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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5. 신론(하나님의 명칭, 엘로힘)

에반젤(복음) 2020. 2. 21. 14:49



. 엘로힘

 

창세기 1 :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우리가 ‘하나님’ 이라고, 부르는 ‘신’의 명칭은 성경의 ‘엘로힘’(!yhil~a>)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엘로힘’ 이라는 하나님의 명칭은 ‘여호와’와 함께 하나님의 칭호에 가장 빈번하게 쓰였는데 구약성경만 약 2,000번 이상 사용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원뜻은 ‘강하고 지고한 신’이며, 하나님의 신적 본질과 속성을 충만히 나타내 주는 성호입니다. 여기에는 우리 인생들이 경배하고 순종해야 할 대상임을 강조하는 면과 이 성호 안에 ‘삼위일체’로 계시는 하나님을 암시하는 요소도 있습니다. 과연‘엘로힘’으로 명칭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지 그 명칭을 중심으로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경외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엘로힘이라는 명칭을 어떤 신학자들은 알라라는 어근에서 파생된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라는 고대 중근동 지방에서 ‘두려워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고합니다. 이는 어떤 초월적인 신적인 존재들을 두려운 대상으로 여겼는데, 하나님 역시 인간들이 두려워해야 할 창조주로서 경외의 대상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은 인생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전합니다(13:13, 14:16, 2:12). 바로 인생 위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2:11, 1:7, 고후7:10,11). 이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경외심이 결여된 인생이 곤 죄인들이요(2:19), 미련스러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나와 이웃과 세계를 대하는 지혜가 점점 소멸 되어 감을 안타깝게 여겨야합니다.

 

2. 삼위일체로 계신 자를 암시해 줍니다.

 

 ‘엘로힘’은 율법적으로 볼 때 복수 명사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단수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성경은 창1:1부터 ‘하나님’을 계시해 주되 ‘단독적 신’이 아닌 삼위일체로 계신 신임을 암시해 줍니다. 사실 창1:26절에서는 벌써 우리라고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삼위를 증언해 주고 계십니다. 이 우리는 결국 성부, 성자, 성령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면서 그 한 분 안에 각기 독립된 신, 세 인격이 계신다고 하는 이 삼위일체론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불가능한 신적논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 까지 이러한 사실을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삼위일체로 계신 하나님 이 사실이야말로 인간들이 지어 낸 신과 우상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적 본질 중 하나입니다.

 

3. 위엄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수의 신학자들은 엘로힘이라는 명칭을 아울(aul)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아울(aul)은 강한능력이라는 뜻인바 엘로힘은 강력한 초인적인 능력을 소유하신 ‘위엄자’ 라는 의미를 띠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도 죄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평가 절하 하는 것도 죄요 무지임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가룟유다를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신적 능력을 불신 했기에 배신했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역시 마찬가지로(5:1-11) 교회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지 전능성을 불신했기에 하나님을 기만하려다가 멸망당했습니다. 특히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의 능력보다 사탄의 계교를 더 의뢰했기에 인류 불행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신뢰하고 바라는 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초인적 능력을 신뢰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인간들이 소유하지 못하고 행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니신 위엄자를 경배하고 의뢰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신적 능력 중에 큰 능력이 바로 사랑임을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또 그 사랑의 노력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하나님이기에 위엄이 있으시며 인생들이 그 위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2:5-11).

 

4. 절대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엘로힘이라는 명칭은 하나님께만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고대 중근동 지방에서는 신적 권세 자에게는 이 엘로힘이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성경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방인들이 만들어 낸 신화 속의 신들도(12:12, 31:30), 또 천사들에게도(8:5) 혹은 지도적 인간(21:6)들에게도 엘로힘이란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는 보통 명사로 사용했고 하나님께 에만 고유명사로서 에로힘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영어로 'God' 하나님을 ‘god'은 신화적인 신을 가리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을 고유명사 엘로힘으로 나타냄으로써 기독교의 하나님만 참되고 유일한 절대자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신적이 대상이 많이 있는 줄로 압니다. 위대한 종교적 성인들, 또 스승, 물질, , 영예, 혹은 어버이, 배우자, 또는 자신의 지혜와 건강 등등.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구하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의지의 대상이 될 수 없음도 유념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진리와 생명과 사람을 계시하신 하나님만을 절대자로 받들고 의뢰해야 지혜로운 인생이 됩니다(고전8:5, 6).

 

5. 주관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엘로힘을 영역성경들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Firstinfront(우두머리), Leader(지도자), Governer(주관자)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엘로힘은 세상 만물과 역사와 인생을 생사화복은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이 세상과 삶의 주권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이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