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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심리학과 기독교 상담

에반젤(복음) 2020. 10. 31. 18:52

이야기심리학과 기독교 상담

 

정 석환 교수(연세대학교, 기독교 상담학)

 

1. 들어가는 말: 이야기로서의 삶

누군가가 나의 삶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나의 이야기를 말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삶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희망은 나의 이야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나는 말할 것이다. 나의 지난 삶의 아픔과 기쁨에 대해, 현재의 느낌과 감정에 대해, 그리고 미래에 이루고 싶은 꿈과 희망에 대해 말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내 이야기 안에는 나의 삶이 담겨 있다. 나의 과거와 미래가 담겨 있다. 내가 살아온 삶의 자리들이 담겨있고 내가 속한 나의 이야기에 영향을 준 우리 문화, 사회-경제적 위치가 담겨져 있다. 나의 이야기 안에는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담겨있고 우리의 역사가 담겨져 있다. 나는 이 이야기와 더불어 살고 내 이야기는 나의 일부가 되어있다.

만약 내가 당신에 대해 알고자 원한다면 나는 다른 도리 없이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할 것이다. 때론 당신의 좌절된 꿈의 이야기에 함께 가슴 아파할 것이며, 때론 당신의 도전과 모험의 이야기에 함께 주먹을 불끈 쥘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의 삶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이야기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에서 이야기를 뺀다면 마치 영화 속의 등장 인물들에게서 대사를 뺀 것처럼, 무성 영화를 변사의 설명 없이 보는 것처럼 무의미하고 건조한 삶이 될 것이다. 이야기는 의미 없는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기능을 지닌다. 이처럼 인간의 삶과 이야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이야기를 통해 삶을 배우고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삶을 살아왔다. 인간은 자신의 삶의 존재가 일시적이고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시간"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이야기의 구조로 삶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즉 "시작-중간-끝"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구조로 인간의 유한성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이야기는 "우리들의 삶을 설명해 주는" 은유와 상징이 된다. 예를 들어보면, 어느 사람이 자신의 집 앞마당에 깊은 구덩이를 파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왜 그는 자신의 뜰에 깊은 구덩이를 파는 것일까? 가을 김장철에 김치를 묻기 위해서? 아니면 커다란 나무를 옮겨심기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그 시신을 몰래 묻기 위해서? 우리들은 여러 상상력을 가지고 그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진정 깊은 구덩이를 파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에게서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한다. 그의 이야기가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다. 이야기 없이 절대로 정확한 현실에 접근해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타인의 조그만 행동 하나의 이해에도 이야기가 필수적이다. 또한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 앞에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설명하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나의 삶을 이야기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우리 삶의 의미도 더 이상 작용하지 않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의 삶에서 이야기를 말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야기는 인간의 전인 건강에 필수적인 요건을 이룬다. 이야기를 말할 수 없을 때 인간은 병들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의 삶에서 역할을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삶의 목적과 의미를 상실한다. 이때 우리는 이야기의 재구성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이야기 심리학에서 이해하는 심리치료의 과정이며 상담의 과정인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삶을 살다가 이처럼 이야기의 재구성을 필요로 하는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이 때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치료의 과정이 없을 때 사람들은 그 혼돈스러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쉽게 대용물에 빠져들게 된다. 그 대상들은 술, 마약, 사랑이 없는 섹스, 돈, 권력 등등 다양한 대상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 대신 이러한 대용물들을 선택하는 개인과 사회는 병든 사회이고 불행한 삶이라 말할 수 있겠다.

건강한 사회는 건강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통해 죄책감과 불안감으로부터 해방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어느 민족, 어느 문화에나 그 공동체를 드러내 주고 하나로 묶어 주는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신화라 말하고 그 대표적인 예가 그리스 신화들에서 볼 수 있다. 이처럼 이야기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가장 적절하게 드러내는 근원적 은유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우리들의 삶의 모습은 우리가 말하는 우리 이야기의 거울 안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롤로 메이에 의하면 이야기란 “우리의 내적 자아가 외부 세계와의 관련 속에서 빚어내는 자기 해석의 틀”이라 말한다.1)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과 타인 그리고 이 세계와 관계성을 맺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성을 벗어나 살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따라서 이야기하는 인간이란 관계성 안에 있는 인간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사람의 관계성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의 삶의 의미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이야기는 인간의 삶에 틀과 의미를 제공해 주는 중요한 통로인 것이다. 따라서 정신치료의 과정에서 이야기의 활용은 필수적이라 하겠다. 치료자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통해 내담자의 이야기 세계를 파악하고 그 이야기 세계가 그가 사는 현실의 세계와 어떠한 관계들을 맺고 있는지를 탐구해 본다.

이처럼 이야기가 인간의 삶을 설명해 주는 가장 근원적 은유(root metaphor)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을 심리학적으로 적절히 활용하여 이야기 심리학을 발전시킨 학자는 사르빈이였다. 사르빈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 인간들에겐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욕구-이야기 욕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2) 이러한 이야기 욕구는 프로이드의 리비도처럼 인간성 깊숙 이에 자리하는 본능과 같은 것이어서 모든 인간은 이 본능적 욕구에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Homo Fabarns)인 것이다. 때문에 인간의 삶에는 집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1981년 미국의 철학자 Alasdair MacIntyre는 그의 책 After Virtue(덕을 따라서)라는 책에서 작금의 서구 문명을 비판하면서 오늘의 서구문화 특히 미국의 문화는 도덕적으로 혼돈에 빠져있는 상황인데 그 이유는 오늘의 서구인들이 그들의 삶을 설명해줄 공통의 "이야기 기반"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과거의 서구 문화는 공통의 이야기 기반을 지니고 자신들의 삶을 설명해 왔다. 그 이야기는 기독교 문화의 전통가운데서 그들의 삶을 설명해 주고, 어떠한 삶이 의미 있는 삶인가를 묵시적으로 드러내 주며 그 이야기의 참여자로 하여금 공동체 의식을 부여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들은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그 큰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설명해 보려는 노력들을 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후기 현대 산업사회가 보편화되면서 개인주의의 영향이 사람들의 삶의 양태를 핵분열 시키고 점차 개인화, 파편화 시키면서 서구사회는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동체의 이야기를 상실하고 동시에 그 안의 삶의 의미들을 상실하게 되었다.

메이는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식에서 행한 어느 졸업생 대표의 연설문을 인용하고 있다. “우리 세대는 이야기를 잃은 세대였습니다. 과거의 이야기와 미래의 이야기를 잃고 따라서 오늘의 삶이 전혀 의미 있는 삶도 되지 못하고, 우리들의 삶을 지속 시켜 나갈 신념도, 세속적 꿈도, 종교적 비젼도 상실한 시대입니다. 우리 시대는 우리 행동을 견인해줄 그 어떤 목표도 통로도 상실된 파편의 시대입니다...”3) 이 졸업생의 연설은 신화와 삶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세대들의 고뇌와 절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 삶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세대들의 울부짖음이 솔직하게 담겨져 있다. 이처럼 이야기를 잃는다는 것은 우리의 희망을 잃는다는 것이며 동시에 인간의 삶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잃어버린 세대의 특징은 그들의 삶을 인도해줄 대상을 저 밖에서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신비를 잃어버린 세대들이 사이비 신비에 깊숙이 물들어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활개를 치듯, 이야기를 잃은 세대는 점술가나 마약과 도박 같은 순간의 쾌락과 말초적 기쁨에 몸을 맡기고 삶을 맡긴다. 그리하여 그들은 소위 중독의 문화에 쉽게 탐닉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온갖 중독성 증세들에 쉽게 노출되며 상처 입은 동물처럼 중독의 대상에 자신의 삶 전체를 맡기고 울부짖는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울부짖음에만 신경을 쓸 뿐 타인의 목소리는 전혀 듣지 못한다. 소위 21세기 과학 기술 문명과 지식 정보 사회를 지향하며 인류는 점차 이야기를 상실하고 책임감 없는 환상과 중독증에 몸을 맡기며 길 잃은 삶의 모습들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2. 인간의 자기 정체성탐구의 방법론들과 이야기 심리학의 자리

인간의 경험가운데 가장 독특한 것은 아마 인간의 자기 경험일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고대 희랍의 델피 신전의 물음에서부터 동양의 선문답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을 근본에서부터 묻고있는 존재론적 질문인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인류의 역사는 종교와 문화를 창조해왔고 그것들을 이야기의 형태로 전승해 왔다. 따라서 이야기의 속성 가운데 가장 핵심은 "인간 삶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종교학이나 신학과 더불어 심리학은 이러한 전통을 가장 설명해 주는 학문중의 하나이다.

그러면 이야기 심리학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 안에 담긴 인간의 자아 정체성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우리는 먼저 심리학의 여러 접근법에서 인간의 자아 정체성을 어떠한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는지를 간단히 살펴보면서 이야기 심리학의 자아에 대한 접근법을 살펴보기로 하자. 노스웨스턴 대학의 이야기 심리학자인 매카담스 (Dan McAdams)는 인간이해에 접근하는 서로 다른 심리학의 방법론을 4가지 시각에서 정리하고 있다.

첫째는, 인간을 “심리 내부의 신비한 역동에 의해 행동하는 존재” (Intrasychic Mysteries)로 보는 시각과 방법론이다. 프로이드 (Sigmund Freud)와 융 (Carl G. Jung)으로 대표되는 이 방법론에 의하면 인간은 한마디로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존재이다. 모든 인간은 그 내부 깊숙한 곳에 자리한 신비스러운 비밀이 자리잡고 있다. 이 신비한 우리 내면 속의 비밀은 때론 통제할 수 없는 힘으로 혹은 고뇌와 갈등, 예측하지 못한 육체적 증상의 표현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데, 이 신비스러운 내면의 역동성을 파악하고 그 알 수 없는 힘에 “이름을 붙여 줄 때” (무의식의 의식화 작업) 비로소 우리는 그 인간을 알았다고 조금이나마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이 방법론에 따르면,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 인간 내면에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내면의 비밀 (이름하여 무의식)의 정체를 파악하고 해석해야만 올바로 인간을 이해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둘째의 시각은, 인간을 “상호 교류하는 행동의 존재” (Interaction Episodes)로 보는 관점이다. 인간은 예측 못할 불가측성의 신비스러운 존재라기 보다는 개인과 환경사이에 끊임없이 상호교류하며 행동하는 예측 가능한 “행동하는 동물”인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는 인간연구의 자료는 신비스러운 인간의 무의식의 자료가 아니라, 예측가능성과 과학적 관찰과 측정의 가능성을 지닌 인간의 행동 (Behavior)인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대표하는 학자로서는 스킨너 (B.F.Skinner), 미드 (George Herbert Mead), 아이젠크 (Hans Eysenk)등이 있다. 이들은 또한 서로의 강조 점의 차이에 따라, 우리 인간들의 행동의 차이점만을 집중으로 연구하는 성격-기질 심리학파 (Traits Psychologists), 인간의 근본적 차이보다는 환경 속에서의 개인행동의 차이를 중점으로 강조하는 사회 심리학파 (Situationists), 그리고 이 양자를 다함께 조화시키며 인간 행동을 이해 하려하는 절충학파 (Interactionists)로 나뉘어 진다. 이 시각의 공통점은 인간은 환경 속에 적응하는 방식을 선택하며(혹은 학습하며) 살아가는 “행동하는 동물”이라는 점이다.

