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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 (1)

에반젤(복음) 2020. 2. 21. 12:33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



  아우그스티누스는 서방에서 일어난 최대의 사상가였다. 그는 교리의 발전을 받아 드려서 라틴어로 새롭게 공식화하였다. 그는 삼위일체교리를 최종 결말 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독론 교리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신학에서 삼위일체 교리와 기독론의 교리가 결합하게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의 교리의 공식화에는 직접 참가하지 못했지만, 이전공회의의 교리 결정들을 수납하였고, 그것들을 카토릭 신앙에 의해 새롭게 공식화하여 서방 교회의 교리의 기초를 확고히 하고 교의 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그는 “삼위일체에 관하여” 라는 대작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결말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본질에서 시작하였고 개별 위격들을 내 삼위일체의 생의 표현으로 파악하였다.


1) 삼위일체론의 전제

  

아우구스티누스의 확실한 전제는 신적 실체의 단일성(unitas)과 위격들의 삼위성(trinitas) 이었다.

하나님의 하나임이 전면에 서나 한 하나님은 동시에 삼위일체이다. 삼위일체는 하나의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이고 바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동일 실체, 한 본질이라고 말하고 그렇게 믿어지고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공교회의 주석가들도 다 성경을 따라 삼위일체 교리를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설령은 하나의 신적 단일성과 나눌 수없는 동등 성안에 있는 동일 본체를 지시한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도 성경의 권위에 의존하여 삼위일체를 증명하려고 하였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세 하나님들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신데 아버지는 아들을 낳으셨고, 따라서 아들인 그는 아버지가 아니시며, 성령은 아버지도 아니고 아들도 아니시며, 오직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시,고 그 자신은 아버지와 아들과 동등이심으로 삼위일체의 단일성은 유지된다.




그러나 이 삼위일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셔서 본디오 빌라도 아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장사되고 삼일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올리우신 것이 아니라, 오직 성자가 그렇게 하셨다. 다시 삼위일체가 비들기의 형체로 세례 받는 예수께 오신 것도 아니고, 주의 승천 후 오순절 날에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과 같은 소리가 있을 때 삼위일체가 불의 혀같이 갈라짐으로 그들 각자위에 오신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이 오셨다. 또 너는 내 아들 기다라고 말한 것이나 내가 이것을 영화롭게 하였고 다시 이것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였을 때, 삼위일체가 말한 것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불가분리적이시므로 분리불가적으로 일치한다. 성부 성자 성령은 세 하나님들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든 것에서 분리불가적으로 일하신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은 세 가지로 부분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일성과 하나님의 삼위성이며 통일성 속에 셋임과 셋임 속에 하나임이다. 아우구스누스의 신관의 근본은 하나님의 하나임이다. 한분 그리고 단순하신 하나님이 삼위일체이다. 이 삼위일체가 한 하나님이다. 그러나 단일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는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이다. 한 하나님이 한 창조주이시오, 따라서 한 분 삼위일체 하나님이 한 실체이고, 한 신성이며, 한 엄위이요, 하나의 영광이다. 그에게 하나의 활동과 하나의 의지가 고유하다. 삼위일체의 사역은 비분리적이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적 위격들은 세상에 대하여는 단지 한 원리이어서 세상에 대한 그의 사역도 철저히 하나이므로 분리할 수 없게 역사하신다. 이처럼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에 대한 카토릭 신앙을 그대로 받아드려 자기 신학의 전체로 삼았다.

  

삼위일체론의 논의의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의 신앙을 받아드렸으므로 하나님의 삼위 되심과 삼의의 한 하나님을 전제하고 삼위일체론을 전개하므로 논리적인 전개가 아니라 성경에 의한 증명을 성경의 주석에 의해 이 삼위일체를 전개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 본체이고시고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 아버지만이 아니라 삼위일체가 불가시적이시.다 만물은 아버지에게서만이 아니라 아들로부터 유래하였다. 성령도 아버지와 아들과 동등한 그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한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와 동일 본체이시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이 그로 말미암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는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과 동일 본체이시다(요일5:20 de trin1.6.9.). 불가사성을 갖는 분은 성부,성자,성령으로 명기되지 안했기 때문에 전능자요,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하나이시고 홀로 참되신 하나님, 곧 삼위일체로 보아야 한다(de trin 1.6.10.). 고전 8:6이하 롬 11:33. 이하에 근거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 하나님임이 드러난다. 또 아버지께서 만드신 것을 또한 아들이 만든 것이므로 아들과 아버지는 동등하시고 아버지와 아들의 사역은 나눌 수 없다. 그러므로 아들이 창조주이시므로 피조물일 수 없다. 성령도 피조물이 아닌 하나님이시므로 그는 바로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와 아들과 동등하신 분이시며, 삼위일체의 단일성에서 동일 본질과 동등 영원성을 소유하신다. 그가 피조물이 아니므로 합당하게 예배가 그에게 돌려진다(de trin1.6.12.13).

