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의 교회사적 특성.
(1) 영국에 휠리암과 메리의 등극으로 종교자유(Tolerance)가 허용되고, 종교와 정치의 투쟁은 일단락이 된다. 개신교 신앙영역과 구교의 영역이 확정되고, 교파주의가 확립이 되었다.
(2) 제 17세개의 종교 전쟁이 끝나고 정통주의(Confessionalism)가 퇴조하자, 즉시 인간사에서 이성의 활용으로 합리성을 추구하게 되고, 또 한편 인간의 경험을 중심으로한 주관 적이며, 개인적인 내면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일어났다. 정치적으로는 절대군주권이 약 화되고 시민사회의 형성, 경제적으로는 근대산업사회와 초기 자분주의의 발달, 사상적 으로는 계몽철학이 나타났다.
(3) 신학적으로는 정통시대-알미니안주의-계몽신학(Enlighten ment theology)으로 진전하였다. 합리적 경향은 합리주의 신학을 낳고 극단적으로는 이신론(자연신론Deism), 무신론에 이르고, 경험적 경향은 좋은 면에서 경건주의와 웨슬리의 때 부흥운동(Evangelical movement)을 낳게 하였다.
A . 독일 경건주의(German Pietism)
1. 제 18세기 초 독일 경건주의 성격.
(1) 경건주의 운동은 제 17세기 정통주의 신학과 종교생활에 대한 반동이다.
(a)독일 지방교회의 속파,
(b)형식적인 신앙생활,
(c)교리적 경화에 대한 반발이다.
그러므로 경건주의 운동의 기본 요강은
(a)경건 생활(praxis pietatis)
(b)종교적 개인주의(personal religion)로서 개인의 종교적 경험을 심화시키려 하였다.
(2) 실제 행동 목표로서 세상과 세상의 오락(춤, 카드놀이, 극장, 세속서적)을 멀리하는 실제 적 금욕주의(practical asceticism)를 실천하며, 경건 생활을 힘쓰고 주의 재림을 기다려 절제생활을 하도록 하였다.
(3) 특히 독일 경건주의는 하나의 교파를 형성하지 않고, 루터파 교회 내에서 정통신앙을 유지하면서 하나의 신앙운동으로 그치게 되었다. 형식적인 기독교인들 가운데서 소집회(召集會, Conventicle), "중생“의 경험을 가진 신자들만의 모임을 가졌다.
(예컨데, 구역예배, 경건회, 성경연구회, 특별집회등)
2. 스페너(philip Jaclb Spener, 1635-1706)의 경건주의 강령.
(1) 독일 경건주의 운동의 시발자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목회하는 중에 교회개혁에 힘을 기울이고, 그 방안으로 진실한 교인들로 구성된 “경건회” (Collegia pistatis)를 열어 말씀을 가르치고 실제적 신앙 생활을 지도하였다. 최후에는 베를린에서 감독목사(provost) 로서 일하였다.
(2) 그는 독일의 화평주의자 아른트(Arndt)의 “진정한 기독교” (Ture Christianfty, 1605-1609)를 읽고 감명을 받았으며 : 영국 청교도들의 저작중에서 루이스 베일리(Lewis
Bayly ?-1631)의 “경건 연숩”(practice of pietie, 제3판, 1613)백스터의 “자기부정론”
(Trestise on Self-denial, 1659)등을 읽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
1675년에 경건주의 운동을 일으키게 되는 획기적 소논문 : “경건한 열망(pia desideria / pious Longings)을 출판하여 독일교회의 조용한 개혁을 주도하였다.
(3) “경건한 열망”에서 제창한 6個 항목은 다음과 같다.
(a)하나님의 말씀 연구와 해석, 공중예배도 말씀중심으로 하고, 개인적으로 가정단위로 성경을 많이 읽게 할 것.
(b)만인의 영적 제사장 직분의 활용.
평신도 각자의 신앙생활을 강조하고 , “상호 영적 치료”(mutual cure of souls)를 실행 하도록 할 것.
(c)기독교는 실천의 종교(특히 이웃에 대한 사랑)라는 것을 끊임없이 가르칠 것.
(d)종교적 분쟁을 하지 말 것. 어쩔수 없을 경우에는 사랑으로만 할 것.
(e)목회자 야성방법을 개혁하며, 교리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진리가 영혼속에 베어 들게 할 것.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타올러의 저작들과 “독일신학”등의 경건서 적을 읽게 할 것.
(f)설교는 학식자랑과 웅변보다 교훈적일 것.
3. 독일 경건주의의 세 파.
(a) 할례 경건파(Halle Pietism) : 독일 할례 대학을 중심으로 일어난 경건운동인데 그 특색은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과 그 구체적인 표현으로 복지 기관설치에 있다.(학교, 고아원, 보건소, 선교회등), 그 대표자는 아우그스트 프랑케(August H . Francke 1663-1727)이다.
(b) 뷰르템베르그 경건파(Wurtemberg Pietism) : 남부 독일에서 일어난 경건 운동으로 자유주의적 색체를 띄었다. 엄격한 회개보다 절제 생활과 자기 성찰을 강조하였다.
특히 일기의 활용을 권하였다.
