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주(월)
찬송 :(새)526장, 316장
■ 이사야 55-59 : 구원과 회개의 촉구 55-57장 종의 구원에 대한 응답 촉구 58-59장 형식적 종교와 죄악에 대한 회개를 촉구함 ☞ 줄거리 메시야는 모든 민족들을 자신의 나라로 초청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초청에 응답함으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수많은 이방인들이 메시야께로 돌아와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식적인 종교 예식으로 가득 차 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이사야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된 불순종을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그들에게 형식적인 종교 예식을 버리고, 신속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심판 앞에 놓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
읽으며 묵상하며 : 하나님의 감격적인 초청(55 : l-13)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 55:1)
사람들은 존귀한 분에게서 특별한 초청을 받을 때 만사를 제쳐놓고 가게 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풍성한 잔치 자리로 초청하는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초청을 받을 수 있으며, 어떤 축복을 받게 됩니까?
누구든지 목마른 자를 조건 없이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초청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목마른 자들을 초청하시는데, 돈이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마시라고 하십니다. 목마른 모든 자에게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좋으니 와서 포도주와 젖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박한 초청은 ‘나아오라’, ‘사라’, ‘찾으라’, ‘부르라’, ‘돌아오라’ 등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초청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뜻에 의한 것이며, 오직 은혜로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목마른 모든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하셨고, 그들을 간절히 초청하시며, 그들을 향한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초청을 외면하고 참 만족을 줄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2~3절). 즉, 영적인 양식을 외면한 채 육신의 빵 만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혼을 살찌우는 양식을 얻지 못하고 육신만을 살찌우는 양식을 얻고자 하는 것은 육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심령의 가난함을 인식하고,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초청에 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감격적인 초청에 응하여 축복된 삶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참 만족과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영화롭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목마른 자들이 나왔을 때, 그들에게 좋은 것을 먹게 하시고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게 하시며(2절), 영화롭게 하시며(5절), 죄악을 용서해주시며(7절),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형통케 하시며(10~11절),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하시고 산과 언덕이 노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약속이 확실한 근거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며, 영원한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믿는 자들의 마음과 삶 속에 구원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나타내주셨고, 온 세계에 그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축복은 하나님께 나오는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갖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받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겸손히 받아 누리며, 그것을 주변과 먼 곳에도 나눌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참 만족과 풍성한 축복을 누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바랍니다. 기독 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2006.07.02
살며 생각하며 : 빌데가 있으니 감사
태백의 탄광 막장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장관급인 대한 석탄공사 사장은 5만 명의 광부를 지휘하는 사람으로 십 여명이 갇혔다는 보고를 받고 사장은 직원 한사람을 대동하고 방독면을 쓰고 십수㎞를 내려가는 지하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습니다.
갱도 안에서 광물질에서 분출되는 유독가스와 지열을 참으며 매몰지점을 찾던 두 사람은 방독면의 유효시간이 3분밖에 남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어둠 속 가스냄새로 인해 서서히 죽음을 직감하며 방독면에 목숨을 의존하는 무기력한 존재임을 실감했습니다.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젊은 나이에 공사 사장이 되었지만 그 상황에서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동행한 직원의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막막할 때에 호소할 분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기도의 덕인지 구조 엘리베이터가 다행히 이들을 발견하고 구조했으며 얼마 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훗날 안양의 한 교회의 장로가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그 사고를 통해 부르셨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기도하는 자는 반드시 살려주신다는 걸 의심한 적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위급할 때에 빌 수 있는 확실한 대상이 있다는 이 한가지만으로도 그대가 예수님 믿는 것은 수지맞는 일입니다. 이 은혜의 복을 믿음으로 받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며 주변에 이 놀라운 능력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도서 출판 누가/신현주 목사,「예화 철학」 p102-