  

빌립보서 2:6-7에 의하면 아들은 본성상 아버지와 동등하시나 그가 취하신 종의 형상으로는 아버지보다 작으시다. 하나님의 형상이 종의 형상을 취하셨으므로 하나님이시고 사람이시다. 신성은 신성으로서 피조물로 변화되지 안했고 피조물도 피조물 됨을 그치고 성성으로 변화되지 안했다(de trin 1.7.14). 빌 2:20-21의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것이다”를 보면 아버지의 일하심이 곧 아들의 일하심이어서 두 사역은 나뉘지지 않는다. 그가 나라를 아버지께 바칠 때 자신을 배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아버지와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왕국을 아버지께 바친다는 것은 신자들을 아버지 하나님을 봄에로 인도하는 것을 뜻있다. 그가 영광 중에 니타나실 때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다. 이 하나님을 보는 것 (visio Dei)은 모든 행동들의 목적이고 영원한 기쁨의 충만을 우리에게 준다(요일3:2). 하나님을 봄은 아버지 자신이 우리에게 현시된 것이고 또 그가 우리를 만족시킬 것이므로 지복의 상태이다. 신직관은 믿음의 보상이다. 또 아들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므로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다. 성령도 우리의 복인 것은 그가 아버지와 아들과 나뉠 수 없기 때문이다 (de trin 1.8.8-18). 아들이 아버지에게로 올라감이 아버지와 동등됨을 나타낸 것이다 . 아버지가 현시될 때 아들 또한 그 안에서 현시되고 아들이 현시될 때 그 안에서 아버지도 현시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신자들을 신 직관에로 인도할 때 그들로 자신을 봄에로 인도한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이 우리와 함께 거하게 될 것이다(요14:22-23). 아버지와 아들이 사랑하는 자들과 함께 거할 때 성령이 배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동일한 삼위일체의 단일성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동일 본체와 신성 때문에 그러하다(de trin. 1.9.8-19). 중보자가 나라를 아버지에게 바칠 때 곧 그것은 우리를 위한 중보 사역을 마칠 때인데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하나님을 보게 된다. 즉 그가 나라를 아버지에게 바칠 때인데 그의 중보가 그치고 아버지가 친히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de trin. 1,10,20-21).




아들은 아버지와 동등이시지만 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이나 아버지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이 아니시다.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나왔다고 하는 것은 부동 등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출생을 선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는 아들이 바로 생명 자체이고 아버지와 동일한 생명이다(de trin. 11,1,3,2,4). 아들과 성령은 보냄을 받았기 때문에 작은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말씀과 지혜로 편만하셨으므로 성령도 그가 계셨던 곳으로 보내지신 것이다. 아들의 파송은 스스로의 파송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 자신이다. 아버지는 말씀으로 파송하셨으로 보내신 그 존재는 아버지와 아들의 한 사역이다. 동일한 아들이 아버지와 아들에 의해 파송된다. 이것은 불변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체 종의 형상을 입은 것인데 불가시적인 아들과 함께 불가시적인 아버지에 의해 그 동일한 아들 자신이 가시적이 되도록 보냄 받은 것이다. 성령의 경우도 비들기나 불의 혀같이 보이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 가시적이 되도록 나타난 것인데 이것이 성령의 보내짐을 말한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과 마찬가지로 불가시적인 자신의 본체는 나타난 것이 아니다(de trin, 11.5-10). 따라서 아들과 아버지와 성령은 모두 불변하고 불가시적인 삼위일체이다(de trin, ll,9,14). 따라서 구약의 신현은 성부나 성자나 성령이라고 고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삼위일체 자체나 그 삼위일체 자체나 그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아우그스티누스는 주장한다(de trin.lll. intro).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실체를 본질 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불변하고 불가시적이시기 때문이다(de trin,lll, 11,v2,3). 본격화하게 되었다.

