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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영들의 접근을 막자

에반젤(복음) 2020. 3. 1. 14:33



악한 영들의 접근을 막자




마귀가 우리에게 접근하는 까닭은 소극적으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많은 그리스도인을 실족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망하게 하기 위함인데, 마귀는 주로 우리의 영을 공격목표로 삼으며, 귀신은 우리의 육신을 포로로 잡아서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뜻을 드러냅니다. 사람은 영과 육을 지닌 존재인데 마귀는 영을 지배하여 우리를 영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며, 귀신은 우리의 육체를 점령하여 귀신의 행위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영과 육이 마귀와 귀신에게 사로잡히게 되면 그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두루 다니면서 삼킬 대상을 찾아다니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외 없이 마귀의 공격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와 귀신은 영적 존재인데 특히 마귀는 차원이 높고 강력한 능력을 가진 존재이지요. 적어도 3단계의 천사 그룹 중 2단계에 속하는 존재들이 마귀이며, 하위 3단계가 귀신들입니다. 1단계에 속하는 타락한 그룹, 타락한 스랍, 타락한 권세 등에 속하는 무리들은 사단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공중의 권세를 장악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발판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는 막강한 세력입니다. 이들의 우두머리 루시퍼를 정점으로 마귀는 우두머리의 명령에 따라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거짓말을 우리 영속에 흘러 보내며, 이 신호를 우리 지각이 받아들여 행동하면 마귀의 행동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귀는 거짓과 간계의 아비이므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는 생각 가운데 이런 특징을 지닌 내용들을 걸러내야 합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의 생각 속에 하나님과 어긋나는 생각들 즉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생각들을 불어넣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교묘하게 위장될 뿐만 아니라 타당한 근거를 지닌 내용처럼 보이기 때문에 속기 쉬운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 그러시면 안 된다고 만류한 것은 제자로서 당연한 자세 같아 보입니다. 스승이 죽는다는데 그것을 찬성할 제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 우러나오는 생각이 이런 타당하게 여겨지는 근거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의 기초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우리는 그런 부분에서 마귀의 유혹에 휘말리게 됩니다. 우리의 그릇된 분별과 판단을 이용하여 마귀는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마귀는 각 그룹마다 자신들의 독특한 특징을 지닙니다. ‘종교의 영’은 거짓 종교체계를 따르도록 우리를 유혹하며, ‘발람의 영’은 권세와 물질을 더 좋아하게 만들며, ‘이세벨의 영’은 우상을 숭배하게 만듭니다.




그 밖에 ‘게으른 영’은 모든 것을 내일로 미루도록 만들며, ‘분리의 영’은 항상 부정적으로 비판하게 만들어 분리하게 합니다. ‘다툼의 영’은 사소한 일도 크게 만들어 다툼이 일어나며, 이런 영을 가진 사람이 모임에 들어오면 반드시 싸움이 생깁니다. 수많은 영적 기능들이 있는데 이 마귀들이 접근함에 따라서 우리의 생각이 그 특성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 영 속에 자신들의 특성적인 신호를 보내면 우리의 지각은 이것을 분석하여 받아들이게 됩니다. 말씀에 미약한 사람은 이 신호를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인 것으로 여겨 그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떠오르는 생각 가운데 우리 영의 생각, 성령의 생각, 천사의 생각, 마귀의 생각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생각은 온갖 영의 생각들이 복잡하게 드러나는 싸움터입니다. 이런 생각들의 출처를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영적 분별력이며, 기술이기 때문에 배워서 익혀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멋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분별력을 높여 하나님의 음성을 더 잘 듣도록 노력합시다. 귀신은 우리의 육체를 점령하여 그 가운데 거처를 삼고자 기회를 엿봅니다. 마음의 상처나, 고통스런 사건을 경험하여 심령이 극심하게 허약해져 있어 분별력이 없을 때 침투하게 됩니다. 극심한 사건이 없다 하더라도 영이 강건하지 못한 경우, 귀신은 접근을 시도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일에 무지하고 믿음이 약할 때 역시 공격을 시도하는데 귀신의 공격목표는 우리의 육신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이 접근하면 먼저 우리의 영이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며, 그 신호를 육체에게 보냅니다. 육체가 느끼는 다양한 신호 가운데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이 소름끼치는 것입니다. 가슴이 조여들고 현기증이 나고 불쾌한 생각이나 두려운 생각, 썩은 냄새, 머리카락이 서는 강한 공포 등의 신호를 우리 감각기관에 보냅니다. 검은 물체가 보이거나, 어두운 분위기와 짓누르는 것 같은 압박감 등도 나타나며, 어둡고 불쾌하며 두려운 생각이 짓누르고 가위눌려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며, 악몽에 시달리며, 짐승들의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날카롭게 들립니다.




