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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진) 敎會論 7

에반젤(복음) 2020. 2. 25. 13:09



 (김균진) 敎會論 7 


  7. 참 교회의 表識
A. 표지의 기능과 성격 교회의 표지는 교회의 내적 본질과 외적 특징과 참 교회의 기준을 제시하는 동시에 교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며, 이리하여 "교회의 행동과 교회의 질서의 전망들이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회의 통일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교회의 본질과 특징을 가르키는 동시에 분열된 교회에 대한 비판이요, 모든 피조물을 하나 되게 하는 행위 속에서 자신의 통일성을 추구해야 할 교회의 방향과 참 교회의 기준을 제시한다. 교회의 보편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 세계를 향하여 열려 있는 교회의 본질과 특징을 나타내는 동시에 자신 안에 폐쇄되어 있는 교회에 대한 비판이요, 온 세계를 향하여 자기를 열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야 할 교회의 미래와 참 교회의 기준을 제시한다. 교회의 거룩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된 교회의 본질과 특징을 나타내는 동시에 거룩하지 못한 교회에 대한 비판이요, 자기 자신과 세계를 거룩하게 해야 할 교회의 기준을 제시한다. 이런 기능들은 다음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 1) 교회의 존재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따라서 교회의 표지는 "그리스도론적 성격"을 가진다. 2) 예수는 이스라엘과 모든 피조물이 기다리던 메시야였고, 교회의 표지는 이 예수로부터 주어진다면, 교회의 표지는 "메시야적 성격"을 가진다. 3) 교회의 표지는 "희망의 성격"을 가진다. 그것은 교회가 하나의 물건처럼 언제나 소유할 수 있고 사도계승을 통하여 다음 세대의 교회에 물려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언제나 기다리고 희망해야 할 교회의 참 본질과 모습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B. 전통적 네 표지와 종교개혁의 두 표지 종교개혁 이전까지 교회의 참 표지로 교회는 통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을 생각해왔다. 그러나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네가지 표지를 법적으로 파악하였으며 이에 대한 가장 중요한 근거는 사도 계승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종교 개혁자들은 이 표지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네 가지 표지 가운데 "보편적"이란 말을 "그리스도적"이란 말로 대체한 것을 말고는 이 표지를 그대로 받아 들였다. 그러나 종교 개혁자들은 참 교회의 표지는 법적으로 해석되는 이 네 가지 표지에 있다기 보다는 복음과 성례전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개혁자들의 생각은 오늘날 루터교회 신학자들에 의하여 계승되고 있다. 초기 개혁교회의 신학은 이 두가지 외에도 교회 규율을 또하나의 표지로 제시하였다. 또 재세례파는 재산의 공유까지 포함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참교회의 표지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 네 가지 표지와 그 밖의 표지들은 참 교회가 무엇인지 완전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제한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통적인 네 가지 표지에도 진리의 요소가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고 뒤이은 개혁자들의 두 가지 표지도 진리의 요소가 있음을 주목하여 이 둘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관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C. 자유와 다양성과 실천 안에서의 통일성 교회의 통일성을 말해 주는 성구들은 고전 1:10-31, 고전 12장, 갈라디아서 3:28-29, 로마서 12:3-8, 사도행전 2:42, 사도행전 4:32, 요한복음 10:16, 18:20-26, 에베소서 4:2-6 등을 들 수 있다. 1) 신약성서는 교회의 하나 됨에 대하여 말하는 동시에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는 여러 공동체들에 대해서도 말한다. 따라서 이것은 성서가 말하는 통일성은 획일성이나 단일성이 아니라 "다양성 안에 있는 통일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 통일성은 교회의 통일된 조직이나 법질서나 사도계승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하나님, 한 그리스도, 한 성령, 한 세례, 한 성찬, 예수를 주라 고백하는 공통된 신앙고백, 하나님 나라를 향한 공통된 희망, 한 마음 된 가운데 함께 나누는 사랑, 세상을 위한 봉사에 있다. 2) 분열된 교회들의 현실적 통일성은 분열된 교회들이 그들을 분열시킨 원인들을 발견하여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면서 실제로 연합하여 공동의 과제를 수행함으로써 실현된다. 