  

성령=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심 논의의.

  

성자의 파송은 권능이나 본질에 있어서 동등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성자가 성부에게서 나오시고 성부가 성자에게서 나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과 같이 성령은 두 분과 하나이시다 세분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성령을 하나님의 은사라고 하는 것은 성부에게서 나오시며 성자에게서 나오시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영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이시기 때문이다(de trin lv, 20, 27).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본질이 동등하심으로 창조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삼위일체로서 분리할 수 없이 일체로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그 존재의 본질에서 세 분이 같이 하나이고 영원 자체이시다(de tron. lv, 21).

하나님은 한 본질과 세 휘포스타시스 나전어로는 세 페르소나 (tres personae)이시다. 성부 성자 성령이 각 각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본질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삼위일체를 세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한 하나님이라고 한다. 각 위격이 거대하시나 세 거대자라고 하지 않고 한 거데대자라고 한다. 세 본질을 말하지 않는 것처럼 세 거대성을 말하지 않는다(de trin, v, 8, 9). 세 위격이라는 명칭은 인간적인 뜻으로 해석한다면 적합하지 않다 우리는 삼위일체를 한 본질 에썬치아(essentia)와 세 위격 뻬르소나 (peraonae tres)라고 한다. 위격은 사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하용하며 세 위격이라고 대답 한다 세 위격이란 완전하게 언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언급하지 않고 남겨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de trin. v, 10, 11). 동일한 삼위일체 안에서 어느 한 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그 분 자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위격들과 상호 연관하여서 또 피조물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삼위일체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고 삼위일체를 성자라고 부를 수. 없다 또 성령도 동일하다. 그러나 하나니은 영이라고 하는데 근거해서 성령이라고 불릴 수 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어떤 말할 수 없는 교통이 되신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 두 분께 적합한 동일한 칭호이다(de trin. v, 11, 12).

  

기원 흑은 원리가 삼위일체 내에서 상대적으로 쓰인다. 성부는 기원자로 불릴 수 있다. 그는 아들과 관련하여 성부라고 불리고 그에게서 유래된 모든 만물과 관련하여 성부라고 불리고 그에게서 유래된 모든 만물과 관련하여서는 기원자라고 불린다. 성자가 자기를 시초라고 밝힐 때는 자기를 창조주라고 밝히는 것이다. 성부와 성자는 함께 피조세계의 하나의 시초이기 때문이다. 한 창조주이시고 한 하나님이시다. 성령도 마찬가지로 창조주이시고 한 하나님이시다(de trin. v, 13, 14). 삼위일체 내에서 출생자와 출생자의 관계에서 출생자를 시초라고 한다면 성부는 성자에 대해서 시초이시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는 한 하나님이시므로 성령과의 관계에서 한 기원이시다 그러나 이 삼위는 피조물에 대해서는 한 기원이다(de trin.v, 14, 15).

  

성령의 출래=영원 출래

  

성령은 항상 나오는데 시간 내에서가 아니라 영원에서 나오신다. 성령은 영원히 선물이지만 시간 안에서 주어졌다(de trin. v, 15,16, 16, 17). 성자는 아버지와 관계에서 아들이라고 불린다. 성자는 성부의 위대성이며 성부와 함께 위대하시다. 성자없이 성부는 하나님이 아니시며 성자는 성부없이 하나님이 아니시며 두 분이 함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성자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성자만이 성부의 형상이다 성부와 성자의 본질적인 통일성이 우리는 하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성자는 지혜와 다른 모든 면에서 성부와 동등하다. 성자는 성부의 위대성이고 자기를 낳으신 분보다 더 위대하지 않으시며 성부는 그를 위대하게 하는 위대성 보다 더 위대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은 동등 하시다(de trin. vl,2,3, vl,3.5). 성자가 본질에 관련하여 어떤 한 점에서 아버지와 동등하지 않다면 어떤 점에서도 성자는 아버지와 동등하지 않다. 그러므로 성자는 모든 면에서 아버지와 동등하시다(de trin. vl, 4, 6). 그러므로 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 계신다.

