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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드보라와 바락 5 (삿 4:17-20)

에반젤(복음) 2021. 7. 6. 06:56

드보라와 바락 5 (삿 4:17-20)

 

17 시스라가 걸어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이는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의 집 사이에는 화평이 있음이라 18 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가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그를 덮으니라 19 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게 하라 내가 목이 마르다 하매 우유 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게 하고 그를 덮으니 20 그가 또 이르되 장막 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

 

오늘은 “드보라와 바락” 앞의 4장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다시 4장을 보았습니다. 앞에서 야빈의 군대를 다볼산과 기손강에서 쳐부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야엘과 이스라엘이 도망치는 시스라를 죽이고 야빈의 왕국을 진멸한 내용입니다. 이 말씀에서 자아의 마지막 남은 잔재까지도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말씀은 전도의 비밀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불신자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자아처리와도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자아를 꺾지 않고는 전도를 들어도 예수를 믿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아 측면에서 보면 전도도 자아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불신자의 자아를 꺾어 예수 믿게 할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1. 화평의 원리입니다.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17절 "시스라가 걸어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이는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의 집 사이에는 화평이 있음이라" 겐족속은 하나님께서 숨겨놓으신 족속으로 언제나 좋은 일의 상징입니다.

 

삿1:16에 겐족속이 그 풍요로운 종려의 성읍을 마다하고 황무지에 거하더니, 삿4:11에는 이들 중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장막을 칩니다. 그리고 그들은 원수 야빈과 화평하게 지냅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보면 반역적인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워낙 비천한 존재감 없는 족속들이어서 누구의 시기를 받을 대상도 아니고 그가 이곳으로 이사한 것도, 야빈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다 하나님의 지시와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삿14:4을 보면 삼손이 블레셋 여인과 결혼한 것도 블레셋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요한이 대제사장들과 친했던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보호하려는 요한의 사랑이었습니다.

 

겐사람 헤벨의 이름 역시 '친구, 동료'란 뜻입니다. 이처럼 전도를 위해서 이런 친구나 동료와 같은 관계가 필요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이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헤벨은 경건한 겐족속이었지만(렘35장) 그렇다고 사람과 결별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죄와 멀리하고 경건하게 살아야 하나 그렇다고 사람들과의 결별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5:9-10에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들의 범죄와 함께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도는 도리어 예수님처럼 죄인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인산인해를 이룬 것은 예수님께서 그만큼 죄인들에게 가깝게 찾아가셨기 때문입니다.

 

2. 사랑의 원리입니다.

 

18절 "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가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그를 덮으니라" 이것은 야엘이 시스라를 안심시키려고 한 행동입니다. 사실은 그런 다음에 죽이려고 한 것이지만, 비유적으로는 사랑의 진리의 그림을 보여줍니다.

 

전쟁에 져서 피하여 오는 시스라를 맞이하는 야엘의 태도를 보십시오. 그를 “주”라고 불렀는데 '주'는 '아돈'으로 이 용어는 주권자 최고 통치자 혹은 하나님을 지칭할 때 쓰이는 용어로 최고의 존경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야엘 자신의 장막에 들였다는 것은 여자의 안방에 들인 것으로 바락이 와도 이곳은 뒤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즉 안심을 준 것입니다. 깜짝 놀랄 만큼 존경하고 극진히 대접하며 그를 숨겨 주었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사더라도 한 번도 이런 대접 못 받았을 정도로 최고로 사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들이 마음의 문을 열 때 그들도 마음의 문을 엽니다. 많은 탈북자들이 예수를 믿는데 그들은 중국 국경에서 선교사들의 아낌없는 도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쫓기고 쫓기다가 천사를 만났습니다. 국가에 의해 파송된 사람들도 아니고 순수하게 예수 사랑 때문에 스스로 북한선교사가 되어 목숨 걸고 탈북자들을 도와줄 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 탈북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야엘은 시스라를 이불로 덮었습니다. 이것은 숨겨 주는 의미와 추위와 공포에 떠는 시스라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모습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성경이 교회를 어머니에 비유하고 있는 것도 그런 어머니의 역할이 필요해서입니다. 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다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말씀의 원리입니다.

 

사랑해도 말씀이 없이는 구원할 수 없습니다. 19절 "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게 하라 내가 목이 마르다 하매 우유 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게 하고 그를 덮으니" 했고, 삿5:25을 보면 "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곧 엉긴 우유를 귀한 그릇에 담아 주었"다고 했습니다.

 

시스라는 물을 구합니다. 이 물은 세상의 지식입니다. 그러나 야엘은 지혜로워서 물을 주지 않고 우유를 줍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을 양육하면서 지식만 늘려주면 신앙을 버립니다. 고전8:1에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교만해질 뿐 아니라 진정으로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체 하고 은혜를 받지 않습니다.

 

야엘이 준 젖은 가죽부대에 오래 담아 발효된 요구르트였습니다. 이 우유는 농축되고 소화가 잘되며 변질되지 않으며 맛과 영양이 풍부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우유입니다. 이처럼 죄인이 받아들이기 쉽도록 복음을 알기 쉽고 핵심적이면서도 성령의 은혜가 가미된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래 묵상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도움 되는 이야기도 필요합니다. 그러면 은혜로운 말씀이 됩니다.

 

그래서 벧전2:2에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했고, 살전1:4에는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시고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심을 깨달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야엘은 그 젖을 그냥 준 것이 아닙니다. 귀한 그릇에 담아 주었습니다. 가령 금그릇에 담아준다면 얼마나 큰 존경입니까? 이처럼 복음의 말씀의 귀중성을 자각하게 해야 합니다. 왜 이 말씀을 들어야 하는지, 말씀 하나 하나가 사느냐 죽느냐 우리 영원한 생명과 관계가 있는 말씀임을 느껴야 합니다.

 

잠25:11에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했듯 우리의 전도가 그런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론도 중요하고 결론도 중요하지만 초신자에게는 서론이 중요합니다. 예화도 필요합니다. 아무리 귀한 말씀도 귀한 그릇에 담아 주지 않으면 귓전으로 흘려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전도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임으로 우리의 자아가 변화되고 내 영혼이 변화되고 하나님과 사람의 기쁨이 된다면 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과 은혜 아래서 더욱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믿음과 순종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