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해명하는 교회의 삶과 미래를 위하여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교
회의 근거가 무엇인가에 따라 교회의 존재와 삶과 미래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본
(Bonn) 대학교의 자우터(G. Sauter)교수에 의하면, "교회가 올바른 기초(Fundament)에 서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는 교회의 존폐를 결정한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A. 말씀과 성례전
아우스부르크의 신앙고백에 의하면 교회는 "그 속에서 복음이 순수하게 설교되며 성례전
이 바르게 집행되는 성도의 사귐이다" 종교개혁자들에 의하면 교회의 권위는 베드로 이후의
사도적 전승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순수하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바르게 집행되는 교회
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교회의 본질은 말씀에 있으며, 교회의 사명은 말씀을 선포하는데 있다. 성례전과 함께 말씀
은 교회의 존재와 삶을 형성하는 기본 요소이다. 교회는 그가 선포한 말씀이 실현된 미래를
기다리고 희망하면서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서 안에 "기록된 말씀"과 설교자의 "선
포된 말씀"속에서 인간을 만나고 구원의 약속을 주시며 인간을 변화시킨다. 그는 말씀을 통
하여 인간와 이 세상의 거짓과 죄악을 드러내고 그의 백성을 불러 모으며 새로운 구원의 역
사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초는 성례전을 동반하는 말씀인 것이다.
B.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구원 약속은 그의 말씀이 선포됨으로써 일어난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움직일 수 없으며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예수 그
리스도의 사건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현재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초는
성령의 역사 내지 활동에 있다. 그래서 사도신경에서도 성령을 고백한 다음에 바로 교회에
대하여 고백한다. 교회는 성령의 전(Templum Spiritus Sancti, 고잔6:19)이라 말할 수 있으
며, 창조자의 영이신 "성령의 피조물"인 것이다. 성령이 각 사람을 모음으로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칼 바르트에 의하면 교회는 분명히 사람들로 구성된 "인간적이며 땅 위에 있는 역사적 구
조물(Gebilide)이다. 이 구조물의 역사에 있어서 처음부터 사람의 행위가 작용하였고 또 언
제나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성령을 통하여
교회 안에서" 활동하심으로써 구성된 것이다. 성령께서 활동하심으로써 공동체, 교회가 생성
하고 존재하는 것이다. 성령이 사람들과 그들의 인간적 사역으로 거룩하게 하시며, 그들과
그들의 사역을 참 교회로 세우시기 때문에 교회는 존속한다.
C. 인간의 믿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응답하는 인간의 믿음도 교회의 기초를 형성하는 한 요소라고 말
할 수 있다. 모든 피조물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각 사람의 믿음 속에서 인식되고 현재화된다. 교회는 믿음 있는 사람
들의 모임인 것이다. 기독교의 믿음 그 자체에 있어 사귐이다. 죄인은 고독하며, 그래서 그
는 하나님 없이 이웃 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임을 뜻한다. 따
라서 믿음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하여 자기를 열게 한다. 믿음은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과 이
웃과 함께 있음이요 삶을 함께 나눔인 것이다.
기독교의 믿음은 하나님과 이웃과 함께 있음, 함게 나눔, 곧 공동체적인 삶을 뜻할 뿐 아니
라 공동체의 삶으로부터 유래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공동체가 선포하는 말씀을 들음으
로써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교회 공동체에 속함으로써 훈련을 받고 성장한다. 이러한 의미
에서 교회는 공동체로부터 유래하며,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향하여 삶을 함
께 나누는 신도들의 믿음에 기초한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 없는 개인의 믿음을 우리는 생각할 수 없다.
개인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말마암아 생성된다. 이러한 개인의 신앙적
결단과 믿음은 말씀과 성령의 역사와 함께 교회의 기초를 형성한다. 그러나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없는 개인의 믿음이란 불가능하기에, 교회의 보다 원초적인 기초는 개인의 결단과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교회는 분명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지만 그들의 믿음이 교회는 형
성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여기 땅 위에서 그의 백
성을 모으시고 세상 첫날부터 끝날까지 그들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D.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신약의 그리스도의 계시는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시의 터전 위에 일어난다. 메시
야의 오심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되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먼저 이스라엘에게 주어
졌고, 먼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인 예수에게서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
성의 선택,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와 약속도 교회의 기초에 속하는 것이다. 이스라
엘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계약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우리는 생각할 수 없으며 교회의 존재를 생각할 수 없다.
