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치유(이사야 53:4-6)
오늘의 시대는 ‘위기의 시대’ 입니다. 특히 전대미문의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일상이 깨어진 이 시대는 진정 ‘위기의 시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회를 바로 세워나가야 할 교회가 침체되면서 교회의 위기가 오고 우리 사회와 나라와 민족, 더 나아가 전 세계의 위기가 온 것입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거룩한 교회가 우리 민족과 온 열방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복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복음의 본질을 회복했을 때 십자가의 기적의 치유가 일어나 이런 ‘위기’가 바로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십자가의 예언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하신 말씀이 예수님 탄생 700여 년 전에 오늘 본문 이사야 53장에 더욱 자세히 예언하셨는데 700여 년 후 십자가에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여도 진정한 개혁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교인들이 있는데 왜 그런지 아십니까? 십자가의 체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육이 치유되고 회복된다면 변화는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말씀 가운데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예언 성취를 통해 우리의 영·혼·육의 기적의 치유를 우리 모두 다함께 체험할 수 있길 바랍니다.
1. 우리의 영의 모든 죄악을 대신 지심
하나님께서는 5절 상반절과 6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 인간은 죄악으로 인해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대신 지실 것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해 놓으신 대로 그대로 성취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육체로 지은 죄, 마음으로 지은 죄, 영으로 지은 죄, 더 나아가 우리의 과거의 모든 죄, 현재의 모든 죄, 미래의 모든 죄까지 우리의 모든 죄악을 대신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악이 다 용서 받고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고난주일에 전도사님이 교회학교 어린이들에게 설교를 했는데 현실감 있게 하려고 십자가에다 큰 망치로 굵은 못을 “꽝! 꽝! 꽝!” 박으면서 “여러분!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예수님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하고 묻고 눈물을 흘리면서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은 우리 죄 때문에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거예요”라고 말하고는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어요?” 그러나 한 아이가 울먹이면서 그러더래요. “전도사님이요...”
우리도 이렇게 교회에 다니면서도 나 같은 죄인을 위해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바로 깨닫지 못해서 나와 상관이 없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우리가 그 구원의 은혜에 진정으로 감사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지옥의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것보다 더 귀하고 소중하고 복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의 부귀나 명예, 권세나 향락 아니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철학자 김용규 박사가 쓴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이란 책 가운데 삼성그룹을 창립한 고 이병철 회장이 1987년 세상을 떠나기 전 캐톨릭 교회 정의채 신부님에게 보낸 4페이지짜리 질문지가 나오는데 24가지 질문 중 첫 번째 질문이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신이 존재한다면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인 이 회장도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것이 다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는 절실함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피조물 인간은 유한하여서 언젠가 한 번은 죽게 되는데 분명한 사실은 그 후 천국과 지옥의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믿는 자만이 영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크리스천 철학자로서 가슴에 와 닿는 답변으로 우리에게 해답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 후 이병철 회장이 마지막 순간에 병상에서 믿음을 갖고 하늘나라로 떠나갔는지는 주님과 자신만이 알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지옥을 가는 결정적인 이유가 다른 죄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대신 져 주셨는데 이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6:9에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분명히 경고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세상 종교와 기독교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세상 종교는 내가 선행을 하고 수양을 하고 고행을 해서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수도 종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죽음 앞에서 다 무너지고 맙니다. 그래서 인간 스스로 죄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인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게 하시고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만은 다른 세상 종교와는 달리 ‘계시 종교’인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 외에 우리의 선행이나 공로, 교리의 실천이나 자신의 교파의 소속 등을 덧붙이는 것은 모두 다 복음을 벗어난 이단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신앙의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3:19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라고 분명히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이 구원의 확신과 감격부터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인 복음을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 친척, 친구, 이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지옥 불 못에 떨어져 멸망당하기 전에 급히 그들을 구해내야 합니다.
우리로서는 멸망하고 있는 이들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고 정성을 다해 사랑으로 섬기고 매 주일이 우리의 생애의 마지막 주일이라는 심정으로 강권하여 그들을 모시고 나아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십자가 예언의 성취대로 예수님께서 그들의 모든 죄를 대신 져 주심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불신앙의 죄를 회개하게 될 때 지난날의 모든 죄악이 다 용서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온 국민이 구원을 받고 교회가 나라와 민족의 희망으로 솟아오르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우리의 혼의 상처를 대신 지심
계속해서 본문 4절 하반절과 5절 중반절 말씀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우리는 흔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영혼의 죄악만 대신 지신 줄 알지만 실제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해 놓으신 그대로 십자가에서 우리 마음의 모든 상처의 슬픔까지도 대신 지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상처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의 행복한 삶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가 “영적으로 은혜 받아라.” “육적으로 축복 받아라.”고 강조하여 우리가 은혜도 많이 받고 축복도 많이 누리고 있지만 마음의 상처의 치유에 대해서 방관함으로 우리의 성격이나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31-32에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 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받은 상처의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 가장 먼저 주님의 십자가 앞에 우리의 모든 상처를 조금도 남김없이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 빈 마음에 십자가의 사랑을 간구해서 그 사랑으로 어떠한 원수라도 친절히 대하고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십자가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어떠한 원수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지난날의 어떠한 상처도 치유 받고 날마다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하지 못하니까 우리가 교회에 오래 다니고 은혜와 축복도 많이 받고 중한 직분을 받았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결정적인 원인은 우리 마음속의 그 원수를 용서하지 못함으로 인해 우리의 그 상처가 가슴에 응어리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8:35에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분명히 경고하지 않습니까?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 목사님이 길을 가다가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가 오랫동안 어떤 사람과 원수로 지낸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친구에게 “아직도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있는가? 아직도 용서하지 못했어?”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죽어도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하자 웨슬리 목사님이 그랬다고 합니다. “좋네! 정 그렇다면 계속해서 그 사람을 용서하지 말고 미워하게나. 그런데 자네가 꼭 알아두어야 할 일이 있네. 자네는 앞으로 어떤 사람에게든지 절대로 미움 받을 일을 해서는 안 되네. 혹시 그 상대방도 자네처럼 절대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일지 모르니까 말일세...”