셋째의 시각은, 인간을 “해석하는 존재” (Interpretive Structures)로 보는 발달 심리학의 시각이다. 즉, 인간이란 우리의 두뇌와 인지의 능력 속에 각각의 발달 단계에 따라 환경이나 사건들에 적절히 대응하며 살아가는 해석의 구조 (Interpretive Structure), 틀(Framework),양태 (Patterns)등을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방법론에 의하면 인간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발달의 단계와 그에 맞는 사고하는 능력, 인지의 폭, 자아 개념등이 기본 자료들로서 먼저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입장을 대표하는 학자들로는 피아제 (Jean Piaget), 켈리 (George Kelly), 매슬로우 (Abraham Maslow)등이 있다. 왜 같은 사물이나 사건을 놓고 사람들은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상반된 입장과 행동의 반응들을 보일까? 이들의 시각에 의하면 인간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기질이나, 자라온 성장의과정과 환경, 그리고 각자의 발달 단계들에 따라),인격의 내부 안에 외부의 사건을 인식하는 기본적 해석의 구조가 이미 형성되어 있고 그 구조 속에서 외부의 실재(Reality)를 인식하고 반응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해석의 구조는 성장과 함께, 혹은 발달의 단계에 따라 변화의 가능성을 지닌 가변적 구조이다. 때문에 이 시각에 따르면 인간을 이해하는 지름길은 처음의 두 시각들과 달리, 인간 발달의 단계에 따른 인간의 인식구조 안에 갖춰져 있는 인식의 틀을 이해하는 것이 인간이해의 첩경임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네 번째 시각에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 (Interpersonal Stories)로 보는 방법론이 있다. 이 방법론에 의하면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이야기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이야기하는 존재인 인간을 이해하는 첩경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이야기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데 이야기 시각의 문제가 있다. 인간은 “내면의 신비스런 수수께끼의 존재”일수도, “상호 교류하는 행동하는 존재”일수도, 인식의 틀을 갖춘 “해석의 존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야기 심리학은 이 모든 심리학의 제 방법론을 수용하며 자신의 방법론을 전개하고 있다. 동시에 이야기 방법론은, 어떻게 인간의 삶이 인간관계 속에서 이야기를 통해 통전된 (Wholistic) 삶의 이야기로 구성되는가?를 묻고 있다. 이야기 심리학에서 인간을 보는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는 인간은 결코 진공 속에 태어나거나 백지 상태로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인간은 자신이 속한 상황 속으로, 문화 속으로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인간은 처음 시작부터 자신이 속한 문화와 사회 속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받으며 자신에 대한 이해를 구축해 가는 존재라는 것이 이야기 심리학 접근의 기본전제이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머레이(Henry Murray), 에릭슨(Erik Erikson), 아들러(Alfred Adler), 톰킨스 (Sivan Tomkins), 사르빈(Theodore Sarbin), 브룬너(Jerome Brunner), 매카담스 (Dan McAdams)등이 있다.

또한 인간의 자아 정체성은 인간 내부 안에서 구성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물의 결과라는 관점으로 이야기 심리학을 전개해 가는 사회적 구성 학파의 접근이 있다. 즉 모든 지식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지식이며 따라서 한 인간의 자아 정체성도 그가 속한 문화의 소산물이라는 시각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자아를 형성해 가지고 사회 안으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와 문화 안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한 개인의 자아 정체성은 그가 속한 사회와 문화 사회 언어적 관계의 산물인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환경 안에 태어나서 자라고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해 나가는 존재라는 말이다. 우리는 결코 진공 속에 백지와 같은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문화와 사회적 여건 속으로 태어나 특정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사는 법을 배워 나가는 사회적 존재들인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우리들의 삶에서 타인들로부터 독립해서 선택하고 결정하는 부분들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우리들의 삶이란 끊임없이 타인들과 사회와 교류하며 선택적 삶을 살아야 하는 부분들이 더 많다고 보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인간의 판단과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확인도 철저히 그가 속한 문화 공동체, 좀더 엄격히 말하면 해석 공동체의 산물이며 따라서 인간의 삶과 그 정체성은 호두 속처럼 내부 안에 구성된 치밀한 내부의 심리 조직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 가운데, 또한 타인들과의 차이점을 인식하는 차이의 인식 속에, 더 나아가 그가 속한 공동체의 내적 목적과의 끊임없는 교류의 결과물이라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과학적 합리주의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의 인식의 기본 명제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였다면, 사회적 구성주의의 시각에서는 “믿는 것이 곧 보는 것(Believing is seeing)”으로 대체된다 하겠다.4)

특히 사회적 구성 이론의 시각에서 인간의 자아 정체성을 파악했던 거겐(Kenneth Gergen)은 후기 현대 사회의 건강한 자아 정체성으로서 포화적 자아(Saturated self)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이론의 핵심 축은 기존의 전통적 현대 사회의 자아는 더 이상 후기 현대 사회에는 적절한 대응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후기 현대 사회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정보의 홍수, 만남의 다양성, 새로운 역할 모델들의 등장, 다양한 가치관의 목소리들, 다양한 선택의 기회 앞에 놓여 있는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된 현실 속에 가장 적극적이고 건강한 자아의 모습은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할 줄 아는 다양성의 확보와 함께 자신의 모습을 상대화시키며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자기 정체성을 지니는 것이 후기 현대 사회의 필수적 요건이 된다고 말한다. 거겐의 말을 요약해 보면:

“우리들이 살고 있는 변화 무쌍한 후기 현대 사회의 세계는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운 자의식을 가지도록 요청하고 있다. 후기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급변하는 정보 사회의 기술 변천과 다양한 가치관들의 목소리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이러한 우리 삶의 테두리의 변화와 함께 우리들의 자의식은 이제 새로운 구성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들은 포화적 자아로서 후기 현대 사회의 다양성과 상대성의 목소리에 맞추어 우리들의 자의식의 목소리도 새로운 자아 정체성을 가지도록 요구되고 있다는 말이다”5).

한걸음 더 나아가 거겐의 새 시대의 자아 정체성에 대한 처방은 다원화된 사회의 현상을 수용(흡수)하여 다양한 자아 정체성을 가질 것을 권하고 있다. 이러한 거겐의 자아 정체성에 대한 포스트 모던적 입장은 오늘날 후기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근원에서부터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즉 후기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다양한 자아 정체성의 수용은 후기 현대 사회의 다원화된 사회 구성원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요건으로서 이를 수용하지 못할 경우 한 사회나 개인 혹은 집단은 다양성의 목소리와 서로 다름의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이를 차별화하고 극단적으로는 병리화(pathologizing)시킬 수 있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병리화의 경향은 서구 심리학과 정신의학이 과학이란 이름으로 소수의 경험이나 타 문화권의 경험에 대해 저질러 왔던 잘못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거겐의 입장과 동조하면서 보다 심리학적인 후기 현대 사회의 자아 정체성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학자들이 허만스(Hubert J. M. Hermans), 켐펜(Harry J. G. Kempen), 룬(Rens J. P. van Loon), 리프턴(Robert J. Lifton), 화이트(Michael White), 엡스턴(David Epston)등의 포스트 모더니즘적 이야기 심리학의 입장이다. 이들의 입장은 지금까지 서구 심리학을 지배해 왔던 데카르트적 철학에 입각한 프로이드 심리학의 패러다임이 곧 서구사회의 개인주의적 생활 양식과 지나친 합리주의를 낳게 되었고 그 결과 지나친 객관주의, 합리주의, 통일된 목소리, 하나의 목소리만이 지배하는 사회를 지향하여 다원화되고 상대화되는 후기 현대 사회의 생활 양식과 충돌하는 양상을 보여왔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들 연구자들은 후기 현대사회의 변화된 생활 양식에 창조적으로 적응해 갈 수 있는 새로운 자아 정체성을 제시하며 그 이름을 “프로티안 자아(the protean self)," “대화적 자아(the dialogical self),” 혹은 “이야기적 자아(narrative self)"라 명명하고 있다(Hermans, Kempen, Loon, 1992). 특히 리프턴은 그의 저서 「프로티안 자아」(Lifton, 1993)에서 후기 현대사회의 다양성과 급격한 변화성에 맞추어 창조적으로 자아가 자신의 모습을 전환시키는 자아의 적응성에 대해 그리스 신화의 바다의 신, 프로테우스(Proteus)의 이름을 따서 프로티안 자아라 명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다의 신 프로테우스가 바다의 환경에 맞추어 자신을 창의적으로 적극적으로 변화 시켜감으로써 자신의 생존과 발전에 성공하듯 후기 현대 사회의 자아는 이러한 적응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리프턴의 연구 결과이다. 즉 프로티안 자아는 개방성(openness)과 가변성(change)을 두 축으로 하는 후기 현대 사회의 자아이다.6)

모던이즘적 입장의 이야기심리학파이던 포스트모던적 이야기학파이던 이들의 공통점은 이야기의 구조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의 심리학적 구조도 역시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데서 출발하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 이야기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삶과 심리적 역동성을 어느 한 순간 혹은 단계 속에 가두어 보거나, 어느 특정한 영역 속에 묶어서 보려는 시각을 배격한다. 오히려 그들은 과거, 현재, 미래로 연속되는 시간 속에서 한 인간의 삶의 이야기가 어떻게,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어떠한 이야기의 음조 (Narrative Tone)를 띄며 전개되고 있는가를 관심 한다. 그들은 이 이야기의 전개 속에서 이야기의 주체가 지니는 욕구, 관심, 관계성, 성장과 쇠퇴, 불안과 희망 등을 읽을 수 있다고 믿는다. 동시에 이들의 공통적 관심은 한 인간의 이야기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힘인 개인이 속한 문화가 전달하는 “의미들의 체계”와 그 개인이 속한 사회 속에서의 “구조적 자리”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야기 심리학의 삶 읽기를 통해 우리는 인간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이야기 심리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연속되는 이야기 형식의 삶의 모습 속에서 인간의 심리구조를 읽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한 인간의 통전성 (Integration)과 치유 (Healing)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급변하는 환경과 문화의 변화 속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연속성과 통전성을 잃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할 때, 이야기 심리학의 통찰과 재조명을 통해 삶의 통전과 치유, 성숙을 향한 노력이 보다 총체적 (Wholistic)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심리학의 제 방법론과 그 강조점을 간략히 살펴보았고, 그 가운데 이야기 심리학이 자리하고 있는 심리학적 위치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럼 이제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심리학에서는 자아의 구조를 발달적 시각에서 어떻게 보고있는가를 메카담스의 이론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3. 이야기 심리학의 발달구조: 매카담스의 이론을 중심으로

매카담스는 그의 저서들을 통하여 “이야기를 통한 인간의 정체성 탐구의 심리학적모형” (A Life-Story model of Identity)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 그의 모형을 소개하며 이야기 심리학의 구조적 내용을 살피고자한다. 매카담스는 그의 이야기 심리학의 구조를 인간의 발달단계에 비추어서 설명하고 있다. 즉, 그의 이야기 심리학은 인간의 발달이론을 이야기적 형태로 풀어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매카담스는 그 이유를 한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그 인간의 총체적 발달의 단계들을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과거 심리학에서 인간에 대한 접근방법의 주류가 어느 특정한 문제중심(성격심리학이나 행동심리학) 혹은 내면의 신비한 모습 중심(정신분석의 관점)이었다면, 이는 인간의 어느 한 모습만을 특수하게 부각시킬 뿐, 전체적 인간의 삶의 모습을 보는데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매카담스의 전통 심리학에 대한 비평적 시각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론적 시도로서 한 인간의 발달단계 전반을 이야기로 해석해보는 시도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을 가장 근사치로, 그리고 총체적으로 반영해 주는 거울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매카담스의 발달단계에 따른 이야기전개 에는 6가지 발달 단계에 따른 이야기 특성들이 있다. 즉, Narrative Tone (이야기 음조), Imago (이야기의 형상), Theme and Character (이야기 주제와 주인공), Ideological Setting or Plot (이야기의 사상적 뼈대, 혹은 구조), Becoming the Mythmaker (자신만의 이야기 만들기), Generativity Script in Midlife (중년기의 성숙성의 이야기)등의 6가지 구성요소로 한 인간의 삶의 이야기 구성과 전개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한 인간의 삶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 (나는 누구인가? 나의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등을 묻는 삶의 실존적 물음)은 그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분석해 봄으로써 총체적으로 알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위해 이야기 분석의 틀로써 6가지의 이야기 형성 요소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의 이야기 심리학 구조를 그의 주저인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들(The Stories We Live By)"를 중심으로, 인간발달의 단계에 맞추어 살펴보기로 하자.7)

 

 

1) 이야기 음조 (Narrative Tone): 0-2세

에릭슨의 인간발달 8단계이론을 수용하면서, 매카담스는 인간의 이야기 구축은 사춘기의 시기를 지나면서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해 자신만의 독특한 답변의 이야기를 형성하게 된다고 말한다. 즉 사춘기 이전까지는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구축하지 않는다는 것이 에릭슨과 매카담스의 기본입장이다. 그 대신, 사춘기 이전의 인간의 심리활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나는 누구인가? 에 답할 수 있는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말하기 위한 자료들을 수집하는 시기들이라 말한다. 인간이 태어나서 사춘기에 이르기까지는 심리학적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이야기 형성의 준비기간, 자료를 수집하고 기억의 창고에 배열시키는 기간이라는 것이다. 이 기간은 한인간의 성격과 삶의 방향성을 형성하는데 있어 너무도 중요한 시기가 되며, 소위 후에 “내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 패턴의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시기이다. 그 중에 첫째의 시기가 생후 처음 2년동안의 유아기의 시기이다.

