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제1장 총론-2
1.구약 예언의 특성-4
2.이사야의 명칭-
3.저자와 연대-7
1)자유주의 근거-8
2)자유주의자들의 이사야서 연구역사-9
3)예언자들의 임무-10
4)언어학적 증거-11
5)외증-11
6)사본이 보여 주는 증거-12
7)기타 증거-13
4.이사야서의 목적-4
5.이사야서의 특성-15
6.이사야서의 복음적 특성-15
7.이사야서의 구조(분해)-15
8.“예언하다”라는 동사와 예언자 칭호에 대한 소고(小考)-17
1)예언자를 의미하는 부수적인 용어들-17
(1)로에와 호제-7
(2)하나님의 사람-20
2)나비-20
3)로에-호제와 나비와의 관계-23
결론(結論)-25
(시대별로 활동한 선지자들)-25
제 一 장 대 선 지 서 (The Major Prophets)
대선지서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이다.
總 論
우리 한국에서는 한글역 성경을 중심하여 “선지서”(先知書)라고 하면 두 가지 면으로 나누어 생각하게 된다.
첫째가 대 선지서이고, 둘째가 소선지서이다.
대선지서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이고, 소선지서는 호세아에서 말라기까지 12권이 포함이 된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히브리어 성경은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예언서의 범위가 넓고 많은 것이다.
한글역 성경에서 역사서(歷史書)로 보는 부분이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예언서(豫言書)로 본다.
즉 여호수아,사사기,사무엘상,사무엘하,열왕기상,열왕기하등이다.
이들은 전기 예언서라고 한다.
이 전기 예언서 뒤에 있는 책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등은 후기 예언서라고 한다.
그러면 히브리어 성경에 근거하여 성경을 구분하여 보겠다.
1.모세오경(הרות ,Tora, The Law Book, η πεντατευχος βιβλος-다섯부분으로 된 책-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
2.예언서(םיאיבנ,Nebim)
1)전기 예언서(Former prophets)-여호수아,사사기,사무엘상,사무엘하,열왕기상,열왕기하
2)후기 예언서(Latter prophets)-
①대선지서-이사야,예레미야,에스겔
②소선지서-호세아,요엘,아모스,오바댜,요나,미가,나훔,하박국,스바냐,학개,스가랴,말라기
3.성문서(םיבותכ,Kethubim,The Hagigrapha)
1)시서(詩書,The psalms)-시편,잠언,욥기
2)오축(五軸)-아가,룻기,애가,전도서,에스더
3)역사서(歷史書)-다니엘,에스라,느헤미야,역대상,역대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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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원용국,구약예언서(호석출판서,1985)P.140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성경을 타낙(ךנת,Tanak-모세오경,예언서,성문서의 히브리어 앞자만 사용)이라고 한다.
다른 성경학자들은 다른 방법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I.구약(舊約)
1.모세(五經,律法書) 창,출,레,민,신(5권)
2.역사서(歷史書)-수,삿,룻,삼상,삼하,왕상,왕하,대상,대하,스,느,에(12권)
3.시가서(詩歌書)-욥,시,잠,전,아(5권)
4.예언서
1)대선지서-사,렘,애,겔,단(5권)
2)소선지서-호,욜,암,옵,욘,미,나,합,습,학,슥,말(12권)
II.신약(新約)
1.복음서(福音書)-마,막,눅,요(4권)
2.역사서(歷史書)-행(1권)
3.서신서(書信書)-롬,고전,고후,갈,엡,빌,골,살전,살후,딤전,딤후,딛,몬,히,약,,벧전,벧후,요1서,요2
서,요3서,유(21권)
4.예언서(豫言書)-계(1권)
우리는 “후기 예언서들을 저술한 기자들을 예언자라고 하는데,그 이유는 그 저자들이 자기들이 예언한 것을 영구히 보존하기 위하여(렘30:2,36:1-32) 기록했기 때문이다.(사8:1,합30:8,2:2)
이 기본적 사실들은 오직 양식사학파(樣式史學派=School of form-Criticism) 2)
에 속하는 비평가(批評家)들이 부정하는 것이다.
이 양식사학파는 그 개척자인 헐만 궁켈(Hermann Gunkel)의 뒤를 이어서 생각하기를 그 예언자들은 아무것도 저술한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3)
그런가 하면 문서설을 4) 주장하여 성경의 권위와 신빙성을 파괴하는 일들을 많이 볼수 있다.
“이 비평학파의 억측과 방법에 나타난 있는 주관주의(主觀主義)와 회의주의(懷疑主義)는 경건하게 믿는 학자들에게 추천할바가 못된다.
이 학파에 속한 사람들은 예언서의 내적 증거를 맘대로 거부한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는가 ?그들이 주장하는 학설의 주관적 성격에 의하여,또 예언서들이 훌륭하게 통일되고 조화되어 있는 것을 인정할수 없음으로 그렇게 거부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방법과 결론을 완전히 배격해 버리는 것이 정당하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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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양식사학파:“성경 안에 있는 문학 양식을 당시의 성경외의 문학과 대조하면서 그 유사점과 차이점을 발견하여 그것으로써 자료의 역사성을 결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궁켈(H.Gunkel,Genesis ubersetzt und erklart,1901,1922)에 의하여 비로소 창세기의 전설 연구에 적용되었고 그 후 벤들란트(P.Wendland,Die Urchr istlichen Literaturformen,1912)나,다이즈만(Ad.Deissmann)등은 이것을 신약의 부문에 적용하였다(기독교 대사전,기독교서회,1960)
3)엉거,김진홍역:구약개론,세종문화사,1973,p.312
4)원용국,성막과 십계명,성광문화사,1977,pp.176-182참고
5)엉거,김진홍역:Ibid.,p.133
1.구약 예언의 특성
구약의 예언적 요소의 독특한 점은 우리에게 귀한 지식(知識)이 된다.
그 이유는 그것이 자유주의(自由主義) 자들의 그릇된 학설(學說)을 파괴하고,우리에게 예언서에 대한 확신과 힘을 주기 때문이다.
1)구약 예언(舊約 豫言)은 하나님에게서 왔다.
히브리의 예언자(豫言者)는 전능(全能)하시고 무한히 거룩하시고 살아계신 한 분 하나님을 믿었고,자기는 그의 대언자(代言者)라고 말했다.
삼상9:9에 의하면 옛날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예언자를 보통 “하로에”(הארה)라고 불렀다.
그들은 자연적 시야에서 볼수 없고 또 자연적 청각을 통하여 들을수 없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또 다른 옛 유사어는 “호제”(הזח)였으니 곧 “초자연적(超自然的)으로 보는 사람”(삼하24:11)이라는 뜻이다.
그 후에 히브리인들은 선견자(先見者)를 나비(איבנ,삼상9:9)라고 흔히 불렀다.
이 일반적으로 널리 보급된 이름은 아카디안 사람들의(Accadian) 언어인 “나부”(Nabu,Nabum-나붐,say) 곧 “부른다,선포한다”라는 말과 관계되어 있다.
이것은 올브라잍(W.Albright)교수가 말했는데,수동적(受動的)으로(하나님에게) “부름을 받은 자”이거나,쾨닠과 같이 능동적으로(하나님의) “선포자”(宣布者)를 가리킨다.
귈롬(Guellaum)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언자는 자기의 형편과 자기의 말에 나타난 교훈을 수동적으로 받는 사람이요 또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교훈을 선포하는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므로 예언자는 마귀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날마다 자기의 영을 분별하고 자신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마귀에게 속하였나 말씀을 통해서 진단을 받아야 한다.(요1서4:1)
2)구약 예언은 구속사(救贖史)와 같이 시작했다.
