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삼위 하나님이 이루시는 은혜의 결과입니다. 성부가 계획하시고 성자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신 구원을 성령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에게 적용시켜 가시는 논리적인 순서, 곧 소명-중생-회심(회개와 믿음)-칭의-양자-성화-견인-영화의 순서를 구원의 서정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지난 시간에 확인했습니다. 오늘부터는 그 각각의 의미를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부르심(소명)에 관한 것입니다.
1. 소명(부르심)의 정의
소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정의하느냐에 따라 구원론의 전반적인 방향과 내용이 결정되므로 소명의 정의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소명을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효력적인 부르심으로 이해하면 전통적인 개혁주의 구원론의 방향으로 전개가 되고 인간편의 결정권을 강조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할 수 있는 쪽으로 이해하면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논의는 펠라기우스와 어거스틴의 논쟁부터 시작하여 반펠라기우스주의, 종교개혁 이후의 알미니우스주의, 그리고 19세기의 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도 끊임없이 반복해서 나타났던 주제입니다. 펠라기우스가 아예 인간의 원죄를 인정하지 않고 구원이 전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면 반펠라기우스주의와 알미니안은 부분타락을 말하면서 구원의 신인협동을 주장했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반펠라기우스는 인간이 구원의 노력을 시작하면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편이고 알미니안들은 하나님이 시작한 구원을 인간이 반응한다는 차이입니다. 펠라기우스는 418년과 419년의 카르타고회의와 에베소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세미펠라기우스주의는 529년 오렌지총회에서 정죄되었습니다. 한편, 알미니우스 주의는 1618년 도르트총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어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적타락을 인정하면서도 선행은총을 주장하면서 복음적 협동이라는 개념으로 인간의 반응을 강조한 웨슬레주의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구원은 선행은총의 결과가 아니라 특별은총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개혁교회는 소명을 하나님이 말씀 사역자를 통하여 복음을 제시할 때 이 복음의 말씀에 직면하는 죄인에게 성령께서 직접적으로 일하여서 구원에 합당한 반응을 주권적으로 이끌어 낸다는 효력 있는 소명으로 정의하여 성경적인 사상을 표현하였습니다. 간추려 말하면 소명은 하나님께서 말씀의 선포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인간을 죄의 상태에서 은혜의 상태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2. 소명의 분류
개혁신학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복음전파를 통해 온 세상을 그리스도께로 부르는 외적인 부르심과 성령이 택한 자들의 마음을 조명하고 역사하여 그 부르심에 효과적으로 반응하게 하는 내적인 부르심으로 분류합니다. 다시 말하면 동일한 복음을 들었지만 어떤 사람은 반응하고 어떤 사람은 반응하지 않는 차이가 단순한 인간의 결단의 차이가 아니라 성령의 특별한 사역의 차이로 구분하는 것이 개혁신학의 소명의 이해입니다. (헤페는 하나님이 사람을 통하여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외소라고 불렀고 성령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에 이 말씀을 알리고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교제를 창조하는 것을 내소라고 불렀다. H.Heppe, Reformed Dogmatics, 512)
3. 효과적인 부르심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실 때 첫 번째의 단계는 죄인들을 복음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의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복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반 펠라기우스주의와 알미니안들은 복음초청에 대한 결과가 오직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고 하나님은 관장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개혁파는 사람들이 복음초청에 반응하는 이유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총 속에서 찾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그의 마음을 여시어 반응하게 하시지 않는 이상 사람이 결코 복음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마음을 여시는 일을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효력 있는 부르심”이라고 불러왔습니다.
다음의 구절을 찾고 성경이 어떻게 효과적인 부르심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지를 보십시오.
◆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요6:44,65)
◆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1:6-7)
◆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2-24)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28-30)
이상 간단하게 하나님께서 그의 복음으로 나를 주권적으로 불러주시고 거기에 성령께서 특별한 사역으로 조명하시고 역사하시지 않았으면 결코 하나님의 생명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는 말씀들을 확인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나를 불러주심에 대한 감격이 있는지요? (김춘수의 꽃-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출처 :개혁주의 마을 글쓴이 :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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