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표지(The Marks of the Church)
옮겨온글입니다
‘교회’라고 할 때에 우리는 종종 ‘교회당’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예배 공동체요, 신앙고백 공동체입니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특성상 눈에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실제로는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의 모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은 ‘교회’라는 이름을 스스로 갖고 있으니 다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다고 해서 무조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라는 간판, 교회적인 조직이 있다고 해서 교회가 아닙니다. 목사, 장로, 집사와 같은 직분이 있고, 예배라는 형식이 있다고 해서 다 교회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을 갖고 있을 때에 비로소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오늘날 ‘교회’라는 명칭을 어떤 단체들에서 사용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몰몬교도 자신들을 ‘교회’라고 합니다. 통일교도 ‘가정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합니다. 박태선의 천부교도 ‘교회’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신천지와 같은 사람들도 스스로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교회’라고 부를 수 없음은 너무나 상식입니다. 이런 점을 볼 때에 ‘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교회’(敎會)라는 한자어 자체가 가르칠 敎, 모일 會이기 때문에 꼭 기독교회만이 이 용어를 써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단체든 간에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이 있으면 충분히 그 용어를 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도 ‘교회’라고 하고, 그 외의 종교적 특성을 갖고 있는 단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용어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라는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이러한 오해의 가능성 때문에 교회라는 것을 분명하게 ‘표’하는 것을 가리켜서 ‘교회의 표지’(The Marks of the Church)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기독교 강요』 제4권 1장 9절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선포되고,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가 지켜지는 곳에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한다.”
‘교회의 표지’는 전통적으로 다음의 3가지를 말합니다.
1. 말씀의 바른 선포
2. 성례의 신실한 시행
3. 권징의 정당한 집행
우리 한길교회는 교회의 3대 표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입니다.
교회의 표지 (1) - 말씀의 바른 선포(The true preaching of the Word)
말씀의 바른 선포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라면 그곳이 곧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느냐 아니냐가 바로 참 교회를 구분하는 기준이 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이런 생각이 드실 수 있습니다. “설교가 없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다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거짓 교회는 없는 것 같은데요?”라고 말입니다. 네 맞습니다. 설교는 다 있습니다. 천주교도 심지어 이단도 다 설교가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설교가 있느냐가 표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덧붙이고 있는 것이 바로 ‘바른 선포’입니다. ‘설교’라는 요소가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연 무엇을 설교하느냐? 하는 그 ‘내용’이 중요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 즉 성경 말씀의 본래적 뜻을 왜곡시키지 않고 바르게 설교하느냐? 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예컨대, 성경 말씀의 본의(本意)는 전하지 않고 목사의 개인적인 간증이나 베스트셀러와 신문, 잡지에 나오는 예화로 가득한 설교는 교회의 표지인 ‘말씀의 바른 선포’에 어긋납니다. 그런 잘못된 설교가 있는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를 왜곡시켜서 잘못된 내용을 전하는 것은 설교라고 할 수 없으므로 그곳에는 교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설교’라는 ‘행위’가 있는 곳이라고 해서 참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설교하느냐 하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주신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나아가는 공동체인데, 말씀의 바른 선포가 없다면, 그 교회는 교회답지 못한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당연히 참 교회가 아니게 됩니다.
‘말씀의 바른 선포’를 위해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리에 근거하여 전체 성경(tota Scriptura)을 잘 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한길교회의 소개문에 보면 말씀을 맡은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고도 분명하게, 깊이 그리고 풍성하게 선포해야 한다(딤전4:13; 딤후4:2)고 되어 있습니다. 목사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전체 성경(tota Scriptura)의 원리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모든 뜻을 남김없이 선포해야 한다(행20:27)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한길교회는 ‘말씀의 바른 선포’라는 교회의 표지를 잘 드러내고자 주일오전에는 본문 중심의 연속 본문 강해를 하고, 오후에는 교리교육을 합니다.
교회의 표지 (2) - 성례의 바른 시행 (The right administration of the sacraments)
교회의 표지, 즉 교회의 교회됨을 드러냄에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두 번째의 것은 성례(sacraments)입니다. 이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으로서 오직 2가지가 있으니 세례와 성찬입니다(마28:19; 27:17-29).
그런데 단순히 이 두 가지 예식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바르게’ 시행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에는 반드시 세례와 성찬이 있어야 하는데 이 두 가지는 아무렇게나 시행되어서는 안되고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의도와 목적에 맞게 바르게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바르게 시행되는 곳에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와 성찬을 시행하지 않거나 시행하더라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거나 세례나 성찬 이외의 것을 성례로 여기는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의 약속의 표(表)sign와 인(印)seal입니다(롬4:11; cf. 창17:7,10). 다시 말해 성례는 우리의 약한 믿음을 받쳐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그의 선하신 뜻의 약속을 우리의 양심에 인치시는seal 외형적인 표outward sign입니다. 이 성례는 성례라는 행위 자체가 어떤 효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성례를 집례하는 분의 특별한 신분이나 독특한 인격과 지위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성찬에 참여하는 이의 믿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성례에 참여할 때에 그 성례에 속한 모든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이 없이 성례에 참여할 때에는 그 성례로부터 아무런 은혜도 내려지지 않습니다.