구속자(救贖者)에 대한 원시복음(Protevangelium)이나 또는 “첫째 예언”(창3:15,16)은 예언자를 세울 필요 없이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아담의 제 7대손인 에녹은 예언자였고(유1:14,15),노아도 예언적 신탁(神託)을 말했다.(창9:25-27)족장(族長)들 특히 “나비” 또는 “예언자”(창20:7,시105:12-15)라고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은 이상(理想 혹 幻想-환상)과 계시(啓示-αποκαλυψις-아포칼륖시스,revelation,illumination)를 받은 사람이었다.
모세는 특수한 의미에서 예언자였다.
다른 사람들은 꿈과 이상을 통하여 때때로 신령한 교훈을 받은 반면에,하나님은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는데(민12:6-8,신34:10) 그는 그가 지닌 독특한 예언자의 자격으로 오실 탁월(卓越)한 예언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豫表)였다(신18:18,요6:14,7:40)
모세 시대 이래로 예언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계시가 결코 그들에게서 떠난 일이 없었다.(사18:15)
사사시대(士師時代)와 같이 예언적 계시가 예언적 계시가 희귀한 때에라도(삼상3:1)예언이 아주 침체상태는 아니었다.(삿4:4)
예언적 활동이 뛰어난 사무엘 때로부터(삼상3:1) 예언자의 무리,선지학교(先知學校,삼상10:10,19:18-24 등을 비교)가 있었다.
말라기시대 즉 구약 예언기가 끝날 때 까지 히브리인의 역사에 예언자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특기할만한 것은 포로시대(捕虜時代)이전에 있었던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예언으로 예언문학(豫言文學)은 그 절정(絶頂)에 이르렀다.
3)구약 예언의 목적은 도덕적(道德的)이고 영적(靈的)이다.
예언자들 특히 아모스,이사야,예레미야와 같은 이들은 심판과 축복의 예언적 사명외에 그 사회가 요구되는 대로 사회와 정치적 개혁가(政治的 改革家),부흥가(復興家),그리고 의(義)를 격려(激勵)하는 설교자(說敎者)로 사회에 자주 등장하였다.
예언자의 교훈에 사회적 요소와 정치적 요소는 결코 기본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신탁(神託)은 시종일관(始終一貫)하게 종교적(宗敎的)이요 영적(靈的)이어서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선포(宣布)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絶對)로 순종(順從)하라고 호소하였다.
4)구약예언에 자주 미래적(未來的)인 것이 있다.
예언자가 과거(過去),현재(現在)와 동시에 미래(未來)에 대하여 언급할수 있고,또 자주 그렇게 해서 여호와의 말씀의 우월성(優越性)과 그의 뜻의 승리(勝利)를 내세웠다.
예언적 전조(前兆,omen)는 현재의 위급함에서 생기는 미래를 미리 내다 보는 것인데 불경건(不敬虔)한 자의 심판(審判)을 경고하거나 또는 끝까지 진실한 사람을 격려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다.
종종 예언자는 이사야(사40-66장)나 에스겔(겔40-48장)과 같이 당장 그 시대의 사건들에서 또는 어떤 경우에서 생기지 않는 심판(審判)이나 축복(祝福)에 대한 징조(徵兆)를 미리 말한다.
또 선지자는 예언하는 영에 의하여 미래와 어떤 이상적 장소에 옮겨질수 있고, 또 이 우월한 입장에서 먼 미래의 환상들을 볼수 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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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엉거:Ibid.pp313-317 참고 W.S.Lasor:O.T.Survey,Eermans 1982 p 328 참고
대선지서 본론(本論,이사야)
본론에서는 대선지서들을 생각하겠다.
이 대선지서는 느비임 아하로님(םינורחא םיאיבנ )인데 느비임은 예언서(prophets),아하로님은 후기(later,latter)라는 뜻으로 후기 예언서라는 말이다.
대선지서들은 소선지서들보다 그 내용과 체제가 클뿐 아니라 그것들을 기록한 선지자들의 사역과 위치도 매우 크고 중요하였다.
그래서 그들을 가르쳐 대선지자들이라 하였고 예언서들은 대예언서들이라고 한 것 같다.
여기서는 대선지서 또는 대 예언서들의 각론에 들어 가겠는데 이사야서로부터 예레미야서,그리고 에스겔서를 취급하겠다.
그리고 각 예언서에서는 그 책의 명칭 저자와 연대,목적 특성,분해그리고 내용들을 생각하겠다.
2.이사야의 명칭
이사야서는 이사야 선지자 자신의 명칭을 따라서 호칭한 것이다.
그 사실은 바바 바드라(Baba Bathra)의 책14행에 나타나 있다.
또 선지서 사본이나 구약성경에 언급되어 있다.
위 책에서는 이사야(היעשׁי-에사에야,에사야)로 되어 있으나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사야후
(והיעשׁי)로 되어 있다.
이 이사야후는 두 단어가 합한 합성어인데 에사(עשׁי)라는 단어 즉 구원(Salvation)이라는 것과 야후(והי)라는 단어 즉 여호와(Jehovah)라는 뜻이다.
동사 야사(עשׁי)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가.to be delivered -인도하다,해방시키다,구해내다,
나.saved -구하다,건지다,구제하다
다.to help -돕다,도움,원조,조력,구제
라.to get help -도움을 얻다
예호와,예와(הוהי-Yahweh)는 여호와이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나님은 구원이시다,여호와의 구원”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이 LXX 에서는 히사야아스(ΗΣΑΙΑΣ, Ησαιας , Hesaias)로 되었고,라틴어(Latin)성경에서는 에사이아스(Esaias)또는 이사이아스(Isaias)로 되었다.
이 명칭에 대한 축소된 명칭은 역대상3장21절,에스라8장7절,느헤미야11장7절에도 나타나 있다.
우리가 그의 이름에서 깨닫는 것은 이사야의 부모가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봉하는 신자일뿐 아니라 진리에 바로 선 부모였다는 것과 이사야 자신이 명실공히 하나님의 가장 크고 귀히 들어 쓰임을 당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1)이사야는 어떤 사람인가 ?
(1)그 이름의 뜻은 구원이라고 한다.
(2)이사야는 대선지중에 하나이다.
(3)아모스의 아들이다.
(4)유다왕국 웃시야,요담,아하스,히스기야 제왕 때에 궁중 목사의 지위에서 예언하던 예언자
이다.
(5)그 활동시기는 아모스,호세아,미가와 동시대 예언자이다.
(6)그 활동기간은 759년부터 약60년간(699,695년,740-681년어떤학자)이다.
(7)그 시대 형편으로는 북국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전후로서 부자의 사치와 가난한 자에 대
한 압제와 일반 민중들의 부도덕과 우상숭배가 성행하였다.
(8)이사야는 유다왕국 뿐 아니라 인근에 있는 이방 나라의 운명에 대해서도 예언하였다.
(9)그의 예언 중에는 특히 메시야(messiah,חשׁמ-to anoint)의 출현에 대하여 예언한 바이다.
(10)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한면 이사야는 희망과 환희의 예언자라고 할수 있다.
(11)이사야는 예루살렘에 거하며 일생동안 험한 베옷을 입고 예언하였다.
(12)이사야는 전설에 의하면 므낫세 왕때 톱으로 켜서 죽었다 한다(히11:37)
(13)이사야서는 그 문체의 아름다움과 복음주의로 예수께 대한 예언이 가장 많이 응함은 다
른 선지서가 다르지 못할 것이다.(마3:3)
(14)이사야는 아모스의 아들이요(예언자 아모스 아님)여선지자(האיבנ -네비아)와 결혼하여(
사8:3)스알야숩(בושׁי ראשׁ 쉐아르 야슈브,사7:3)과 마헬살랄하스바스
(זב שׁח ללשׁ רהמ -사8:1-4)등 두 아들을 두었다고 언급한다. 7)
(2)본서의 내용
①주전 700년대에 이사야는 유다왕국이 주전586년에 바벨론에 파멸되고(북왕국은722년에
멸망)모든 민중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으나 (왕하25장) 주전536년에 바사왕 고레스가 일
어나서 유대인을 해방시켜 줌으로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허물어진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
할 것을 미리 예언하였다.