방언이 거칠고 날카롭게 나오며, 짐승소리 비슷하게 변합니다. 공중에서 급하게 바람이 휘몰아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며,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립니다. 무당들이 점을 칠 때 내는 독특한 휘파람 소리 같은 소리가 스쳐지나 가며, 뱀이 낙엽 위로 사삭거리면서 지나가는 듯한 소리와 느낌이 듭니다. 때로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문이 열려 있어서 냉기가 스며드는 것 같아 누가 문을 열어두었나 하고 살피게 됩니다. 귀신은 공포를 동반하는데 이 모든 것이 일차적으로는 우리의 영이 우리 자신에게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귀신은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려고 하지 않지만 우리의 영은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런 다양한 신호를 우리에게 보냅니다. 귀신이 자신에게 접근해 오면 우리의 영이 이를 알고 느끼기 시작하며, 때로는 성령께서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게 해 주십니다.




영을 분별하는 은사가 있는 경우에는 성령께서 구체적으로 이런 신호를 보내주어 세부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하며, 악령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게 됩니다. 일반적인 성도들에게 귀신의 접근은 일상적인 일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의 몸이 피곤하면 감기 바이러스가 활동을 강하게 하여 몸살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하지요. 이런 증상을 느끼면 피로를 풀어주어야 하고 몸을 쉬게 해서 다시 기운을 차려야 하듯이 귀신이 접근하면 우리의 영적 삶의 어느 부분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틈이 생겼다고 보고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귀신의 통로는 죄와 상한 심령인데 귀신을 불러들이는 바탕이 되는 죄를 회개해야 하며, 심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은혜로운 집회에 참석하거나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주님의 은혜로 심령에 채워야 합니다.




마귀와 귀신의 접근은 마치 감기처럼 누구에게나 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영은 이 두 차원의 악한 존재들로 인해서 항상 싸움터가 되며, 이 영적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길목을 지키다가 적당한 때가 이르면 모조품을 먼저 우리 앞에 내어놓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너무도 잘 압니다. 성령께서는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알기 원하십니다. 누구든지 한 가지 이상의 약점을 지니고 있으며, 그 약점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하기 위한 은혜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게 하기 위한 부분인 약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늘 그 부분을 경계하면서 살아가야 하지만 때로는 이 점을 잊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마귀는 바로 이 약점을 이용하여 우리를 장악하려고 시도합니다. 마귀의 유혹에 휘말려 실수를 범하게 되면, 죄책감에 빠지게 만들고, 스스로를 정죄하여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그 실수를 위장하고 감추게 하려는 마음을 불어넣어 위선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게 만듭니다. 이런 마귀의 유혹에 휘말리면 자신을 더욱더 비하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괴로워하게 됩니다. 마귀는 하나님은 벌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불어넣어 회개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하거나 거듭 반복해서 같은 죄를 지었으니 무슨 염치로 회개하려고 하는가, 회개한들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불어넣어 줍니다.