잘못된 생각과 태도를 배격하고 협동과 연합에 이르기 위해서는 교회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 기본 명제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모순과 대립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둘째, 모든 공동체는 한 믿음 안에서 이미 하나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의 근거 위에서 이제 그들은 서로 하나 될 수 있는 길 곧 통일성에로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셋째,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하여 각 교회가 진리라고 믿는 것이 희생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넷째, 공동의 새로운 진리를 찾고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모색함에 있어서 궁극적 기준은 각 교회의 전통이나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기쁜 소식이어야 한다. 3) 내용적인 면에서 교회의 통일성은 삼위일체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하나 됨에서 볼 수 있는데 이 통일성은 곧 교회의 통일성에 대한 모범이다. 4)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한 몸 됨 곧 통일성은 예수의 삶에서 구체화된다. 몰트만에 의하면 교회의 통일성은 그리스도 교회를 가르키는 "표식"일 뿐 아니라 분열된 세계 속에 있는 교회의 "고백의 징표"이다. 달리 말하면 교회의 통일성은 나누어진 것을 하나로 결합해야 할 교회의 사명을 가르킨다. D. 당파성 안에 있는 普遍性 1) 보편성이란 용어는 6가지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 왔다. 그것은 본래의 교회론적 의미의 보편성, 논쟁적, 교의학적 의미의 보편성, 공간적 의미의 보편성, 문화-사회학적 의미의 보편성, 수적 의미의 보편성, 시간적 의미의 보편성을 가르킨다. 이 중에서 교회론적 보편성은 성서적 근거를 갖는다. 그러나 나머지의 보편성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2) 그럼 보편성은 어디 있는가 ? 교회의 보편성을 보장하여 주는 것을 무엇인가 ? 첫째, 보편성은 예수 그리스도에 있다. "교회의 보편성은 예수 그리스도, 모든 권세의 주요 만유의 주의 보편성이다." 또한 이것은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공간적 크기, 사회-문화적 다양성, 공동체의 수와 교인의 수의 크기, 시간적 연속성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수행해야 할 종말론적 사명과 그 미래를 가르킨다. 3) 교회의 보편성은 기독교가 국가종교나 세계의 지배 종교가 됨으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부적 관심을 넘어서는 교회의 보편적 관심에 있다. 그것은 피조물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의 보편성에 있다. 4) 교회의 보편성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고 그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부분적 시작이다. 따라서 교회의 보편성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부분적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어질 때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기존의 세계질서 틀 안에서 기독교적 세계 국가나 하나의 세계 사회를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의 보편성을 실현하려는 제국주의적 환상을 버려야 할 것이다. 사 40:4-5,눅 1:51-53, 고전 1:27-28 등을 보면 보편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낮은 자들, 고통 속에 있는 자들을 믿음 안에서 일으켜 세움으로서 시작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함으로서 자기의 보편성을 실현해야 할 교회도 이들의 편에 설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당파적일 수 밖에 없다. 교회의 보편성은 이 당파성에 의해서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의 삶 속에 분명히 나타난다. 그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셨다. E.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교회의 거룩성 교회는 물론 교회의 신자들도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교회"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근거에서인가? 달리 말하면 교회는 어떤 의미에서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 1) 교회가 거룩하다는 것은 교회에 속한 신자들의 도덕적 삶이나 도덕적 행위에 있지 않다.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로부터 결과되는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성화의 주체는 하나님이다. 칭의는 물론 성화도 하나님의 행위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1. 인간의 죄를 예수의 몸 안에서 심판하고 2. 