②본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메시야가 먼 장래에 내림하여 선민을 근본적으로 회복케 할
것을 예언하였다.
(3)본서를 구분하라
①제1부는 1-35장 까지니 유다와 인근 이방에 대한 예언이다.
②제2부는 36-39장 까지니 히스기야 시대의 예언이고
③제3부는 40-66장까지니 선민의 장래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다.
3.저자와 연대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말한 바와 같이 “성경은 보석 목거리와 같아서 그 중에 하나를 제해 버리면 전체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개혁주의에서는 추호의 여지도 없이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드리며 그 신빙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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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엄도성편저,성경낱말사전,(평화사,1982),p.847
또 이사야서 저자문제도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750-695 B.C)선지자의 것임을 확신한다.
그러나 이와 반면에 자유주의자들은 성경 전체를 파괴한다.
그 중에서도 모세오경과 이사야서는 더욱 집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중에는 2분설(二分說),3분설(三分說)주의자들이 있다.
.二分說 -1장-39장,40장-66장을 다른 저자로 구분한다.
.三分說 -1장-39장,40장-55장,56-66장을 다른 저자로 본다
(1)자유주의 근거
먼저 자유주의가 어떻게 태동되었는가 고찰하여 본다.
자유주의는 신학(神學)이라고 하기 보다는 철학(哲學)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한철하교수(아세아연합신학학장)는 자유주의를 “철학적 신학”이라고 평하였다.
그러나 철학과 신학은 거리가 멀다.
어떤 교부의 말과 같이 「예루살렘과 아덴은 거리가 먼 것이다」
신학(神學)은 신앙(信仰,faith,계시-offenbarung-revelation)에 근거를 둔다.
철학(哲學)은 이성(理性-Reason,vernunft)에 근거를 둔다.
신학,즉 신앙에 근거한 신학은 형이상학에까지 궁구하나,철학 즉 이성에 근거한 철학은 형이하학적이다.
철학 대집대성자인 칸트(Immanuel Kant)는 그의 철학을 형이하학에서 끝마치고,그 이름을 “형이하학”이라고 하였다.
그는 “형이상학”을 신학에 위임하였다.
또 철학은 인위적이고,인간 본위적이다.
그러나 신학은 신위적이고 신본주의적이다.
그러므로 이상과 같이 양자가 양극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신학이 철학과 전혀 절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신학이 철학과 어느 정도의 관계가 있다.
이상과 같이 이성에 근거를 두고 철학을 본위로 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신앙과 신학을 무시하는 것 같다.
자유주의자들은 자기의 조상계열을 철학자들에게 둔다.
①이븐 에스라(Ibn Ezra,1088-1167)-유대교학자,서바나에 살던 유대인 랍비였다.
그는 철학,수학,신학에능통한 학자로서 오경주석을 저술하였다.
그는 철학을 신학앞에다 놓고 기술하였다.
17세기에 들어 서면서 부터는 구약 성경 각권에 대하여 역사적 비평 연구가 등장 하였다.
여기서 두 철학자가 성경연구의 한몫을 차지한 것이다.
②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영국 철학자인데 그의 저서 레비아단(Leviathan,1651)에서 구약
성경의 비평적 연구의 목적과 방법을 열거하고하였다.
③스피노자(Baruch Spinoza,1677사망)-화란의 유다인 철학자이다.
그는 그의 신학 정치론(Tractatus Theologico politicus,1670) 7-10장에서 선입주견 없이 순수한
자유정신으로 성경을 분석하였다.
또 그들은 스스로 이성주의자임을 자인하였다.
“이와같은 이성주의적 비평의 싹이 튼 후에 18세기에 들어서 부터는 굉장한 발달을 보게 됐다”
고 하였다.
자유주의학자들은 철학에 깊이 감염된 자들이며 이성주의자들이라고 할수 있다.
차남진박사-기독신보에 발표한 「미국신학의 하구조」(1966년3월21일),「영국신학의 하구조」,「독일신학의 하구조」 등에 보면 명확히 알수 있다.
그러므로 신신학자들은 신학을 철학의 메스(mes)를 들어 해부하고 신앙을 이성의 사다리로 오르려는 자들이다.
*우리가 알 것은 성경연구에 있어서 신앙은 주인이 되고 이성은 도구가 되어야 한다.
철학은 신학의 옷이 되어야 한다.
이와같은 철칙에서 벗어나면 무서운 과오에 빠지게 된다.
(2)자유주의자들의 이사야서 연구 역사
이사야서를 연구하고 비평한 자유주의 학자들은 다음과 같다.
①이븐 에스라(Ibn{Aben} Ezra)-12세기의 사람이다.
이사야서 1-39장의 저자와 40장에서 66장까지의 저자가 동일 인물이 아니라고 최초로 이의를
제시하였다.
②말 콥(Koppe)-40장에서 66장까지는 포로 말기에 생존한 어떤 예언자의 저작이라고 주장하였다.
③되덜린(Doderlin)은 역사적 배경의 차이,고레스의 출현,문제상의 차이를 들어서 콥(Koppe)의 학
설을 보강시켰다.
④에발트(Ewald)도 각기 다른 시대적 상황속에서 일곱 사람에 의하여 된 것이라고 주장 하기에
이르렀다.
⑤체인(Cheyne)은 에발트의 학설을 지지하고 현재의 이사야서는 분산된 단편들을 수집하고 보충
하던 문인들의 결과라고 하였다.
⑥듐(Dehm)은 이사야서를 세가지로 분류하였다.
가.1-39장은 이사야의 기록으로 보았다.
나.40장-55장은 이사야의 영향을 깊이 받은 어떤 인물곧 제2이사야가 주전(B.C)540년에 레바논
이나 베니게에서 기록하였다고 하였다.
다.56장에서 66장은 느헤미야의 활동직전에 예루살렘에 살았던 제3이사야가 기록하였다고 주장
하였다.
⑦딜만(Dillman)은 40장에서 48장은 고레스의 전성기(B.C) 545년에 기록된 것이라고 하였다.
⑧드라이버(Driver) 같은 이는 역사적 배경,어법과 문체,신학의 성격을 들어 이사야서의 단일 저
작권을 부인하였다.
⑨파이퍼(Pfeiffer)는 드라이버의 학설을 보충하여 주장하였다.
가.예루살렘은 이미 파괴되었고 많은 도시들이 파괴되거나 인구가 감소되었으며(사44:26,28,49:8,
58:12,61:4,63:18)
나.이스라엘은 추방되고 분산된 이후이다.(사42:22,43:5,45:13,52:9)
다.여호와는 진노하여 이스라엘을 징벌하고 있다.(40:2,27,43:28,48:10,51:17-52:12,54:7)고 하였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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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원용국:Ibid.p.152
박대선교수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이미 포로 되어 있었다(42:22,47:5-6,52:5)고 하였다.
*그러나 현대주의자들의 주장은 헨스팅버그(Henstingberg),카일(Keil),델리취(Delitszch),헨더슨
(Henderson),다비드슨(Davidson),울빅(Urwick),로빈(Rovin),영(Young),알렉산더(Alexander)등 많은 보수주의(保守主義{改革主義})학자들에 의하여 강력히 부인 되는데 역사적인 면과 언어학적인 면과 신학적인 면에서 깊은 연구를 하고 자유주의자들을 강력히 부인한다.
(3)예언자의 임무
“예언자 또는 선지자”란 히브리어로는 “나비”(איבנ)이다.
이 뜻은 “용출한다”는 의미를 가지는데,하나님께서 그 영감을 그 사람에게 주어서 솟아나게 하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어원적인 의미를 확실히 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알수 있는 것은 구약성경을 종합연구하여 보면 선지자는 하나님이 세워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한 것이다.