27주(화)
찬송 :(215장, 354장
■ 이사야 60-66장: 유다의 영광스러운 미래 60-62장 유다의 영광 63-64장 유다의 회개 65-66장 여호와의 응답 ☞ 줄거리 이사야는 심판 후에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소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장차 유다는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는 모든 열방들이 유다를 섬기고, 유다를 괴롭히던 대적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메시아께서 오셔서 성령으로 기름 부으심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가난한 자와 포로 된 자들을 해방시킬 것입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의 슬픔은 기쁨으로 변할 것이며,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과 찬송이 넘치게 될 것이다. 유다 백성들이 그때에 회개하고, 아버지가 되시는 여호와를 찾기 위해 부르짖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온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을 위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하시고,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
읽으며 묵상하며 : 기도의 인내(62:1-12)
“예루살렘이여 !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62: 6,7)
본문은 예루살렘의 재건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잊지 않으시도록 기도를 그치지 말 것을 부탁하는 장면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는 동안 나에게는 며칠 전 목격했단 그 이상한 광경이 떠올랐습니다.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 내려오더니 호두나무에서 호두 하나를 낚아챘습니다. 그러더니 전보다 더 높이 날아 올라가서 호두를 떨어뜨렸습니다. 마귀는 잠시 후 또 한 날아 내려와 호두를 물고 날아갔습니다. 이 에는 더 높이 날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호두를 떨어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손자를 데리고 유치원 뜰을 이리저리 거닐곤 했을 때 빈 호두 껍데기를 많이 보았는데 어 떤 것은 반쯤 먹었고 어떤 것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 호두가 어떻게 거기 있는지에 대한 평소의 궁금증이 그제야 풀렸습니다.
이 꾀 많은 까마귀가 제 먹이를 이런 식으로 까 먹은 것입니다. 까마귀가 호두 껍데기를 까기 위해서 되풀이하여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며 나는 역시 우리의 인생에도 깨기 힘든 호두 껍데기‘같은 많은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문제에 대한 우리의 기도가 때로는 하나님께 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의 적은 우리에게 ‘포기해!’하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까마귀가 실패해도 한층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 올라가서 오랫동안 되풀이하며 노력하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신 대로 거의 430년간 끝없는 노역에 시달리면서 애급에 머물러 살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약속의 땅 가나안을 사모하며 430년이 끝나는 바로 그날을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고난의 연속 속에서도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기도를 쉬지 않았던 그들은 열 번째 재앙이 임하여 애굽의 모든 첫 태생이 다 죽은 그 밤에 애굽을 속히 떠나라는 바로의 명령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고통과 시련의 가시덤불 속에 갇힐 때, 너무 성급하게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계속되는 실패와 고난에 처해 쉽게 기도를 포기하는 우리들에게 까마귀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내는 큰 도전을 줍니다. 까마귀가 여러 번의 도전과 실패를 경험한 후 제 먹이를 구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이란 인고(忍苦)의 세월 후, 애굽을 탈출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기도 또한 해결되기까지 쉼 없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께 되풀이해서 우리의 어려움을 아뢰라’고 우리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Merle N, Berwick) -기독 지혜사 /「호크마 종합주석 구약 17권 」QT, p737-
살며 생각하며 : 끊임없는 기도가 이룬 기적
지금부터 30여 년 전, 미국 어느 도시 시립 병원 정문 앞에 생후 6개월 된 아이가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날 때부터 소경인데다가 뇌성마비에 걸린 정신 박약 아였습니다. 병원 당국은 당황하여 마침 은퇴한 간호사 메이 렘케에게 이 사연을 말했습니다. 당시 52세로 신앙심이 깊었던 그녀는,
“내가 죽는 날까지 이 아기를 돌보겠습니다.”하면서 버려진 아기를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메이는 아이를 보는 순간, 너무도 비참한 인간 생명의 무기력함에 울어야 했습니다. 우유를 주어도 빨아먹을 반사 본능마저 없는 이 생명, 메이는 아기의 뺨에 얼굴을 대고 정성스럽게 안마를 했으며 팔과 다리, 손가락을 어루만져 주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몇 년이 흘렀어도 이 식물인간 ‘레슬리’는 단 한 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고, 말 한마디는 물론 웃음이나 눈물도 짓지 않았습니다.
메이는 이때부터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제가 스스로 레슬리를 찾아 나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 아기를 키우도록 선택된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엔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닙니까? 주여, 그 이유를 언제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기도라기보다는 항변에 가까운 호소를 하면서 걸음마를 시켜보고 특수 요법으로 치료를 계속했으나 레슬리는 그 어떤 변화도, 살아있다는 신호 하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레슬리가 18세가 되었을 때, 메이는 남편과 친척들은 모두 이 아이를 포기하라고 설득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성경의 기적을 믿습니다. 이 아이에게도 기적을 허락하소서.”