  

성령=하나님의 사랑

  

성령은 동일한 하나의 실체와 동일한 동등성으로 성립한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 공통인 어떤 것이다. 이 교제 자체는 동등 실체이고 동등 영원하다. 이것이 사랑이다. 이 사랑은 실체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실체이시고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과 이 사랑은 실체이다. 그래서 그 실체는 그들과 함께 선하고 위대하며 그들과 함께 거룩하시다. 성령은 그 실체 안에 있는 그 절대적인 단순성 때문에 모든 면에서 동등하시다(de trin. vl,5).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임

  

하나님은 삼위체이시므로 삼중(triplex)으로 생각되어질 수 없다. 만일 그러하다면 아버지만 혹은 아들만이 아버지와 아들보다 작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만 아들만을 생각하기 어려운 것은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항상 그리고 비분리적으로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도 오직 하나라고 부른다. 그러나 아버지만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아들과 분리되어서가 아니라 둘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만큼 크시다. 하나님 자신 안에서는 동등한 아들 혹은 아버지와 아들과 동등하신 성령이 동등한 아버지에 결합되있므로 하나님은 그들 각자보다 더 크게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완전은 증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 아들 성령이든지 하나님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은 완전하다. 그러므로 그는 삼위일체이고 삼중이 아니다(de trin. vl,8). 하나님 안에서 자신외에 아버지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은 아버지만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다(de trin. vl,9).

  

아들=아버지의 신성: 아들과 아버지는 한 하나님

  

아버지는 홀로 권능 있고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자기가 낳은(genuit) 능력과 지혜 자체와 함께 그러하시다. 그는 위대하시고 하나님이신 것이 별개가 아니고 하나님이시므로 크시다. 크신 것과 하나님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홀로 하나님이 아니시고 그냥 낳은 신성(deitas)과 함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의 신성이신 것은 그가 아버지의 지혜와 권능이시므로 그러하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과 형상이신 것처럼 또 아버지와 본질이시다. 아버지는 자신에 대해서도 그런 것은 그가 자시의 실체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본질의 아버지이신 것은 자기의 위대하심에 아버지이심과 같다(de trin.vll, 1, 1). 아버지와 아들이 한 동일 본질이시므로 아버지는 한 동일 본질이시다. 아버지는 자기 자신에 관해서 자기의 존재를 가지신 것이 아니고 아들에 관해서 그러하므로 두 위격은 자기 자신 만에 대해서가 아니고 서로 서로에 대해 상대적으로 존재하신다. 아들은 아버지의 본질이므로 자신에 대해서도 본질이라고 불리신다. 그러면 아버지는 자신에 대해서 본질이 아니고 본질의 생산자이다 상대적인 것은 상호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본질에 있어서도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서 그렇게 불린다 (de trin. vll,1,2).

  

아버지와 아들=한 본질

  

아버지와 아들은 한 본질 한 위대성 한 진리와 하나의 지혜이다. 그러나 둘은 하나의 말씀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 둘은 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들은 그가 말씀인 아들이고 그가 아들인 말씀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은 둘의 말씀이 아니다. 아버지는 그가 본질인바에 의해서 지혜이시다. 아들도 지혜이시지만 지혜이기 때문에 그로써 그는 말씀이 아니다. 그는 상대적으로 말씀이고 본질적으로 지혜이시다. 아들이 말씀이라고 할 때 그뜻은 낳아진 지혜로서 아들과 형상이 되시는 것을 뜻하다.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한 지혜이시므로 한 본질이고 지혜의 지혜이며 본질의 본질이다. 왜냐하면 지혜로움과 존재하심은 하나이기 때문이다(de trin,vll, 2, 3).

  

성령=두 위격을 결합하는 사랑

  

아들은 지혜의 지혜요 빛의 빛이요 그리하여 하나님에게서 나온 히니님이시다. 아버지는 홀로 빛이요 아들도 홀로 빛이시다. 아버지는 홀로 하나님이시고 아들도 홀로 하나님이시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은 함께 하나의 빛이요 한 하나님이시듯 하나의 지혜이시다(de trin. vll, 3, 4). 아들은 그가 유래한 그와 전혀 동일한 한 실체이다. 그러나 아들이 사람이 되실 때 자기의 신성을 변화시킴 없이 변화 성을 자기에게 입으셨다(detrin. vll, 3,5).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을 함께 결합하는 절대적 사랑이신데 그도 하나님이시므로 빛이요 지혜이시다. 삼위일체 내에서는 존재하는 것과 지혜로움이 동일하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본질이다. 또 삼위일체내서는 존재하는 것과 하나님이신 것이 변개가 아니므로 셋은 한 하나님이시다(de trin. vll,3, 6).