마귀의 끈질긴 방해로 인해서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이용해서 우리를 사로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귀신은 육체가 약할 때 우리 몸으로 스며듭니다. 귀신이 침투를 시도하면 우리 몸은 컨디션이 나빠집니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잠을 설치며, 어두운 분위기로 인해서 짜증이 나며 신경이 쇠약해져서 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고 무력해지기 시작합니다. 삶의 의미를 모르겠고 의욕도 생기지 않으며, 모든 것이 부질없는 일 같이 보입니다. 이것이 우울증 초기 현상인데 귀신이 접근하면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귀신과 마귀는 같은 편이기 때문에 귀신이 접근하면 마귀 역시 이들을 도와서 우리 생각 속에 죄책감이 들도록 자극하기 시작합니다. 육신은 피곤하고 생각은 우울해집니다. 잠을 깊이 잘 수 없어서 악몽에 시달리며, 짜증이 나서 의욕이 사라지기 시작하며, 모든 것이 싫고 미워집니다. 이런 괴로움으로 인해서 육신과 영이 피곤해집니다. 피곤하면 모든 것이 싫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됩니다. 몸이 피곤하면 만사가 다 귀찮아지는 법입니다. 귀신은 우리 몸을 점점 더 피곤하게 만듭니다. 귀신은 우리 몸을 점령하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몸이 피곤해지고 잠을 제대로 못 자게 되는 공격을 받는다면 우리 몸의 컨디션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찬송을 듣고 부르면서 귀신을 물리치고 주변에 경건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귀신을 물리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악령이 접근한 발판이 되는 죄를 회개하고 성령 충만을 위해서 간구해야 하며, 특히 찬양을 많이 불러 자신의 영에 힘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경배와 찬양으로 주님을 높이고 말씀을 묵상하여 분별력을 높이며, 예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을 물리쳐야 합니다. 적당한 운동으로 몸의 컨디션을 높이고 잠을 깊이 잘 수 있도록 잠들기 한 시간 전에 30분정도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잠에서 깨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기도하면서 경건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잠이 깨었는데도 불구하고 잠자리에서 미적거리거나 공상을 하면 악령에게 사로잡힐 위험이 더 커집니다. 마귀는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려고 하기 때문에 잠이 깨어 의식이 돌아오면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머리 속을 채워 잡다한 생각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몸과 영은 항상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돌봐야 합니다. 몸이 건강하려면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적당한 양의 운동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알맞은 양의 식사와 치우치지 않은 건강한 식습관이 있어야 하듯이 영의 일에도 일정한 시간의 기도와 말씀을 읽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며, 분별력을 기르기 위해서 영적 지도를 받아야 하며, 영이 강건해지기 위해서 방언기도를 많이 해야 하며, 깊은 묵상과 관상기도(말씀을 통해 이미지를 그리면서 하는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방언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묵상과 관상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 깊은 기도는 영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방언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는 우리 의지로 하는 기도의 차원을 넘어서 주님과 연합하여 기도하는 기도방법입니다.




평소에 육신과 영을 늘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은 날마다 최선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듯이 때로는 과로하게 되고 영적으로 탈진하거나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공동체에 속해서 서로 서로 도울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건강을 위해서 동호회에 가입해서 함께 좋아하는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듯이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 서로 비슷한 영적 성향을 가진 소그룹에 가입해서 영적 지도를 받고 주는 관계를 갖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이 글을 꼼꼼히 읽고나면 아마도 영의 흐름이나 범위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고 자신감도 생겼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영성 소그룹을 만들어보십시오. 그리고 함께 기도하면서 서로 영적 교류를 나누십시오. 서로 받은 은혜를 나누고 계시가 임하기를 간구한다면 머지않아 많은 영적 변화를 서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혼자 하는 것보다 연합할 때 주의 역사는 더 강하게 일어납니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가까운 분들과 함께 영성을 개발하고 은혜를 경험함으로써 더 나은 신앙과 고품격의 영적 삶을 일구어내기 소망합니다. 육신의 삶을 고급화하려고 노력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영적 삶의 질도 고급이 되어야 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바로 우리가 들어가야 할 높은 차원의 영적 삶의 지경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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