볼비(J. Bowlby)의 attachment이론과 많은 발달심리학자들, 그리고 정신분석학파와 임상 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시기의 중요성은 한 인간의 삶의 인격구조를 형성하는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 시기에 유아는 엄마의 자궁속 이라는 편안하고 안락한 보호된 삶의 환경으로부터 세상의 구체적인 실체(reality)에 처음 접하는 시기이다. 때문에 이시기의 경험들은 유아에게 있어서는 삶의 생존에 관계된 경험들인 것이며 그만큼 그 경험의 질과 내용들이 무의식의 기억창고속에 깊숙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볼비의 이론을 바탕으로한, 에인스워스(Ainsworth)와 그의 동료들의 유아기 연구에 의하면, 유아들의 탄생이후 처음 몇 개월간의 세상 경험의 형태들이 곧 그 아이의 기본 인격 구조를 형성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8) 그들은 실험실에서의 유아 관찰 연구를 통해서, 유아들과 그들의 보호자들(대체적으로 엄마)과 관계형성에 몇 가지 형태들이 있음을 밝혀내고 이를 이름하여, A, B, C, D형태의 유아들이라 불렀다. 이중 B형의 유아는 가장 안정적 관계를 갖는 유아인데 이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 안전하고 확실한 관계가 형성된 아이를 말한다. 아이가 엄마를 요구할 때 항상 그 요구의 시점과 내용에 적절히 대응해주는 엄마, 아이와 함께 사랑스런 눈의 대화와 적절한 피부의 접촉 등을 통해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는 엄마로부터 양육 받은 아이들에게는 인간과 주변 삶의 실체들에 대한 기본적 믿음(Basic Trust)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가장 안정된 반응들을 보인다는 연구이다. 반면, A형 유아는 “회피형(Avoidant)"유아로서, 이 경우 처음 보호자와의 관계가 서로 어긋나게 형성된 원인으로 인하여 (서로 다른 생리적 사이클로 인하여 유아의 요구에 제대로 반응해주지 못한 양육의 결과), 유아는 가장 가까운 보호자에게도 완전한 신뢰를 형성해내지 못하고 사람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는 유아들의 Pattern을 말한다. A형의 유아들이 회피의 반응 형태를 가지고 타인을 대한다면, C형의 아이들은 ”저항과 반항“의 형태로 반응하는 유아들이다. 이 경우에도 처음 보호자들과 안정적 돌봄의 경험을 갖지 못하여 타인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지 못한 경우인데 단지 그 반응의 형태가 A형의 아이들과는 달리 저항적이고 공격적인 반응으로서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표현한다는 점이 다르다. 마지막으로 D형의 유아는 극히 불안정하고 흐트러진 대인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을 말한다. A형이나 C형의 아이들보다 예측 불가능하고 공격적이며 주변이 늘 산만하고 끊임없이 보채는 형태를 지닌 아이들을 말한다. 이 경우 대부분 처음보호자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거나, 끊임없이 학대받은 경험을 가진 아이들의 경우이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해서 많은 임상 심리학자들은 공통적으로 말하기를 유아기 시기의 안정된 인간관계의 Pattern이 한인간의 평생을 두고 그가 맺는 인간관계나 세상을 보는 시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자아 심리학의 창시자인 코헛(H. Kohut)도 그의 성격이론의 기본을 이러한 유아기 경험의 질에서 찾고 있다. 즉 인간 성격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는 태어나서 처음 1년을 첫 보호자와 어떠한 형태로 반응하며 지냈는지가 그 사람의 전체적 성격 구조를 파악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말한다. 코헛의 기본개념인 Mirroring의 욕구가 처음 1년 동안에 보호자에 의해 어떻게 받아들여 졌느냐의 “경험의 질”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의 기초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많은 심리적 결함이나 정신적 문제의 기본적 씨앗은 이미 생후 1년의 경험을 통해 그 사람의 인격 구조 안에 깃들여 있다는 것이 코헛의 기본 주장이다.9) 즉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기본적 신뢰감을 형성하지 못한 인간은 자신이 타인들로부터 (혹은 세상으로부터)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믿음이 부족해지고 그 믿음의 부족은 곧 “자아에 대한 믿음의 부족”으로 연결되어 아주 취약한 성격구조를 형성하게 됨으로써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을 보는 부정적 시각을 형성하며 살게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유아 발달 심리학의 연구결과들을 종합해서 매카담스는 처음 2년 동안의 유아는 무의식과 비언어적 태도로 자아에 대해 그리고 타인과 세상에 대해 일정한 “삶의 이야기 태도”를 형성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 것은 마치 음악에서 볼 수 있는 음률과도 같이, 한 인간의 삶의 방향성을 결정 짖는 전체적 분위기와도 같은 것이고, 한 인간의 삶의 이야기에(이 이야기를 하나의 노래라 말한다면) 기본적 음조를 형성하는 음률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를 이름하여 이야기 음조(Narrative Tone)라 부른다. 마치 음악 안에 장조와 단조의 음률이 있어 단조의 음악이 인간감정의 슬프고 어두운 모습을 노래하고, 장조의 음률이 밝고 명랑한 면들을 표현해 내듯이, 한 인간의 이야기 구조 안에도 그 이야기의 전체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이야기의 음조(tone)가 있다는 것이다. 이 음조는 의식의 수준에 머문 다기보다는 이미 우리의 무의식 속에(유아기의 경험의 질을 반영하는 깊은 무의식의 기억 창고 속에 저장된 자료들의 형태) 형성된 삶에 대한 태도들이라 보아야할 것이다.

우리들의 성장배경과 환경이 다르듯 이 이야기 음조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의 음조들을 가지고 있다. 매카담스는 이러한 이야기의 음조가 문학의 형태로도 잘 드러나고 있음을 말한다. 즉 문학의 형태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야기 전개의 큰 틀 가운데 Comedy(희극적 이야기 음조), Romance(낭만적 이야기 음조), Tragedy(비극적 이야기 음조), Irony(역설적 이야기 음조)의 이야기 형태들을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들의 이야기 음조에도 이 4가지 큰 형태들로 분류가 가능하다고 말한다.10) 즉 어떤 이들의 삶의 이야기는 언제나 신선한 자극의 추구가 들어있고, 삶을 단순화시키고 최소화시키는 “단순한 삶의 즐거움”의 음조를 지니며, 다른 이들과의 관계와 연합성을 중시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마치 “신데렐라”의 이야기처럼 언제나 행복한 결말을 추구하는 대본을 지니고 있다. 삶의 이야기를 이렇게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음조를 매카담스는 “희극적 이야기 음조”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부른다.

또한 “삶이란 모험이고 정복이며 쟁취해 나가는 그 무엇”이라는 태도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있다. 이들은 정열적이고 모험심과 함께 적극성을 가지고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도전하고 성취하기를 염원한다. 이들은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승리자와 영웅이 되기를 염원하고 자신의 인생대본에 변화와 전진, 낙관적 승리를 추구하는 영웅의 모습으로 자신을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 이러한 인생의 태도를 매카담스는 “낭만적 이야기 음조”라 정의한다.

반면에 삶과 세상을 보는 태도 속에 이 세상은 행복과 불행이 뒤섞여 있으며 마침내는 죽음과 파멸로 끝나고 만다는 태도로 인생을 사는 이야기들도 있다. 이들의 과제는 이 세상과 이에 속한 것들을 믿지 말라는 신념을 지니며, 모든 것은 마침내 죽고 떠나는 것이 인생의 귀결이라 믿는다. 따라서 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깊은 연관이나 관계의 맺음에 회의적이고 결국은 허무한 것이 인생이라 느낄 뿐이며, 심지어는 자신을 그러한 허무한 삶의 희생자일뿐이라고 생각한다. 매카담스는 이러한 이야기의 음조를 “비극적 음조”라 불렀다.

마지막으로 “역설적 음조”가 있다. 이는 인생과 삶의 여정을 영원한 수수께끼라 여기는 기본적 삶의 태도를 말한다. 값싼 영웅주의를 경계하며, 인생은 쉽게 풀리는 경기가 아님을 이야기한다. 삶이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아닌 모호한 것이므로 그저 순간 순간을 최선을 다하면 될 뿐, 삶에 대한 성급한 판단을 주저하는 이야기 태도이다. 삶은 완전한 비극도, 완전한 희극도 아닌 혼합된 복합물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매카담스의 분석에 의하면 대체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는 이와 같은 4가지 형태의 이야기 음조들이 그 바탕에 형성되어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중요한 사실은 이 이야기 음조가 이미 유아기 때의 경험의 질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사실이고, 때문에 이 이야기 음조는 좀처럼 바꾸거나 고치기가 힘든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한 인간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을 이해하는 첫째 요소로서 이야기 음조의 파악은 필수적이며 그를 위해서는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의 경험의 이야기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2) 이야기 형상 (Imago): 3-6세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 안에는 단지 이야기의 음조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 안에는 많은 형태의 이야기 이미지들이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3세에서 6세까지의 어린아이들의 삶 속에는 동화 속에 나타나는 이야기 주인공들과 그들의 배역, 무대 등의 상상적 이미지들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즉 이 시기의 아이들은 이 세상을 그들이 경험한 인상깊은 이미지들과 그들이 되고자 하는 가능성과 상상 속의 자아 이미지와 연관지어 기억하고 해석하고 있다.

말러(Margaret Mahler)와 스턴(Daniel Stern)등의 발달심리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이 시기의 어린아이들은 아직 완전히 세상의 실체(Reality)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기이다. 대신 그들의 세상 인식과 자아 인식은 상상력을 통한, 특정한 이미지를 통해 인식하는 자아와 세상인 것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특정한 이미지를 자신의 삶의 소망과 욕구의 표현형태로써 흡수하며 표현해 낸다.11) 스위스의 발달심리학자인 피아제(Jean Piaget)도 역시 이러한 발달단계를 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취학기 이전의 아이들은 소위 객관적 인식이전의 발달단계로서 이 시기의 특징을 자아가 경험한 사건들을 이미지를 통해 표현하고 인식하는 자아중심의 인식기 (Preoperational-Egocentric Stage of Cognitive Development)라 말하고 있다.12) 이 시기의 아이들은 이미지들을 통해 주변의 세상과 상징적 놀이 (Symbolic Play)를 하면서 자아와 세상을 인식해 나간다. 이때의 상징적 놀이는 세상의 질서들을 본뜨는 것이지만 반드시 세상의 질서대로 움직이는 놀이가 아닌, 아이들의 상상 속의 세상인 것이다. 이 상징적 놀이는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점점 복잡해지고, 상상력과 이미지, 상징들이 지배하는 놀이가 아니라, 논리와 규칙, 때론 술수와 힘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의 질서와 모습을 본뜬 놀이가 되어져 간다. 어쨌던, 이시기의 이미지와 상상력의 상징체계들은 어른 이 된 후의 성인들 이야기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 요인이 되는데, 이는 대상관계이론의 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시기의 어린아이들에게 형성된 이미지들은 내면화된 대상들로서 자리를 잡고 그 사람의 무의식적 자아의 한 부분이 되어 이야기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13)

그러면 이러한 이미지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이들의 경험세계를 구축하는 상징적 놀이 행위의 배경이 되는 환경이다. 아이들이 어떠한 환경에서 어떠한 “상징적 놀이”를 하면서 자랐느냐가 그 사람의 이미지형성과 성인이 된 후에의 이야기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매카담스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아이들의 이미지 형성에는 세상과 삶에 대한 “건설적 이미지”와 “파괴적 이미지”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의 상징적 놀이 행위 속에서 선이 궁극적으로 승리하고, 착한 주인공이 인생의 행복을 쟁취한다는 이미지(신데렐라의 이야기, 백설공주의 이야기, 성경 속의 이야기등)가 우월하게 지배하면 긍정적 자아 이미지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이러한 자아의 이미지가 성인이 된 후의 이야기 음조와 연관되어 긍정적이고 생산적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동인이 되어 진다. 반면에 힘을 가진 자와 술수를 쓰는 자들이 폭력적 방법을 동원하여 승리한다는 폭력과 술수의 부정적이고 파괴적 이미지가 아이들의 상징적 놀이 행위를 통해 주로 형성이 되어 있다면, 이러한 파괴적 이미지는 그에 연관된 무의식적 자아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부정적 자아 이미지에 의한 부정적 이야기의 표출로 드러나게 된다. 이처럼 취학전 어린이에게 있어서 상징적 놀이행위를 통한 이미지형성은 이야기의 음조형성과 함께, 성인이 된 후의 자아 정체성과 그들의 삶의 이야기 형성에 장기간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3) 이야기 주제와 주인공 (Narrative Theme and Characters): 7-13세