  

세 위격=표현할 수 없는 연합: 삼위일체=한 실체

  

희랍인들은 한 본질에 세 실체들을 말하고 나전인들은 한 본질 혹은 한 실체와 세 위격들을 말한다. 그러나 세 위격들은 본질에 아무 차이가 없으므로 세 위격들은 종차적인 이름(specific name)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세 위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연합(unio inefffabilis) 때문에 셋은 함께 한 하나님이시다. 세 위격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이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 아니고 성경이 이것과 모순되지 않기 때문에 세 위격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법적이다(de trin v11,4, 8-9). 하나님은 불합당하게 실체라고 불리우고 합당하게 한 본질이라고 불리운다. 하나님만이 본질이라고 불리워야 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불변하시기 때문에 그는 참으로 홀로이시다. 하나님이 본질이라고 불리우거나 실체라고 불리우거나 간에 그는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불리워고 다른 것에 대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게는 존재하는 것과 실재하는 것(subsist)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위일체는 한 본질이면 또한 한 실체이시다. 그러므로 세 실체들이라고 불리우기보다 세 인격들이라고 불리운다(detrin, vll, 4,9).

  

하나님 한 본질

  

하나님이 실재하시여 (subsist) 합당하게ㅡ실체로 불리울 수 있다면 주체 안에서 처럼 그 안에는 어떤 것이 있다; 하나님은 실재하시고 자기 자신의 선에 관련하여 주체라고 말하는 것은 불경하고 또 이선은 실체가 아니라거나 혹은 본질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하나님 자신은 자기 자신의 선이 아니고 그 안에 주체 안에서처럼 그 안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불경건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실체라고 부르는 것보다 본질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합당하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본질이라고 불리워야 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는 한 본질이면 또한 한 실체이다. 따라서 합당하게 세 위격들이라고 불리운다(de trin. vll, 5).

  

존재=인격

  

하나님에게는 존재함과 인격임은 절대적으로 동일하다. 존재함은 자신에 대해서 말해지고 인격은 상대적으로 말해진다. 이 방식으로 세 위격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말해야 한다. 아버지의 실체는 아버지 자신이듯이 아버지의 인격은 아버지 자신 외에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 인격이라고 불리우고 아들이나 성령에 대해서 인격으로 불리우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자신에 대해서 하나님으로 불리우고 위대하거 선하고 의로우시다고 불리우는 것과 같다. 그에 관해서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이심과 같고 크신 것처럼 그는 존재하심은 인격임과 같다. 그러면 이 셋을 한 인격이라고 부르지 않고 세 인격이라고 부르고 세 하나님 혹은 세 본질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셋이라고 고백할 때 셋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침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본질이 류이고 실체이나 인격의 종(species)이라면 지금 말한 것은 생략해야 한다. 삼위일체 외에는 그 본질의 다른 어떤 것이 있지 않다. 그래도 동일 본질의 세 위격들 혹은 세 인격에 한 본질이라고 한다. 그러나 마치 그 안에 본질과 인격이 별개인 것처럼 동일 본질로부터 (of the same essence) 세 위격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마치 금으로 된 세 동상들이라고 하면 금과 동상들이 별개인 것처럼 말이다. 삼위일체의 본질에는 동일 본질로부터 다른 어떤 인격이 존재할 수 없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함께 아버지만 보다 혹은 아들만 보다 더 큰 본질이 아니다. 이 세 인격들은 함께 각자에 대해 단일하게 동등하시다 (de trin. vll, 6, 11).

  

한 하나님=세 위격

  

아버지만이 하나님이시라고 듣는다면 그에게서 아들이나 성령을 분리하면 안 된다. 아들과 함께 그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한다면 그에게서 아버지나 성령을 분리 없이 받아야 한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실 때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와 우리가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계에 있어서는 우리다. 왜냐하면 아버지도 하나이고 아들도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이다 (de trin. vll,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