이것은 메이 부인으로서도 마지막 호소이자 기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메이는 레슬리가 엄지손가락으로 기타를 튕기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실로 18년 만에 처음으로 보여 진 이 기적 앞에서 메이는 “음악이다. 음악이야!”하고 외쳤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메이는 남편과 레슬리의 방에 피아노, 전축, 라디오,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레슬리의 손가락을 집어 피아노 건반을 눌러주며 연습시켰습니다.
그러나 레슬리는 한 번의 기적으로 만족하라는 듯 변화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1971년 어느 겨울 새벽,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곤한 잠에 빠진 가족들은 누군가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순간 메이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레슬리의 방으로 달려갔습니다. 레슬리는 미소를 머금은 채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레슬리를 잊지 않으셨군요.”
순간 레슬리의 눈에도 실로 21년 만에 진주 같은 이슬이 맺혔습니다.
사랑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이 벽에 부딪힐 때 그는 기도를 통하여 운명적인 좌절과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매스컴에까지 보도된 이 실화는 이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지우. 명작 설교 예화)
-기독 지혜사 /「호크마 종합주석 구약 17권 」예화, p737-
27주(수)
찬송 :(새)449장, 377장
■ 열왕기하 21장, 역대기하 33장, 오바댜: 므낫세와 아몬의 악정 ☞ 줄거리 히스기야의 뒤를 이어 유다의 왕이 된 사람은 므낫세였습니다. 므낫세는 경건한 히스기야와는 달리 여호와께 큰 악을 행했습니다. 그는 히스기야가 헐어버렸던 산당을 다시 세웠고, 아합을 좆아 바알을 위해 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섬겼으며,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했습니다. 또한 그는 신접한 자와 박수들을 신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죄를 지었을 뿐 아니라, 죄 없는 사람들의 피를 많이 흘렸습니다. 그의 가증한 죄는 그 땅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의 죄를 능가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유다를 징계하시기로 결심하시고, 선지자를 통해 유다의 멸망을 예고하셨습니다. 므낫세가 죽은 후에 그의 아들 아몬이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므낫세의 뒤를 이어 유다의 왕이 된 아몬 역시 므낫세처럼 여호와께 악을 행했습니다. |
읽으며 묵상하며 : 우상숭배와 회개(대하 33:1- 13)
“기도한 고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시며 그 간구를 들으시사 저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거하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대하33:13)
히스기야의 종교개혁 정책은 한 세대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므낫세가 곧바로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2절).
므낫세의 우상숭배는 극에 달했습니다. 므낫세는 성전 바깥에서 우상숭배를 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호와의 전에도 단을 쌓았을 뿐 아니라(4-5절), 자신이 만든 우상을 세웠습니다(7절). 본문은 그 성전의 본래 의미와 하나님의 언약을 되새기며 이 일을 안타까워합니다(7-8절). 여기서 생기는 한 가지 의문은 히스기야를 비롯한 신앙의 회복에 헌신했던 많은 왕들의 정책이 왜 그 아들 대에서 바로 무너지는가! 입니다. 그들은 어쩌면 외적인 종교 정책에는 심혈을 기울인 반면, 자신의 자녀 양육에는 실패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종교개혁이 계속 지속적으로 계승되기 위해서는 그 정책을 계승할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의식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먼저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므낫세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바로 벌하지 않으시고 경고의 메시지를 주셨지만 그는 듣지 않았습니다(10절). 결국 그가 돌이킨 시점은 심판을 받아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을 때입니다. 곤경에 빠져 고통을 당하자 비로소 겸손해져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12절). 그래도 은혜의 하나님은 이 기도에 응답하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깨닫습니다. 회개가 아무리 늦어도 하나님은 기다리시고 회복시키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므낫세(10절)와 므낫세의 간구를 ‘들으신’하나님을 대조합니다(13절). 두 번째로 회개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므낫세가 처음 경고를 들었을 때 돌이켰다면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 여호와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프리셉트/「묵상하는 사람들, 메시지」,2005. 05. 17-
살며 생각하며 : 아버지 품으로
영국의 어느 시골의 한 가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집에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는 시골 생활에 싫증을 내고는 집을 나와 무작정 도시로 갔습니다.