취학전 아이들의 자아 이미지 형성과 세상에 대한 이미지중심의 해석에 덧붙여 이야기 발달의 중요한 구성요소는 이야기 주제와 주인공의 형성에 있다. 취학기의 아동(7-13세)들은 사화화가 점점 구체화되고 세상과 현실에 대한 인식이 복잡, 다양해지면서 사회-심리적 발달의 한 단계로서 “부지런함”의 인격성장의 단계를 거치지만(Erikson의 3번째 사회-심리 발달단계인 Industry vs. Inferiority), 이 보다 더 중요한 발달의 모습은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신의 삶의 긴 여정을 출발하는 중요한 동기중의 하나로서 심리학적 에너지원이 되는 자신의 삶의 이야기의 주제를 형성하고 그 주제에 맞는 주인공들을 수집하여 이 수집된 자료들을 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 시키는 시기라는데 있다. 즉 이 시기의 아이들은 많은 학습, 독서, 인간관계 등의 다양한 경험들을 통하여, 아직 뚜렷하고 확실한 바는 아니나 비록 희미한 모습으로라도 자신의 삶의 지도의 방향을 설정(이야기의 주제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되고자하는 사회적 자아의 모습들을 준비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 가능성의 자아의 모습들은 때론 단일한 주인공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여러 주인공들 (되고 싶은 가능성의 사회적 자아의 모습들)일 수도 있다. 이러한 내면화된 이야기 주제와 주인공들은 취학전 아동기에 형성되었던 세상과 자아의 모습에 대한 이미지들의 이상화되고(이야기 주제) 인격화된(이야기 주인공) 개념들인 것이다. 이러한 인격화되고 이상화되어 내면화된 이야기 주제와 주인공들은 마치 살아있는 드라마의 주제와 주인공들처럼 한 인간의 삶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인생 드라마의 각본 속에서 내적 목소리들을 지니며 삶의 과정마다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이야기 주제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매카담스는 심리학자 바칸(David Bakan)의 분류법을 인용하며 이야기 주제를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14) 하나는 성취 지향적 이야기 주제(Power oriented theme; agentic mode of life theme)와 다른 하나는 관계 지향적 이야기 주제(Relation oriented theme; communion mode of life theme)이다. 성취 지향적 이야기 주제의 기본적 관심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자신을 힘있게 주장할 수 있을까?”에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이야기 주제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 대본을 보다 남과 다른 자신의 모습, 즉 비교우위를 추구하는 삶의 대본을 쓰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 대본 속에서는 “사람”이나, “관계”의 중요성 보다 “일”이나 “성취” 혹은 “가진 것의 정도/소유의 량”이 삶의 성공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게 된다. 때문에 이러한 주제들을 가진 사람들은 보다 나은 성취를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집중 투자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한발 앞서가는 삶을 살아간다는 높은 자신감을 가지고 일 중심과 과업성취 중심의 삶을 살아간다. 이들은 소위 무한 경쟁시대의 현대사회 속에서 효율적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살아간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 성취와 성공 등은 항상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얻어지는 것들이기 때문에 불안과 불행의 가능성을 동시에 지닌 인생 대본이 되기 쉽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간관계는 다양하지만 깊이보다는 넓이를 추구하는 관계로 자기 중심적, 자기 과시적 인간관계의 동기를 지니기 쉽다. 즉 이들의 인간관계는 부버가 말하는 “나와 그것”의 피상적, 자기 중심적 관계로 혹은 프롬이 말하는 “시장 지향적” 인격들의 만남 들로 되어지기 쉽다.

반면에 관계 지향적 이야기 주제의 기본적 관심은 “자신을 해체하고 다른 것(사람 혹은 관계)과 합일하려는 본능”의 실현에 있다. 이러한 이야기 주제를 가진 사람들의 주된 관심은 “친구됨,” “돌봄,” “나눔,” “사랑,” “자비,” “서로의 책임감,” “인류 공동체,” “평등,” “자유추구”등의 실현에 보다 집중하는 삶의 길을 걷는다. 때문에 이들은 “자기 중심적,” “비교 우위적,” 혹은 “소유 지향적” 삶의 방식보다는 삶의 나눔과 친밀한 관계의 형성에 보다 관심 한다. 이들의 사회적 역할은 말하는 자로서 보다 듣는 자로서, 앞서가는 지도자로서 보다 조용히 협조하는 구성원으로서 역할하기를 선택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얻게되는 공동체의 화합과 조율에 보다 의미를 둔다. 매카담스의 연구에 의하면, 관계지향의 주제가 높은 사람들은 그들의 일상적 인간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도 보다 자연스럽고, 긴장과 경쟁의 태도가 아닌 웃음과 유머의 태도를 가지며 비언어적 관계맺음의 방식에 있어서도 보다 유연함을 지님을 보고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인간관계는 넓이와 다양성의 추구보다는 깊이와 관계의 질을 추구하는 인간관계의 특징들임을 보고하고 있다.15) 메카담스와 하바드 대학 의과대학의 베일런트 교수의 공동연구인 심인성 질환과 관련된 인간의 인격과 육체의 질병과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이러한 관계 지향적 동기가 높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그 동기가 낮은 사람들 보다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따라서 심리적 건강과 그에 따른 육체적 건강이 훨씬 월등하다고 보고하고 있다.16)

프로이드를 포함하여 많은 심리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우리 인간들 내면 속에는 위에서 설명한 역설적인 서로 다른 두 가지 본능들 “남과 다른 나를 주장하려는 성취 지향적 동기”와 “자신을 해체하고 남과 하나가 되려하는 관계 지향적 욕구”가 공존한다고 말한다. 이 성취(Power)와 관계(Love)는 모든 신화들의 중심주제 들 이였고 오늘도 모든 살아 숨쉬는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의 중심 주제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이 두 가지 본능중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우세하여 그 동기를 중심으로 삶의 주제가 짜여지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는 이 두 가지 본능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이 두 가지 주제들이 인간 삶의 행동 속에 조화를 이루며 나타나는 사람을 일컬어, 심리학에서는 건강한 기능을 하는 사람(소위 Love and Work가 조화를 이룬 심리적 성숙인)이라 말한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한 인간의 “성취(Power)”와 “관계(Love)”에 얽힌 경험들을 간과하면 그의 삶의 이야기를 제대로, 깊이 있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한 인간의 이야기 주제(혹은 이야기 동기)를 파악한다는 것은 인간이해에 필수적이라 말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이러한 이야기 주제를 바탕으로 어떻게 이야기 주인공들이 선택되는지, 어떠한 형태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매카담스에 의하면, 이야기 주제와 관련되어 이야기 주인공을 선택하는 형태는 크게 4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성취의 동기가 유난히 강한 사람들의 이야기 주인공 선택이다. 자신을 주장하고 이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의의를 섦의 성취를 통해 추구하려하는 동기를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 주인공들은 대체적으로 전사(The Warrior), 여행자(The Traveler), 지식인(The Sage), 생산자(The Maker)의 주인공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다. 즉 성취동기가 다른 동기보다 앞서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을 마치 전쟁터에 나간 무사가 오로지 전쟁의 승리만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그들의 생의 여정 속에서 남보다 우월하고 앞서 나가기 위하여 그리하여 생이라는 이름의 전장 터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아니 단지 생존만이 아니라 남을 지배하고 복종시키는 승리자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그런 생의 이야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삶의 대본을 써 가는 사람들을 일컬어 우리는 전사의 주인공을 지닌 이야기라 말 할 수 있다. 또한 인생은 곧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요 인생의 보람은 얼마나 자신의 영토(그것의 이름이 사업이건, 자식이건, 어느 분야 이건 간에)를 얼마나 확장 시켰느냐에 따라 자신의 행과 불행이 좌우된다고 믿고 살아가는 여행자와 같은 삶의 이야기를 써 가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자신이 가진 지식도 곧 남과 구별되는 “비교 우위”의 수단과 성취의 동기로써 인식되고, 축적되어 그 수단으로써 사용하는 그런 지식인들이 있다. 또한 이 세상을 커다란 하나의 시장으로 보고 그 시장에 자신이 어떻게 생산자로서 많은 상품을 내놓고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로 자신의 생의 목표를 삼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공통적 특징은 그들의 구체적 선택한 삶의 직업의 특수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고 인식하는 삶의 궁극적 목표와 의미의 추구가 남과 다른 나, 남 보다 우월하고 월등한 나,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을 지닌 나를 추구해 가는 생의 대본들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관계 지향적 주제를 가진 사람들이 수집하는 삶의 주인공의 모습이 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관계맺음을 가장 중시하는 “사랑의 주인공(The Lover),"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요구에 측은지심을 가지고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아는 ”돌보는 자(The Caregiver)," 인생의 최대의 과제와 기쁨을 이웃과의 만남, 친구와의 사귐과 나눔에 두는 “참된 친구(The Friend)," 그리고 어떠한 모임이나 공동체에서도 보이지 않게 그 모임에 결속과 조화가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녹이며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의식의 집행자(The Ritualist)"로서의 주인공 모습을 자신의 이야기 세계 속에 내면화하며, 실제의 삶 속에서도 그 내면화된 주인공이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셋째로는 앞서 언급한 두 이야기 동기가 조화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 주인공들이 있다. 즉 자신을 주장할 줄도 알고, 동시에 자신이 녹아져서 다른 사람과의 연합을 이룰 줄도 아는 성취동기와 관계의 동기가 균형과 조화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 주인공의 모습들이 그것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을 치유시키는 삶의 주체가 됨을 인식하면서도 다른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치유자(The Healer)," 스스로 지식을 탐구하며 자신을 확보하면서 타인에게도 똑같은 삶의 희열과 자기 완성의 길로 인도해 가는 “스승으로서의 주인공(The Teacher)," 자기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통찰하면서도 타인의 아픔과 고통의 터널에 뛰어들 줄 아는 ”상담자 (The Counselor)," 생의 궁극적 목표를 “무엇을 가지는 것”에 두기보다는 나누는 것, 평등, 정의, 사랑에 두고 그 이상을 위해 자신을 넘어서는 용기를 지닌, 자신을 포함한 지상의 모든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휴머니스트 (The Humanist)"등의 이야기 주인공들이 바로 그들이라 하겠다. 이들 주인공들의 공통적인 모습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 자기 주장의 이야기를 펼쳐 가는 주인공도,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자신을 해체하며 타인만을 위해 희생하는 자아의 경계가 희미한 주인공도 아닌, 그야말로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을 넘어서는“ 성숙한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모습이라 하겠다.

넷째로는, 성취의 동기와 관계의 동기가 다 희미한 이야기의 주인공 모습을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나타나는 이야기 주인공의 모습들은 언제나 어렵고 힘든 생의 모험의 길을 회피하려고만 하는 “도망자 (The Escapist)," 그리고 항상 생과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생에 대한 주저함과 소극적 참여로서 일관하는 ”생존자 (The Survivor)"등의 모습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을 써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대본 속에는 긍정적이고 중요한 멘터들(significant others)에 대한 기억의 모습도, 사랑을 받거나 주었던 경험의 기억도 없이 단지 생은 우연이며 고통스런 숙제일 뿐이라는 생과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 주제와 연관된 이야기 주인공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한 인간의 이야기 안에 내재되어 있는 내적 이야기 주인공들의 모습을 구체화(의식화) 시킴으로써 우리는 한 인간의 삶의 여정과 그의 일상의 역할 속에 숨어 있는 내면의 욕구들, 그리고 그 사람이 되고자(살고자) 하는 삶의 지향성에 대한 바램을 보다 선명하게 읽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 이야기 주인공들은 한 개인의 이야기 세계가 지닌 독특한 삶의 특성과 사회-문화적 환경, 가치관등을 반영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이야기의 주제와 주인공들의 수집과정은 하루 이틀의 단기적 과정 속에 축적되고 형성된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오랜 기간 그의 주변환경과의 교류를 통해 형성해온 삶의 자료들인 것이다. 또한 이야기 주인공들은 우리들의 타고난 성격과 행동의 패턴들을 드러내주는 지침이 되기도 한다. 동시에 이렇게 수집되어온 이야기 자료들은 후에 성인이 되어 자신만의 신화(Personal Myth)의 대본들을 만들어 갈 때 없어서는 아니될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 주인공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이야기 세계 속으로 등장하고 삶의 특정한 장면 속으로 출현하며 사건을 만들어 가고 우리 인생의 행과 불행, 실패와 성공, 의미와 권태로움 등의 이야기 줄거리들을 형성해 나가기 때문이다.

