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비유와 이적 - 백부장의 종을 고치심②
종의 증세에 대해 마태복음에는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6절)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소유물에 불과한 종이 누워있다는 것은 자기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까지 방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백부장은 예수님 앞에 나온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백부장의 종에 대한 깊은 사랑과 예수님 앞에서의 겸손을 엿볼 수 있다. 그때에 주님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했다. 그러나 백부장은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라고 간구했다. 백부장의 이런 요청은 주님께 대한 절대적 신앙과 공간을 초월한 이적을 기대한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님은 백부장의 신앙을 칭찬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백부장과 ‘나라의 본 자손들’(12절)의 비교는 대화법상으로 보면 문제가 없지 않다. 왜냐하면 대화법에서는 비교를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은 절대적 권위를 가지신 분이시고 또 그들의 마음 상태를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란 점이다. 따라서 우리의 범주 안에서 우리의 생각대로 주님을 비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주님은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10절)고 칭찬하시면서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13절)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는 질병도 그의 명령 한 마디로 고치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메시아로 오신 주님의 권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하인이 나은 것을 알 수 있었는가?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휴대전화도 없었는데 어떻게 알 수 있었는가? 그 해답이 누가복음에 기록돼 있다.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강건하여졌더라”(눅 7:10)
이처럼 우리에게 이해되지 않는 성경 구절들은 다른 부분의 성경에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오묘한가? 짚신에도 짝이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성경에 짝이 없겠는가? 따라서 성경에 이해가 안되는 구절이 있는 것은 우리가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전 월평동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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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은혜로운 향기 원문보기 글쓴이: 경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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