크라우스(H.-J. Kraus) 교수에 의하면 신약성서의 기자들이 믿는 그리스도는 “구약성서에
서 기다려졌고 약속된 메시야,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가난한 자들, 박해받는 자
들, 억압받는 자들, 고난당하는 자들의 구원자, 정의와 평화의 왕”이다. 그리스도는 구약성
서의 희망의 지평속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므로 구약성서의 희망의 지평은 기독교 교회의 희
망의 지평을 형성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희망의 지평속에서 태어나 활동하였으며, 그의
교회는 이 희망을 함께 나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
의 약속도 교회의 기초 내지 터전을 형성한다.
팔레스틴에서 시작한 교회는 그 땅에서 살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과의 역사적 연관속에서 형
성되었다. 교회의 주님이신 예수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의 관계속에서 활동하였다. 따라
서 교회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의 연관속에서 형성되었다.
E. 궁극적 기초: 예수 그리스도
지금까지 기술된 네 가지 기초는 교회의 “궁극적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합된
다. 교회의 가장 궁극적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교회는 먼저 예언자들의 말씀에
기초한다. 그러나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그러므로 교회의
궁극적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모든 피조물을 위한 그의 죽음와 부활을 통하여 유대인
과 이방인의 담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새로운 계약의 백성 곧 교회의 기초가 세워진 것이다.
교회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의 역사”와의 관련 속에서, 예수 그리스
도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각 사람의 신앙적 결단과 믿음의 기초 위에
세워진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약속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오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
며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때문에 형성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궁극적 기초는 예수 그리스
도이다.
옛 계약으로부터 교회의 명칭을 수용함에 있어 헬레니즘의 영향은 크지 않았지만, 헬레니즘
의 사회학적 표상들이 수용되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헬레니즘의 사회학적 표상들은 성찬
식의 경험을 토대로 사도 바울에 의하여 크게 수정되었다.
교회를 가리키는 게르만 언어 계통의 단어들은(영어:church, 독일어:Kirche, 스웨덴어:kyrka)
그리스어 kyriakos 곧 “주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단어로부터 유래한다. 그러므로
게르만 언어 계통들의 단어들에 있어서 교회는 주님께 속한 사람들의 공동체, 주님의 집, 주
님의 공동체를 뜻한다. 이에 비하여 라틴어 계통의 단어들은(라틴어:ecclesia, 스페인
어:eglesia, 불어:eglise, 이탈리아어:chiesa) 신약성서가 사용하는 ecclesia로부터 유래한다. 교
회를 나타내는 명칭들의 근원이 기독교 공동체가 생성되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
만 교회를 나타내는 기독교 명칭들은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하여 특수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구약성서로부터 수용된 교회의 명칭들은 기독교 공동체의 삶을 통하
여 기독교적 의미를 얻었다. 결국 “교회는 공동체로서의 실존하는 그리스도인” 것이다. 교
회의 가장 궁극적인 기초는 십자가에 달려 죽었고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이다.
F. 그리스도는 어떤 의미에서 교회의 기초인가?
역사의 예수가 교회를 세웠으며 이러한 뜻에서 역사의 예수가 교회의 기초라고 보는 견해는
마태복음 16:18-19를 성서적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신학자들이 마
태복음 16:18-19의 텍스트가 예수 자신의 말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주장은 다음과 같
은 네가지 유형으로 분류된ㄷ.
