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설교이론>>>/ - 산상수훈 강해

기도 어떻게 해야 하나 (마 6:5∼8)

에반젤(복음) 2021. 6. 13. 07:00

기도 어떻게 해야 하나 (마 6:5∼8)


이 시간에 “기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제목입니다. 기도를 크게 둘로 나누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가 있는가 하면 받지 아니하시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응답 받고 칭찬 받는 기도가 있는가 하면 응답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노하심을 받는 기도가 있습니다. 어떤 기도를 드리시고 싶습니까? 우리는 옛날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저질렀던 잘못된 기도를 하는 실수를 범치 않아야 합니다.


그럼 바른 기도는 무엇일까요?


1. 동기가 옳아야 합니다.


5절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자랑하려는 동기로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사람들이 없으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있어야 기도가 신이 납니다.그래서 일부러 그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아마도 두 손을 들고서 서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장황하게 오랫동안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경건한 삶을 위해서 제 3시 6시 9시 즉 오전 정오 오후 이렇게 하루에 세 번씩 기도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이렇게만 한다면 세상이 변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외식으로 기도한 자가 너무 많았다는 것입니다. 유대나라는 신앙의 사회이기 때문에 믿음 좋은 사람을 알아주고 출세하기 때문에 국회의원들 자기 믿음 좋다는 걸 보여주려고 애쓰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외식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도의 동기가 잘못되면 하나님께서 받아주시지 않습니다.


2. 대상이 정확해야 합니다.


6절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께서 왜 기도의 장소를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 아버지께만 보이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골방기도가 나오는데 성경에는 골방기도만 있는 건 아닙니다. 모여서도 기도하고 대표로도 기도하고 사람 모이는 곳에서도 기도하고 기도의 장소와 형태는 다양합니다. 골방기도를 문자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골방기도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만을 대상으로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만 생각하며 기도한다면 그것이 골방기도입니다.


3.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7절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중언부언은 같은 말을 의미 없이 되풀이하는 것을 뜻합니다. 똑같은 기도를 반복하더라도 정말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중언부언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똑같은 내용을 세 번 반복해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을 짜내시는 기도였기에 중언부언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람이 듣기 좋고 감동 받을 말을 골라서 그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애초부터 마음이 없는 기도이니 주문 외우듯 중언부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방인들의 기도가 대개 중언부언입니다. 같은 말을 되풀이 합니다. 열왕기상 18장에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온종일 똑같은 말만 반복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도 에베소 사람들이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면서 똑같은 말을 두 시간이나 계속해서 외쳤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7절에 나오듯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기도 적게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기도 많이 하는 것과 말 많이 하는 것은 다릅니다. 마음으로 드리지 않는 기도는 말이지 기도가 아닙니다. 같은 말을 반복해도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라면 말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주기도문을 암송하지만 마음으로 하면 기도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암송하던 두 개의 기도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쉐마였습니다. 신6:4∼9, 11:13∼21, 민15:37∼41의 말씀을 발췌해서 경문을 만들어 이 기도문을 조석으로 두 번씩 암송했습니다.


또 하나는 쉐모네 에스레라는 기도문이었습니다. 이는 히브리어로 18이라는 숫자를 뜻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삶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경우들을 18가지로 압축했습니다. 그리고는 각 경우에 적합한 기도문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그 기도문이 길었겠습니까? 그들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 시간마다 그 장황한 기도문을 암송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서 기도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도문을 마음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그저 기계적 형식으로 암송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기도를 하면서도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랑 받고 응답 받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만 쌓았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개인기도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진정한 은밀한 개인기도는 진정한 공적기도를 가능하게 합니다. 개인기도는 외식으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골방기도를 추천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의 방법도 좋지만 기도생활부터 해야 하겠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누구를 비판합니까? 우리 모두 진정한 개인기도 없고 사람에게 보이려는 기도만 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된 기도를 배척하고 오직 기도의 동기, 기도의 대상, 기도의 내용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참된 기도자가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