세례란 믿음이 없어 하나님과 상관없이 죄인의 삶을 살던 교회 밖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교회 공동체 안으로 가입하게 되는 입문의 표시the sign of the initiation입니다. 그러므로 이 의식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바른 신앙고백이 요구됩니다. 아무에게나 세례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혹여나 세례를 베풀면서 아무에게나 베풀거나, 세례의 바른 의미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른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성찬이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주는 참 의미를 바르게 알고 신앙고백하여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우리를 위한 영적 양식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예식입니다. 그래서 이 성찬은 아무에게나 베풀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7-30절에서 가르치고 있는대로 자기를 스스로 살피고 주의 몸을 분별할 줄 아는 자에게 베풀어져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베풀어 지는 것으로서, 세례를 제대로 시행한다면 세례 받은 자에게 그냥 베풀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세례받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세례가 진정으로 의미있는지를 확인해야 하고, 또한 의미있는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잘 살펴서 행해야 합니다. 혹여나 성찬이라는 예식을 행하기는 하지만 성찬의 참 의미인 교회의 한 몸됨이라는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든지, 아무에게나 성찬을 시행한다면 그것은 바른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 한길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세례와 성찬만을 교회의 성례로 여기고, 세례와 성찬을 정직하게 시행합니다. 특히 성인세례의 경우 분명한 신앙고백을 하며, 성찬의 경우 개인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살펴서 성찬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표지 (3) - 권징의 정당한 집행 (The faithful exercise of discipline)
교회의 교회됨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쐐기를 박는 요소는 ‘권징’(勸懲)입니다. ‘권징’이란 권할 권(勸)과 징계할 징(徵)이 합쳐진 말입니다. 이 말만 가지고 설명하면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권면하고 때로는 징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죄를 교정하고 징벌하는 것입니다. 권징은 때로 ‘치리’(治理)라고도 표현합니다. 사실 ‘치리’라는 표현이 더 넓은 개념으로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권징(혹은 치리)은 한국교회에 매우 낯선 것이긴 하지만 선포된 말씀이 실질적으로 교회 안에서 효력을 발휘함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교회가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에는 그 말씀대로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살라고 전하기는 했는데, 그렇게 살던지 말던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면 말씀선포는 의미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선포된 말씀을 단순히 전하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그 말씀이 성도들의 실제적 삶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지를 감독하고 관리하는 것을 ‘권징’(혹은 치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감독과 관리’는 강압적이고 고압적인 의미가 아니라 목회적인 돌봄이라는 측면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권징’(혹은 치리)의 일은 교회 안의 치리회(治理會)인 당회(堂會)가 그 역할을 감당합니다. 당회는 신자들의 신앙상태를 점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격려할 것은 격려하되 책망할 것은 책망하여 말씀과 일치하는 신앙과 생활이 되도록 이끌어가는 일을 하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권징’이라고 합니다.
권징을 해야 하는 이유는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합니다. 마태복음 18장 15-20절과 고린도전서 5장 1-8절과 고린도후서 2장 5-11절 등의 말씀에서 교회의 권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권징이 바르게 시행되고 있느냐가 바로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분하는 기준이 됩니다. 설교가 선포되고 있지만 정작 그에 대한 확인이 없는 교회는 권징이 없는 교회로서 참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 심각한 범죄가 있어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고 내버려두고 있는 교회는 권징이 없는 교회로서 교회가 아닙니다. 예컨대, 성도가 주일을 지키지 않고 예배의 참석을 게을리하고, 교회의 여러 가지 일에 참여하는 것을 기피하는데도 권면하거나 징계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아닙니다. 직분자의 아내나 자녀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데도 그냥 내버려 둔다면 교회가 아닙니다. 성도가 불법적인 결혼과 이혼을 일삼는데도 교회가 아무런 권면과 징계를 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아닙니다. 성도가 불법적인 상행위를 하고, 세상에 대하여서 떳떳하지 못한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권면과 징계를 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아닙니다. 성도가 해서는 안되는 일을 했는데도 내버려 둔다면 교회가 아닙니다. 성도가 세례받을 때에 서약했던 대로 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관심도 없는 교회라면 교회가 아닙니다. 성도의 신앙에 대한 책임을 그 개인에게 맡긴다면 교회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 한길교회(http://cafe.daum.net/hgpch)는 성도의 신앙생활을 개인이 알아서 할 일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가르치고 섬기기 위해 부름받은 직분자(목사와 장로)가 성도들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권면하고 가르치는 교회입니다. 신자의 가정에 아이가 출생하게 되면 적절한 시기에 유아세례를 받도록 하고, 그 아이를 가정에서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잘 가르치도록 권면하는 교회입니다. 성도의 예배 생활과 신앙고백을 살피는 교회입니다. 성도의 결혼과 가정생활을 지도하고 살피는 교회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듯, 교회가 성도를 돌보는 교회입니다.
출처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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