이 없는 르비딤에 장막을 치게 하신 것은 분명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다투도록, 지도자를 향하여 원망하도록 하신 것은 아닙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곳으로 인도하셨겠습니까?
2. 다툼과 원망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어떤 분이신 지를 볼 수 있는 눈을 이미 열어 주셨습니다. 430년의 노예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분이셨습니다. 탈출 중에 바로의 군사에게 꼼짝없이 죽게된 때, 바다를 갈라서 살려주신 분이셨습니다. 쓴 물조차도 단물로 변화시켜주신 분이셨습니다. 그것은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습니다. 순서대로 본다면, 바로 전날 저녁도 그날 아침도 그들은 하늘에서 내리신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불리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위기를 넘겨주셨습니다. 그것도 절대절명의 위기였습니다.
물 없는 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서 어떻게 행동하기를 원하셨겠습니까?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들을 떠나게 하신 분이셨겠습니까?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지도자와 다투었고 애굽의 종살이를 회상하면서 목이 마른 현재보다 과거를 더욱 미화시켰습니다. 모세에게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서 우리와 우리 가족과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3절)?"고 하면서 원망하였던 것입니다.
르비딤이라는 제한된 환경, 고통스러운 순간을 지내는 믿음이 있어야 하며, 때로 이런 고통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뜻이 있으시어 마실 물이 없는 고통스런 르비딤으로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사탄도 움직이시어 인간을 고통의 싶은 곳으로 몰아가십니다. 욥의 고통을 보면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탄은 갖은 아픔을 욥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 아픔의 때에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사람끼리의 다툼을 극복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실제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에서, 교인과 교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분쟁들은 대부분이 바로 물이 없어 자신의 목이 갈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그 목마름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신선한 물을 또한 주실 분이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마실 물이 없는 르비딤에 장막을 치게 하시고는 그들의 다툼과 원망을 보시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협력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기도를 기다리셨습니다.
3. 호렙의 바위틈
돌에 맞을 위협까지 느낀 모세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6-7절)."고 하셨습니다. 호렙산은 모세가 소명을 받던 하나님의 산이었고(3:1), 지팡이는 그곳에서 부름 받을 때 들고 있던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호렙의 바위틈을 예비해두셨던 것입니다. 눈앞의 어려움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을 보는 믿음의 눈이 감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시고 그냥 뒷짐지시는 무책임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죽기까지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목마른 백성들을 위하여 이미 물을 예비해두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주시지 아니하시고 먼저 르비딤에 장막을 치게 하셨던 것입니다. 얼마나 세밀하신 하나님이십니까? 르비딤은 결코 마실 물이 없는 곳이 아닙니다. 호렙산 바위틈의 신선한 물을 마시기 위하여 그 은혜를 맛보기 위하여 잠시 기도하라는 곳입니다.
아! 하나님께서 이제 어디에서 우리에게 물을 주실까? "주님,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물이 없습니다. 어디에서 물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렇게 기도하였더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겠습니까?
마찬가지 아닙니까? 오늘 우리의 목마름도 그렇게 해결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지금 너무 힘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제는 좋은 것을 주실 때가 되었지 않습니까? 어디에서 물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물이 없었던 바로 그 르비딤에서 최초의 전쟁인 아말렉과의 싸움을 하게 되고 여호와 닛시의 대승리를 거두는 역사를 맛보았습니다(17:8-16).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까?
우리의 삶과 신앙의 여정에 하나님은 마실 물이 없는 곳으로도 지나게 하십니다. 그곳에 장막을 치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곳은 정녕 마실 물이 없는 곳이 아닙니다. 아직 우리의 눈이 보이지 않는 반석 밑으로 놀랍고 신령한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내 눈을 감겨주십시오>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 눈을 감겨 주십시오/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내 귀를 막아 주십시오/나는 당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발이 없을지라도/나는 당신 곁에 갈 수 있습니다/또한 입이 없어도/나는 당신에게 애원할 수 있습니다/내 팔을 꺾어 주십시오/나는 당신을 마음으로 더듬어 품을 수 있을 것입니다/내 심장을 멈추어 주십시오/나의 뇌가 맥박 칠 것입니다/만일 나의 뇌에 불이라도 사른다면/나는 나의 피로써 당신을 운반할 것입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목에 물이 없는 르비딤이 있었습니다. 목이 말랐습니다. 그러나 이 르비딤에는 반석 아래로 흐르는 좋은 물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생명의 샘물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르비딤을 만난 인생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38)" 우리는 르비딤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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