이처럼 나 자신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은 나를 용서해 주기를 바라면 되겠습니까? 이처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게 될 때 스스로 불행과 고통 가운데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어서 더 이상의 신앙생활의 행복은 말할 것도 없고 축복을 다 잃어버릴 뿐입니다. 더 나아가 내 성격이나 행동에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아서 자꾸 짜증내고 신경질을 부리고 감정의 응어리도 안 푸니까 모든 관계도 다 깨어지고 맙니다. 그리하여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암적 존재로 살게 됩니다. 또한 그 상처가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신경성질환만 앓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응어리지고 보타서 결국 암에 걸려 죽음으로 몰고 가고 맙니다. 그래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지난 18년 동안 임상 연구한 결과 암 발병률이 감정의 응어리를 푼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2.7배나 높다고 합니다. 이렇게 불행과 고통 가운데 인생을 끝내버린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한 집사님이 찬양대원으로 봉사하는데 목소리도 안 좋은데 늘 음정까지 틀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또 목청을 돋워 엄청 크게 불렀습니다. 다른 대원들이 아무리 눈치를 줘도 용감하게 틀려버리니까 결국 몇몇 대원들이 목사님께 가서 그 집사님이 찬양대를 그만두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거절했지만 계속 대원들이 찾아오니까 어쩔 수가 없어서 그 집사님을 불러서 찬양대를 그만두면 어떻겠느냐고 권면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집사님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왜 제가 찬양대를 그만두어야 하죠?”하고 따졌습니다. 그래서 “찬양대원들이 5명이나 찾아와서 집사님 찬양을 듣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니까 그만두면 안 될까요?” 했더니 이 집사님이 화를 내며 그러더랍니다. “목사님 설교가 듣기 힘들고 졸립다고 하는 교인이 50명도 넘는데 목사님은 계속 설교하시잖아요? 그런데 난 겨우 5명이 힘들다고 하는데 왜 찬양대를 그만둬야 해요?” 그러면서 달려들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어떠한 원수라도 용서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위로가 임하게 되고 고통이 다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지고 육신도 건강해지고 삶도 행복해지고 복되고 형통한 길이 열려지고 날마다 천국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예언의 성취대로 지난날의 우리의 모든 상처를 대신 지심을 믿음으로 어떠한 원수라도 용서할 때 우리의 삶 가운데 모든 원수가 사라지고 한국 교회가 하나 되어 나라와 민족의 새로운 희망이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우리의 육의 질병을 대신 지심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본문 4절 상반절과 5절 하반절 말씀을 통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십자가에서 우리의 영혼의 죄악과 마음의 상처만 대신 지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신의 질병조차도 대신 지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예언의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함으로 인해 죄악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상처도 치유 받았다고 하면서도 십자가의 기적적인 치료를 체험하지 못하고 질병의 고통 가운데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래서 마태복음 8:17에 다시 한 번 강조하십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상처)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질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연약한 상처뿐만 아니라 질병까지도 짊어지셨다고 신약성경에서까지 증거합니다. 그런데 말세의 마지막 때 갈수록 늘어만 가는 갖가지 전염병, 희귀병, 난치병 등의 질병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인간의 힘이나 의술만으로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세월이 흘러갈수록 우리에게 끊임없이 닥쳐오는 질병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십자가의 예언의 말씀을 믿음으로 주님의 십자가 밑에 우리의 질병마저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온전한 치유를 확신하며 간구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믿음대로 기적의 치유가 일어나게 됩니다.