 

 

4) 이야기의 사상적 뼈대 혹은 구조 (Ideological Setting or Plot): 14-18세

사춘기 시절의 중요과제는 에릭슨이 잘 지적한바와 같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성인이 되는 세계에 적응하며 살 수 있을 것인가?”의 삶의 정체성의 문제들이다. 즉 이 시기 청소년기의 발달 특징은 “나”를 알기 위해서 “세상”과 “형이상학,” “하나님”등에 대한 추상적 물음을 묻는 시기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곧 삶의 가치관과 세계관의 문제와 직결되는 물임이 된다. 이야기 심리학에서는 이 시기가 곧 한인간이 자신만의 이야기 신화를 구축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이야기의 사상적 뼈대를 형성하는 시기, 즉 이야기 구조를 형성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실존주의 철학이 말하는 것처럼 이 시기의 인간은 이 세계 내에 “던져진 존재”로서, 우리가 어디에 던져져 있는가?를 묻고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인생의 실존적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으로서의 신조나 가치관등 체계 있는 형이상학적 설명을 더 추구하는 경향을 지닌다. 이는 곧 후일 자신들이 만들어갈 자신만의 신화와 이야기 체계 속에 일관적인 이야기의 사상적 뼈대를 구축하기 위한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노력이라 하겠다. 때문에 많은 발달 심리학자들이 이 시기의 삶의 정체성 형성에 가치관이나 신앙, 신념의 체계, 문화와 사회적 환경 등이 큰 영향을 미치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 시기에 한 개인은 미래에 그의 삶의 이야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삶의 커다란 이야기의 사상적 뼈대를 구축하는 일에 보다 큰 노력을 기울인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이 시기는 어린 아이 시절의 단순하고 자아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현실과 세상을 보다 복잡하고 추상적으로,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인식의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이야기의 사상적 뼈대에는 앞서 언급한 이야기 주제와 연관되어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성취 지향적 이야기 주제를 가진 사람들이 구축하는 이야기 뼈대로서, 이들은 흔히 개인의 가치와 성장이 중심 되고 존중되는 개인 지향적 세계관과 가치관의 뼈대를 형성하게 된다. 이들에게 있어서 공공 선이란 각 개인들의 좋은 행동들이 모여 형성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의 개인주의적 행동의 도덕적 지침은 개인의 도덕적 발달, 성장, 완성, 성취, 안녕, 자유 등의 개념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개인 중심적 도덕관과 세계관은 주로 서구에서, 그리고 남성 중심적 문화의 토대 위에서 발달되어왔고,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이익과 성취를 지키기 위한 가치의 체계로서 이해되고 구축되어 왔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관계 지향적 이야기 주제가 선택하는 이야기의 뼈대가 있는데, 이는 집단과 개인간의 인간관계를 보다 중시하는 세계관과 가치관을 중심으로 하여 구축되는 이야기 구조를 말한다. 이러한 이야기 뼈대에서는 개인의 안녕과 성취보다는 사회적 조화와 균형, 화합 등을 보다 중요시한다. 여성 발달 심리학자인 길리간(Carol Gilligan)은 그녀의 대표적 저술인 “서로 다른 목소리(In a Different Voice: Psychological Theory and Women's Development)”에서 관계 중심적 이야기 뼈대의 특징을 잘 말해주고 있다.17) 그녀에 의하면, 남성들은 보다 개인 중심적이고 성취 지향적인 도덕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그들의 인생 이야기의 뼈대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즉 현대의 서구 문화 속에서 남성들은 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고 개인의 성취와 발전이 미덕이 되는 세계관을 형성하며 그러한 개인주의를 보존하고 보호하는 범주 안에서의 개인의 권리와 인권, 정의 등을 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남성 중심적-개인중심적 세계관은 그 배경에 개인에 대한 낙관적 이해를 바탕으로, 개인의 성장과 성숙이 모여 집단의 공동선과 행복을 구축할 수 있다는 개인 중심적 가치관을 배경 으로한 세계관이며 이야기 구조라는 것이다. 길리간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남성 중심적 이야기 구조와는 대 칭되는 관계 중심적 이야기 구조가 있는데, 이는 보다 공동체의 돌봄을 추구하고 그를 위한 책임성을 먼저 추구하는 여성적 이야기 구조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한다. 즉 여성주의적-관계 중심적 이야기 구조 안에서는 인간의 성장이나 성취의 개념이 한 개인 안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적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의 의미 있는 관계성안에서, 그리고 세계와 타인에 대한 책임성안에서 성취될 수 있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길리간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여성 주의적이고 관계 중심적인 이야기의 구조와 세계관이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하의 문화 속에서 열등한 이야기 구조와 뼈대로 잘못 인식되고 전달되어져 왔다는 것이다.

길리간의 이러한 주장은 아직 과학적으로 엄밀한 입증을 받은 주장은 아니다. 또한 길리간의 주장처럼 남성과 여성이 성의 구별처럼 명확하게 자신의 이야기 뼈대도 서로 다르게 구별짓는다고 일반화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즉 모든 남성은 성취 지향적 이야기 뼈대를 지니며 모든 여성은 관계 지향적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반화의 경향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리간의 주장은 이야기 뼈대와 구조의 형성과 연관지어 충분히 경청할만한 가치가 있는 주장이라 하겠다.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성숙한 인간의 이야기 구조 안에는 성의 차이에 관계없이 성취 지향적 이야기 주제와 관계 지향적 이야기 주제가 골고루 섞여 있는 것과 같이 관계 지향적 이야기 뼈대와 성취 지향적 이야기 뼈대의 균형 있는 조화는 한 인간의 성숙한 이야기 형성과 전개에 필수 불가결의 요소라 말할 수 있겠다. 이 점에서 한 인간이 어떠한 이야기의 뼈대/구조를 지니고 있는 가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그 뼈대 형성의 배경이 되는 가치관과 신념의 체계, 종교관, 문화-사회적 배경의 이해는 그 인간의 이야기 이해에 필수 불가결의 요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5) 개인의 신화 만들기: 19-33세

사춘기를 벗어나 성인이 된 한 개인의 심리발달의 핵심요소를 자신의 이야기 주인공이 되는 것으로 보는데 많은 이야기 심리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한 인간이 성인이 된다는 의미는 자신만의 삶의 신화를 만들어 가는데 에 있다. 인간은 발달하고 성장함에 따라 자신을 보는 눈이 변화하고, 그 변화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눈도 역시 변화하게 된다. 이 변화의 눈으로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재편집하며,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마침내는 자신이 사는 세계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신화의 저자들이 되어져 가는 것이다. 이 점에서 성인의 시기(19세 이상 중년 이전까지)는 한 인간이 지금껏 자신의 삶에서 비축해온 삶의 자료들, 부모의 영향과 이미지들, 가족의 역사, 사회 문화적 영향들, 자라면서 영향받은 인물들, 교육과 가치관, 종교적 신념 등의 과거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 자료들을 선택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들을 통하여 자신의 삶의 신화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 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의 정체성의 문제는 사춘기의 시절에 끝을 맺는 닫힌 문이 아니라 성인기에 비로소 완성되는 열린 과제라 하겠다. 따라서 이야기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는 성숙의 의미는 성인이 된 한 인간이 자신의 생의 발달 과정들을 통해 형성해온 삶의 자료들을 가지고 그의 과거를 어떻게 의미 있게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신화로써 재구성 할 수 있느냐의 물음에 달려있다 하겠다. 이처럼 성인기에 이루어지는 자신의 이야기 만들기의 작업을 통해 한 인간은 비로소 통전적인 자기 삶의 이해와 목적의 추구, 방향성의 확립에 보다 의식의 차원에서 명확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게 되며 이와 연관된 자신과 세계의 이해라는 의미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인기에 이르러 형성하게되는 자신만의 신화 구축의 작업은 곧 자신과 세계에 대한 생의 의미 구축의 작업이며, 자신을 스스로 창조해 가는 자기 창조의 과정이며, 동시에 자기 역사의 구축이라고 매카담스는 말한다.

매카담스의 이야기를 통해보는 한 인간의 삶의 정체성 이해는 이처럼 성인기에 펼쳐지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라는 드라마의 주인공 모습을 발달 심리학적 추적과 재 구축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한 인간의 건강한 삶의 정체성은 그 사람의 건강한 삶의 이야기 안에 담겨져 있으며 그 이야기는 그 개인이 성장하고 발달함에 따라 끊임없이 편집, 재편집되며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건강한 아이덴티티는 변화와 연속에 대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이처럼 변화에 탄력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건강한 아이덴티티 없이는 의미 있는 삶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인이 되어 시작되고 진행이 되는 자신의 신화 만들기-이야기 구축은 중년기에 가서 비로소 “성숙인격의 이야기 대본의 완성”과 함께 그 정점에 이르게 된다. 각 문화마다 차이점은 있으나, 보편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인간은 20대에 이르러 성인의 시기에 접어들며 사회-심리적으로 부모와의 독립과 짝을 찾고, 직업과 일을 찾으며, 자신만의 세계와 자신의 신화를 구축해 나가기 시작하게 된다. 이처럼 “씨뿌리는 20대,” “가꾸는 30대”의 시절을 거치며 한 인간은 그가 속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20대 30대의 성인기의 이야기는 자신의 신화의 주인공이 되어져 가는 시기이지만 아직 그 신화가 성숙된 이야기, 건강한 이야기라 말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는 아직 자신의 뿌리내리기, 삶의 지평과 소유,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데에 보다 치중해 있는, 즉 뿌리고 가꾸는, 자신만의 삶의 이야기이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카담스는 한 인간의 성숙한 이야기의 완성과 건강성을 보려면, 그 인간의 중년기의 이야기까지 확대하여 이야기 분석을 해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18)

그럼에도 불구하고(비록 중년기의 시기에 이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매카담스는 성인기의 이야기 안에 발견되는 건강한 이야기의 공통된 특성을 다음과 같이 6가지 요소로 말하고 있다. 첫째요소는, 각 이야기의 발달 단계에 걸맞은 이야기의 연속성이다. 이는 우리 인간은 결국 환경의 지배하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각 발달 단계에 따른 발달의 목표에 걸맞은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을 때 건강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둘째는, 개방성이다. 건강한 이야기는 각 발달단계에 따른 환경과 문화의 도전과 변화에 민감하고 창의적으로 대응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추구해 가는 개방성이 있어야한다. 셋째는, 신뢰성이다. 비록 한 개인의 이야기 발달에는 그 개인만이 지닌 독특한 삶의 자료(경험의 자료)를 편집하고 재편집하는 해석의 과제가 필수적이라 하더라도 그의 삶의 이야기에는 일관성과 함께 신뢰성이 공존해야 건강한 이야기라 말할 수 있다. 넷째는, 구별성 이다. 건강한 삶의 이야기는 결코 남이 써준 이야기를 대리해서 살아간다거나 남의 이야기를 복사해 흉내내는 것이 아닌 그 개인만이 지닌 삶의 독특성과 구별성이 담겨야 한다. 다섯째는, 화해의 속성이다. 인간의 삶은 때론 고통과 상처, 불완전성의 연속이라 말해 좋을 것이다. 이 세상에 어느 인간도 이러한 삶의 상처와 단절의 위협으로부터 예외일순 없다. 건강한 삶의 이야기는 이러한 삶의 모호성과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고 화해하여 이야기의 탄력성과 연속성, 견고성을 유지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섯째는, 성숙한 이야기 대본을 어느 만큼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인간의 삶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프로이드를 위시한 많은 심리학자들의 인간 통찰은 이러한 인간 속성의 실체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이야기가 자신만을 위한 이야기로 짜여진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숭배적인 이야기라면 결코 이러한 이야기를 건강한 이야기라 말할 수 없다. 건강한 이야기는 자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 이야기, 즉 타인과 세계에 대해 무언가를 기여하며 공헌하는 나눔의 이야기가 존재할 때 비로소 “사랑하며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인간의 이야기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4. 이야기 심리학의 방법론적 요소들