바로 그때부터 그녀는 ‘자기 마음대로’ 생활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녀의 생활은 자유 분방, 그 자체가 되어버리고 말아 몸도 마음도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에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결심을 하고 나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죽기 전에 먼발치에서라도 부모님의 얼굴을 뵈어야겠다는 생각에 고향으로 갔습니다.
그리하여 그녀가 집에 도착할 때는 한 밤 중, 주위가 어두워 다른 것들은 또렷이 알아 볼 수 없었으나, 그녀는 자기의 집과 자기가 집 울타리에 가꾸었던 장미 넝쿨만은 또렷이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어머니------.” 작은 소리로 불러 보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문이 열리더니 아버지가 뛰쳐나와 그녀를 얼싸 안고는 “어디 갔다가 이제 왔니? 네가 집을 나간 뒤로 네 엄마와 나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네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문을 잠그지 않은 채 살아왔단다.”하며 흐느껴 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도 당신의 품을 떠났던 자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며 그가 돌아오면 사랑으로 뜨겁게 맞아주십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악을 행하고 우상 숭배를 일삼았던 므낫세가 당신 앞에 회개를 하자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하늘 아버지를-------.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 종합 주석 7권⌟ p681-
27주(목)
찬송 :(새)527, 317장
■ 열왕기하 22-23장 스바냐 1-3장: 여호와의 진노의 날 1장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2장 열방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3장 남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 줄거리 유다의 멸망을 초래한 므낫세와 암몬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요시야가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부패한 나라를 영적으로 갱신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제사장을 통해서 성전을 정리했습니다. 제사장은 그 명령을 따라서 성전을 정리하다가 율법 책을 발견하고 그 사실을 요시아에게 보고했습니다. 요시아는 제사장이 낭독하는 율법의 내용을 듣다가 자기 죄를 발견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는 자기 죄를 회개한 후에, 므낫세가 세웠던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들을 제거했습니다. 요시아는 유월절을 다시 지켰고, 율법대로 살기 위해서 전심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요시아의 종교 개혁도 므낫세와 아몬이 초래한 심판을 돌이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에 선지자 스바냐가 나타나서 유다에 임할 여호와의 심판의 날에 대해서 경고했습니다. 스바냐는 유다와 열방에 임할 심판에 대해 불같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공포와 잔인함과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경한 유다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잡를 베풀어서 그들을 모두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남은 자들을 통해 "회복의 기쁨"을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 |
읽으며 묵상하며 : 진멸에 관하여(습1:1-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1:2)
본문에서 하나님은 때가 되면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진노, 신판, 진멸 -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별로 친숙하지 않은 의외의 개념으로 여겨집니다. 아니 별로 시대에 맞지 않는, 인기가 없는 개념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또 참고 참는 인내의 하나님으로 흔히 묘사됩니다. 분명히 그러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가차 없는 심판과 처벌이 있음을 역사는, 성경은 가르쳐줍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쳐서 파하면 되지 진멸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고 그는 생각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직전에 천사의 인도를 받은 롯이 그의 사위들에게 경고하자 그들은 농담으로 여겼다고 합니다.(창19:14) 멸망이라니 그럴 리가 있나, 태양은 어제도 떴고 그제도 있었고, 저 산과 들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전혀 변함이 없는데 멸망은 무슨.... 그들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야 맙니다.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 왕 시대에 그 나라의 타락한 와중에서도 5천 결사대를 이끈 계백 장군의 충성과 분전은 유명합니다. 그는 찌를 듯한 사기로 물밀듯이 밀려오는 신라의 10만 대군을 격퇴하는 것이 이미 역부족인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마지막 전투인 황산벌 싸움에 출전하기에 앞서 그의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모아놓고 눈물의 이별을 한 다음 칼로 그들의 목을 모두 베고 맙니다. 어차피 자신도 마지막 전투에서 죽을 몸, 포로가 되어 비참한 대우를 받는 것보다 이쪽이 낫다고 본 것입니다. 그도 역시 5천 결사대와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마치게 됩니다.