더 정확히 풀이하면 “보내신 자를 대신하여 말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나비(איבנ)는 자기의 주장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를 택하여 세우고 그에게 말한 것을 위임하신 분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6:9에 보면 “가서 이 백성에게 말하라” 또는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암9:15)고 한 것이다.
예언자(豫言者)들은 “말하라”는 부탁을 받아서 말하는 사람이다.
그 말하는 말씀에는 장래 사건을 예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이다.
영어 프로핕(Prophet) 역시 헬라어 프로페테스(προφητης = προ{before--의 앞에,in front of-}
+ φημι-말하다{φαω})에서 나온 것인데 그 뜻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말하는 사람,특히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의 앞에서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는데 있어서 그들은 선견자였다(삼상9:9)또 “하나님의 사람”(삼상9:6,왕상12:22,렘35:4),또는 “하나님의 종”이었다(왕하9:7,왕상14:18,18:36).
하나님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하나님의 일을 하는 그들에게 앞을 내다보는 영감(靈感)도 주신 것이다.
“영감의 모든 현상을 주의깊게 연구하여 보면 초자연적(超自然的)능력과 활동이 있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또 다른 한편 영감 아래서 움직이는 예언자의 인간적 요소도 무시할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것을 예언하였다.
육적인면만 아니라 영적인 면까지도,세상적인 면만이 아니라 영계의 일까지도 예언하였다.
그러므로 예언자의 임무는 이사야에서 예레미야서와 다른 예언서를 보면 예언자는 지나간 역사도 살피고,앞으로 올 일에 대하여 통찰력도 갖고 있었다.
그 통찰력은 영감에 의한 것이었다.
예화) “Moody Monthly”지에 기재한 “세계를 변화시킨 다섯가지의 예언성취”-훼인버(Charles
Feinber)의 연구논문(硏究論文)
(4)언어학적 증거
언어학적 증거는 내증(內證)의 한 면이다.
내증에는 구상과 조직의 통일을 말하는 것이다.
구상과 조직의 통일을 말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이다.
언어는 단어 구와 절의 비교연구이다.
.자유주의자 파이퍼(Pfeiffer)-1장-39장,40-66장 간의 문체,용어,사상의 차이는 너무 명백해서 그 증거를 제시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드라이버(Driver)는 1장-39장에서 자주 보는 단어들과 표현들이 후반부에서는 결코 발견되지 않거나 혹은 드물게 발견된다고 말하고 단어 35개(1장-39장=전반부),20개(후반부=40장-66장)를 들었다
.박대선 교수-“이사야서 40-66장을 1장-39장과 구별하는 이유”라는 제하에서 삼분설(三分說)을 취하면서 히브리어 인칭 대명사의 1인칭단수 “아니”(ani=ינא)가 이사야 56-66장에 아노키(anokיכנא )보다 8배나 더 나타남에 반하여 40-55장에는 3배 밖에 나타나 있지 않다는 증거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한 단어를 가지고 2분설,3분설을 주장하는 것은 속단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실수와 과오를 범하기 극히 쉬운 것이다.
①용어문제
보수주의 성경학자 랑게(Lange)박사는 “이사야 전반부와 후반부를 연결하는데 중요한 것은 이사야1장과 후반부의 관계이다.
즉 이사야1장은 첫 서론으로 주목할만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장은 40-66장 과의 분명한 관계의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하에서 1장과 40-66장과의 단어를 비교 검토하겠다.
②문체구조 (교재 낭독)
(5)외 증
①구약외증
②신약외증
A.사40:3-5에 보면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沙漠)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 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고 하였다.
마3:3에 보면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捷徑)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고 하였다.
눅3:4-6에 보면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다.
B.사53:7에 보면 “그가 곤욕(困辱)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屠獸場)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라고 하였다.
행8:32에 보면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였다.
C.사61:1-2에 보면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捕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傳播)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伸寃,伸怨)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고 하였다.
신원(伸寃-펼신,원통할 원)-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 버림
신원(伸怨-펼신,원망할원)-하나님의 보복의 날
눅4:17-19에 보면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고 하였다.
(6)사본이 보여 주는 증거
성경 사본은 총 5,000 여개에 달한다.
그 중에 구약사본만도 1,000여개나 된다.
이들 사본 중에 귀중하고 권위가 있는 사본이 바티칸 사본(Vaticanus of Codex),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nus),그리고 시내산 사본(Codex Sinaiticus)이다.
이것들은 시대적으로 볼 때 주후 몇 백년대에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 못지 않게 유명한 사본이 있는데 그것은 곧 사해 사본이다.
이 사해 사본(Dead Sea Scrolls)은 주전 2세기의 것이고 그 사본들 중에 완전한 두 이사야 사본이 제 1호 동굴에서(C.I -쿰란동굴) 발굴된 것이다.
위의 동굴에서 이 사본이 발굴되어 그 가치가 평가되고 세계에 선풍을 일으키기 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①사본에 의한 반증
“사해 이사야 사본은 두 두루마리로 되어 있다.
첫째는 제1장에서 제33장까지,둘째는 제34장에서 제66장까지이다.(자유주의자 :1-39장,40-66장)
이것은 무엇을 보여 주고 있는가 ? 이것은 자유주의자(自由主義者)들의 생각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또 제1 두루마리의 말미인 제33장 끝 부분에 어떤 여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여백이 없이 그 한면에 글자가 빽빽히 기록되어 있고 또 제 34장의 초두에도 어떤 이유없이 전장의 말씀을 받아 계속하여 기록하였음므로 이것은 타인에 의한 기록의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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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원용국,성서고고학(구약편)-성광문화사
②기록상의 반증
이사야서39장과 40장은 한면에 속해 있다.
③사본 비교에 의한 반증
70인경(약 주전3세기),사해 이사야 사본(주전2-1세기),맛소라 사본(주후7세기)을 비교 연구하여 보면 알수 있다.
(7)기타 증거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의 증거는 이의 없이 일치하다.
외경 에클레시아 스티커스서 48장 24-25절은 명백히 본서 후편을 관설하고 있다.”10)
또 동서 (같은책) 49장 17-25절에도 “그는(이사야) 시온에서 슬퍼하는 그들에게 위로했다 그는 말세에 될 일들을 보여 주었다”고 기록하였다.
벤 시라가 “시온서 슬퍼하는 이스라엘을 위로하는 이사야의 말을 번역하는 가운데 70인역에 사용된 말씀을 인용했는데,이는 이사야 40장 1절과 61장 1,2절에 있다.(Ed.J.Young p.203)
이로써 그는 단일 이사야서임과 저자가 이사야임을 믿고 강력히 증거하고 있다.
또 유대인들이 귀중히 여기는 탈무드에도 이것을 입증하여 준다.
또한 유명한 학자들 가운데서도 이사야서의 단일성과 이사야 선지자의 저작을 주장하고 신뢰하는 이들이 매우 많다.
에드워드 제이 영,카일,델리취,다비드슨,알렉산더,잉거,로빈,울빅,헨더슨, 헨스팅버그 등이 있다.
“바벨론 포로 전의 선지자” 중에 속한 한 사람이 이사야 선지자이다.
포로 전의 선지자들은 아모스,호세아,이사야 그리고 미가이다.
이들은 주전 8세기 말에 속한다.
그 이유는 선지자 자신이 증거하기 때문이다.
이사야 1장에 보면 이사야 자신은 웃시야가 죽던 해에서부터 요담,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사역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웃시야 왕은 주전 745년 경에 세상을 떠났다(746-734).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어 16년을 치리하였다.
그는 재세시에 선정을 했다.
에시엔 게벨에서는 그의 인장인 “요담의 것”이란 것을 발견했다.
그의 사후 그의 아들인 아하스는 주전 730년부터 715년까지 16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악정을 하였다.