1)통계학적 논증- 복음서 전체를 고려할 때 마태복음 16,18장에서만 말하고 있는 교회(eccle
냠)의 두 번이라는 수는 통계학적으로 매우 적은 수이다. 따라서 교회를 세우라는 예수의
명령은 예수 자신의 말씀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2)종말론적 논증-복음서의 예수는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였다. 따라서 예수는 교
회를 형성하여 그것을 존속케 할 의도를 보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16장
의 ecclesia는 예수가 부활한 다음에 형성된 최초의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며 역사적 예수의
자기의식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최초의 공동체의 교회 개념은 역사의 예수와
직접 결부되지 않는다.
3)교회사적 논증-초대교회 역사에 있어서 베드로는 마태복음 16:18-19가 시사하는 바와 같
은 지도자의 위치를 갖지 못하였다. 이방선교와 교회형성을 위하여 결정적으로 공헌한 인물
은 베드로가 아니라 바울이다.
4)심리학적 논증-베드로는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사람이었다. 그의 성격은 충동적이었으
며, 그이 말과 행동은 일치하지 않았다. 그는 목숨을 걸고 예수를 따르겠다는 맹세도 하였지
만,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할 수 있는 불안한 심리의 소유자였다. 이런 베드로의 모습은 마
태복음 16:18-19와 조화되지 않는다.
5)가타- 이외에도 마 16:18-19의 본문이 예수 자신의 말씀으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 있다.
즉 최초의 공동체는 단일한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것이었다.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유대인
출신의 공동체가 있는가 하면, 바울이 세운 이방인 출신의 공동체도 있었다. 이 두 공동체가
대립과 긴장관계에 있었음을 상기해 볼 때, 마태복음은 유대인 출신의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기록된 복음이라 말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마태복음 16:18-19는 바울계열의 공동체와 긴장
및 대립관계에 있었던 베드로 계열의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그의 법통(法統)과 정
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관심에서 첨부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사실 복음서에는 예수가 교회
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다.
사실 예수의 관심사는 교회는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다. 예수
는 그의 활동에 있어서의 범위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으로 제한한다. 복음서의 예수는 이스
라엘 민족이 먼저 구원을 받은 다음,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전하여 주는 하나님의 말
씀을 들은 다음에 회개할 것이라는 당시 유대 지도자들의 일반화된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세계의 모든 민족을 포괄하는 기구로서의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의
도를 복음서의 예수에게서 직접 발견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예수를 교회의 설립자로 볼 것
이 아니라 "교회의 기초(Grund)"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 어떤 의미에서 예수가 교회의 기초라고 말할 수 있는가? 교회의 기초는 예수의 사건
전체와 관련하여 말할 수 있다. 한스 큉 교수에 의하면 "교회는 그의 기초를 부활 이전의
예수의 의도와 명령에 가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건 전체에 가지고 있다."
1)복음서에 의하면 예수의 활동속에서 새로운 메시아적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예수
는 먼저 이스라엘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한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기초를
발견한다. 예수가 주장한 하나님의 나라는 사회적이며 공동체적인 것이며 온 우주적인 것이
다. 예수는 소수의 사람으로 구성된 종교집단(宗敎集團)으로서의 교회를 세우고자 하지 않았
다. 그는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자 하며 그 속에 하나님의 종말론적 나라를 세우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교회의 기초는 예수의 특별한 명령이나 말씀에 있지 않고, 온 이스라엘을 포괄
하는 "종말론적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예수의 의지"에 있다.
2)온 이스라엘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예수의 활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자들의 부르심"이었다. 따라서 교회의 더 깊은 기초는 예수의 부르심과 제자들의 뒤따름
(Nachfolge)에 있다. 그리스도는 부르고 제자들은 따른다. 교회의 궁극적 기초는 여기에 있
는 것이다.
3)예수의 죽음과 함께 종말론적 공동체가 깨져버린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죽음과 함께 종
말론적 공동체는 새롭게 태어난다. 예수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
이다. 예수의 죽음은 그의 부활을 통하여 "죽음의 죽음", 옛 아담의 죽음과 새 아담의 탄생
으로 증명된다. 교회는 기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정초되며 부활의 능력
속에서 실현된다. 그러므로 부활의 능력속에서 실현되는 교회는 "십자가의 공동체", "십자가
에 달린 예수를 통하여 정초된 공동체"이다. 교회는 오순절에 정초된 것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과 함께 정초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그 자
신을 십자가로부터의 교회로, 십자가 아래 있는 교회로, 그리고 십자가의 그림자속에서 살아
가는 사람들과의 연대 속에 있는 교회로 이해한다. 교회는 십자가에 달린 그의 고난의 피속
에서 교회가 정초된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존재를 규정한다.
