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창/- 천로역정

천로역정 2부 19 - John Bunyan

에반젤(복음) 2021. 6. 12. 14:29

천로역정 2부 19 - John Bunyan 위대한 마음 : 행위로 용서받는다는 말은 용서받을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이 행한 행위로 용서받는다는 말입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당신이나 자비심이나 아이들이 받는 용서는 그들 자신의 행위로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위에 의해서, 즉 당신들을 좁은 문으로 들어오게 하신 분의 행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이중의 길을 통해 그분은 용서를 성취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들의 죄를 감싸기 위해서 의로움을 행하셨고 당신들의 죄를 씻어주기 위해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크리스티아나 : 하지만 만일 그분이 자기의 의로움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셨다면 그분 자신을 위한 의로움은 남아 있지 않을 것 아닙니까? 위대한 마음 : 그분의 의로움은 당신의 요구를 채우고도 또 그분 자신의 요구를 채우고도 남음이 있지요. 크리스티아나 :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위대한 마음 : 기꺼이 해드리죠. 그러나 우선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분은 세상에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분이라는 걸 먼저 전제로 해야만 합니다. 그분은 한 인격에 두 개의 본성을 지니고 계신데, 그 두 개의 본성은 분명하게 구분은 되지만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지요. 그 각각의 본성에는 제각기 의로움이 있으며, 그 각각의 의로움은 그 본성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정의나 의로움을 그것으로부터 분리시킨다는 것은 곧 그 본성 자체를 사멸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개의 의로움이, 혹은 그 중의 하나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전수돼 우리로 하여금 정의롭게 살도록 만들어준다고 해서 우리가 그 의로움의 한 부분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분에게는 두 가지 외에 또 하나의 의로움이 있습니다. 그 두 본성이 합쳐져 하나가 됐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인성과는 구별되는 신성만의 의로움은 아니며 또한 신성과는 구별되는 인성만의 의로움은 아니지요. 오히려 두 본성의 합일 하에 존재하는 의로움, 즉 하나님께서 그분께 위촉하신 중개자로서의 사명을 다 이루게 하기 위해 따로 준비하신 의로움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할 것입니다. 만약 그분이 첫 번째 외로움을 나눠주신다면 그것은 그분의 신성을 나눠주시는 것이요, 두 번째 의로움을 나눠주신다면 그것은 자신의 순수한 인성을 나눠주시는 것이며, 세 번째 의로움을 나눠주신다면 그것은 중개자로서의 사명을 실현케 할 그 완전성을 나눠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하나님이 나타내신 뜻을 성취하거나, 그에 복종하여 죄인들 위에 펴시고 그들의 죄를 덮어줄 또 다른 의로움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써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크리스티아나 : 그럼 다른 의로움들은 우리에게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일까요? 위대한 마음 : 그렇지는 않지요. 그 의로움들은 그분의 본성과 사명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누어가질 수 없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을 의롭게 하는 그 의로움이 바로 그 의로움들이 가진 힘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지요. 그분의 신성의 의로움은 순종의 힘이 되고, 인성의 의로움은 의롭게 하는 일에 순종할 능력을 주며, 이 두 본성의 일치 위에 세워진 의로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명을 실행하는 데 권위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께는 필요하지 않은 의로움도 있지요. 그분은 그것 없이도 하나님이기 때문이지요.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께 필요하지 않은 의로움도 있지요. 그것 없이도 그분은 완전한 인간이시니까요. 또한 신이자 인간이신 그리스도께 필요하지 않은 의로움도 있습니다. 그것 없이도 그분은 완전하신 분이니까요. 그러므로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나,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 신이자 인간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자신에 관련되는 의로움은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따라서 그분은 자신에겐 필요가 없는 그 정당한 의로움을 나눠주실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것을 의로움의 선물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이 의로움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율법 아래서 이루신 것이므로 나누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그분으로 하여금 의롭게 행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남에게 분배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율법대로 한다면 두벌의 옷을 가졌을 때 한 벌은 옷이 없는 자에게 주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지금 두 벌의 옷을 가지고 계신데, 하나는 자신을 위한 옷이고 또 하나는 나누어 주기 위한 것이지요. 그래서 그분은 지금 없는 사람에게 무상으로 분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티아나, 자비심 그리고 여기 이 아이들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다른 분의 행위 또는 행적으로 용서함을 받은 것이란 말입니다. 당신들의 주 그리스도께서는 일을 하시고, 그 일에 따라 거두어진 수확을 다음에 만나는 거지들에게 나누어주시는 그런 분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분의 행위로 용서함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어떤 대가가 지불돼야만 합니다. 이를테면 우리를 감쌀 수 있는 무엇이 준비돼야만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우리는 정의로운 율법에 의해 정당한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이 저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 저지른 과오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 대가로 주님께서 우리 대신 피를 흘리며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자신의 피로 당신들의 죄의 값을 보상하셨고, 그 의로움으로 당신들의 더러워지고 추한 영혼을 감싸주셨습니다. 그 대가로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 날에 당신들을 불문에 부쳐 처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