세상의 사람이 세상의 왕을 섬길 때 어러 하다면 그리스도인은 과연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강하고 분명해야 합니다. 주님이 진멸을 요구하실 때도 분명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마음이 약하고 우유부단하며 정에 지나치게 끌리는 사람은 주님을 바로 섬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지혜사/「호크마 종합주석 구약20권,QT」, p 563-
살며 생각하며 : 다 쓸어버리리라
도쿠가와 이에쓰나(德川家綱)가 11살에 일본의 제4대 장군이 되었을 때 일본은 전국적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떠돌이 무사 낭인패들이 민란을 일으켜 민심은 더욱더 흉흉해졌습니다.
바로 그 무렵의 일입니다. 당시 도쿄(東京)에는 특별한 기모노가 한 벌 있었습니다. 그 옷은 한 처녀가 갖고 있던 것으로 정장용으로 만들어진 아주 멋있는 기모노였습니다. 그런데 그 처녀는 그것을 한 번도 입어 보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죽고 말았습니다. 이 옷을 물려받은 이웃집 처녀도 그 옷을 입을 만한 귀한 자리에 초대받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세 번째로 그 옷을 갖게 된 처녀도 어쩌다가 그만 처녀귀신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때 사이비 중이 나타나 그 옷을 태워 없애야 한다면서 불을 질렀습니다. 때마침 불어 닥친 세찬 바람에 불길이 치솟아 올라 삽시간에 온 도시로 번졌습니다. 그 화재로 도시의 3/4이 타버렸고, 300개 이상의 절과 500채 이상의 궁정 건물과 그밖의 건물들이 전소되었습니다. 또하 인명 피해도 엄청나 10만명 이상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집니다.
수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오클랜드에도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타임(Time)지는 온통 검은 연기로 뒤덮인 도시의 전경과 하늘을 향해 혀를 낼름거리는 불길을 사진으로 담아 그 끔찍했던 사건을 생생하게 보도하였습니다. 이 화재로 2,000동 이상의 건물이 타버렸고, 24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사치하며 향락에 도취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과 그들이 사는 도시의 대명사인 샌프란시스코에, 그것도 그로부터 2년 전에도 큰 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던 그 도시의 중심부인 오클랜드에 또다시 대재난이 발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지으신 피조물들이 당신을 따르지 않고 당신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을 때 물로든, 불로든 그들을 모두 멸하십니다.
-기독지혜사/「호크마 종합주석 구약 20권」예화, p563-
정리하며 확신하며 : 성도가 쉬지 말아야핳할 일 7가지
성도가 쉬지 말아야 할 일 |
참 고 성 경 귀l 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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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기도하는 일 |
삼상 7: 8; 살전5:17 |
2 |
영적 파수군의 일 |
시 62:6 |
3 |
가르치는 일 |
행 5:42; 30:31 |
4 |
전도하는 일 |
행 5:42 |
5 |
말씀을 상고하는 일 |
행 17:11 |
6 |
감사하는 일 |
살전 2:13 |
7 |
찬송하는 일 |
계 4: 8 |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9권, p1263
27주(금)
찬송 :(새)293장, 414장
■ 역대기하 34-35장, 나훔 1-3장: 니느웨의 심판 나훔 1장 심판 판결 나훔 2장 심판 묘사 나훔 3장 심판의 이유 ☞ 줄거리 요시야 왕 때에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향해 심판을 외친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나훔이었습니다. 약 100년 전에 요나는 니느웨를 향해 회개를 외쳤고 그들은 회개함으로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후 나훔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을 때에 니느웨는 전보다 더 부패해 있었습니다. 요나의 방문으로 인해 일어났던 회개와 겸손함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니느웨는 세계의 강대국이 되어 온 세상을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천연적 요새인 니느웨에 거하면서 아무도 자신들을 침략할 수 없다고 자만하고 있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폭력과 자만함으로 심각한 타락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더 이상 그 성의 죄악을 간과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나훔을 통해서 곧 앗수르 제국이 멸망하고, 그 수도인 니느웨가 맹렬한 불에 타 버릴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
읽으며 묵상하며 : 선과 악(나훔1:1-15)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 그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니 그를 인하여 바위들이 깨어지는도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나훔1:6,7)