이 때에 앗수르 왕 티글랏 필레셀은 이스라엘을 삼킬 징조를 보이고 유다는 그들에 의하여 여러 가지 곤경을 겪고 있던 때이다.
그래서 티글랏 필레셀의 비문에 의하면 “나는 유다 아하스의 조공을 받았다.
금,은,연,주석,린넬, 나는 다메섹을 멸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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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조하번,표준 이사야서 주석,예장 총회 종교 교육부
아하스의 뒤를 이어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다.
이 히스기야 왕(715-687 B.C)은 29년간 유다를 통치하였다.
그의 치세 중간기에는 앗수르 왕 사르곤(살곤)과 그의 아들 사네그립(산헤립)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유다를 몹시 괴롭혔다.
이사야는 주전 745년부터 주전 687년까지(다른 학설 740-681) 주님의 사역을 한 선지자인 것 같다.
즉 그는 약 60년간 사역을 하였다.
4.이사야서의 목적
“이사야의 사명은 유다를 그들의 죄에서 구속함이다.그 유다의 죄는 우상 숭배와 도덕적 타락이다.이것은 곧 하나님을 떠나고 자신들의 패망을 자취하는 것이다.즉 영적 타락 범죄와 사회의 타락과 범죄였다.이보다 무서운 죄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자기 민족의 근본적인 죄를 뿌리 채로 파서 폭로한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은혜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리와 구원을 가르친다.
하나님은 사람(人)이 아니고 오직 신(神)이시다.
그래서 “시온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육적(肉的)인 것이 아니고 마음과 영적(靈的)인 것이다.(1:27)
이사야의 경고는 유다인에게 큰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 민족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이 실패한다.(사6:9-12)
유다는 망할 것이다.
이방인들에 의하여 망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남은자”를 남겨 두실 것이다.(사6:13)라고 하였다.
여기서 “남은자”는 구약에 핵심적인 사상이다.
(1)히브리어(HEBREW)로 동사로 “샤아르”(ראשׁ) - to remain 라고 한다
(2)명사로 “쉐아르”(ראשׁ)라고 한다
가.rest-쉬다,휴식하다,안심하다, 나머지,잔류자
나.remnant -나머지,잔여
다.remainder (사10:20,느헤미야1:2)-나머지,잔여,잔류자,그밖의 사람들
(3)동사 “아찰”(לצא) -to take away -취하다,취한자
(4)동사 “하야”(היח)라고 한다
가.to live -살다,거주하다,존속하다
나.to exist -존재하다,실재하다,현존하다,생존하다,살아가다
다.to enjoy -즐기다,맛보다,가지고 있다,향락하다,
(5)희랍어로 동사 “레이포”(λειπω)-남는다.
(6)명사 “레이포스,로이포스”(λοιπος)이다.
가.remainder -남은자(계9:20)
나.remnant-남은자 (마22:6),나머지,잔여
하나님은 그 남은 자를 통하여 메시야를 주실 것이며,이 세계를 구속하고(사9:2,6;53:1-12),그가 재림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복귀시킬 것이다.(사2:1-5,9:7,11:1-16,35:1-10,54:11-17)
이것은 장차 이스라엘에게서 그리스도가 나시어 세계의 만민을 구속(救贖)하고 영원한 나라에 이끌 것을 예언 한 것이다.(엉거,구약개론 p 320)
5.이사야서의 특성
6.이사야서의 복음적 특성
7.이사야서의 구조
제 一 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 (1:1-35:10)
1.유다에 대한 예언 (1:1-12:6)
1)심판선고(1:1-31) 2)여호와의 날 (2:1-4:6) 3)포도원의 비유 (5:1-30)
4)이사야의 소명 (6:1-13)
5)앗수르에 의한 이스라엘의 파멸(7:1-10:4)
①임마누엘의 표적(7:1-25) ②마헬살랄하스바스의 표적(8:1-22)
③메시야 탄생 예언(9:1-7) ④에브라임에 임할 심판(9:8-10)
6)하나님에 의한 앗수르의 파멸 (10:5-12:6)
①앗수르의 파멸 (10:5-19) ②이스라엘의 남은자(10:20-34)
③메시야 왕국(11:1-12:6)
2.열방들을 향한 책망 (13:1-23:18)
1)바벨론 (13:1-14:23) 2)앗수르(14:24-27) 3)블레셋(14:28-32) 4)모압(15:1-16:14)
5)다메섹과 사마리아(17:1-14) 6)구스(18:1-7) 7)애굽(19:1-20:6) 8)바벨론(21:1-10)
9)에돔(21:11,12) 10)아라비아(21:13-17) 11)예루살렘(22:1-25) 12)두로(23:1-18)
3.미래의 심판과 새 왕국 (24:1-27:13)
1)심판의 때(24:1-23) 2)새 왕국의 승리(25:1-12)
3)새 왕국에서의 찬양(26:1-21) 4)새 왕국의 백성들(27:1-13)
4.심판과 축복에 대한 예언 (28:1-35:10)
1)사마리아에 임할 화(28:1-29) 2)유다에 임할 화(29:1-24)
3)애굽의 동맹국들에게 임할 화(30:1-31:9)
4)메시야와 그의 나라(32:1-20) 5)앗수르에 임할 화(33:1-24)
6)열방들에 임할 화(34:1-17) 7)새 나라와 그 축복(35:1-10)
제 二부 역사적인 사건 (36:1-39:8)
1.앗수르로부터 구원 받은 히스기야 (36:1-37:28)
1)앗수르의 조롱(36:1-22) 2)앗수르의 파멸(37:1-38)
2.연장된 히스기야의 수명 (38:1-22)
3.히스기야의 죄(39:1-8)
제 三부 하나님의 위로 (40:1-66:24)
1.이스라엘의 구속(40:1-48:22)
1)포로 귀환으로 인한 위로 (40:1-11)
2)창조주 하나님의 성품(40:12-31)
3)하나님의 위대하심 (41:1-29)
4)하나님의 긍휼(42:1-25)
5)이스라엘의 회복(43:1-44:28)
6)고레스를 사용하심(45:1-25)
7)바벨론의 파멸(46:1-48:22)
2.이스라엘의 구속자(49:1-57:21)
1)메시야의 임무 (49:1-26)
2)메시야의 순종(50:1-11)
3)남은자를 향한 격려(51:1-52:12)
4)메시야의 속죄(52:13-53:12)
5)구원의 언약(54:1-17)
6)구원에의 초청(55:1-56:8)
7)거역하는 자에 대한 책망(56:9-57:21)
3.이스라엘의 영광스런 미래 (58:1-66:24)
1)참된 신앙에 대한 축복(58:1-14)
2)이스라엘의 죄(59:1-21)
3)새 왕국에서 누릴 영광(60:1-22)
4)메시야의 도래 (61:1-11)
5)이스라엘의 회복(62:1-12)
6)하나님의 심판(63:1-6)
7)남은 자들의 기도(63:7-64:12)
8)여호와의 응답(65:1-25)
9)영광스러운 역사의 절정(66:1-2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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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강병도,호크마주석(기독지혜사,1993)p.29
8. “예언하다”라는 동사의 의미와 예언자에 대한 칭호 소고(小考)
이스라엘의 주변국들에서도 일종의 예언자(豫言者-Prophet)들이 있었지만,그들의 사역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의 사역과는 달랐으며,그 숫자에 있어서도 이스라엘의 예언자들만큼 많지도 않았다.
무아경(無我境-self-forgetfulness-마음이 모두 한곳에 쏠리어 자기를 잊고 있는 경지-spiritual state of perfect selflessness)을 포함한 그들의 기능도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그 당시의 다른 국가의 예언자들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독특한 모습으로 두드러졌다.
이제 우리는 이들이 행한 사역에 대하여 직접 살펴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예언하다’라는 용어인데 이것은 무아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면 먼저 구약에서 사용된 예언자를 의미하는 용어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1)예언자를 의미하는 부수적 용어들
(1)로에와 호제
먼저 살펴보아야 할 용어는 로에(האר)와 호제(הזח)인데 다음과 같다.
