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아도나이
창 15 :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주(主)라는 뜻의 아도나이(yn;doa})는 하나님의 대명사입니다. 이 아도나이는 다스리고 판단한다 라는 뜻의 아돈(@/da)에서 유래되었는데 고대 중근동 지방에서는 신에게 경의를 표할 때 쓰여졌던 말입니다(신10:7). 그러므로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류의 유일하신 소유자요, 통치자 이시며 주권자이심을 강조하는 성호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성령 안에서 그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고 있는 성도들만이 할 수 있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입니다(고전12:1-3). 함께 살펴봄으로써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을 주님이라 부르는 의미
1) 하나님을 경외하는 명칭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들만이 이 명칭을 사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십계명과 율법을 주실 때(출20:1-17) 그 십계명 중 제 3계명에 다음과 같이 명하셨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20:7). 그래서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성호를 직접 부르기를 두려워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대신 주님이라는 대명사를 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필사 일을 하던 서기관들은 여호와라는 성호가 나올 때마다 붓을 일곱 번이나 다시 씻어서 아도나이라고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주임이라는 명칭은 아무나 부를 수 있는 명칭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이름을 두렵게 섬길 수 있는 성도들만이 하나님을 높여 부르는 성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하나님, 혹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진심으로 나의 주님이라고 부르거나 인정하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원래 이 주라는 명칭은 인격적으로 상대방에게 종속 되겠다는 의지를 나타낼 때 쓰여지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이외에도 노예가 주인에게 신하가 왕에게 제자가 스승에게 경의를 표하며 부르던 칭호입니다(창45:8, 수13:3, 룻2:13, 요15:20, 갈4:1). 그러므로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우리가 부를 때는 내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주인처럼 그 뜻에 순종하며 스승처럼 섬기고 따르겠다는 것을 약속드리는 것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소유된 백성”들이요(벧전2:9), “충성된 청지기”들이요(눅12:42), “제자”(마28:9)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사라가 남편 된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벧전3:6)했다고 했는데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결합된 신부로서 하나님을 주님으로 사랑해야합니다(엡5:23, 24).
2. 하나님을 주님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
그렇다면 하나님을 인생들이 영원한 왕과 주인과 스승으로 부를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은 과연 무엇으로 그 통치권과 지배권과 주권을 나타내셨으며, 인생들은 어떤 조건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종과 제자가 될 수 있을 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대답해 줍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 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6-11). 이 말씀은 ①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세와 주권을 인생들에게 나타내시되, 무력과 권위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속죄와 부활을 통해 나타내셨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은 죽음 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만유의 주님 되신 하나님은 초월적인 사랑으로 인류의 마음부터 지배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세상의 주권자들이나 우상들이 감히 따를 수 없는 하나님만의 통치방식입니다(마20:25-28). ② 인류는 바로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강력하신 사랑의 권세에 무릎을 꿇고 비로소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을 확신한 도마도 그 은혜 안에서 비로소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요20:28)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들로 하여금 올바르게 하나님을 주님으로 섬길 수 있는 근거를 십자가의 속죄로 마련해 주시고, 또 하나님을 진심으로 주로 섬길 수 있는 동기도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변함없이 주로 섬길 수 있도록 힘을 제공하십니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참되신 지배권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셨고, 인생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진심으로 주님이라 부르며 섬길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3. 주님 되신 하나님께 대한 성도의 자세
1) 주의 뜻을 분별합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5:17). 하나님을 주와 왕으로 섬기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욕망’보다 먼저 ‘주님의 뜻’이 어떠한 것인지를 분별하고 이해하는 습성이 있습니다(약4:13-16). 성경과 기도와 인내로 분별합시다.
2) 주님만 높입시다.
항상 자신은 “무익한 종”(눅17:10)으로 여기고 오직 주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높여 드려야합니다. 훗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마7:21)고 하신 경고의 말씀을 새겨야 합니다.
3) 주님을 의뢰합시다.
스데반 집사는 순교 하면서도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7:59)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언약과 권세와 사랑을 의뢰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4:18). 이 바울의 유언적 고백이 우리 하나님을 주로 섬기는 모든 성도들의 삶의 기반이 되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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