니느웨는 하나님의 분노를 샀습니다. 커다란 분노였습니다! 마지못해 했던 선지자 요나의 훌륭한 사역에도 불구하고 니느웨는 악한 길로 다시 돌아섰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다른 나라들을 핍박하고 우상들을 섬기며 잔인한 일들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악한 모습을 보시고 나훔의 예언을 통하여 다가올 니느웨의 멸망에 대해 진노와 보복이라는 단어를 쓰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니느웨는 곧 심판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의 선지자는 니느웨가 멸망하리라는 것을 유다 백성들에게 이야기하는 걸까요? 어떻게 나훔이 전한 이 두려운 말들이 약속의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나훔1:7-8에서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들의 멸망에 대한 그의 예언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경건한 자들은 심판에 직면하지 않고 보호를 받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갖게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한편으로만 치우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피난처와 도움과 위로를 주시며,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은 심판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똑같은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믿음과 순종을 통하여 우리는 환난의 때조차도 하나님이 주시는 피난처의 안락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Dave Branon)
-오늘의 양식사, RBC Ministries /「 오늘의 양식」, 2006,09,21-
살며 생각하며 : 순종의 열매
유학 생활을 시작하는 어느 청년이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해야했습니다. 청년은 아르바이트를 하여 첫 월급을 받았는데, 십일조를 구분하면서 녹음기를 사야 할 일이 생각났습니다. 아직 외국어 강의 내용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강의를 녹음했다가 다시 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구분해 놓고 보니 녹음기를 살 돈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청년의 마음속에서는 십일조냐? 녹음기냐?하는 갈등이 시작되었고, 주일이 되어 예배에 참석할 때까지도 갈등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십일조를 준비하여 오기는 했지만 갈등은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예배 시간에 결심을 하고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그 동안의 갈등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목사는 청년에게 한국에서 이민 온 어떤 부인을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청년은 그 부인의 집에 놀러 가 몇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청년이 들아 갈 무렵 부인이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녹음기가 필요하지 않나요? 내가 유학 시절에 쓰던 것인데 필요하면 줄게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순종의 열매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순동하는 사람에게 많은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아가페/하천덕 편저,「키워드로 불러보는 설교 예화」 p497-
27주 (토)
찬송:(새)333장, 381장/ (새)342장, 395장
◇ 이번 주 읽은 성경 요약 및 못 읽은 부분 읽고 한 주간 생활 묵상하며 가정 예배드리기
◈ 주제 : 환경을 초월한 세기적인 우정(삼상20:1-23)
말씀묵상 : 다윗과 요나단의 감동적인 우정(삼상20:1-23)
오늘 본문은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문 아름다운 사랑의 장면입니다.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이루어지는 감동적인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며, 우리 모두가 본 받아야 할 사랑입니다. 두 젊은이가 펼치는 사랑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 속마음을 토로하며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시기심을 받아 도망자의 길에 있다가 잠시 요나단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요나단의 부친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고 암살단까지 보내온 것을 알았지만 이전에 생명같이 사랑하여 맺은 언약을 기억하며 찾아온 것입니다. 다윗은 비록 요나단의 아버지에 의해서 암살위협을 직감하고 있으면서도 그를 신뢰하였고 그에게 자기 심정을 다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다윗의 속마음을 읽은 요나단도 다윗의 입장에서 돕겠다고 다짐하였고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랑하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특히 요나단은 다윗의 인기가 자기 아버지보다도 더 높아있는 상황과 장차 다윗의 집이 왕권을 차지 할 것을 아는 상황에서 다윗을 돕겠다고 한 것은 사사로운 인간적인 감정이나 뜻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가운데서 받아들인 것입니다. 또한 다윗을 사랑하고 돕는 것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으로 이해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나단은 자기 생명과 다윗의 생명을 같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속마음을 털어 놓는 관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자기 생명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다윗과 요나단의 사랑이었고, 주님의 사랑이었고, 우리가 배워야 할 사랑입니다.
