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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드보라와 바락 7 (삿 5:1-7)

에반젤(복음) 2021. 7. 6. 06:53

[비유강해]

드보라와 바락 7 (삿 5:1-7)

1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이르되 2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3 너희 왕들아 들으라 통치자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4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 5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 산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6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7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으니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

5장을 모두 봐야 하는데 시간 관계상 다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드보라와 바락' 마지막 시간으로 삿 5장의 드보라의 개선가를 가지고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가나안 왕 야빈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대승한 뒤 개선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제1부 1-12절까지 이스라엘을 곤경과 압제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한 뒤, 제2부 13-23절에서는 시스라와의 전투 시 상반된 자세를 보였던 백성들의 모습과 승리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영적전쟁에 임하는 우리 믿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 경건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성도의 경건생활의 원리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6절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블레셋이나 가나안 왕 야빈의 압제에서 얼마나 압박을 받았든지 사람들이 대로로는 나가지 못하고 소로로 다녔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멀리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민33:55-56에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소로로 다녔다 했듯이 믿는 사람들이 얼굴도 명함도 내놓을 수 없을 만큼 업신여김을 받게 됩니다. 신28:10에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했는데 그렇지 못한다면 하나님 잘못 섬긴 결과입니다.

시73:27-28에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하신 이 말씀으로 우리가 경종을 삼아야 합니다.

2. 항상 조심하여 근신해야 합니다.

14절 "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들은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들이요" 이 말씀은 본래 아말렉이 살던 지역을 점령한 에브라임 지파가 전투에 참가함에 대하여 그 하나님을 거역하던 지역에서 하나님의 군대가 나왔으니 기쁘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한 편으로는 우리 본바탕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승리를 얻었다 할지라도 우리의 본바탕은 아말렉이라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로서 이스라엘을 대적한 자로, 영원한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이걸 이기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의 권능을 받고 큰 승리를 얻는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하면 죄 덩어리입니다. 우리 바탕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교만하지 않습니다. 자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지으신 것도 어디에 이르렀든지 네 바탕을 알라는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자만하거나 방심하지 말고 근신하며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3. 예수 이름에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14절 "베냐민은 백성들 중에서 너를 따르는 자들이요" 베냐민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작은 지파입니다. 그래서 베냐민에서 사울이 지도자로 선정될 때 저는 가장 작은 베냐민의 지파입니다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가 지파 차원이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 전쟁에 참여한 이유가 뭘까요? 지파에 대한 자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힘이 작고 환경이 어렵다고 할 수 없다고 낙심한다면 하나님을 부정하는 큰 죄가 됩니다. 하나님을 못 믿는 것이 큰 죄입니다. 안 믿는 것도 죄고 못 믿는 것도 죄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에 큰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마9:23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같은 예수를 믿지만 그 결과가 다른 것은 믿는 믿음의 차이입니다. 얼마나 크신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요,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4.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14절 "마길에게서는 명령하는 자들이 내려왔고 스불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들이 내려왔도다" 여기 마길은 서편의 므낫새 반지파를 가리킵니다. 마길과 스불론에서 지휘관들이 내려왔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대장을 따라 참여했다는 뜻입니다. 베냐민 지파와 반대입니다. 일사분란하고 강한 군대의 모습입니다.

신앙생활도 목숨 걸고 해야 합니다. 막12:29-30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목숨을 다해서 힘쓰시기 바랍니다.

신31:6에도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이 담대함이 없이는 가나안을 내 것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은혜 받으면 여성들도 남자의 기질을 갖습니다. 드보라와 같이 용사의 기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5. 육신의 안일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16절 "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목자의 피리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찌 됨이냐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이 말씀은 동편에서 목축을 하는 루우벤 지파가 서편의 전쟁 나팔 소리를 듣고도 무관심한 그들은 피리나 불면 양만 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한 말씀을 15, 16절에 두 번이나 반복하는데 이는 비난하고 비꼬는 형태의 문장입니다. 그들은 전쟁이 참가여부를 놓고 커다란 토론만 있었지 결국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말만 그럴싸했지 마음은 양들을 먹이는 초원에만 있었습니다. 살기에만 바빴습니다. 학개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일보다 자기 일이 바빴습니다.

그 결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학1:6) 하셨습니다. 그래서 마6:33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셨습니다.

6. 하나님을 더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17절 “길르앗은 요단 강 저쪽에 거주하며 단은 배에 머무름이 어찌 됨이냐 아셀은 해변에 앉으며 자기 항만에 거주하도다” 여기 길르앗은 요단 동편의 갓지파와 므낫새 반지파를 대표한 것으로 이들은 루우벤과 같이 육신의 삶에 빠져 서편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단지파가 역시 그랬습니다. 단지파가 배에 머물러 있었는데 전쟁의 전황에 따라 여차 하면 도망칠 궁리만 했습니다. 그리고 아셀지파는 전쟁 소집나팔을 들었어도 생업인 고기 잡는 일에만 빠져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보다 다른 일에 다 치중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주업이요, 세상의 일은 부업입니다.

7.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23절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여기 메로스는 전쟁터였던 다볼산과 기손강에 위치한 곳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메로스 거민들은 과거에 이스라엘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번 전쟁에 방관자였습니다. 자기 땅에 전쟁이 일어났는데도 정작 그들을 팔짱만 끼고 돕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메로스 거민들에게 저주를 거듭 거듭 선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못마땅했으면 그랬을까요?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라지만 우리의 노력이 전혀 필요 없다는 건 아닙니다. 회개의 주최는 우리입니다. 성령께서 뭘 잘못해서 회개하십니까? 우리 회개를 도우시지 회개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신앙생활의 주체도 우리입니다. 우리가 힘써 회개하고 열심을 내어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그래서 계3:19-20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회개하고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롬12:11에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하였고, 벧전5:8-9에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을 다하면서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의 삶은 영적인 전쟁터입니다. 싸우면 살고 싸우지 않으면 죽습니다. 이스라엘에 전쟁에 임하는 축복의 무리와 회피하는 저주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편에 서시기 원하십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메로스나 단이나 루우벤이나 길르앗이나 아셀 같은 자는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주의 일하는 가장 복된 영적 군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