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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도신경 연구 - 18

에반젤(복음) 2020. 10. 9. 01:16

사도신경 연구 - 18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1. 배경 이해

 


# 영생에 대한 오해

1. 영생교적 열망

영생교는 조희성이라는 종교 사기꾼에 의해 각종 물의를 일으키며 세간의 주목을 받다 사라져간 사이비 종교이다. 조희성은 자기가 하나님이고 자리를 따르면 몸이 죽지 않고 영생불사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그는 교도소 복역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영생교적 열망 곧 이 땅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또한 늙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인간의 간절한 소망이 영생을 오해하게 한다.

2. 유토피아니즘(utopianism)

역사적으로 유토피아 곧 이상향을 그리고 그 안에서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을 꿈꾸는 사상이 있어왔다. 무릉도원, 샹그리라, 이어도 와 같은 전설적 공상이 있다. 공산주의처럼 프로레타리아의 낙원을 꿈꾸는 구체적인 이데올로기도 있다. 오늘날 테크노피아라는 낙관적인 미래 사상도 넓은 범주로 보면 이에 속한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공상일 뿐이다.

3. 심리적 초월

불교의 열반과 해탈에서 대표적인 예를 찾을 수 있다. 인생에는 끝없는 고통이 있다는 것이다. 백팔번뇌가 그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 백팔번뇌를 극복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이고 그로써 도달하는 죽음과 삶을 초월한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열반이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심리적 안정일 뿐이다.

4. 영혼 불멸설

몸은 죽지만 영혼은 산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영이 영원하다고 믿지만 몸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 이런 식의 입장은 육적인 삶의 가치를 부정하고 오직 영적인 정신적인 삶에만 가치를 두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철학적 사변일 뿐이다.

이런 오해들은 기독교 영생을 자칫 곡해하게 하고 그 본 뜻을 훼손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잘 분별하고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겠다.

2. 영생이란 무엇인가?

1. 영생이란 양적인 개념이다.

영생이란 헬라어 원어로 “아이오니오스 조에” 곧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영원하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끝이 없는, 영원한’(eternal)이라는 뜻이고, 조에는 ‘생명’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문자적으로만 보면 영생은 영원히 산다는 생명의 양적인 개념이다.

실제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죽은 사람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다시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고, 살아서 주님의 재림을 맞는 사람들은 그대로 변화되어 새로운 몸을 입게 된다. 그리고 심판을 거쳐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때 그곳은 더 이상 죽음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그 때 우리가 누리게 될 생명은 양적으로도 영원하다.

 


2. 영생이란 질적인 개념이다.

영생이란 단순히 영원히 사는 양적 개념만이 아니다. 그 이상이다. 성경은 늘 중생 즉 거듭남과 영생을 같은 개념으로 설명한다. 특히 구원의 결과를 설명할 때 함께 사용되는 동일한 내용의 다른 용어로 사용한다. 즉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은 것이 구원인데 그 때 당장 일어나는 현상이 중생이고 장차 누리게 될 것이 영생이라는 것이다. 또한 중생은 죄를 벗어버리고 다시 태어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영생은 죄에서 해방된 사람의 삶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중생은 구원의 소극적인 측면이라면 영생은 구원의 적극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롬 6:2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사망과 영생은 단순히 양적인 개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죄 지은 사람도 죽고 죄 사함 받은 사람도 일단 죽는다. 그리고 죄 지은 사람도 저 지옥의 형벌을 받는데 그곳에도 더 이상 죽음은 없고, 죄 사함 받은 사람도 죽음이 없는 저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다면 말하는 죽음은 무엇이고 영생은 무엇인가? 질적인 개념인 것이다. 저 지옥의 영원한 형벌 속에 던져지는 것 그것을 영생이라 하지는 않는다. 저 천국의 영원 복락을 우리는 영생이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생은 질적 개념이다. 그 삶의 질이 어떠냐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죄와의 관계가 철저하게 청산된 전혀 새로운 생명인 것이다. 요 1서 2:25을 보면 이렇게 말씀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이 아주 특별한 생명은 바로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약속이다. 즉 이 생명은 하나님께로서 선물로 임하는 전혀 다른 질적 생명인 것이다.

3. 영생은 관계적인 개념이다.

영생이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만 설명되어진다.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영생이란 있을 수 없음을 단정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롬 6:2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한다.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라고 말씀한다. 전적으로 영생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누리게 되는 아주 특별한 생명인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가 끊어지게 되면 잃어버리게 되는 생명이기도 한 것이다.

요 15:4-5을 보면 이렇게 말씀한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 비유이다. 가지가 한 번 나무로부터 양분을 받고 수분을 공급받았다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공급을 받아야 되는 것을 말씀한다.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열매가 맺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생이 이와 같다. 한 번 얻었다고 계속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속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유지할 때 영생은 우리 안에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4. 영생은 현재적 개념이기도 하다.

영생은 물론 저 천국에서 활짝 꽃이 필 미래적 사건이다. 그러나 씨앗이 파종되고 때가 되어 꽃이 피듯이 아직 불완전하나마 영생은 오늘 여기에서도 미리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생명이기도 하다.

요 5:24을 보면 이렇게 말씀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가 장차 영생을 얻을 것이 아니고 이미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한다. 현재 여기에서 이미 우리가 영생을 얻은 채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또한 요 3:36을 보면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말씀했다.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이미 영생이 있다는 것이다.

영생을 누리는 삶이란 구체적으로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평안과 기쁨의 삶이다.(롬 5:11)

둘째, 의의 삶이다.(빌 1:11)

셋째, 담대한 삶이다.(롬 8:31)

 

3. 영생은 어떻게 얻는가?

영생을 얻는 방법은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1. 하나님의 선물을 받음으로

롬 6:23을 보면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되어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들 중의 최고는 영생이라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하신 이유도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다.

영생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다. 따라서 겸손하게 그 선물을 받을 때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2.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요 17: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는 것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추상적인 앎이다. “...에 관해서 아는 것”을 말한다. 사변적인 동의와 간접적인 정보 습득을 말한다. 책을 통해서 어떤 지식을 얻게 되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어떤 정보를 얻게 되고, 사변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체험적인 앎이다. “...을 아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먹어보고 그 맛을 아는 것, 누구와의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그에 관해서 아는 것을 말하고, 어디를 직접 가 보고 그곳에 관해서 아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분과의 직접적인 관계 하에서 그분에 관해서 아는 것을 말한다. 이 앎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함으로 영생을 얻게 해 준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경 여러 곳에서 영생은 믿음으로 얻는다는 사실을 밝히 말하고 있다. 요 3:16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요 6:47을 보면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라고 말씀했다. 딤전 1:16을 보면 “주를 믿어 영생 얻은 자들에게”라고 말씀했다. 요 1서 5:13을 보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영생은 우리가 믿을 때 우리에게 구체적인 사건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영생은 신앙적 사건의 결과인 것이다.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