☞ 친구의 유익을 위해서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은 사랑의 맹세를 하고 다윗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습니다. 그가 다윗을 돕기 위해서 사울의 의도를 확인하여 다윗에게 알려주려는 과정은 너무나 숭고하고 아름답습니다. 정말 그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난처할 수 있는 예민한 문제인데, 친구를 위하여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친구에게 살 길을 열어주는데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사울이 왕권강화를 위해서 제거하려고 하는 다윗을 오히려 살려주려고 하는 요나단의 모습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입장 때문에 다윗을 포기할 수 없었고, 그의 유익을 위하여 수고를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거룩한 것이며, 진리에 의한 것이며, 믿음에 의한 것이며, 희생에 의한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정말 친구의 진정한 유익을 위해서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수고를 아끼지 않은 모습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유익이 항상 먼저인 이기적인 모습을 과감히 바꾸어야 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면 참사랑을 이룰 수 없고, 자기만 사랑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친구의 살길, 성공의 길, 구원의 길, 축복의 길, 행복의 길을 위한다면 얼마나 값진 사랑이겠습니까?
「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기독 대학인회,ESF- 2005. 8. 17
살며 생각하며 : 아름다운 사랑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의 피시아스라는 젊은이가 교수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효자였던 그는 집에 돌아가 연로하신 부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왕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피시아스에게 작별 인사를 허락할 경우, 다른 사형수들에게도 공평하게 대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다른 사형수들도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하겠다며 집에 다녀오겠다고 했다가, 멀리 도망간다면 국법과 질서가 흔들릴 수도 있었습니다. 왕이 고심하고 있을 때 피시아스의 친구 다몬이 보증을 서겠다면서 나섰습니다.
"폐하, 제가 그의 귀환을 보증합니다. 그를 보내주십시오."
"다몬아, 만일 피시아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찌하겠느냐?"
"어쩔 수 없죠, 그렇다면 친구를 잘못 사귄 죄로 제가 대신 교수형을 받겠습니다."
"너는 피스아스를 믿느냐?"
"폐하, 그는 제 친구입니다."
왕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습니다. "피시아스는 돌아오면 죽을 운명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돌아올 것 같은가? 만약 돌아오려 해도 그의 부모가 보내주지 않겠지. 너는 지금 만용을 부리고 있다."
"저는 피시아스의 친구가 되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 부탁드리오니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폐하."
왕은 어쩔 수 없이 허락했습니다. 다몬은 기쁜 마음으로 피시아스를 대신해 감옥에 갇혔습니다. 교수형을 집행하는 날이 밝았습니다. 그러나 피시아스는 돌아오지 않았고 사람들은 바보 같은 다몬이 죽게 됐다며 비웃었습니다. 정오가 가까워졌습니다. 다몬이 교수대로 끌려나왔습니다. 그의 목에 밧줄이 걸리자 다몬의 친척들이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우정을 저버린 피시아스를 욕하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러자 목에 밧줄을 건 다몬이 눈을 부릅뜨고 화를 냈습니다.
"나의 친구 피시아스를 욕하지 마라. 당신들이 내 친구를 어찌 알겠는가."
죽음을 앞둔 다몬이 의연하게 말하자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집행관이 고개를 돌려 왕을 바라보았습니다. 왕은 주먹을 쥐었다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렸습니다. 집행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말을 재촉하여 달려오며 고함을 쳤습니다. 피시아스였습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다가와 말했습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이제 다몬을 풀어주십시오. 사형수는 접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작별을 고했습니다. 피시아스가 말했습니다. "다몬, 나의 소중한 친구여, 저 세상에 가서도 자네를 잊지 않겠네."
"피시아스, 자네가 먼저 가는 것뿐일세.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도 우리는 틀림없이 친구가 될 거야."
두 사람의 우정을 비웃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다몬과 피시아스는 영원한 작별을 눈앞에 두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담담하게 서로를 위로할 뿐이었습니다. 이들을 지켜보던 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를 외쳤습니다. "피시아스의 죄를 사면해 주노라!"