①로에(האר)
로에(האר)는 구약에서 12회 사용되었다
그러나 주요 용어인 나비(איבנ)에 비하면 훨씬 적은 숫자이다.
그렇지만 로에와 호제는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대하여 연구할 필요가 있다.
로에(האר)와 호제(הזח)는 모두 분사형(participle)으로서 실질적으로 동일한 의미의 두 동사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로에(האר)는 동사 라아(האר)에서 나왔다.
라아(האר)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가.to see -보다,-보이다,바라보다,관찰하다,구경하다,발견하다,깨닫다,이해하다,살펴보다,조사하다
나.to look -보다,바라보다,주의해서보다,예기하다,기대하다
다.to look at -을 보다,-을 고찰하다
라.to view -바라보다,보다,조사하다,시찰하다,관찰,판단하다
마.to inspect -조사하다,검사,감사,시찰,견학하다
바.regard -주목해서보다,주시,응시하다,유의하다
사.perceive -지각(知覺)하다,감지하다,-을 눈치채다,인식하다,이해하다,파악하다
아.to feel -만지다,만져보다,느끼다,감지하다,감각하다,-라고 생각하다,-라고 깨닫다
자.understand -이해하다,알아듣다,-의 뜻으로 해석하다,미루어 알다
차.learn -을 배우다,익히다,가르침을 받다,듣다,알다,겪어 알다,체득하다,경험으로 교훈을 얻다
카.to live to see -살면서 보다,살면서 알다
타.to enjoy -즐기다,맛보다,향락하다,받다,누리다,가지고 있다
하.to make one feel or know -느끼다,알다
②호제(הזח)
호제(הזח)는 18회 사용 되었다.
호제는 분사형이고 동사 하자(הזח)에서 나왔다.
동사 하자(הזח)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가.to split{split} -쪼개다,찢다,째다,분할하다,나누다
나.divide -나누다,분할하다,쪼개다,가르다,분계(구획)하다,분류하다
다.to see -보다,보이다,바라보다,관찰,구경,발견하다,깨닫다,이해하다,살펴보다,조사하다
라.look -보다,바라보다,주의해서보다,예기하다,기대하다
마.behold -보다,보라
바.observe -지키다,준수하다,-의 관습을 지키다,관찰,관측,주시하다,감시하다,-을 보다,인지하다
사.gaze -지켜보다,응시하다,황홀히 쳐다보다,
아.to select -선택하다,고르다,선발하다,발췌하다,뽑다,가려내다,정선하다
자.to prophesy -예언하다,예측하다,해설하다
로에와 호제는 모두 “보다”는 뜻이다.
분사형 호제(הזח)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가.a seer(보는 사람,선견자,예언자,앞일을 내다 보는 사람,환상가)
나.prophet(예언자,대변자,제창자,예상가)
다.astrologer(점성가{占星家}
라.covenant(계약{契約},맹약{盟約},성약{聖約},계약하다는 뜻이다.
구약에서 일반적으로 번역된 것은 선견자(seer)이다
예를 들면,사울과 그의 종은 사무엘에 대하여 이 용어를 사용하였는데,그들은 이 위대한 예언자의 도시에 접근했을때에 소녀들에게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라고 물었다(삼상9:11)
이들 두용어는 그 이미가 같기 때문에,왜 이들 두 용어가 사용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일어난다.
야스트로우(Morris Jastrow)는 말하기를 로에(האר)는 “선견자”를 의미하는 반면에,호제(הזח)는 “신전에서 보다 공식적으로 신을 섬기는 자”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어느정도 사실이지만,이들 두 용어가 각각 사용된 때를 살펴보면 보다 근본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이들 두 용어는 각기 시대에 따라서 사용되었는데,로에(האר)는 12번 중에서 8번이 사무엘 시대에 사용되었으며 호제(הזח)는 다윗시대에 등장하는 7인의 예언자들 중에서 4인의 경우에 있어서 사용되고 있다
그 명칭이 시대에 따라서 변화한다는 주장에 대한 증거는 사무엘상9:9에서도 발견된다.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先知者)라 하는 자를 엣적에는 선견자(先見者)라 일컬었더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선견자”(האר)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변하여 “선지자”(איבנ)가 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로에-호제와 바벨론의 바루(baru)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하는데,바루는 제2장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제사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언급 되었다.
바루는 또한 “선견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야스트로우(Jastrow)는 이스라엘의 로에-호제는 그 기능이 바루와 근본적으로 같다고 믿는데,그는 그 기능이 “주어진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하여 무엇을 찾는것”12)이라고 믿는다.
다시 말하자면,그는 로에-호제가 근본적으로 바벨론의 바루와 같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한 증거는 구약의 어느 곳에도 없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잃어버린 나귀를 찾기 위하여 사무엘에게 문의하러 온 사울과 그의 종의 경우에 있어서 사무엘은 어떠한 계시의 도구도 사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울에 관한 계시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았다.(삼상9:15,17)
우리는 사무엘이 당시의 전형적인 선견자였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만일 그가 그러한 계시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다면,다른 선견자들도 역시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으며,그 용어가 적용 될 수 있는 다른 어떤 자들도 그러한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이 용어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것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자를 의미한다.
구약의 관점에서 로에-호제와 우림과 둠밈을 사용함에 있어서의 대제사장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께서 어떤 특별한 문제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대제사장에게 주신 수단이다.(출28:30,민27:21)
우림과 둠밈은 고고학 역시 이 부분에 대해 무슨 재질로 만들어 졌으며 어떠한 방식에 의해 쓰여졌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하지 못한다.
다만 매끈한 돌이나 혹은 금속으로 만든 주사위 모양 같았던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그 용도는 명확하다.
즉 그것은 구약 시대 초창기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나타내는 일종의 제비도구로 사용되었다(삼상28:6)
즉 이것들은 대제사장의 흉패안에 넣어져 보관되다가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지을 때에 제비 뽑는 형식으로 뽑아 문제를 판결짓는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우림(םירוא-Urim)은 “빛”을 둠밈(םימת-Thummim,툼밈)은 “완전함”을 뜻한다.
70인역(LXX,Septuaginta)은 우림을 “계시”로 번역하고 있다.
우림의 빛은 인간을 진리로 인도하는 빛을 암시한다.
둠밈도 불완전한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여 판결하시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지혜”를 나타내며 인간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기능을 지닌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 있어서 이러한 수단을 사용한 대제사장(大祭司長)은 역시 “선견자”(先見者)로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수 있는 자였다.
대제사장의 활동과 로에-호제 사이의 활동 사이에는 적어도 세가지의 차이점이 발견된다.
첫째,우림과 둠밈은 해답을 얻을수 있는 가시적인 수단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제사장의 에봇의 “흉패”안에 넣어졌다는 사실로도 증명된다(출28:30)
그러나 로에-호제는 그러한 도구가 전혀 없었다.
두 번째로 대제사장은 도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계시를 받을 때에 그것을 먼저 시작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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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Morris Jastrow,"Ro'eh and Hozeh in the Old Testancent",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28(1909) p.46-47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 때에 사울의 경우에서와 같이 응답하지 않을수도 있었다(삼상28:6)
반면에 로에-호제는 결코 계시의 의식을 시작한 것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세 번째로 대제사장에 의해서 계시된 문제는 항상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민27:21,수7:16-18,9:14,삼상14:18,19)
그러나 로에-호제는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도 관련되고 있다.
예를들면 사울의 잃어버린 가축의 경우와 같이 문의 할수 있다.(삼상9:3-10,20)
(2)하나님의 사람
세 번째 용어는 단순히 “하나님의 사람”(םיהלא שׁיא :이쉬 엘로힘- the man of God )이다.