은퇴 장로님이 폐암과 신장염으로 입원하셨다고 해서 심방을 갔습니다. 원래 장로님은 예수님을 안 믿어서 부인 권사님을 얼마나 핍박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업이 그렇게도 안 풀려서 결국 37년 전에 교회에 처음 나오시게 되었는데 그 뒤로 교회를 안 빠지고 열심히 나와 봉사하시면서 은혜도 받고 행복도 누리게 되어서 결국 장로님까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은퇴 후 건강에 이상이 생겼는데 병원에서 그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몇 년 전 불면증으로 인해 6, 70일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해서 거의 정신 줄을 놓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또 발이 너무나 시려서 양말을 두 켤레씩 신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방을 가서 어떻게 해서든지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기도하자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장로님이 속으로 “목사님이 환자 형편을 저렇게도 모르고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러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은 그 날 밤에 일어났습니다. 두 달 넘게 잠을 자지 못했는데 그 날 밤에 초저녁부터 잠이 그렇게 쏟아지기 시작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동안 그토록 밀렸던 잠을 푹 주무시고 결국 그 다음 날부터 새벽기도회까지 나오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어떻게 인간의 힘이나 의술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질병을 대신 지셨음을 확실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 밑에 우리의 모든 질병을 내려놓고 믿음으로 합심해서 기도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기적적으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5:15-16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고 분명히 약속하시지 않습니까?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예언의 성취대로 우리의 모든 질병도 대신 져 주셨기 때문에 환자 본인이 먼저 십자가의 치료를 확실히 믿고 주의 종들이나 성도들이 사랑으로 합심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함으로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료가 우리에게 불일 듯 일어나게 되어 수 많은 사람들을 치료함으로 교회가 나라와 민족의 굳건한 희망으로 일어서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전에 CBS 기독교방송에서 이런 간증이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윤옥경 목사님은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외곽인 대동군 윤리면 무진리의 무진교회를 개척해서 목회하셨는데 신사참배에 반대하셨다는 이유로 일본 순사들에게 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고문과 옥고를 치러야 했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큰아들까지 잡혀 고문 끝에 맞아 죽고 만 것입니다. 그러니 일본에 대한 상처가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그 후 해방의 기쁨도 잠시 잠깐 후 공산당에게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네 차례나 검거되어 동족의 손에서까지 고문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6.25 전쟁이 일어나서 인천에 피난 내려와서 평양 근교의 교회 이름과 같은 무진교회를 개척하셨다가 또 다시 공산당에게 잡혀 감옥에 계시다가 퇴각하는 공산군들이 감옥을 폭파하여 결국 1951년에 하늘나라로 떠나가시고 말았습니다. 둘째 아들인 윤인수는 6.25전쟁 때 11살이었는데 감옥에 잡혀계시는 아버지 면회를 갔다가 목사 자식이라고 잡혔는데 11살 밖에 안 된 어린아이를 예수를 부인하라고 얼마나 두들겨 패고 고문을 했던지 그만 실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데 너무도 외롭고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사모님 되시는 어머니가 남의 집 식모살이를 나가게 되셨는데 그나마 과로가 쌓였는지 몸져눕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결국 눈이 먼 이 아들이 길거리로 나가 구걸을 하고 신문팔이, 껌팔이, 구두닦이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했습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처음으로 벌어 온 돈을 어머니께 갖다드리면서 “엄마, 이제 약도 살 수 있고 쌀도 살 수 있어요...”하고 기뻐했더니 늘 기도하시던 어머니가 “아들아, 하나님께 십일조부터 바치자...” 그러시더랍니다. 그러자 아들이 “엄마, 하나님 믿은 것 때문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형 죽고 엄마 건강 잃고 저는 눈까지 멀어버렸는데 하나님이 뭐고, 십일조는 무슨 십일조예요?”라고 하면서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달려들면서 크게 화를 냈더니 어머니가 어린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시면서 그러시더랍니다. “아들아, 그래. 네 말대로 우리가 고향도 잃고, 집도 잃고, 아버지도 잃고, 형도 잃고, 건강도 잃고, 눈도 잃었는데... 하나님마저 잃어버리면 우리가 어떻게 살겠니?...” “우리가 세상에서 가진 모든 것 다 잃었는데 하나님마저 잃어버리면 우리가 어떻게 살겠니?...” 하시는 어머니의 눈물의 그 말씀이 이 아들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돌이키게 해서 결국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까지 되어서 그의 아버지가 세우셨던 무진교회를 이어 받아서 목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교도소를 돌면서 이 땅에서 버려지고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방송선교를 통해 공산 치하의 압제와 기근에 시달리는 북녘 땅의 우리 북한 동포들과 중국의 버려진 조선족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국경을 넘어 중국의 장애인 돕기에 앞장서게 된 이 분이 바로 윤인수 목사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주님을 떠나 살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떠난 인생은 물을 떠난 물고기와 같은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렇듯이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떠나선 한 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수백 년, 수천 년 전에 예언하신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대로 성취하셨듯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영혼의 모든 죄악을 대신 지시고 우리의 마음의 모든 상처도 대신 지시고 우리의 육신의 모든 질병도 대신 지심을 우리가 확실히 믿을 때에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의 은혜와 평강과 축복의 삶이 새롭게 펼쳐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출처 : 예수가 좋다오
'장년부의 방 > 장년부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진정한 자유, 용서(롬8:15;갈5: 1-13) (0) | 2021.08.17 |
---|---|
[스크랩]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을 살립니다(갈2:20;눅1:26-38) (0) | 2021.08.17 |
아무 것도 아닙니다 (0) | 2021.07.11 |
[스크랩] 물이 없는 르비딤 (0) | 2021.07.11 |
[스크렙] 흔들리며 피는 꽃 (0) | 2021.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