우리는 지금까지 매카담스의 이론을 중심 으로한 이야기 심리학의 구조를 간략하게 일별 하여 보았다. 그러면 이러한 이야기 심리학의 구조를 가지고 한 인간의 이야기를 해석하기 위하여 이야기 심리학은 어떠한 방법론을 가지고 있을까? 이야기 심리학의 방법론에서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 변화는 그 동안 심리학을 지배해왔던 양적 인간 삶의 측정으로부터(Quantitative Research Methodology) 인간 삶의 깊이와 그 경험의 질적 현상에 관심을 두는 질적 연구방법론(Qualitative Research Methodology)으로의 변화에 있다 하겠다. 특별히 이야기 심리학의 원 자료는 한 인간의 삶의 자서전적 진술(이야기적 진술)이라 할 것이다. 이야기 심리학을 바탕 으로한 인간이해의 필수적 기초자료는 연구의 대상이 되는 한 인간의 자전적 이야기(Autobiographical Story)이다.19) 연구자는 이러한 기본적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심층 면담(Intensive Interview)의 방법론을 가지고 접근하게 된다. 이야기 심리학에서 주로 채택하는 심층면담의 장점은 연구의 대상이 되는 한 인간의 삶의 이야기를 개방적이고 자유스런 분위기 속에서 면담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낸다는데 있다. 이 과정에서 면담을 이끌어 가는 연구자의 태도는 준비된 질문을 적절한 시점에서 물을 뿐, 이야기의 흐름에 방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점에서 심층면담의 방법론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잘 준비된 인터뷰 질문들과 함께 말하는 자의 이야기가 연속성을 가지고 흘러나올 수 있도록 진지하게 듣는 경청 자로서의 태도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경청자의 태도는 마치 훈련받은 상담가나 정신 치료가가 그들의 내담자의 말을 방해함이나, 섣부른 해석이나, 판단과 조언함을 최대한 자제하며 그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과정과 유사하다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존경 어린 경청면담의 분위기 속에서만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런 두려움 없이 진지하며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야기 심리학을 사용하는 연구자의 가장 필수적인 덕목은 자신이 연구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준비된 질문들과 함께 듣는 자로서의 태도라 말할 수 있다. 듣는 자의 태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역시 한 인간에 대한 긍정적, 개방적, 동정적 태도이다. 연구자는 단지 자신의 연구적 필요에 의해 한 인간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의 삶의 이야기 과정의 소중한 한 순간에 초대받은 손님으로써의 존경과 예의를 가지고 말하는 자의 삶에 함께 동참하는 친구됨의 섬세한 주의와 배려가 필요하다. 동시에 듣는 자는 앞에서 언급한 인간의 발달 단계에 맞는 이야기 전개의 과정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이를 바탕 으로한 면담의 도구가 되는 잘 준비된 질문들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이야기 연구자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질문들을 준비할 수 있을까? 매카담스는 이야기 인터뷰에 필수적인 인터뷰 방법의 7가지 항목을 자신의 이야기 심리학 이론에 근거를 두며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말하는 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회고해 보며, 자신의 삶을 마치 한편의 책이라 생각해 보며, 그 책의 장들을 분류해 보고, 각 장마다에 적절한 제목들을 부쳐 보도록(Life-Chapters Question) 인도해 본다. 여기에서 주된 관심은 이야기하는 자가 스스로 분류하는 자신의 발달단계의 분류와 자신의 이야기 주제의 분류를 알아내는데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말하는 자는 비로소 자신의 삶의 이야기가 막연한 시간의 흐름 속에 축적된 기억의 파편들이 아니라 한편의 짜여진 이야기 체계로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답을 하면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에 시기별 혹은 주제별로 분류하고 각각의 분류된 장들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흩어졌던 삶의 기억의 단편들을 하나의 종합된 체계 속으로 다시금 불러들이는 효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동시에 이 과정에서 연구자는 말하는 자가 스스로 정의하는 자신의 개인신화에 대해, 그리고 그에 얽힌 말하는 자의 이야기 음조와 이야기 형상들을 파악하는 좋은 자료들과 만날 수 있게 된다.

둘째는,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는 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 얽힌 8가지 중요 사건들(Eight Key Events)에 얽힌 기억들을 회상해 보도록 인도하는 과정이다. 이 8가지 중요사건들이란 말 그대로 내담자의 삶의 이야기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기억의 모습들을 끌어내는 방법이다. 때문에 이는 추상적이기 보다 구체적 사건들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는 일이고 때문에 기쁨과 고통의 과정, 숨기고 싶은 기억들을 회상해 내는 과정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8가지 중요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삶의 성취와 동기를 밝혀주는 최상의 경험(Peak experience)에 얽힌 이야기, 삶의 최저점이라 생각되는 실패와 상처의 경험(Nadir experience)이야기, 삶을 새롭게 전환 시켰던 경험의 이야기(Turning point),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에 기억되는 가장 오래된 어린 시절의 이야기(Earliest memory), 어린 시절의 중요했던 기억들과 그에 얽힌 삶의 이야기(An important childhood memory),이어서 사춘기 시절의 중요했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기억들(An important adolescent memory),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된 후의 이야기(An important adult memory),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중요한 삶의 기억들에 얽힌 이야기들(Other important memory)이다. 이러한 8가지 중요사건들에 대한 기억의 회상은 말하는 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다시금 되돌아보며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편집, 혹은 재편집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자료적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연구자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기억들의 회상들을 통해 흘러나오는 내담자의 이야기 형태, 그에 얽힌 내담자의 감정과 태도 등은 내담자의 삶과 그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조명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전기적/심리학적 자료들을 확보하게 되는 질문들이 된다. 동시에 내담자가 이러한 8가지 중요사건들에 얽힌 과거의 기억들을 현재 말하는 시점에서 어떻게 구성하여 이야기하고 있는가를 분석해 볼 때, 내담자의 “성취와 관계에 얽힌(Love and Power)” 이야기 동기와 이야기 주제들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 된다.

셋째로, 내담자로 하여금 그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영향을 준 중요인물들(적어도 3-4명에 얽힌 이야기)에 대해 말하게 한다. 그 인물들은 부모들이 될 수 있고, 학교의 선생님, 집안의 친척, 가까운 이웃, 교회학교의 선생이나 종교 지도자, 혹은 어려서 읽은 위인전의 주인공들이나 역사상의 유명한 인물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러한 중요인물들에 얽혀있는 내담자의 기억들과 왜 그들을 선택하여 삶의 중요한 영웅의 이미지로서 보관하고 있는지의 의식적 무의식적 이유는 내담자의 이야기 안에 깃들인 이야기 주인공의 모습들을 파악해 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넷째로, 내담자로 하여금 이제 과거의 회상에서부터 시선을 돌려 미래의 설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한다. 이 질문들의 심리학적 동기는 앞서 말한,“삶의 중요한 8가지 사건”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내담자의 삶에 대한 꿈과 희망을 말하게 함으로써 그 안에 담긴 이야기의 동기와 주제들을 읽어 내기 위함이다.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좋은 이야기라는 것은 시작과 중간기를 거쳐 아름다운 종결을 지닌다. 우리 주변의 흔한 대중 소설 속에도,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사랑을 받는 위대한 작가들의 인류의 영원한 사랑의 서사시들에서도 공통으로 발견되는 이러한 시작과 끝의 이야기는 개인의 신화 속에도 담겨지기 마련인 것이다. 때문에 내담자로 하여금 미래의 꿈과 설계를 말하게 함으로써 연구자는 그 안에 담겨진 내담자의 삶의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동기와 주제를 보다 확실하게 연속성의 시각에서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내담자의 이야기 안에 담겨진 성숙성 대본의 구조와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로, 내담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서 아직 풀리지 않은 삶의 문제들과 갈등에 대해서 말하게 한다. 이 단계에서 연구자는 그 동안의 내담자와의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형성된 신뢰의 관계를 바탕으로 내담자의 삶 속에 담겨져 있는 삶의 고뇌와 갈등, 아직 풀지 못한 숙제들, 원망들, 무거운 짐 등에 대한 이야기로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이때 연구자는 좀더 자유스럽고 무비판적/ 공감적 분위기의 인터뷰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내담자 안에 깊이 감추어져 있는 그의 내부의 이야기, 갈등과 고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와 장을 가지게 될 수 있고 이는 내담자의 이야기의 입체적 이해에 필수적 요인이 된다 하겠다.

여섯째로, 내담자의 개인적 신념과 가치관, 종교적 신념과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다. 한 사람의 이야기 안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뼈대를 형성하게 되는 이 요소들은 한 인간의 이야기를 구조화시키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라 하겠다. 우리 인간은 땅에 발을 딛고 사는 현실적 존재이면서도 가장 역설적으로 꿈과 이상의 세계에 대한 동경 속에서 현실을 잊고 사는 신화 속의 존재라 말해 좋을 것이다. 신화학자인 켐벨(Joseph Campbell)의 연구에서처럼 위대한 인간과 위대한 문화 속에는 반드시 현실감각만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현실을 넘어서는 신화의 세계와 가치, 영적 세계에 대한 믿음 등의 이야기들이 순수하고 순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20) 연구자는 이러한 내담자의 현실을 초월하는 비현실적 세계에 대한 신화적 믿음의 구조를 내담자가 어떠한 형태로 자신의 이야기 안에서 펼쳐나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주목한다. 또한 이 믿음과 신화의 세계가 내담자의 이야기와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지? 이러한 가치와 신념의 세계, 신화적 세계는 내담자의 구체적 현실세계와 어떤 연 관을 지니며 상호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때로는 개인의 초월적 세계, 신화적 세계가 그의 구체적 삶의 영역 속에서 전혀 관련성을 잃고 유리 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개인의 신화와 가치관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연관성을 잃고 서로 따로 따로 유리 하는 격차가 클 때 우리는 그 이야기가 사상적 뼈대와 구조를 잃고 있는 이야기 흩어진 이야기, 사회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성의 끈을 잃은 이야기, 그리하여 자기 중심적, 정신 병리적 이야기라고 진단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곱째로는, 다시 한번 내담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지배해왔던 커다란 삶의 주제에 대해서 회고해 보며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다. 이때의 이야기 주제는 비유컨대 새의 둥우리와 같다. 새들은 지상에서 많은 지푸라기들과 다른 자료들을 수집하여 자신과 자신들의 후손들이 거처할 둥우리를 만들고, 그곳에서 알을 부화시키고 후손을 양육하고 평안을 얻는 보금자리로 삼는다. 우리 인간은 전 생애의 발달단계를 거쳐 그들의 경험과 학습, 성공과 실패, 꿈과 희망들을 엮어 자신의 이야기 둥지를 만들고 그 안에 자신의 삶과 미래의 세계를 담는다. 한 인간이 어떠한 이야기 주제를 가지고 그의 생애를 전개해 왔는가를 알면 그 인간의 이야기 세계의 둥지가 보이는 것이고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을까? 무엇이 담길 수 있을까를 우리는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잘 준비된 질문들과 연구자, 그리고 개방되고 수용적인 분위기 속에서 구체화된 이야기는 때론 이야기하는 자 스스로를 놀라게 한다. 대부분 이야기 면담을 마친 후의 내담자들의 반응은 마치 상담이나 정신치료의 효과와도 유사한 반응들을 보이며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혹은 이야기하는 과정 중에서 이제껏 의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는 놀라움의 효과들을 보고하고 있다.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잘 준비된 이야기 면담을 마치고 나면 마치 한편의 자서전을 쓴 것과 같다는 효과를 고백하며, 자신의 개인 신화(Personal Myth)를 새롭게 발견했다는 깨달음에 놀라게 된다. 동시에 그들은 만일 자신들의 이야기 안에 담겨있는 변화의 필요성을 의식했다면, 이야기의 재편집을 결단케 되는 새로운 이야기 구축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의식하게 됨을 보고한다.21)

이처럼 이야기 심리학의 구조와 내용, 연구 방법론 그리고 그 실천적 적응에는 다양한 방면에 걸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는, 이야기 심리학은 한 인간의 삶을 한 단면의 이해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인간 이해에 대한 총체적이고 발달 단계적 이해의 폭과 깊이를 제공한다. 둘째는, 이야기 심리학의 활용과 연관지어 말할 때, 이야기 심리학은 단지 연구자의 필요에 의해서만 이용되어지는 학문적 도구에 국한되어 지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이야기 심리학은 살아 있는 인간의 삶의 이야기에 관심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실험실의 밀폐된 공간에서 채집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심층 면담의 방법론을 가지고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연구 방법론적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이야기를 듣는 자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말하는 자에게 더욱 이야기 심리학은 “자신을 찾고 만들어 가는 과정”에 기여하게 되는 측면을 지닌다. 즉 이야기를 통해 발견되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 삶의 정체성과 의미 발견의 효과라는 심리 치유적 효과를 이야기 심리학은 함께 지니고 있다 하겠다. 따라서 이야기 심리학의 궁극적 관심은 이야기를 통해 발견되고 만들어져 가는 삶의 의미구축의 작업이라 하겠다. 바우마이스터의 말처럼, 의미 있는 삶이 다 행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게릴라들의 삶이나 혁명가들의 의미 지상 주의적 삶이 반드시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미를 찾지 못한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22) 때문에 이야기 심리학은 이야기를 통해 펼쳐지는 한 인간의 생의 정체성 추구에 관심 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그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생의 의미구축의 작업에 궁극적 관심을 갖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이야기 심리학과 목회 상담학이 만날 수 있는 공통의 자리가 있다.