예를들면 이것은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하여 외치다가 그곳의 늙은 선지자에 의해서 붙잡힌 사람에 대하여 사용되었다.(왕상13장)
이것의 중요성은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자로서 특별한 사명을 위하여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를 지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용어는 또한 잘 알려진 예언자들의 경우에서도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신33:1에서의 모세,삼상9:6에서의 사무엘,왕하4:9에서의 엘리사 등)
2)나비
(1)어원
우리는 앞에서 예언자를 가리키는 주요 단어는 나비(איבנ)임을 살펴 보았다.
이 단어는 명사형으로 약 300회 사용되었으며,나바(אבנ)라는 동사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동사형은 또한 300회 이상 사용되었는데,이것은 구약 전체를 통하여 발견된다.
우리는 먼저 이 단어의 의미에 대하여 살펴 보겠는데,앞에서 살펴본 용어들의 의미를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이 경우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나바의 어원에 대해서는 많은 학설이 있는데,게세니우스(Gesenius)는 이것이 “거품을 뿜다”를 의미한다고 말한다.(Hebrew and Chaldee Lexicon p.525)
그는 이러한 개념을 예언자들의 감정이 거품과 같이 끓어 오르는 무아경의 상태와 관련된 것으로 본다.
미크(Theophile Meek)는 이 동사가 아카드어(AKKADIAN)의 나부(NABU,nabum)와 연관된다고 주장하는데,그 능동형(active)의 의미는 “말하다”(say)이기 때문에 이것도 역시 “말하는자”를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존슨(Aubrey Johnson)과 스코트(R.B.Y.Scott)에 의해서 역시 아카드 어원을 주장하지만,나부는 주로 수동형(passive)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의미는 나비의 어원으로 취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언급되어진 자” 혹은 “부름 받은 자”를 의미하기 때문에 섬김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자라는 의미를 강조한다.
로울리(H.H.Rowley)는 그의 이러한 주장을 따른다.
또 다른 학자들은 “알리다”라는 의미의 아람어(ARAMAIC) 나바(naba')와 연결시키거나,“말하는자”의 의미를 지닌 앗시리아의 네보(nebo)와 연결시키거나,심지어는 “오다”, 혹은 “들어오다”라는 의미의 히브리 어원 “보”(אוב)와도 연결시킨다.
그러므로 어원만을 가지고는 결론지을수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용어가 구약에서 사용된 의미이다.
동사 나바(אבנ)는 다음과 같은 뜻이다.
가.to be inspired -에게 영감을 주다,-에게 생각을 불어넣다,-에게 생기를 주다,고무하다
나.to prophesy -예언하다,예측하다,(성서를)해설하다
다.to speak or sing as a prophet -예언자처럼 말하거나 노래하다
(2)구약에서의 용법
나비(איבנ)는 구약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우리는 그 근본적인 의미를 알기 위하여 많은 부분을 살펴보아야 할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논의에 도움을 주는 구절은 약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대해서만 살펴볼 것이다.
①출7:1이다-이 구절은 가장 중요한 구절이다.
우리는 이것의 중요성을 알기 위하여 먼저 출애굽기 4:10-16을 살펴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모세는 애굽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요구에 반대하면서,무엇보다도 그가 말에 서툴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먼제 모세에게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입을 지으셨기 때문에 모세로 하여금 말에 능하게 하실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 시킴으로써 응답하신다.
모세가 다시 거절하자,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형인 아론으로 하여금 모세를 대신하여 말하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으로써 그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출4:6)
그러므로 모세와 아론 사이에는 하나님과 그의 대변자 사이의 관계와 같은 것이 존재 하였는데,이러한 대변자는 “입”으로써의 특징을 지닌다.(12)
주(註)-“입”을 하나님께 적용시키는 개념은 후기 예언자들에 의해서 언급 되었다.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자들은 “여호와의 입”(렘23:16)으로부터 나온 것을 말하지 아니하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에스겔은 그 자신이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이라고 말하고 있으며,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내 입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신다(겔3:17)
그런 후에 하나님께서는 출7:1에서 아론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가 모세와의 관계에 있어서 그가 모세의 나비가 될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ךאיבנ -prophet of you)가 되리니” 그러므로 나비는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말하는 자가 된다.
고트왈드(Norman Gottuald)는 이 구절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 짓는다.
“히브리 예언의 핵심은 그것이 예견이나 사회적인 변혁이 아닌,하나님의 뜻의 선포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②신18:15-22 이다.
신18:15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전 구절에서 나열된 계시의 형태보다도 그 선지자에게 구해야만 하였다.
18절에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예언자의 역할은 또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나타난다.
③암7:12-16이다.
여기에서 아모스는 벧엘에서 여로보암이 세운 거짓 성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벧엘의 제사장인 아마샤는 아모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니라”고 하였다.(암7:12-13)
이에 대하여 아모스는 다음과 같이 응답한다.
암7:14-15 에 보면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培養)하는 자로서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예언하다”라는 동사의 용법에 있다.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벧엘에서 더 이상 “예언”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토록 하기 위하여 보내셨다고 응답한다.
그러므로 그가 벧엘에서 행하였고,그로 말미암아 아마샤의 책망을 듣게 된 것은 “예언”때문이었는데 이것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다.
④예언자들이 부름을 받았을때에 받은 사명의 성격에 의해서 주어진다.
가.사6:9이다.
이사야는 “가서 내 백성에게 이르라”(사6:9)는 명령을 받았다.
나.렘1:7이다.
렘1:7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고 하였다.(예레미야)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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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레온 우드저(김동진역),이스라엘의 선지자(기독교 문서 선교회,1990) p.86
다. 겔2:3,4이다.
겔2:3,4에 보면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悖逆)한 백성,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열조(列祖)가 내게 범죄(犯罪)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나니 이 자
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剛愎)한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고 하였다.
이러한 명령을 예언자들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계속해서 받은 것이다.
⑤예언자들이 사명을 받을 때에나,혹은 그것을 수행함에 있어서 항상 그 중요성이 하나
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하나님의 대언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단어의 어원(語源,語原)은 그것이 능동적인 의미로 쓰였을 때에 아카드어(AKKADIAN) “나부” (NABUM) “말하다”에서부터 왔을 수도 있다.
적어도 구약에서의 이 단어의 의미는 의문의 여지가 없이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그렇게 쓰이고 있다.
앞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소수의 예외는 무아경을 주장하는 자들이 인용하는 구절들인데,이러한 구절들도 그 의미를 명확하게 숙고해 볼 때에 그러한 주장은 타당하지 않음이 드러난다.
*보조적인 의미들의 중요성
예언자(豫言者)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다”라는 근본적인 개념에 어떠한 의미를 더하고 있는가 ?
가.감정적(感情的)인 요소(要素)-
ㄱ.사울이 그의 궁전에서 광란하여 다윗을 향하여 창을 던졌다-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
삼상19:9-10에 보면 “사울이 손에 단창(短槍)을 가지고 그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竪琴)을 탈 때에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라고 하였다.
ㄴ.찬양(讚揚)-다윗이 법궤를 모셔 올 때에 하나님께 찬양하였다.
삼하6:13-15에 보면 “다윗이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고 하였다.
예언자는 강력한 감정적인 요소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해야만 하는데,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바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낭송만을 한 것이 아니요 삶을 변화시키는 활력의 메시지(message)를 던진 것이다.
이것은 열광적으로 말하는 것이 요구되기 때문에 “예언하다”의 전체적인 의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열광적으로 말한다”라고 결론적으로 말할수 있는 것이다.
3)로에-호제와 나비와의 관계
이제 우리는 로에-호제(האר -הזח)와 나비(איבנ)를 비교하는 것이 필요한데,이들은 근본적인 의미에 있어서 차이점이 존재한다.
로에와 호제는 모두 “보다”를 의미하기 때문에,그 근본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통찰력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들 용어는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분별했을 때에 그들의 사 역의 계시적인 면을 언급한다.