왕은 그 같은 명령을 내린 뒤 나직하게 혼잣말을 했습니다. 바로 곁에 서있던 시종만이 그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 모든 것을 다 주더라도 이런 친구를 한번 사귀어보고 싶구나." 사람은 사람을 버리고 죽이기도 합니다. 보험금을 타기 위해서 아내와 자식을 살해하고 불을 지른 짐승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은 잘못 인도하거나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완전하고 끝까지 인도하십니다. 안전하고 평탄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 김정호 목사 (번동제일교회)
돌아보며 다짐하며 : 우정이라는 나무
현대는 '고독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 현대의 고독은 '혼자 있음으로 생기는 고독이 아니라 '군중 속의 고독'입니다. 수많은 삶의 파편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현대이지만 그 어지러움 속에서 홀로 버려진 느낌을 가지는 것이 현대인에게 다가오는 고독의 실상입니다.
고통으로 인한 고독감은 우리들을 아프게 만듭니다. 그리고 죄책감으로 인한 고독감도 우리들을 아프게 만듭니다. 또한 미래에 다가올 심판에 대한 불안감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고독감도 우리들을 아프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의 고독감도 무한한 우주에 홀로 버려진 느낌을 갖게 하는 '군중 속의 고독감'에 비하면 그 아픔이 덜합니다. '군중 속의 고독감'은 수많은 사람들을 질식시킬 만한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군중 속의 고독감'으로부터 탈출하는 현대인이 될 수 있을까요?
강한 삶의 발동력을 얻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들은 이러한 고독감을 탈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강하게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연약한 여인도 사랑하는 자녀를 보호해야 하는 경우를 닥치면 어떤 맹수보다도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사랑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연애적 사랑, 인정적 사랑, 우정적 사랑, 모성적 사랑, 하나님의 사랑 등이 있습니다. 인정적 사랑은 연애적 사랑보다 깊고, 우정적 사랑은 인정적 사랑보다 깊으며, 모성적 사랑은 우정적 사랑보다 깊고 하나님의 사랑은 모성적 사랑 보다 깊습니다. 그런데 모성적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평상시의 인관 관계에서는 형성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평상시의 인간관계를 가장 매끄럽게 만들어주는 것은 우정적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우정적 사랑을 주고받을 때 '군중 속의 고독감'은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진실로 현대인들에게는 우정적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친구 때문에 망했다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반면에 친구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강력한 삶의 발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애적 사랑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약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정적 사랑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곤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정적 사랑은 사람을 강하게만 만드는 것입니다.
미국의 로스엔젤레스 지역에 큰 삼나무 숲이 있습니다. 이 삼나무 숲의 나무들은 지상에 있는 나무들 중에서는 가장 크다는 소리를 듣는 나무들입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나무는 뿌리도 깊게 내렸겠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그 나무의 뿌리는 그다지 깊게 내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 나무들은 서로 뿌리를 엉킨 채로 살고 있었습니다. 서로 뿌리를 엉키고 살고 있으므로 거친 풍수해에서도 굴하지 않고 큰 나무로 자라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정이란 '삼나무 숲의 엉킨 뿌리'와 같습니다. 우정이 꽃피는 곳에 인간사회의 거목이 자라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정'이라는 나무는 가장 느리게 성장하는 나무입니다. 그러므로 우정을 나누는 친구끼리는 깊은 이해와 지속적인 인내를 가져야 합니다. 고단한 이 세상에서 낙오병이 되지 않고 꾸준히 전진하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깊은 이해와 지속적인 인내를 수반한 아름다운 우정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아름다운 우정을 창출해낼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우정을 창출해내는 첫 번째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친구를 찾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올바른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먼저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를 위해 아름다운 친구가 되기를 노력할 때 진실한 우정은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 각박한 현대 세상에서 진실한 우정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소중한 거목들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담임목사)
오늘의 기도 : 진실한 친구가 되게 하옵소서
사랑의 주님,
때로 어려운 문제로 너무나 속상하여 고통스럽지만 그 아픔을 나눌 수 없어서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사람의 친구가 되어주고, 참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친구의 허물을 탓하기보다는 그 허물을 감싸주며, 진정한 사랑으로 충고하고, 격려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시고, 좁은 생각으로 나의 적은 이익에 집착하여 친구를 배반하지 않고 대의를 위해 요나단처럼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다윗을 자신의 생명 이상으로 사랑했듯이 그런 친구가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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