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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르틴 루터…신앙의 진리로 시대정신 일깨우다

에반젤(복음) 2019. 7. 1. 08:15


      마르틴 루터…신앙의 진리로 시대정신 일깨우다


마르틴 루터(1483∼1546)는 단순히 종교 개혁자로 알려져 왔다.그러나 루터와 서양사를 깊이 있게 관찰해 보면

그는 실로 근대 서구 문화의 창시자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의 초기 노력은 확실성에 이르려는 것이었다.1505년 교회에서 벼락을 만나는 체험을 한 루터는 수도원에 들어가 진노의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루터는 수도원 생활에서 중세 교회가 제시한 구원의 방법들을 하나씩 부정하게 된다.첫째로,그는 금식 철야 기도와 같은 종교적 행위를 통한 구원의 방법을 부정했다.그런 자기의 행위들이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둘째로,루터는 고해의 성례에도 의지할 수 없었다.고해에는 참회·고백·사죄 선언·보상 등 네

과정이 있었다.루터는 이 고해의 과정들에 있어서 하나님이 받을 만하게 참회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고,또한

자기가 지은 죄들을 빠뜨림 없이 다 고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셋째로,그는 신비주의적 구원의 방법을 부정

했다.루터는 인간이 하나님과 연합한다는 신비주의적 방법을 시도했지만 하나님과 자기 사이의 적대감이 너무

크다고 생각해 실패했다.

절망적으로 구원을 구하던 루터는 로마서를 연구하다가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자비로운 하나님이 믿음을 통해 우리를 의롭다 하는 것임을 이해했다.루터는 “즉시 다시 태어나서 열린 문들을 통해 낙원 바로 그 자체에 들어온 느낌을 스스로 가졌다”고 말하였다.

의심스러운 것은 모두 부정하고 확실성에 이르려고 한 루터의 이 노력은 이후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려지는 데카

르트(1596∼1650)와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베이컨(1561∼1626)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루터와 데카르트와 베이컨은 전통에 대한 맹목적 순종을 거부하면서 각각 근대의 종교,근대의 철학,근대의 과학을 형성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했으며 그 대열의 맨 앞에 루터가 서 있다.

1517년 루터는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는 자신의 신앙에 근거해 면죄부를 비판하는 95개 조문을 작성한다.종교 개혁 운동의 시작이었다.제국의회는 1521년 그를 소환한다.황제는 루터에게 저작들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루터는

이렇게 대답한다.“성서의 증거에 의해서나 아니면 분명한 이성에 의해 나를 설복시키지 않는다면…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나는 아무것도…철회하지 않겠습니다.왜냐하면 양심에 역행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제국의 권위에 대한 역사적인 양심 선언이었다.

루터의 신학 사상은 흔히 ‘오직 믿음,오직 은혜,오직 그리스도,오직 성경’으로 요약돼 왔다.루터가 이런 사상을

피력한 것은 사실이지만,루터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이해되는 경우도 많았다.

루터의 주된 관심은 그리스도의 산상 수훈을 어떻게 실천하느냐 하는 데 있었다.그리스도는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다 지킬 것을 요구하신다.그런 점에서 루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세 교회보다 더 높은 윤리 수준을

요구했다.그러나 이런 높은 윤리 수준은 율법주의적 강요로 이를 수 없고,다만 하나님의 은총에 감동될 때에만 이를 수 있다.‘은총만으로’라는 말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명령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다.믿음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할 때의 믿음은 행위를 동반하는 믿음이었다.“신앙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일로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새롭게 태어나게 만든다… 그것은 끊임 없이 선한 일들을 하지 않을 수 없다…그런 일들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불신자다”

사도 신경에 나오는 ‘Communio Sanctorum(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라는 말을 루터는 새롭게 해석했다.

중세 교회에서는 ‘성도’를 하늘에 있는 성인으로 해석하고 그 성인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풀이했다.반면 루터는 땅에 있는 모든 신자로 해석하고 신자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고 물질을 나누는 것으로 해석하였다.루터에게 있어서는 우리 모두가 성인(聖人)이고,또 성인의 삶을 살아야 했다.

독신주의를 비판하고 결혼의 신성성을 주장한 점에서 루터는 근대적이었다.루터는 성직자의 결혼제를 창시하였다.

루터는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고,반대로 결혼을 비방하고 수치스럽게

만드는 자를 악마라고 규정했다.

루터는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루터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주장해 종교에 속박됐던 정치에 자율의 힘을 실어줬다.루터는 두 왕국론을 주장했다.하나님은 영적 왕국에서는 복음과 사랑을 통해 통치하시고,

세상적 왕국에서는 법과 칼을 통해 통치하신다.이 두 왕국은 하나님의 오른손과 왼손이긴 하지만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고 루터는 주장했다.루터는 만인 사제설을 주장하였다.그래서 그는 인간 사이의 직무의 차이만 인정하고 신분의 차이는 부정했다.이것은 평등의 길을 예비하였다.또한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성을 주장했다.루터는 그리스도인은 만물 가운데 가장 자유스러운 존재로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그러나 이 자유를 방종을 위해 써서는 안 된다.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봉사를 강조했다.

“모든 인간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창조되었고 태어났다”

1531년 루터는 황제에 대한 제후들의 저항권을 인정하였다.이 저항권 사상은 칼뱅에게서 의회의 저항권 사상으로 발전했고 칼뱅주의자들은 민중 저항권 사상으로 나아갔다.

루터는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루터는 신앙에 근거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직업 소명설을 주장했다.그는 당시 일부 재세례파가 주장하던 공유 재산 제도를 비판하고 사유 재산 제도를 옹호했다.루터는 상업 활동을 필수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기독교적 방식으로 실시될 수 있다고 봤다.이자 문제에 관해 루터는 영적 왕국에서는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되지만 세상적 왕국에서는 이자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루터는 요셉이 백성들에게 추수의 5분의 1을 상납하게 한 것을 정당화했다.루터의 이런 사상은 칼뱅과 칼뱅주의자들을 거쳐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루터는 또 구걸을 금지시키고 가난한 자들은 제도적으로 보살펴야 한다고 주장해 가난한 어린이들에 대한 무상교육을 주장했다.

신학의 시녀였던 학문도 루터로 인해 해방을 맞았다.루터는 신학과 다른 학문을 분리시켜 학문의 자율화를 가능케

했다.루터는 소년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 그들을 교육시킬 것을 주장했고 공중 도서관을 세우되 거기에는 성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 고전과 희랍 로마의 고전,법률,의학,예술,과학,역사 서적의 비치도 주장했고 그 자신 과학의

발전과 기계의 발명에 감탄을 보냈다.

루터는 중세의 타율성에 항거하고 자율성을 주장했다.그 자율성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자율성이 아니라,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율성,곧 신율성이었다.루터가 지향한 신율 사회,신율 문화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그런 점에서 루터의 개혁은 여전히 미완의 개혁으로 남아 있다.


출처 :아름다운 비전 원문보기   글쓴이 : 무지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