용서를 선언하기 때문에 교회는 거룩하다 이 교회는 세계와 죄로부터 분리된 하나님의 "성소"이며 "성전"이다. 2) 신약성서는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이 되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과제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거룩한 교회"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구약성서와는 달리 신약성서는 어떤 특정한 사물들의 거룩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특정한 공간이나 기물이나 행사가 거룩한 속성을 그 자체 안에 지니고 있다는 뜻에서 교회가 거룩하다고 말 할 수는 없다 . "대물적 거룩"을 말한 구약성서와는 달리 신약성서는 "인격적 거룩"을 말하고 있다. 3) 그러나 교회는 "성도들의 공동체"인 동시에 "죄인들의 공동체"이다. 그리고 교회는 "죄인들의 공동체"인 동시에 "성도들의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죄성으로 흐려지지않도록 항상 다시금 회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회의 가장 큰 적은 교회 밖에 있다기 보다는 교회 안에 있다. 그것은 자신의 무신성과 불신앙이다. 이 적을 이기는 방법이 회개이다. 이것은 언제나 개혁되어야 할 교회를 뜻하는 것이다. 교회의 거룩성은 교회에게 주어진 , 교회가 언제나 소유하고 있는 속성이 아니라, 교회 자신의 회개와 개혁을 통하여 교회가 쟁취해야 할 종말론적 목적이요 과제이다. 4) 거룩한 동시에 죄된 교회가 참으로 "거룩한 교회"가 될 수있는 길은 한 마디로 거룩한 하나님을 닮는 데에 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고 이 거룩한 하나님을 닮을 때에 교회는 거룩하게 될 것이다. 교회가 거룩하게 되는 길은 하나님의 거룩의 속성을 따라 교회도 1. 이 세계로부터 구분되는 데에 거룩성이 있다. 2. 그러나 세계로부터 교회의 구분은 세계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구분된 존재로서 세계와 자기를 결합시키고 이 세계의 고난받는 피조물들과 연대함으로써 자기를 거룩하게 해야 한다. 3. 또한 교회가 거룩하게 되는 길은 예수를 따름에 있다. 그것은 자기포기요 하나님의 고난받는 피조물들을 위해서 자기를 포기하는 교회를 말한다. "청빈한 교회", "청빈한 사람들의 교회"가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5) 세계 속에서 교회가 "거룩한 교회"로 변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정치적 책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는 구조적인 악을 예방하는 차원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정치적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본훼퍼와 정치 신학은 이것을 간파하였다. F. 사도의 뒤를 따르는 교회의 사도성 교회는 어떤 의미에서 사도적인가 ? 사도적 교회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 1) 사도적 교회란 그의 가르침과 선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목격자들인 사도들의 증언에 기초하는 교회를 말한다. 여기서 사도성은 교회의 "사도적 근거"와 "사도적 연속성"과 "사도적 정당성"을 가르킨다. 2) 전통적으로 사도계승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던 사도성은 타당하지 못하다. 참 "사도적 교회"는 사도들에게 주어진 사명과 과제를 수행하는 교회를 말한다. 그러므로 사도의 뒤를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부르심과 파송을 받은 교회가 사도적 교회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이천 년 전의 교회의 형태와 사고방식으로 돌아가서 그것을 반복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도들의 뒤를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그리스도의 파송에 복종하느냐 하지않는냐가 중요한 것이다. 3) 온 세계와 인류를 향하여 파송된 사도들은 이 세계의 영광스러운 존재들로 나타나지 않고 이 세계에 대하여 "죽은 자들"처럼 나타났다. 그들은 주님의 종의 형태를 취한 것이다. 교회가 참으로 사도들에게서 근거한 "사도적 교회"라면 교회는 종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4) 사도들은 온 세계와 인류를 위해 파송 되었다. 그러므로 사도적 교회는 온 세계와 인류를 향하여 파송 되는 교회요, 다른 교회들은 물론 다른 교파들과 함께 협동하여 세계를 섬기는 교회이다. G. 하나님 나라의 表識 참 교회의 표지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의 표징"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표징으로 나타나는 그곳에 참 교회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표징을 참 교회의 표지로 볼 때 우리는 이것이 예수의 멧세지에 상응하고 메시야적 전통 속에서 교회를 파악하게 하며 구교와 신교의 일치점을 제공하는 장점을 가진다. 동시에 이것은 복음의 선포에 관심을 가지는 종교개혁정신과 상응하며 이 시대의 문제를 극복하고 미래의 보다 나은 세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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