반면에 나비는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실 때에 이미 주신 것을 예언자들이 말로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로에-호제는 메시지를 받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에, 나비는 그것을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들 용어들은 한 사람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본 것이다.
동일한 사람이 이들 세 용어 중에서 어느 하나로써 불려질수 있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그 직책의 차이점을 지적하려고 시도하였는데,그들은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로에-호제는 무아지경에 빠지지 않은 예언자를 의미하는 반면에, 나비는 무아경(無我境)상태의 예언자를 의미한다.
두 번째 로에-호제는 홀로 사역하는 반면에 나비는 집단으로 사역한다.
세 번째 로에-호제는 사람들이 그에게 문의하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반면에, 나비의 경우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느 곳이건 가서 전한다.
그러나 로울리(H.H.Rowley)는 이들 구절을 조사해보면 “그러한 차이점들은 사라진고 만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에 대한 증거로써 갓,잇도 그리고 특별히 아모스를 포함하여 몇몇 예언자들은 실제로 나비와 호제의 두 용어로 불리워졌다는 사실을 제시한다.(17)
(삼상22:5,삼하24:11,대상21:9,대하29:25에서의 갓,대하9:29,12:15,13:22에서의 잇도;예언서를 기록한 위대한 예고자들중의 한 사람인 암7:12에서의 아모스)
이러한 구별은 불충분한 증거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
로에-호제가 계시의 도구를 사용했다는 주장에 대한 증거는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살펴보았다.
이러한 용어로 불리워진 어떠한 예언자도 계시의 도구를 사용했다는 묘사는 없다.
두번째 구별-로에-호제는 홀로 사역하고, 나비는 집단으로 사역한다는 주장에 대한 논쟁을 사무엘 시대의 예언자들의 집단과, 사울이 찾아 갔을 때에 홀로 있었던 사무엘 자신과의 비교에 주로 근거한다.
그러나 사무엘은 예언자 집단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에(삼상19:20)자연히 그들의 부류에 속한다.
그는 또한 나비로 불리우기도 하였다(삼상3:20)
세번째 구별-로에-호제(האר - הזח)는 문의를 기다린 반면에 나비(איבנ)는 그렇지 않았다는 주장도 역시 사무엘에게 사울이 문의를 받았다는사실에 기인한다.
그러나 다른 구절에서 사무엘은 역시 그의 사역을 위하여 움직였음을 알수 있다.
예를 들면 그는 미스바(הפצמ -미츠파=망대,Mizpah)의 부흥(復興)을 주도 했으며(삼상7:1-14),정기적으로 순회를 했으며(삼상7:16,17) 사울을 왕으로 지명하였고,나중에는 다시 그를 책망했으며(삼상10:1-25;13:10이하,15:1이하) 다윗을 왕으로 지명하였다(삼상16:1-13)
그러므로 이러한 구분은 성경으로 부터의 확고한 증거보다는 이론적인 추측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는 삼상9:9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고 하였다.
이것은 곧 사무엘 시대에 “선견자”(האר)로 불렸던 자가 사무엘상이 쓰여질 당시에는 “선지자”
(איבנ)로 불리웠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이들 두 용어가 동일한 자를 의미하며, 오직 그 이름만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용어의 변화에 대하여 주의할 필요가 있다.
나비라는 이름은 사무엘 시대 이후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아닌데,그 이유는 사무엘 자신이 나비로 불리웠으며(삼상3:20)그도 사울에 대하여 이 용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삼상10:5)
모세도 역시 그 자신에 대하여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신18:15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고 하였다.
이상에서 우리는 이 용어에 대한 용법이 바뀌었음을 알수 있다.
사무엘 시대에는 나비가 사용되기는 하였지만 로에가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며,사무엘상의 저자의 시대에는 나비가 사용되었던 것이다.
로에-호제와 나비의 직책 사이의 구분이 필요하지 않다는 또 다른 증거는 사30:9-10에서 찾아볼수 있다.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先見)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正直)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유다의 죄악된 백성들은 선지자들에게 “정직한 것을 말하지 말고” “부드러운 말”과“거짓된 것”을 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죄를 기억나도록 하는 것보다는 그들을 즐겁게 하는 말을 하기를 원하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옳건 그르건 간에 선지자의 행위는 “말하는 것”이었다는 사실과,그들이 나비로 불리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상 여기에서는 로에와 호제가 사용되었는데 로에(האר)는 “선견자”(先見者)로 그리고 호제
(הזח)는 선지자(先知者)로 번역되었다.
그러므로 로에-호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는 자와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에게 말하는 자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나비(איבנ)와 동일한 사역을 행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結
이와 같이 구약 대선지서를 개괄적으로 상고하여 보았고, 서론부분으로 구약예언의 특성을 살펴 보았다.
개론적 접근의 본론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소고(小考)하여 보았다.
이사야의 명칭에 대하여 연구하여 보았다.
저자와 연대에서는 보수주의 학자의 들의 견해와 자유주의 학자들의 견해를 같이 대조하여 보면서 자유주의 학자들의 잘못된 견해를 여러 가지 증거를 들어서 논증하였다.
이사야서의 목적에 대하여 간단하게 서술하였다.
이사야서의 특성은 생략하였다.
이사야서의 구조 및 내용분해를 상세하게 하였다.
“예언하다”라는 동사와 예언자의 칭호에 대하여 고찰하여 보았다.
시대별로 활동한 선지자들은 연구하려고 하였으나 지면관계상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주전 9세기에 예언사역을 한 사람들은 오바댜와 요엘 선지자이다.
주전 8세기에 예언 사역을 감당한 사람들은 호세아, 아모스, 요나 선지자이다.
또한 주전 8세기에 예언 사역을 감당한 사람들은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가 있다.
주전 7세기 예언 사역을 감당한 사람들은 나훔, 스바냐, 하박국 선지자가 있다.
주전 7세기 예언자들 중에 예레미야가 있다.
포로기 시대의 예언자들은 다니엘과 에스겔이 있다.
포로기 이후의 예언자들은 학개, 스가랴, 말라기가 있다.
이상으로 대선지서의 개요와 이사야서의 서론과 분해 및 예언자에 대한 개론적 접근을 시도하여 보았고 간단하게 서술하여 보았다.
- 끝 -
대단히 감사(感謝)합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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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독교 대사전」,서울:기독교서회,1960
3.엉거(김진홍역),「구약개론」,서울:세종문화사,1973
4.원용국,「성막과 십계명」,서울:성광문화사,1977
5.엄도성,「성경낱말사전」,서울:평화사,1982
6.원용국,「성서고고학」,서울:성광문화사
7.조하번,「표준 이사야서 주석」,서울:예장 총회 종교 교육부
8.강병도,「호크마주석」,서울:기독지혜사,1993
9.Morris Jastrow,「Ro'eh and Hozeh in the Old Testancent」,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1909
10.레온 우드저(김동진역),「이스라엘의 선지자」,서울:기독교 문서 선교회,1990
*이사야서에 나오는 우상들
1)사2:8 - םילילא(엘릴림-idols)-우상(偶像)
2)사19:1 -םירצמ ילילא(에릴리 미츠라임,The idols of Egypt)-애굽의 우상들
3)30:22-יליספ(페실레이,idols)-조각한 우상(사40:19,42:8,17),부어만든 우상
사42:8
4)사31:7- ופסכ ילילא (에리리 카세포,the idols of silver-은우상)
ובהז ילילא(에리레이 제하보,the idols of gold)-금우상)
5)사42:17-הכסמ(마세카,image-부어 만든 우상)
6)사42:9- לספ(페셀-idol ,우상을 만든는 자,44:15)*
7)사45:16-םיריצ(칠림-idols,우상을 만든는 자)
8)사66:3 -ןוא(아웬-idol,우상,텅빈,공허)-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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