G. 1)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라는 명제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교회이
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즉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하며 그에게서(von ihm
her) 온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가진 그의 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느 인종이나 민
족이나 국가나 국가의 통치자에게 속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에게 속한다.
2)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라는 명제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상응해야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의 선포, 성례전, 친교, 교육, 봉사 등 모든
활동에 있어서 교회는 그리스도와 일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회는 그분의 몸이요 그에게
속하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야 한다. 즉 교회도 성육
신한 말씀이 되어야 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
3)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라는 명제는, 교회는 그리스도를 지향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교회는 이 세상의 권력, 명예, 부를 얻고자 해서는 안되며, 민족교회, 국가교회가 되
어 이 세계의 영광과 힘을 얻고자 하는 욕망도 버려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희망하였던
것을 희망해야 한다. 즉,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와 평화 속에서 함께 사는 하
나님의 새로운 세계를 기다리고 희망해야 한다. 즉 "새하늘과 새땅"을 지향해야 한다.
4)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라는 명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主)이시며, 그러므
로 그리스도만이 교회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생각이나 계획이 교회를 다
스리고 유도해서는 안된다. 오직 그리스도의 뜻이 교회를 다스려야 하며, "그리스도의 관심"
이 교회의 모든 일을 결정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적 관심에 이끌릴 때, 교회는 그의 순수성
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교회의 역사를 회고해보면 실제로 교회가 세속의 세력들과 야
합하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고 인간의 말을 선포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뒤를 따
르지 않고 인간의 말을 선포하게 된다.
교회는 십자가에 달려 죽었고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기초라고 말한다. 이 고백은
교회가 그분의 관심에 따라 인도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의 관심이 곧 교회의
관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5)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라는 명제는, 교회의 삶과 실천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비판
적으로 검증되어야 함을 뜻한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교회의 진
위성을 검증하고 판단하는 규범이다. 교회는 성도들의 사귐인 동시에 죄인들의 사귐이다. 그
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곳인 동시에 언제나 세상적인 유혹과 위협을 받는다.
교회가 지향해야 할 참 교회의 모습은 초대교회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있다.
하나님을 대리하는 동시에 이 세상의 연약한 자들을 대리하는 예수의 삶에서 우리는 이상적
인 교회를 찾아야 하며, 그분의 삶을 우리 자신의 존재를 검증하고 비판하고 수정하는 규범
내지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6)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한 유대인이었다. 이 예수가 교회의 기초이며 출발점이라
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은 나사렛 예수와 마찬가지로 교회도 구약의 메시야적 기다림과
희망의 지평 속에서 파악되어야 함을 뜻한다. 교회는 메사야적 기다림과 희망의 지평속에서
답변되어야 하는 것이다. 메시야적 지평에서 볼 때,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능력인 "
성령의 피조물"이요 종말에 올 하나님 나라의 메시야적 현실이다. 교회는 새로운 피조물들
의 세계의 나타남이요, 미래적인 것 곧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며 시작이다. 따라서 교회는 하
나님의 메시야적 나라를 선포하고 앞당겨 와야 한다. 교회는 구약성서와 예수의 삶을 통하
여 보여주시는 구원을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이 구약 성서와 예수를 통하여 보여주는 구원
을 이루는 것이 예수의 목적이었다. 교회의 존재와 삶과 미래는 철저히 존재를 규정하며, 그
분의 삶이 교회의 삶을 규정하며, 그분의 관심이 교회 자신의 관심을 규정하며, 그분의 목적
이 교회의 목적을 규정하며, 그 분의 미래가 교회의 미래를 규정한다.
출처 :조석장 글쓴이 : 조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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