 

5. 이야기 심리학의 기독교상담에의 적용

최근에 기독교 상담학의 분야에서도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 심리학의 총체적 인간이해의 연구 방법론과 치유적 효과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 학자로는 인간의 이야기하는 속성과 신학, 해석학, 심리학 등을 조화시키는 거킨(Gerkin, Charles V.), 브라우닝(Browning, Don S.), 팻튼(Patton, John), 윔벌리(Wimberly, Edward P.), 래스터(Lester, Andrew D.), 그리고 두뇌과학과 신학 및 해석학에 관심을 두면서 인간의 이야기성을 새롭게 조명해 가는 애쉬부룩(Ashbrook James B.)등이 있다.23) 이들의 공통적 관심은 이야기 심리학의 방법론이 내포하고 있는 자서전적 이야기 진술의 치유적 효과이다. 즉, 자서전적인 이야기의 진술은 그 이야기를 말하는 자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와 재 연결의 기회를 제공해 줄뿐만 아니라, 이 과정을 통해 이때껏 무의식의 어둠 속에 묻혀 놓았던 자신의 과거와 새롭게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해 줌으로써 막혀있던 삶에 새로운 통찰과 해석, 그리하여 계속되는 삶의 기회를 제공하는 치유적 효과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들의 공통적 주장은, 기독교상담의 환경 안에서 이야기를 말하고 듣는 과정이란 우리들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작업이며,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 자신만의 울타리를 넘어서 크리스천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작업이고 동시에 우리를 공동체 안의 다른 사람들과 연결시키는 작업이라 말한다. 이들의 이야기 심리학적 진단에 의하면, 이야기를 통한 “자신의 과거-현재-미래와의 연결됨”과 “다른 사람과 세계와의 관계성”의 확인이 없는 삶은 바로 정신분석학에서 지적하는 인간의 병리적 상태인 자신의 환상 속에서 사는 분리의 삶, 소외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24) 즉, 이야기하는 동물인 우리 인간의 삶은 오직 이야기를 통해서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세계와 연관을 맺고 이 연관성의 끈 안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공동체의 단결과 연속성을 구축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럴 때만 우리들의 삶이 보다 의미 있는 삶이 되고 이러한 의미의 연결고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도 우리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된다는 것이다.

사실 어거스틴의 고백록이후 많은 기독교 신학자들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신앙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진정한 자아의 발견”이라는 과제에 주목해 왔다. 따라서 기독교 상담의 분야가 아니더라도, 이미 일찍부터 기독교 신학의 전통 안에 어거스틴의 새로운 자아 발견의 구조는 기독교가 추구하는 신앙인의 자아완성의 한 모델로 기독교 목회의 구조 안에 깊숙이 자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치유목회의 전통 안에서는 이러한 어거스틴적 자기이해는 치유의 한 목적으로서 이해되고 권장 되어온 역사가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오늘의 목회 상담가들은 이야기 심리학과 기독교의 오랜 치유 전통이 만날 수 있는 공통의 자리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어거스틴의 고백록의 구조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자아탄생의 과정은 “흩어져 있고, 삶의 방향감각과 의미를 갖지 못한(shattered and disordered)"자아의 모습이 자서전적 자기 이야기의 조명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의 과정 속에 흩어져 있던 이야기 형성의 자료들(과거의 중요했던 사건들)을 현재의 새로운 시각에서 새롭게 들여다보고, 이러한 새로운 해석의 틀 안에서 흩어졌던 자아의 개념, 깨어진 내부의 자기모습과 타인과의 관계성의 모습이 새롭게 발견되어지고, 마침내 새로운 해석의 빛 아래서 새로운 자아의 통전의 과정을 거치며 삶에 목적과 통전성을 회복하며, 절망으로서가 아닌 새로운 의미의 발견으로서의 자아의 재통합을 시도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25) 이러한 과정은 정신분석과 상담의 궁극적 지향점과 일치하게 되는 결과를 갖고 있다. 궁극적으로 정신분석학과 정신치료, 혹은 상담학이 지향하는 인간의 자기 이해는 자신의 삶을 부정하지 않는 건강한 (사랑하며 일할 수 있는 자아개념) 자아인 것이다. 이점에서 정신치료나 상담의 과정이 이야기를 중시하는 목적이 있다. 즉 건강한 자아는 일관성 있는 삶의 이야기를 구성한다는 점이다. 이야기 심리학적 표현에 의하면, 정신병이란 일관성 없는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자아의 모습이며, 적절치 못한 ”나의 이야기“속에서 생에 대한 의미의 부재와 목적을 상실하고 절망을 체험할 때 인 것이다.

소위 후기 산업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경험들은 우리들의 이야기는 쉽게 부서지기 쉬운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극작가 유진 오닐의 말처럼 “우리 인간은 부서진 체로 태어나서, 그의 일생을 그것을 다시 붙이는데 보낸다. 하나님의 은혜란 바로 그 일을 수행하는데 접착제의 역할을 한다.”26) 이처럼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 속의 이야기는 실존적으로, 또한 지나친 경쟁과 소유의 욕구들로 인하여, 서로를 소외시키고 파괴시키는, 파편처럼 흩어진 이야기들이 되기 쉽고 따라서 더 이상 우리 삶에 의미와 희망을 제공하는 이야기가 아닌, 단순한 사건들의 보고서처럼, 때론 지나간 신문들의 빛 바란 기록들처럼 의미 없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가 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우리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잃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우리의 자아를 잃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의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건들이 우리들의 삶을 의미 없이 끌고 다니는 조각난 삶, 깨어진 삶의 파편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깨어지고 분열되고 흩어져 있을 때, 그러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의 주체인 우리들의 자아도 흩어지고, 깨어지고, 분열되고, 거짓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 좋을 것이다. 상담학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자아의 모습은 상처 입은 자아의 모습, 깨어진 인간의 이야기라 부른다. 이 깨어진 이야기의 치유는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

기독교 상담학자인 팻튼(John Patton)은 깨어진 이야기의 치유에는 깨어진 자아의 회복과 치유가 필수적이라 말하며, 깨어진 자아의 치유행위에 관여하는 기독교적 돌봄의 행위, 기독교상담의 행위를 “기억함(Remembering)"이라 말하고 있다. 기독교상담이 목표하는 자신과 타인을 돌보는 ”돌봄의 사건“의 기본적 요체는 ”하느님이 인간을 기억하고 계신다“는 기본적 명제 하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간 기억의 행위 안에서 인간은 비로소 하나님 안에서 인간은 누구인가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시각의 연장선에서 이웃과 공동체를 돌아보는(기억하는) 돌봄의 행위가 가능하다고 팻튼은 말한다.27) 따라서 어거스틴의 말처럼 우리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의 참된 의미를 찾을 수 있고, 따라서 기억은 인간 됨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필수요건인 것이다.

팻튼에 의하면, 기억함의 또다른 중요 요소는 우리가 분리시켜 놓았던 또 다른 우리들의 자아의 모습, 분열된 자아의 모습, 열등하고 그림자에 가려져 우리의 의식 안에 아직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오직 타인들에게만 투사의 과정을 통해 발견되어지는 공격적이고 방어적인 우리 안의 그림자적 자아의 모습을 통전 시키고 받아들이는 행위를 포함하는 기억함(Re-membering)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아직 우리 안에 참 자아의 한 멤버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의 모습, 그리하여 우리의 의식의 영역 안에 분리시키고 흩어 놓았던 우리 자아의 또 다른 모습을 다시금 기억하여 자신의 한 멤버로서 포용하고 용납하는 행위가 곧 기억함(Re-membering)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28)

이러한 기억함(Re-membering)의 사건으로서의 기독교상담은 거킨(Gerkin, Charles)에 의하면 네 가지 과정을 거치며 단순한 기억으로서의 사건이 이야기화 된다. 첫째, 어떠한 일이 발생했는가?를 말하게 함으로써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사건을 재조명케 한다. 둘째, 왜 그러한 일들이 발생했는가를 물음으로써 과거의 발생했던 사건들이 말하는 사람의 어떠한 행위의 동기와 선택에 의한 사건들이었는가를 깨닫게 한다. 셋째, 이러한 이야기가 말해지고 들려지는 소위 안전하고, 안아 주는(Holding environment)상담적 분위기를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발견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발견된 이야기하는 자아의 모습은 자신의 이익과 주장만을 앞세우는 지금까지의 좁은 울타리, 조각나고 단절되었던 이야기 세계에서 보다 넓은 이야기의 세계-하느님 안에서 서로 연결되고 관계 맺는-넓혀진 이야기 지평의 세계와의 만남으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마침내 새로운 자아의 탄생으로 만들어지는, 삶에 대한 새 틀과 새 지평(이름하여 지평융합)을 얻게 되는 것이다.29)

거킨의 진단에 의하면, 오늘날 다원화된 후기 산업사회 속의 인간은 자신의 인간 됨의 정체성과 신앙 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회의적 물음을 간직하며 혼돈의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현실은 더 이상 단일화된 가치관과 세계관이 지배하며 우리 삶의 이야기에 의미의 틀을 제공하는 그런 사회가 아닌 것이다. 오늘의 세계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이야기의 모습은 더 이상 우리 내부 안의 경험의 세계와 외부의 관계들의 세계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균형과 조화의 이야기 세계가 아니라, 그 둘 사이의 깊은 간격과 괴리를 경험하는 파편화된 이야기 세계, 분열과 균열이 우리 삶의 통전성의 희망을 위협하는 이야기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과거에 전통적인 기독교가 제시했던 해답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오늘의 다원화된 사회 속의 인간들의 삶의 물음들에 답을 주지 못할 때가 많은 것이다. 그 결과 오늘을 사는 많은 현대의 크리스천들은 이 사회 속에서 혼돈된 자기 정체성의 위기감을 경험하게 되고,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해 나가야 할 지에 대해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다원사회 속의 혼돈된 자기 정체성의 위기와 방황의 문제에 목회 상담은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과정들을 겪으며 다시금 기독교의 이야기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 정체성을 찾아 나가도록 돕는 일이라 말한다.