요한 벵겔(Jonann Albert Bengel, 1687-1752)은 이 운동의 대표자이며, 유명한 주석가요 성경학자이었다. 성경을 학적으로 연구하는 전?을 세웠으며, 나중에 이 계통에서 고등비평가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제믈러(Semler - 1793)가 배출되었다.
(c) 헤른후트 경건파(Herrnhut Pietism / 또는 진젠도르프파) : 감정적이며, 신비주의 경향이 있는 파로서 대표적 지도자는 진젠도르프 백작(Count Zinzendorf 1700-1760)이다.
4. 프랑케의 경건주의 운동
(1) 프링케(1663-1727)는 스페너를 만나서 이전에 독자적인 개심의 경험을 하였고(1689), 라이쁘찌히 대학에서 “성경 애호회” (Collegia philobiblica, 성경연구회)를 조직하였다.
스페너의 도움으로 할레대학의 교수가 되어, 거기서 여러 가지 사회복지 기관들을 세우며 능력있는 일을 하였다.
(2) 독일은 30년 전쟁후에 그 여파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피폐한 상태이었으며 선진 열국의 해회 식민지 활동에 가담하지 못하였으므로 여러 가지 면에서 낙후하였다. 할레 대학 주위에 “버려진 군중” 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들을 모아서 성경을 가르치고 “영 육의 양식”을 주어, “살아 계시고 능력 많으신, 사랑하시고 참되신 하나 님의 은혜로운 발자취”를 따르려 하였다.
(3) 프랑케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외에도 다음과 같은 방대한 사업을 하였다.
(a)불우 학생을 위한 학교 설립. (큰 아이가 작은아이를 가르치게 함.)
(b)고아원(1696)
(c)기숙학교 설립, (철저한 교육과 생활 지도, 자비와 장학금)
(d)김나지움(1697, 특수교육기관)
(e)페다고지움(pasdaggium, 사립학교 : 부자들의 자제교육)
(f)모자원 설립(House of Widows, 1698) : 디모데전서 5 : 3-16을 모델로, 국가와 교회를 위해 기도를 전문적으로 하였으며, 전속 관리인, 목사, 의사, 가정부가 있음.
(g)김나세움(Gymnaeceum) : 미혼 처녀들이 자비로 교육받음.
(h)교사 양성소(Teachers training institute, 1704) : 교리를 가르칠 수 있도록 교사 양성
(i)보건소 설치 : 할레 신학생들에게 의학 지식 보급.
(j)책방
(k)성경 출판사 설립 : 경건 서적 출판
이 모든 기관들은 순전히 프랑케의 기도로 이루어 졌다고 한다.
그의 저서가 영국에 소개되고 온 구라파에 소개되었으며, 특히 영국에서 18세기 후반에 부흥운동이 일어나자, 프랑케의 사회기관들이 영국에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1) 프랑케의 지도로 할레 신학생이 텐마크 왕 프레데릭 4세의 요청으로 인도 크란크바알 (Tranquebar)선교사가 되었다. (1705)
5. 진젠도르프 백작(1700-1760)
(1) 헤른훗트 경건파의 지도자이다. 그는 할레 페다고지움에서 공부할 때 프랑케의 경건주의 사상을 배웠다. 14세 되던 해에 친구들과 한 모임을 창설하여 “전인류를 사랑한다” 고 삶의 목표를 정하였다고 한다. 갈 곳을 잃은 후스파 피난민들을 규합하여 헤른후트 형제회(Herrnhut society of friends)를 창설하고(일명 the Moravian Church, 모라비아교 회)세계 선교를 도모하였다.
(2) 그의 사상은 “성령안에 있는 하나님의 참된 교회”를 주장하며 교회의 연합을 추구하였다. 원시 기독교 풍습을 좇아 발을 씻기고 애찬을 실시하고 화평의 입맞춤, 제비를 뽑아 결정하는등 실제적 생활을 강조하고, 또한 믿는 이들의 공동생활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진젠도르프의 사상은 그외 신비적이고, 고도의 감정적인 예배와 신학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에 대한 성애적인 흠모와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찬하는 신학을 발전시켰다. 주의 피, 땀 상처, 고통을 실감 나게 묘사하는 찬송시를 지어 불렀다. 한때 그는 성부 성 모 성자를 삼위로 보는 잘못을 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모든 과격한 사상을 회 개하였고, 그의 후계자인 슈광겐베르그(August Gottlieb Spangenberg)는 모라비아 교회 의 신학을 재정비하여 정통노선에 세웠다.
(3) 진젠도르프는 미국, 영국, 화란, 발틱해 연안 등지에 모라비아 교도들의 공동체를 세웠으며, 17세기 정통주의 신학에 새로운 감정적 요소를 도입하므로 공헌한 바도 크다.
슐라아어막허(Schleiermacher)는 그의 영향을 입었다. 또 한편 요한 웨슬레도 모라비아 교도들의 열열한 신앙과 전도열에 큰 감명을 받아 부흥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다.
6. 청교도(Puritan)와 경건주의자(Pietist)의 차이
청교도들은 신앙과 생활의 기본 입장이 칼빈주의이고 : 경건주의자들은 루터파 신학의 산물이다. 청교주의(Puritanism) - 경건주의(Pietism) - 복음주의(Evangelicalism)로 시대적 이행과 각기 특성의 공동점과 차이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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