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자연적인 언어인 방언이 어떤 유익을 주는지 성경을 근거로 살펴 볼 때 대략 7가지가 있다.
1. 초신자의 믿음을 세워준다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러나 성령을 받기 전에는 그 믿음이 견고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따라서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믿음을 견고케 하신다. 방언은 성령받은 외적 표적이 되므로 마찬가지로 방언을 통해 성령받은 것을 알고 그 믿음이 견고케 될 수 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3,14)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행 10:45,46)
2. 영적으로 계발시켜준다
우리의 영적 생활에 여러 가지 유익을 준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방언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고 계발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고전 14:4)
“He who speaks in a tongue improves himself."(Revised Berkeley Version)
"So a person "speaking in tongues" helps himself grow spiritually.(Living Bible)
방언은 다른 신령한 은사로 들어가는 문과 같다. 방언은 방언통역, 예언, 환상, 꿈, 신유 등 신령한 은사로 통하는 활짝 열린 문이다. 따라서 방언을 많이 하면 다른 신령한 은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방언의 사용으로 우리의 영혼은 계발되고 주님과의 관계도 새롭고 활기있게 유지되는 것을 느낀다.
3. 우리 속사람을 강건케 한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엡 3:16)
성령은 방언을 통해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케 하신다. 여기서 속사람이란 우리의 영혼으로 하나님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우리가 하늘에서 온 언어를 사용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느낌이 우리의 영혼이 강건해짐과 같이 더욱 커진다. 따라서 방언만 많이 해도 우리의 영혼이 강건해지고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심지어 코감기에 걸렸을 때 방언을 30분이상 충만하게 하면 그 자리에게 막힌 코가 뚫리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케네스 해긴의 책 <예언의 말씀>에 의하면 고전 14:4의 “덕을 세운다”(edify)는 말씀의 의미가 일으켜 세우는 것(build up)을 뜻하는데 건전지를 충전시킨다고 할 때의 ‘충전시키다’라는 단어가 보다 더 원어에 가까운 번역이라고 한다. 방언을 하는 것은 영적으로 건전지를 충전시키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기도생활에서 방언기도를 많이 해야 하겠다.
4. 이성을 초월하여 기도할 수 있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 14:14,15)
방언은 내 영이 기도하는 것이다. 혀로 말하는데 영이 기도하는 것이 된다. 혀로 단순한 단음절어를 계속 말하는 것이 내 영이 별의별 기도를 할 있는 통로가 된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내 영은 내 이성이 다 알지 못하는 비밀을 말한다. 여기엔 어떤 신비의 차원이 있다. 모든 것을 완전하게 알겠다고 지나치게 초조해하지 말라. 우리는 TV나 비디오가 리모콘에 의해 몇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그 원리는 잘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리모콘을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법은 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방언을 통해 어떻게 일하시는지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방언에 의해 영으로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여 기도하는 법은 알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마음이 불안하여 갑자기 성령께 이끌려 방언을 했는데 대단히 위험한 사고로부터 보호하심을 얻을 때도 있다. 우리의 마음은 이성으로 깨닫는 내용밖에는 기도할 수 없지만 영은 우리의 사정을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여 알 수도 있다(고전 2:10,11).
5.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므로 능력있는 기도의 비결이 된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6,27)
가끔 우리의 이성으로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할지 모를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다. 우리가 방언을 할 때 성령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신다. 우리가 성령께 이끌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그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들으신다. 따라서 성령께 이끌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방언 기도는 능력있는 기도의 비결이 된다. 방언기도만 해도 악한 영의 결박을 끊고 능력을 얻을 수 있다. 힘써 방언기도를 많이 하여 영적인 능력을 갖자.
6. 마음의 기도로 기도할 수 없는 부분을 기도할 수 있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고전 14:14-17)
‘마음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말씀은 방언을 할 때 우리가 무슨 기도를 하는지 모른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언은 우리이 마음에는 무의미하다고 느낄 수 있다. 방언기도는 우리가 알아듣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람의 말로 기도할 뿐 아니라, 초자연적인 방언기도를 한다.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한다. 마음으로 감사하고, 방언으로 감사한다(위의 본문에서 축복은 감사와 동일한 의미이다). 영으로 찬양하고 방언으로 찬양한다. 방언으로 감사하고 방언으로 축복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마음의 기도로는 우리가 기도하고자 하는 것을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 감사할 때, 또는 너무 슬플 때 우리는 인간의 말로 우리의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때 우리는 방언으로 우리의 영과 마음의 깊은 심정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방언을 할 때 무슨 느낌을 주시든지 방언을 많이 하는 것이 좋다.
7. 어떤 상황에서도 무시로 기도할 수 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8)
방언기도는 우리의 이성이나 마음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성령 안에서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다. 설거지를 할 때, 손발을 씻을 때, 화장실에 있을 때, 걷거나 일을 할 때도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다. 시끄러워서 기도할 수 없을 때도 오히려 방언기도는 제한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방언은 우리가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방언의 은사를 받고 기도하면 우리는 몇 시간이고 기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방언을 많이 하면 기도의 분량이 많이 늘어난다. 영적으로 강건해진다. 성령의 은사도 많이 나타나고 능력을 가질 수 있다. 방언을 하면 내 영이 자란다. 몸에 성장이 있고, 인격도 성숙이 있듯이. 영도 성장이 필요하다. 우리 몸의 불의한 지체인 혀가 성령의 제어하심을 따를 때 몸과 마음의 다른 부분들도 어떻게 해서든지 영적인 조절 아래 지배됩니다. 우리의 모든 부분에 이르는 성령의 작용은 방언에 의하여 확고해지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내 영이 성령께 좀더 이끌리고 능력을 갖기 위해서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방언을 많이 말하도록 하자.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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