애쉬부룩은 이러한 거킨의 이야기적 기독교상담의 과정과 과제에 동의하며 이야기 안에서 발견되어지고 만들어지는 지평융합으로서의 새로운 자아의 발견을 틸리히가 말하고자 했던 새로운 존재의 탄생이라 말하고 있다.30) 이렇게 해서 탄생되는 이야기하는 새로운 존재는 곧 기독교 상담학이 목표하는 궁극적인 인간의 지향점이다. 애쉬부룩은 이러한 이야기하는 자아의 탄생을 곧 “영혼의 탄생”이라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들의 영혼은 우리 안에 깊숙이 잠자고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발견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안의 내적 세계와 과거-현재-미래로 연속되는 우리 실존의 연속성과 사회적 관계성에 대해서 정체성을 가지고 이야기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탄생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한 인간이 이야기를 갖는다는 의미는, 애쉬부룩에 의하면, 곧 그 인간이 영혼을 가진다는 의미와 같다.31) 우리가 이야기하는 영혼을 지닐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이야기 안에 하느님의 실천적 행위를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안에 담아낼 수 있다고 애쉬부룩은 말한다.32)

이러한 기독교상담의 이야기 사건의 과제에 요청되는 요소들은 무엇들이 있을까? 여기에서 거킨의 말을 빌어 3가지 요소를 지적 하고자 한다. 첫째, 이야기를 말하는 자이다. 흔히 말하는 상담을 받으러 찾아오는 내담자를 말한다.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내담자는 대개 깨어진 자아의 모습 속에서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에 의미를 담지 못한다고 느낄 때, 즉 “두려움과 희망”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찾기 위하여 목회상담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이는 마치 창세기 16장의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삶의 위기 속에서 광야의 방황을 겪는 이야기와 같다고 하겠다. 아브라함의 씨받이 여인, 이방여인 이였던 하갈은 자신과 그녀의 아들 이스마엘의 삶이 아브라함의 적자인 이삭이 태어난 후부터 한없이 보잘 것 없는 처지임을 깨닫고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의 시련과 불평등에 항거하며 광야의 한복판에 내앉는다. 이때 하느님의 천사와 하갈과의 대화는 마치 목회상담의 한 구조를 드러내는 것과 유사하다. 하느님의 천사로부터 새로운 용기와 위로를 받은 하갈은 절망과 두려움의 이야기로부터 새로운 미래의 이야기, 이스마엘로 부터 시작되는 새 민족의 이야기에 현재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구약성서는 하갈이 천사와 대화하며 두려움의 이야기에서 희망의 이야기로 삶의 해석을 전환시킨 사건의 장소를 카데스와 베렛사이의 “라하이 로이”샘터의 사건이라 증언하고 있다(창 16:14). 거킨의 말을 빌면, 위기 속의 인간은 “절망의 해석학(a hermeneutic of despair)"과 "희망과 기대의 해석학(a hermeneutic of hope and expectation)" 사이에서 목회상담이란 “라하이 로이”-"도움의 우물가"를 찾게된다.33) 따라서 기독교상담의 첫 번째 관심은 마치 하느님이 아담과 이브의 죄지은 삶의 현장에 내려오셔서(기억하셔서) 그들의 삶의 이야기 사건을 물으시듯(창 3:9), 오늘의 파편화되고 조각난 사회구조 속에 살고있는 하느님의 사람들에 대한 “기억함”이 첫째 주된 요소를 형성한다고 하겠다.

둘째, 이야기를 말하는 자와 함께 중요한 요소는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듣는 자, 즉 기독교상담자의 중요성이다. 우리는 흔히 상담의 과정에서 “들음의 중요성”을 말한다. 기독교상담의 현장에서 들음의 중요성은 마치 기독교 신학이 말하고자 하는 예수의 성육신의 사건에 견줄 수 있다. 흔히 들음에는 4종류의 들음이 있다고 말한다. 무시하며 듣는 것(ignoring), 들은 체 하는 것(pretending),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selective listening), 마지막으로 참여적으로 듣는 것(attentive listening)이 있다. 진정한 치유적 상담이 되기 위해서는 참여적 들음의 훈련이 필수적이다. 참여적 들음의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을 팻튼은 칼 매닝거의 말을 인용하여 섣부른 해석의 자제함이라 말한다.34) 즉, 상담자는 이야기를 말하는 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의 사건들을 이야기화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며, 자세한 관찰과 공감의 마음, 그리고 참여적 대화의 과정(해석학적 과정)을 통하여 내담자가 자신의 내적 기억들을 현실의 단어(몸과 마음의 단어)들로 구체화해서 표현해 낼 수 있도록 돕는자일 뿐 결코 그 이야기의 주체자가 아님을 명심해야 된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언어와 비언어적 표현들에 온전히 귀 기울일 수 있는 들음의 과정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상담자의 이야기를 허공 속의 독백으로 만들어 버릴 뿐만 아니라, 그를 다시금 두려움과 좌절 속에 갇힌 외로운 존재로 방치해 놓는 결과를 빚게 한다. 상담자의 온전한 들음이 없이는 내담자의 내부 안에 깊숙이 갇혀 있는 이야기가 끌어져 나올 수 없으며, 따라서 기억을 통한 사건의 이야기화가 불가능해 지고, 이야기가 불가능한 상담의 현장 속에는 결코 치유의 사건과 경험이 발생할 수 없게 된다고 팻튼은 강조하고 있다.35)

셋째로 중요한 요소는 이야기적 관계의 경험이다. 왜 우리의 이야기가 연속성을 잃고 파편화되고, 생동감 없이 의미 없는 이야기가 되어져 있을까? 거킨은 대상관계 이론의 설명을 빌어 우리 안에 경험되어진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들에 대한 경험의 이미지들 사이의 간극, 여기에서 빚어지는 자신과 타인 사이의 간극, 참 자아와 거짓 자아와의 간극, 마침내는 자기의 모습과 하느님의 모습 사이의 간극의 벽들이 우리들의 이야기를 조각난 파편의 이야기, 의미 없는 빛 바랜 이야기, 병든 이야기를 만든다고 말한다. 따라서 목회상담의 환경 속에서 이야기의 치유적 사건이란, 내담자와 상담자 사이의 신뢰적 관계를 통해 사건들이 이야기로 성육화하고 몸과 마음들의 언어들로 부활되어 질 때, 그럼으로 해서 이러한 간극들을 메우는 관계의 경험이 체험되어질 때 비로소 파편화된 사건으로서의 기억들이 연속성을 지닌 삶의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점에서 거킨은 주장하기를 내담자의 내부 안에서 새롭게 경험되어지는 기억을 통한 사건의 이야기화의 경험과 그 이야기가 전개되어지는 상담자와의 새로운 관계의 경험이야말로 하느님의 구속사적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하느님에 의해 촉발되어 지는 우리 안의 영혼의 이야기는 우리와 관계 맺는 타인에 대한 그리움이며 동시에 관계성을 목마르게 찾는 인간숙명의 거울이다 라고 말하며 이러한 우리 내부의 영혼의 이야기와 관계성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들을 맺게 해주는 하느님의 이야기야말로 기독교 이야기의 요체가 됨을 밝히고 있다.36) 따라서 기독교상담의 중요한 과제는 우리의 내부 안에서 역사 하시는 이야기의 주체자이신 하느님의 사역이 우리의 내적 경험들을 하느님의 역사적 구속사적 사건의 틀 안에서 해석하고 이야기로 펼쳐 나갈 수 있도록, 상담의 과정과 환경 안에서 새로운 “관계의 경험”을 가능토록 돕는 일이다. 이러한 관계의 경험을 통해서 한 개인의 경험은 하느님이 펼쳐 가시는 구속사의 일원의 이야기로 거듭나며, 동시에 타인과 세계와 새롭게 만나는 중요한 통로가 되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이 우리들의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 때론 상처 입고, 찢기 우고, 분열되고, 파편의 조각처럼 흩어진 우리들의 이야기들이 하느님의 성령의 보존하심과 치유하심과 구원하심의 역사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 미래를 향한 희망과 구원의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6.나오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최근의 인문 사회과학 분야에서 인간 삶의 연구 방법론과 내용으로서 폭 넓게 채택되고 있는 이야기 심리학의 구조와 내용을 매카담스의 이론을 중심 하여 간략하게 살펴보고, 기독교상담에의 적용을 개괄해 보았다. 우리 인간의 이야기가 각 개인의 독특한 삶의 모습처럼 다양한 것과 같이 인간의 이야기를 연구하는 이야기 심리학과 이야기학(Narratology)의 내용과 방법론도 학자들의 관심 분야에 따라 무척 다양하게 개발되어 왔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면, 이야기라는 메타포를 통해 인간의 삶의 정황과 모습에 대해 보다 총체적으로 접근해 보려는 노력과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주체적 삶을 살 수 있다는 인간에 대한 낙관적 믿음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에 대한 낙관적 믿음은 막연하고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믿음이 아니라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한 인간이 전 생애의 발달과정과 단계에 걸쳐 자신과 타인들, 그리고 주위의 환경과 사회와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구축해 가는 과정임을 살펴보았다.

특별히 필자는 이 글을 통하여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이야기 심리학은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해 보았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 “나는 누구인가?”의 물음은 단순히 형이상학적 물음 이상의 일상의 과제에서 부딪히는 삶의 숙제라 말해 좋을 것이다. 특별히 인간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신학과 기독교상담의 분야에서는 더욱 절실한 물음이라 하겠다. 본회퍼의 말처럼 성인이된 오늘 우리들의 사회는 더 이상 우리들에게 “우리가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어떠한 삶이 의미 있는 삶인지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이제 그 과제는 우리 스스로 찾아야만 하는 심리-사회적인 책임성의 물음일 뿐이다. 이야기 심리학은 우리 인간들의 이러한 숙명적인 자기 탐구, 오늘을 살고 있는 인간 정체성의 문제에 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인간의 정체성은 곧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안에 담겨 있다는 평범한 사실이다. 곧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안에 인간을 이해하는 수수께끼의 열쇠가 숨겨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점이 기독교 상담학이 이야기 심리학을 인간이해와 인간성장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선택한 이유인 것이다.

인간의 유한성 속에 깃들인 삶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기독교 상담학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이야기 심리학은 인간 삶의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연속성의 흐름 위에 펼쳐지는 인간 이야기의 드라마에 관심하며, 시간의 뼈대 위에 펼쳐진 인간 이야기의 중심주제를 묻는다. 과거-현재-미래의 시간 위에 펼쳐지는 인간의 이야기를 바로 듣고 바로 이해할 수 있을 때 기독교 상담가는 한 인간을 보다 종합적이고 총체적으로 이해하며 도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우리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풀리지 않는 물음에 답을 위하여 씨름하는 과정에서 기독교 상담가를 찾는다. 때로는 그들은 어떠한 문제가 자신들의 문제인지도 의식 안에서 정확히 모른 체 마치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이야기하듯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독교 상담가가 특별히 인간의 이야기하는 본능에 대한 깊은 통찰과 지식, 그리고 이야기 과정을 돕는 듣는 자로서의 훈련으로 준비되어 이들과 대화한다면 특정한 상담의 공식적 과정이 없더라도 목회적 대화들을 통하여 많은 회중들의 삶의 이야기에 보다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보다 잘 전개될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보다 타인과 세계와의 관계성 안에서 나아가 하느님의 구속사적 이야기의 과정 안에서 발견되어지고 전개되어 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과거 기독교상담을 지배 해왔던 패러다임과 방법론은 크라인벨을 위시한 최근의 많은 기독교 상담학자들이 잘 지적하였듯이, 정신 분석적 패러다임의 틀 안에서 장기적이고, 상담가와 내담자 사이의 특별한 정신 치유적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상담 모형이었다.37)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상담이 특정한 삶의 문제들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무척 효과적일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목회 현장의 특수성에서 비춰 볼 때는 많은 단점들을 지니고 있는 점도 사실이다. 즉, 목회 현장의 여러 과중한 스케줄과 많은 회중들의 여러 도움에의 요청은 한 목회자로 하여금 한 개인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과 시간의 할애를 허락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된다. 또한 목회 행정과 프로그램 전반에 관여하며 회중들과 함께 목회를 이끌어 가는 과제 중심의 목회적 토양 속에서 갑자기 평신도들의 도움의 요청을 대면하고 새로운 치유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도 정신 분석적 패러다임의 틀 안에서 볼 때는 여러 가지 여건들이 충족하지 못할 경우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 그것은 회중과 목사들과의 관계가 많은 경우 이미 너무 익숙한 관계이기 때문에 정신 분석적 치료의 관계로는 타당하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게 되는 것이다. 혹은 정신 분석적 치료의 방법이 내담자의 문제들에 대해 많은 통찰과 이해의 폭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오랜 기간 정신 분석적-치료적 관계로 형성된 목사와 회중의 관계는 다른 토양에서의 목회적 관계에는 적합하지 못한 저항들이 많이 발생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기독교상담의 모형들은 많은 경우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기존의 정신 분석적 이론 모형과 그에 따른 방법론에 치중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볼 때 이야기 심리학적 통찰과 구체적 상담 방법론은 기독교 상담가들에게 정신 분석적 패러다임의 단점들을 극복하는 새로운 상담유형의 한 모형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